▲좌의정 이경일 초상화(서울대 박물관 소장)
◇출생 : 1734년(영조 10) 9월 20일(음력 8월 23일)
◇졸년 : 1820년(순조 20) 3월 2일(음력 1월 18일)
◇수(壽) : 85세(歲)
◇자(字) : 원회(元會)
◇봉호 : 오은군(鰲恩君)
◇시호 : 효정(孝定)
◇본관 : 경주(慶州)
◇호(號) : 청헌(聽軒)
◇붕당 소속 : 소론, 시파
◇아버지 : 의빈부도사 증 영의정 이종악(李宗岳)
◇어머니 : 증 정경부인 진주 강씨(晉州姜氏)
◇배우자 :◇ 정경부인 반남박씨(潘南朴氏)
이경일은 선조 때 영의정 오성부원군 이항복의 6대손이자 봉사손으로 이항복의 장남 증 이조판서 오흥군 이성남(李星男)의 5대손이다. 증조부는 오천군 이세장(李世章)이고, 조부는 증 좌찬성 오릉군 이문좌(李文佐)이며, 아버지는 의빈부도사 증 영의정 오풍군 이종악(李宗岳)이다.
생조부는 사도검정 증 이조참의 이홍좌(李弘佐)이고 생부는 성균 생원 증 이조참판 이종열(李宗說)이다. 이경일이 귀하게 되자 양가(養家)와 생가(生家)가 모두 추영(追榮)을 입었다.
벼슬은 1786년(정조 10) 대사간 1791년(정조 15) 황해도 관찰사를 지냈다. 1793년(정조 17) 우의정 김이소의 건의로 호조참판이 될 때 품계가 종2품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라 오은군(鰲恩君)에 봉해지고 연달아 병조 ·형조참판을 지냈다.
1794년(정조 18) 공조 참판을 거쳐 1795년(정조 19) 예조참판, 1796년(정조 20) 병조·이조참판을 지냈고, 1797년(정조 21) 다시 이조참판을 지냈다. 1798년(정조 22) 영흥부사로 나갔다가 1799년(정조 23) 도총관(都摠管)이 되었다.
1800년(정조 24) 공조판서를 지내고 강화부 유수로 나갔다. 1800년(순조 즉위) 순조가 즉위하자 의정부 좌참찬이 되었다. 1801년(순조 1) 다시 공조 판서에 임명되었고, 이후 형조판서를 지내고 광주유수로 나갔다.
1802년(순조 2) 한성부판윤을 지내고, 1803년(순조 3) 기로소에 들어갔다. 1804년(순조 4) 병조판서를 지내고 수원유수로 나갔다가 그 해 가을 우의정에 임명되었다.
1805년(순조 5) 좌의정으로 승진하였으나 55번이나 사직을 청한 끝에 정승에서 물러났다.
1808년(순조 8) 치사 봉조하(奉朝賀)가 되었고, 1820년(순조 20) 사망하였다. 시호는 효정(孝定)이다. <끝>
출처>나무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