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룻기1:1-6절
고후1:8-10절
설명할 수 없는 고난
2011.7.10일(룻기강해1)
▣ 지난 2일 새벽 탄현 이마트에서 일을 하던 근로자 4명이 숨진 사고가 있었습니다. 그 중에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한 사람이 황승원군이 있었습니다. 황군은 중학교 때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고 집을 나간 이후에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독학으로 검정고시를 치른 후에 서울시립대 입학을 하였습니다. 어머니는 식당과 공장에서 일해서 한달 100만원을 벌어서 3식구가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황군의 대학 등록금을 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황군은 군대 제대 이후 등록금을 벌기 위해 제대한지 이틀 후부터 냉동기 보수 회사에서 일용직으로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이런 변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5일에는 아프리카 수단을 탈출하여 사우디아라비아로 불법 이민을 가려고 하던 사람들이 탄 배가 화재가 나서 침몰해서 197명이 죽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들은 수단에서 도저히 살아갈 수 없어서 살아가던 고향을 떠나 사우디아라비아로 불법이민을 가기 위해 배를 타고 가던 중에 이른 사고를 당했습니다. 그들은 희망을 가지고 출항한 배가 도착도 하기 전에 목숨을 잃는 사고를 겪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들은 이런 소식을 접하면서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세상에 이런 일들이 수없이 일어납니다. 정말 설명할 수 없는 고난 가운데 신음하고 통곡하고 절규하는 이들을 향하여 주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실까요?
▣ 우리들은 성경에서 이런 설명할 수 없는 고난 가운데서 절규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기록한 부분이 몇 개 있습니다. 구약에서 고난의 문제를 다루는 대표적인 성경 중에 욥기와 룻기가 있습니다. 저는 앞으로 몇 주에 걸쳐서 룻기를 통하여 고난 가운데 절규하며 그것을 신앙의 힘으로 승화 시켜 구속의 역사를 새롭게 이어가는 한 여인의 이야기를 통하여 우리들의 고난의 현장에서 어떻게 다가오시는 하나님을 발견해 보고자 합니다. 한 사람이 겪는 고통 중에 가장 극심한 고통을 경험하고 있는 여인을 통하여 하나님은 어떻게 그의 삶속에서 개입하시고 인도하신가를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한 인생의 성공신화를 위해 기록한 룻기가 아니고 그 고통 가운데 역사하신 하나님을 발견하기 위해 룻기가 기록되어 있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 룻기는 사사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사사시대를 한 마디로 정의하면 사사기 마지막장 마지막 절인 21장 25절에 “그 때에는 이스라엘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의 뜻에 맞는 대로 하였다.”라고 하십니다. 단순히 다스리는 왕이 없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은 하나님이십니다. 사무엘상 8장 7절에 “그들이 너를 버린 것이 아니라, 나를 버려서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한 것이다.”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무엘에게 왕을 세워 달라고 요구할 때 하나님이 사무엘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바로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친히 그들을 다스리기를 원하시고 왕이 되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사사시대는 하나님이 왕이 되지 않고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을 왕으로 세워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시대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 룻기의 배경은 바로 하나님이 그들의 왕임을 거부하고 자기 마음대로 자기가 옳은 것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주장하며 살아가던 시대를 말합니다. 하나님이 자신들의 주인임을 거부하던 시대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자기들의 뜻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던 시대입니다. 진정한 타락은 하나님이 주인 됨을 거부하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의 뜻에 따라 살아가던 시대가 바로 사사시대이며 암흑의 시대 타락의 시대인 것입니다. 이런 시대에 대조되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룻과 나오미, 그리고 보아스를 통해 들려주고 있습니다. 룻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의 헌신적인 신앙과 고결한 사랑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서는 극도의 타락시기 가운데서도 신앙과 정결을 잃지 않은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어떻게 함께하시고 은혜를 베푸셨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도저히 희망이 없는 것 같은 암흑기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어떻게 구원의 역사를 이어가시는 지를 증거 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룻기를 통해 이사야 42장 3절의 말씀처럼 “그는 상한 갈대를 꺽지 않으며, 꺼져 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며,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다.”하나님의 사랑을 생생히 목격하게 됩니다.
▣ 오늘 본문인 룻기 1장 1-6절은 전체 룻기의 배경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룻기는 소설적인 형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소설의 형식을 보면 발단 부분이 1장이고, 전개 부분이 2장이며, 절정은 3장이고 4장은 결말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마치 한 개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스토리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그럼 룻기의 무대를 지도를 통해서 살펴봅시다. 베들레헴에서 시작해서 모압으로 모압에서 다시 베들레헴으로 돌아오는 배경이 달라집니다. 지도를 보시지요.
