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미나(崔美娜.1932.8.14∼2015 )
여류소설가. 본명은 은례(恩禮). 전남 여수 출생. 전남여고 졸업. 1957년 [여원(女苑)]에 소설 <등거(登擧)>와 수필 <옥양목과 하늘>이 당선, 1958년 단편 <고개길>이 [현대문학]에 추천되어 데뷔. 한국문인협회 고문, 한국소설가협회 고문.
그의 초기 작품들은 섬세한 심리묘사를 주요 특징으로 하고 있다. 사돈 노녀(老女)가 함께 모인 상황에서 빚어지는 예의 차림과 은근한 신경전을 차분하게 묘사하고 있는 <금침(衾枕)>뿐 아니라, 회장집 수위한테 밉보인 행동 때문에 어렵게 얻은 취직자리를 순식간에 잃게 된 청년의 이야기를 통해 사회계층간의 괴리 혹은 권력의 문제를 그려낸 <절대자>(1967)나 사별한 남편과의 소생이 들어와 형성된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현재 남편의 눈치만 보며 전전긍긍하다가 끝내는 남편의 외도 현장까지 목격하게 되었으면서도 모든 것을 눈감게 되는 부인의 이야기를 다룬 <과정>(1968) 등에서도 섬세한 심리묘사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절대자>, <과정> 등의 작품에서는 심리묘사 때문에 사건 자체의 무게가 경감되는 역효과도 나타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전라북도문화상(1963), 한국문학상(1987), 한국소설가협회상(1989), 서울시문화상(2008) 등 수상.
【작품세계】
최미나에게는 여류작가들이 일반적으로 다루기를 꺼리는 인생의 밑바닥을 거침없이 훑어내려 가는 담대함이 있다. <매화(梅花)틀>(현대문학.1964.4)에서도 그런 대담성은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매화틀이란 결국 변기(便器)에 불과하다. 이동식 변기인 매화틀을 통하여 한 인간의 모습을 그려나간 것이 이 작품이다.
옛날 황제가 사용했다는 그 하나의 이유로 변기를 비싼 값으로 사들여서 신주(神主)로 모시듯 하는 무식한 벼락부자. 이것이 이 소설의 주인공 김덕환(金德煥)이다. 그는 손님 앞에서도 서슴지 않고 하체를 드러내고 매화틀에 올라앉는 그런 인물이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인물이 십만의 인간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 된 것이다. 그야말로 황금만능의 자본주의의 덕을 톡톡히 본 셈이다. ‘민주주의 덕 좀 봅시다.’ 하는 것이 그의 선거 연설이다. ‘가(可)’자와 ‘부(否)’자를 구별 못하여 개헌파동(改憲波動)을 일으키는 인물, 그런 국회의원이 실재하였던 만큼 이 작품은 코믹한 한 인물을 통하여 그가 살고 있었던 시대까지 비판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김덕환(金德煥)은 자신이 신주(神主)처럼 모시고 다니던 모든 골동품이 가짜였음을 알게 되고, 너무 놀라서 매화틀에 주저앉는 통에 서자(庶子)가 수없이 박아놓은 못에 찔려 그것이 빌미가 되어 죽고, 죽어서도 독립운동을 한 애국지사의 무덤을 파헤치고 그 자리에 거룩한 무덤을 만들어 드러눕는다.
가짜와 엉터리가 판을 치고 다니던 한 시기. 김덕환은 그 시기를 대표하는 하나의 전형적 인물이다. - 깅인숙(姜仁淑) : <한국단편문학대계>(1969) 발췌 -
【작품】<고갯길>(현대문학.1959.3) <그림자>(현대문학.1959.8) <합류(合流)>(현대문학.1960.3) <전족(纏足)>(현대문학.1961) <만학선생(晩學先生)>(현대문학.1962) <불협화음(不協和音)>(현대문학.1963) <매화(梅花)틀>(현대문학.1964.4) <특급탈선(特級脫線)>(문학춘추.1964.10) <야학(野鶴)>(현대문학.1965.1) <여자의 유산(遺産)>(현대문학.1965.10) <이대이혼(二代離婚)>(문학춘추.1965.12) <야유회(野遊會)>(현대문학.1966.12) <절대자(絶對者)>(현대문학.1967.6) <태양의 흑점(黑點)>(현대문학.1968.1) <과정(過程)>(월간문학.1968.12) <합류(合流>(1967) <금침(衾枕)>(여류문학.1968.11) <허지만씨(氏>(월간문학.1970.8) <폐촌(廢村)>(월간문학.1972.2) <정체(正體)>(월간문학.1972.8) <이 흐린 바람을>(현대문학.1973.8) <종부(宗婦)>(월간문학.1973.12) <내일은>(신동아.1975.4) <미친 사계(四季)>(월간문학.1975.6) <갓쌈>(현대문학.1975.7) <명수(名手)>(한국문학.1976.8) <매화틀>(1979) <여자가 바다를 느낄 때>(1980) <고뇌의 겨울>(금화출판사.1980) <뜨거운 강물>(장편.행림출판사.1981) <내일의 사과나무>(1984) <방황하는 집>(사사연.1987) <세 번째 만남>(1989) <계절은 끝나지 않고>(원방각.1992) <뜨거운 강물 방황하는 집>(1993)
【소설집】<합류(合流)>(1963) <세 번째 만남>(미래문화사.1989) <계절은 끝나지 않고>(원방각.1992)
[최미나, <나의 중학 시절> 『학원』1969.2월호. pp.98~103
햇병아리 문학도 시절
최미나
초등학교 과정을 완전히 일제의 식민지 교육을 받아온 우리는 광복의 거리에
숱하게 나붙은 벽보에도 눈 뜬 장님이었다. 태평양 전쟁 말기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머지않아 일제가 패망하리란 집안 어른들의 귓속말을 들었을 때, 나 는 이제 우리도 죽는 묵숨인가 싶었다.
