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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크 향수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먼저 합니다. ‘되게 비쌀 것 같은데..’ 네! 맞아요. 콧대 높은 도도 샤넬조차도 그쯤이면 싼 거라고 여겨지게 만드는 게 부티크 향수들입니다. 그런 부티크 향수 사이에서도 가격이 사악하다 싶은 브랜드 CREED(크리드), 크리드 얘기로 부티크 향수 시리즈 3을 이어갈게요.
이전에 소개한 산타 마리아 노벨라가 워낙 장구한 세월을 품은 브랜드라 그 앞에선 찍 소리도 못할 것 같긴 하지만, 크리드도 역사가 깊은 향수 브랜드인 편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2세기 반쯤 전인 1760년, 퍼퓨머(parfumeur: 불어로 조향사)인 제임스 헨리 크리드(James Henry Creed)가 런던에 ‘House of Creed’라는 자신의 이름을 건 샵을 엽니다. 향에 대한 탁월한 감각으로 영국을 비롯한 유럽 귀족들에게 빠르게 입소문이 나며 단박에 유명해지죠. 그리곤 이내 빅토리아 여왕이 영국 왕실의 공식 향수로 지정하면서 영국은 물론이고 다른 유럽 왕실에서도 찾는 인기 향수로 명성을 떨칩니다. 그렇게 첫 시작부터 왕실과 귀족을 타깃으로 하며 로얄 패밀리가 찾는 향수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에, 크리드는 애초부터 누구나 쓸 수 있는 향수가 아닌 소수의 특권층, 상류층을 위한 특별한 향수로 아이덴티티를 정립해나가게 됩니다. 크리드의 창시자이자 1대 조향사인 제임스 헨리 크리드는 House of Creed를 가족기업으로 대대손손 물려주게 되는데요, 아버지가 아들에게, 또 그 아들이 자신의 아들에게.. 그렇게 이어져 오늘 날에는 크리드 가문의 7번째 주인공인 1981년생의 젊은 어윈 크리드가 오너로 있습니다. 사진 찾아 보니 엄청 탐나는 남자에요. 고작 81년생인데, 으~ 딱 귀티 좔좔 영국 훈남 꽃재벌 포스죠! 저 혼자만 탐내지 말고 여러분에게도 사진 보여드릴게요. 힛~
크리드는 왕족과 귀족뿐 아니라 오래 전부터 헐리웃 셀러브리티들에게 각별한 사랑을 받은 향수 브랜드이기도 합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오드리 햅번을 언급할 수 있는데요, 그녀의 오더로 만들어진 스프링 플라워(Spring Flower), 지금은 핫핑크 보틀에 담겨 그 상큼하고 생기 가득한 러블리 이미지를 뽐내고 있죠. 스프링 플라워는 크리드의 스테디 셀러로, 크리드가 가족기업으로서 여태까지 7세대를 거치며 약 200개의 향수를 제조했지만, 그 수많은 향수 중에서 결코 빠뜨릴 수 없는 향수가 스프링 플라워입니다. 거기엔 오드리 햅번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으니까요.
오드리 햅번은 시대를 초월한 러블리함의 대명사라는 것, 누구나 인정하죠? 사랑스러운 그녀의 이미지와 어울리는 향수라면 어떨까요? 아마도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나 그 향기에 사랑스러움을 느끼지 않을까요? 사실 크리드 향수는 전반적으로 묵직한 무게감에 기품 있는 향기가 주조를 이뤄요. 그래서 처음 향을 맡을 때부터 ‘아~ 좋다!’라는 생각보단, 시간이 지날수록 뭔가 깊이가 느껴지는 향이 체취와 함께 어우러지며 고급스러움을 뽐낸다는 특징이 있거든요. 그런데 스프링 플라워는 일반적인 크리드 향수와 달리 그냥 처음부터 ‘아~ 좋다!’ 이런 향수! 그런데 누구에게나 기꺼이 사랑 받을 만한 향기라는 건 다른 각도에서 봤을 때, 다소 대중 취향의 향기라고도 할 수 있겠죠? 그래서 향 자체는 굉장히 좋은데.. 어디에서도 맡아볼 수 없었던 아주 특별한 향이라고 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크리드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 그리고 10대부터 20~30대까지의 젊은 여성, 그리고 주위 사람들 취향까지 고려해 누구에게나 ‘너에겐 참 좋은 향이 나’라는 소리를 듣고 싶은 경우엔 스프링 플라워가 제격이죠. 이름답게 봄의 상큼발랄한 생명력을 때묻지 않은 여성의 사랑스러움으로 잘 표현해낸 향수거든요. 만일 제가 봄에 크리드 이야기를 썼다면, 이 향수를 되게 추천했을 거에요. 봄의 생명력이 워낙 사랑스러운 여성미로 잘 표현되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지금은 장마철, 끈적끈적 후덥후덥 이런 여름이잖아요. 그래서 이보다는 아래에서 추천할 쟈딩 다말피를 더 추천하고 싶어요. 그건 이어서 얘기하기로 할게요.