▣ 베들레헴은 유다지파가 속한 땅입니다. 베들레헴의 옛 이름은 2절에 ‘에브랏’또는 ‘에브라다’라고 불리워집니다. 이곳은 다윗의 고향이기도 하고, 예수님이 태어나신 곳이기도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베들레헴’이란 뜻이 ‘떡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김윤태집사님이 운영하신 ‘복시루’떡집과 같은 곳이라는 뜻 이지요. 베들레헴은 아주 중요한 곳입니다. 온 인류의 떡으로 오신 주님이 태어나신 곳으로 세상에 참된 양식이 된 곳입니다.
▣ 모압 지방은 문자적으로 ‘모압 들판’이라는 의미로 여기 아르논 강가에 위치한 들판이었을 것입니다. 이곳은 르우벤 지파와 경계를 이루는 곳이기도 합니다. 오늘 룻기는 베들레헴과 모압을 연결하고 있습니다. 룻기의 기록의 목적의 핵심 중에 하나인 다윗의 가문을 설명하기 위한 것입니다. 룻기 4장 22절에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다.”여기서 오벳은 룻과 보아스 사이에 낳은 아들입니다. 바로 다윗의 증조모가 바로 룻이라는 모압 여인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입니다. 왕의 족보에서 이방 여인인 룻이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의 후손에서 예수님이 태어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룻기는 유대중심주의 사상을 넘어서 세계중심주의로 확장 시키는 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구약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만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이방인들도 사랑하셨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선택하신 이유는 이방인을 구원하기 위한 증거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만 도구로 삼은 것이 아니라 이방인들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역사를 이어가심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 배경을 살펴보았다면 이제는 룻기에 나오는 인물들을 살펴봅시다. 가계도를 그려 보면 한 눈에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엘리멜렉 나오미
말론 룻 기룐 오르바
보아스
(민첩함)
▣ 성경에는 이름 자체에 그의 인생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엘리멜렉이란 이름의 뜻은 ‘나의 하나님은 왕이시다’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없던 시대에 하나님은 나의 왕이라는 고백으로 이름을 지었다는 것은 그 부모의 놀라운 믿음을 볼 수 있습니다. 엘리멜렉의 부모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 수는 없지만 아들의 이름을 통해 놀라운 신앙을 볼 수 있습니다. 엘리멜렉의 부인은 ‘나오미’입니다. 나오미라는 이름의 뜻은 ‘기쁨, 사랑스러운 자, 은혜스런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의 인생을 돌아보면 결코 순탄한 삶을 살지 못합니다. 남편을 잃고, 그리고 이어서 두 아들을 잃은 여인의 삶이 어떻게 순탄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고향으로 빈손으로 돌아온 삶이 얼마나 고통의 순간이었을까요? 그래서 나오미가 베들레헴으로 돌아올 때 그 여인인 고향 사람들에게 이렇게 절규하고 있습니다. 1장 20절에 “나를 나오미라고 부르지들 마십시오. 전능하신 분께서 나를 몹시도 괴롭게 하셨으니, 이제는 나를 마라라고 부르십시오.” 여기서 ‘마라’라는 말은 ‘괴로움, 쓰라림’을 뜻하는 말입니다. 나오미의 고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압 여인인 며느리인 룻을 통하여 그의 슬픔을 변하여 기쁨이 되게 하십니다. 여기서 ‘룻’이란 이름의 뜻이 ‘친구’라는 뜻입니다. 나오미의 친구가 되어서 나오미의 이름대로 기쁨을 안겨주게 됩니다. 그리고 엘리멜렉 가문의 두 아들이 나오는데 말론과 기론인데 이름의 뜻이 ‘질병, 병약한자’그리고 ‘황폐, 사모하는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운명을 나타내고 있는 이름 같습니다. 그리고 모압 여인인 ‘오르바’라는 이름의 뜻은 ‘후방, 돌아가는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 지금까지 지역적인 배경과 인물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룻기의 시작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사사 시대에 그 땅에 기근이 든 일이 있었다. 그 때에 유다 베들레헴 태생의 한 남자가, 모압 지방으로 가서 임시로 살려고,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길을 떠났다.”흉년과 기근 때문에 고향 땅을 등지고 남의 땅을 유랑하는 나그네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 모습은 이스라엘 민족의 삶의 모습을 요약해 놓은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 땅은 척박한 땅입니다. 우리나라처럼 살기 좋은 땅이 아닙니다. 물이 귀하고, 농사를 지어서 풍족한 수확을 거두기가 힘든 땅이고, 외부의 침략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땅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흉년과 기근으로 종종 고향을 등지고 타향살이 해야만 하는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선조들인 아브라함도 창세기 12장에 흉년으로 이집트로 이주해야만 했고, 야곱의 전 가족들은 아예 흉년으로 이집트로 내려가서 400여년의 세월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바벨론의 침략으로 나라가 멸망해서 70여년 동안 바벨론에 끌려가서 노예와 같은 삶을 살아가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고향에 돌아 왔지만 고향에 돌아오지 못하고 전 세계에 흩어져 사는 ‘디아스포라’흩어진 백성으로 살아가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난과 배고픔은 그들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삶이었습니다.
