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안먹어요"
김용태 신부 강론 글, 사순 제4주일, 대전교구 주보
(2역대기 36,14-16.19-23 에페소 2,4-10 요한 3,14-21)
‘심판’과 ‘구원’
“밥 안 먹어요!” 어려서 심통을 부릴 때 툭하면 부모님께 했던 말이다.
내가 밥을 안 먹으면 속상해 하실 부모님의 마음을 볼모로 잡은 같잖은 협박이었다.
그리고 그 협박의 결과는 대부분 부모님의 상심과 나의 배고픔으로 끝나곤 했다.
어떤 때는 심통을 심하게 부리느라 하루 종일 굶기도 했는데 한밤중에 배고파 잠 못 이루면서
부모님만 원망했던 기억이 난다. 어릴 적 철없던 시절의 일이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참 미련한 짓이라는 생각이 든다. 밥 안 먹어봤자 결국은 나만 손해 보는 일 아닌가!
더구나 그렇게 자초한 손해를 부모님 탓으로 돌리는 어리석음이라니!
아무 잘못도 없는 부모님은 그로 인해 또 얼마나 상심하고 자책하셨을까!
그런데 어려서나 할 법한 철없고 미련한 이 행동을 나이를 먹어서도 저지르는 경우가 있다.
다름 아닌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어리석음이다. 밥 안 먹겠다고 부모님께 심통을 부리듯이
하느님의 은총을 거부하며 빛이 아닌 어둠 속에 머무는 것이다.
그러고는 어둠 속에서의 춥고 배고프고 막막한 처지를 하느님 탓으로 돌리며
하느님을 원망하며 살아가는 거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하느님의 ‘심판’은
하느님이 나에게 가하시는 형벌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자해’에 더 가깝다.
다시 말해서 내가 자초하여 스스로에게 가하는 형벌인 셈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
그 심판은 이러하다.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요한 3,17-20).
그렇다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지옥형벌’이란 것도 ‘지옥에 떨어지기 싫어하는 죄인을
하느님이 억지로 떠미는 것’이 아니라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는 악인들이 이미 이 세상에서부터
지옥을 만들어 놓고는 스스로 기어들어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결국 구원이란 다른 게 아니다.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신’
하느님의 사랑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물론 그 사랑은 고통도 희생도 없는
달콤한 사랑이 아니라 십자가 위로 들어 올려진 처절한 사랑이다.
하지만 그 사랑이 진정 서로를 구원할 수 있음을 우리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하겠다.
대전교구 김용태 마태오 신부
2024년 3월 10일
첫댓글 ㅎㅎㅎ...'성경공부 안해요. 성당 안가요. 봉사 안해요. '
밥 안 먹는다고 떼를 쓰는 우리와 내 안에서 발견되는 모습....
누구 덕분인가?
분명히 기여한 분들이 있을 텐데...
그리고 변화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