우리 또래 아이들은 일본이 망하는 날엔 할복자살을 해야만 황국신민의 도리 가 아니겠느냐고 쑤군댔다. 그 중에는 너무 슬퍼서 벌써부터 훌쩍훌쩍 느껴 우
는 아이도 있었다.
해방이 되어 해외에서 돌아온 애국지사들 귀국 강연회에 동원되었다. 마이크 시설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던 시절이라 도무지 그 내용을 알 수가 없었으나 저
마다 핏대를 세우고 주먹을 내두르며 현하의 열변을 토했다. 그 때문인지 웅변
대회가 성황이었다. 유달리 수줍음이 병처럼 지나폈던 내가 학급 대표에서 끝 내는 학교 대표로 출전했었는데 지금도 그 까닭을 모르겠다. 아마 국어책을 낭 독할 때 선생님의 관심을 끌지 않았던가 싶다. 그렇지 않고서야 세 사람만 모 이는 자리에 서도 가슴이 뛰어 말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계집애가 어떻게 그
어마어마한 웅변대회에 나가겠는가 말이다. 오빠가 써준 원고를 외우느라 밤잠
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기억은 현재 문화방송국 프로듀서로 있는 문숙영이란 친구와 합작 소설을 쓴답시고 마주 앉아 서로 한 줄씩 써내려 갔는데, 그 제목
이 「우정에 울었다」라고 했던 것 같다. 펜만 잡으면 아니, 덮어놓고 쓰기만 하면 소설이 되는 줄 알았기에 그런 무모한 짓을 저질렀던 것 같다. 우리 둘과 다른 두 친구, 이렇게 네 사람은 자칭 전남여중을 대표하는 문학소녀들이었다.
우리 친구들은 햔 교실에서 말마다 편지를 써서 책상 속에 몰래 집어넣는 것 이 큰 즐거움이었다. 그 내용은 거의 인생이란 무엇인가에서 시작되었고, 마지 막엔 자기 스스로 흥에 겨워 남의 작품(주로 세계명작)의 한 구절을 자기 것인 양 표절(?)하여 감탄사를 마구 남발하기 일쑤였다.
친구들은 눈빛처럼 새하얀 칼라를 달고 치맛주름을 칼날처럼 세우는데에 무진 애를 쓰는데, 이 자칭 문학가는 독서로 인하여 철야를 한다는 자부심만이 팽팽 했다. 발가락이 나오는 운동화를 신은 것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긴 좀 이단적 인 소녀는 마치 자신이 불우한 천재처럼 착각했던 것 같다. 세속이란 것을 철저 히 경멸했다. 평범이란 단어를 무엇보다 경원했다.
지나치게 날카로와서 무엇에나 부딪히기만 하면 상처를 입는 골치 아픈 기질이 랄까. 하찮은 일에도 가슴이 무너져 내리며 골을 잘 내며, 울기도 잘 하는 이른 바 다혈질이 아니었나 싶다. 이 때문에 우리 친구 네 사람은 때로는 연인들처럼, 다정했다가도 삐지기도 잘 했다. ‘감상적’이란 것을 무엇보다 혐오하면서도 남달 리 감상적이었다. 동이 트기가 바쁘게 일어나 찬이슬을 맞으며 학교로 가서 나는 싸늘한 교실에 앉아 열심히 시를 썼다. 시상을 가다듬는답시고 눈을 지그시 감으 며 풍금을 치고 있는데, 숙직 선생님이 아닌 새벽 풍금소리에 놀라 귀신이 아니 가 하고 겁에 질리셨던 말을 듣고 친구들과 나는 허리를 잡았다.
어느 일요일, 서중학교 문학 서클과 모임을 갖기로 합의를 보았다. 우리는 3학년, 그 쪽은 5학년생이었다. 남학생 다섯 사람, 우린 네 사람 모두 9명이었다. 장소는 김정옥(지금 연극 연출가)씨 집에서 이해 많은 그의 부모 입회 하에 열렸다. 만장 일치로 합의가 되어 모임을 「구맥회(九麥會)」라 명명했다. 우리는 「구맥」이란 문예 잡지 창간에 한동안 분주하게 오갔다. 표지를 그 때 전남여중 재직하셨던 천경자 선생님한테 부탁할까 했다가 어디까지니 우리 만의 힘으로 이뤄야 한다는 의견이 일치되어 회원 중 그림 잘 그리는 내 친구가 그리게 되었다. 9개의 보리 이삭이 섬세하게 그려진 산뜻한 표지에 저마다 회심의 작품을 프린트하고 물빛 리본으로 묶은 창간호는 양교 학우들의 경탄과 선망을 한 몸에 입고 고고의 첫 울음소리를 내고야 말았다.
추억은 역시 화첩(畫帖)처럼 아듬다워야 하겠다. 즐거웠던 일, 슬펐던 일, 모두 지나보면 한결같이 그리움 뿐이다. 학생 여러분도 지금 이 시절에 아름다운 추억 들을 실컷 창조해 두기 바란다.
첫댓글 2020.9월 <이동주문학제> 이동주 조명하는 발표를 맡게 되어 자료를 뽑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