▣ 이런 척박한 삶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인생을 배우고 하나님을 만나는 주요한 자리였습니다. 이집트의 노예 생활 400년을 통해 출애굽의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바벨론 포로 70여년의 타향살이를 통하여 그들에게 함께 하신 하나님을 발견하고 성경을 기록하는 역사를 갖게 됩니다. 하나님을 새롭게 발견하고 정립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헬라의 식민지와 로마의 식민지로 살아간 500여년의 시간을 통하여 메시야를 소망하는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고난과 척박한 삶을 통하여 철저히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 이와 같이 신앙은 이런 고난과 역경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 같습니다. 고린도후서 1장에 사도 바울은 엄청난 고난과 고통 가운데 있는 것 같습니다. 1장 8-9절에 보면 “우리는 힘에 겹게 너무 짓눌려서, 마침내 살 희망마저 잃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우리는 이미 죽음을 선고받은 몸이라고 느꼈습니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런 고통의 순간을 통하여 그는 믿음의 눈을 열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합니다. 바로 이어서 “그렇게 된 것은 우리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죽은 사람을 살리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바울은 이런 고통의 순간을 통하여 그는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기 위한 시간이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면서 더 나아가 10절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위험한 죽음의 고비에서 우리를 건져 주셨고, 지금도 건져 주십니다. 또 앞으로도 건져 주시리라는 희망을 우리는 하나님께 두었습니다.”고난은 우리를 하나님을 의지하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건져 주시고 이겨 나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합니다. 그리고 지금 고통의 순간에 포기하지 않고 분명히 우리를 건져 주실 것을 믿고 하나님에게 희망을 두고 나아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 엘리멜렉 가족은 흉년과 기근으로 떡집이어야 하는 베들레헴을 뒤로 하고 고향을 떠나 모압으로 내려갑니다. 그들에게는 모압으로 가면 이런 고통을 조금은 벗어 날 수 있는 희망을 가지고 나아갑니다. 그러나 모압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은 그들에게 희망의 장소가 아니라 바닥으로 치닫는 고통의 자리가 되었습니다. 바로 믿었던 남편이 죽었습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이 죽은 것입니다. 그래도 나오미가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두 아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남편의 죽음이 고통스럽고 슬픈 일이지만, 두 아들을 바라보며 이겨날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오미는 모압 지방의 여인과 두 아들과 결혼을 시키게 됩니다. 나오미는 두 아들의 결혼을 보면서 이제는 이 고통을 끝나는 것 같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이제야 이름대로 하나님이 나에게 기쁨을 주실 것을 믿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행복도 길지 않았습니다. 바로 두 아들이 무슨 이유인지 죽게 됩니다. 배고픔과 가난도 견딜 수 없는 고통이지만 더욱 큰 고통이 있다면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일 것입니다. 특히 아들 둘을 먼저 보내야 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어떨까요? 인생의 가장 극심한 고난을 경험하게 됩니다. 룻기는 이런 고통의 순간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이겨나가는 이야기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룻기의 중심 주제는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이른바 원인 모르는 일련의 재난으로 인하여 겪게 되는 여인의 고난이 중심주제인 것입니다. 이 고난은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고난, 원인 모르는 고난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룻기는 설명할 수 없는 고난 가운데 신앙인의 신앙적 승리를 그린 이야기가 룻기인 것입니다.
▣ 우리들도 이 나오미와 같은 설명할 수 없는 고난에서 하나님 앞에 절규하며 탄식할 때가 있습니다. 그 고난의 순간에 하나님은 저 멀리 있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고통을 외면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 아파하시고, 우리와 함께 울고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영적인 눈을 열어 우리에게 희망을 주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눈을 열어 볼 때 하나님이 주신 희망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 설명할 수 없는 고통 가운데 있는 자들을 외면하지 않고 그들에게 주님의 눈을 열어 보게 해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잃어버리고 살아갑니다. 그들의 신음의 소리를 외면하지 않고 그들에게 희망의 주님을 소개하는 진정한 친구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 나오미에게 친구인 룻이 있었듯이 여러분은 고통 가운데 있는 자들에게 룻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