스프링 플라워 이야기를 끝내기 전에 이와 비슷한 아쿠아 피오렌티나 얘기를 마저 해야겠어요. 요즘 크리드 매장에 가면 전략적으로 시향을 권하는 향수가 아쿠아 피오렌티나(Acqua Fiorentina)에요. 백화점 에스컬레이터에서 크리드 직원이 시향지를 나눠주고, 매장에 가도 우선 향을 맡아보라고 추천을 많이 하거든요. 단독 아크릴 쇼케이스에 향수가 디스플레이되어 있고, 이 향수에 대한 히스토리를 들려주는 문구도 적혀있죠. 바로 지금, 크리드에서 밀어주고 있는 향수가 바로 아쿠아 피오렌티나입니다. 피오렌티나는 산타 마리아 노벨라를 얘기할 때 피렌체의 해리티지와 같다고 했잖아요? 바로 그 르네상스 시대 15세기의 피렌체에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향수입니다. 크리드에서 여태까지 만든 향수가 200여종, 그 200여종이 모든 매장에 다 구비되어 있진 않거든요. 만들어졌다 단종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고, 재출시가 되기도 하고. 아쿠아 피오렌티나가 그래요. 앵콜 향수로 최근 재출시가 된 향수인데요, 이 향수가 스프링 플라워랑 같은 분위기에요. 향을 맡으면 되게 좋긴 한데, 그런데 굳이 따지면 전 스프링 플라워 쪽이 좀 더 낫지 싶어요. 아쿠아 피오렌티나에는 크리드만의 유니크함을 느끼기가 힘들거든요. 얘는 스프링 플라워보다도 더 흔한 느낌? 물론 흔하다고 나쁜 건 아니에요. 흔한데 되게 좋은 향이에요. 하지만, 크리드처럼 고가의 향수를 구입하면서 어디선가 맡아본 듯한, 다른 브랜드에서도 비슷한 걸 찾아낼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향수에 돈을 지불하기란 매우 아깝잖아요. 그래도 스프링 플라워에는 오드리 햅번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고.. 또 사랑스럽기 그지 없는 핫핑크 보틀이 그 매력을 뽐내니.. 누구에게나 사랑 받을 만한 향기의 크리드 향수를 찾는 분에게, 전 스프링 플라워를 추천하고 싶어요.
아쿠아 피오렌티나는 이사벨 펄만(Isabelle Fuhrman)이라고 왜 공포영화 <오펀> 아시죠? 그 주인공인 97년생 헐리웃 스타가 극찬한 향수이기도 해요. 영화 <헝거 게임>이랑 최근에는 <애프터 어스>에도 출연했는데, 11만이 넘는 트위터 팔로워가 있다고 하는데, 어린 친구들 사이에서 이 친구 인기가 꽤 좋은 것 같아요. 비록 우리나라에서는 인지도가 낮지만요. 그녀가 트위터에서 아쿠아 피오렌티나를 극찬했다고 하던데 저는 ‘음~ 그럴 법도 해!’라고 고개를 끄덕였어요. 97년생이면 아주 어리잖아요? 아직 10대 사춘기 소녀. 말씀드렸죠? 이건 누구에게나 호감을 살 만한 러블리한 향이라고. 아직 향수에 대한 경험이 많지 않고, 성숙한 여성이기보다는 소녀잖아요? 아쿠아 피오렌티나는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에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고 하지만, 실상 그 이미지보다는 그저 사랑스러운 어린 소녀, 젊은 여성의 건강한 에너지가 떠오르는 이미지거든요. 잘 가꿔진 정원을 뛰어다니며 미소를 터뜨리는 사랑스러운 젊은 여성, 그래서 아쿠아 피오렌티나는 크리드 향수들마다 그에 어울리는 나이를 매겨본다고 했을 때, 가장 영한 향수가 아닐까 싶어요.
자~ 그럼 앞에서 언급한, 여름에 잘 어울릴 거라 생각하는 쟈딩 다말피(Jardin d'Amalfi) 얘기를 할게요. 우리나라의 여름은 미국 캘리포니아나 유럽 프랑스 남부, 이탈리아 같은 지역의 여름과는 좀 다르잖아요. 매우 끈적이고, 기운 빠지고, 짜증나고, 불쾌한 그런 여름에 가깝죠. 기후 특성상. 쟈딩 다말피는 그런 여름의 찝찝함을 향기로 다 잊게 해 줄 것만 같은 향수입니다. 크리드 향수는 영어 이름으로 된 게 있고, 프랑스어 이름으로 된 게 있는데요. 애초 영국 향수라는 작은 틀에 국한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향수 이야기를 할 때 절대 빠뜨릴 수 없는 나라가 프랑스잖아요. 좋은 향수의 원료는 이전에 아닉 구딸을 소개할 때 말한 것처럼 프랑스 남부 그라스에서 재배 및 추출이 이루진다고 말이죠. 그리고 프랑스는 워낙에 향수 강국이고요. 크리드는 애초 영국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유럽의 왕족과 귀족들에게 사랑을 받은 브랜드다 보니까요. 제품 이름도 어떤 건 영어 이름, 또 어떤 건 프랑스 이름 이래요. 쟈딩 다말피(Jardin d'Amalfi)는 프랑스어로 지어진 이름. 해석하면 ‘아말피의 정원’이라는 의미인데요. 아말피는 이탈리아 남부 포지타노에서 비에트리 술 마레이에 이르는 아주 아름다운 해안가를 말해요. 그 전경이 무척이나 아름다워서 1997년, 유네스코에서는 ‘코스티에라 아말피타나(아말피 해안)’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고요. 그보다 더한 수식어는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붙여줬죠.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 1위’로 아말피 해안을 선정했거든요. 세계적인 부호와 유명인들이 여름 휴가를 보낸다는 아말피 해안, 얼마나 아름답길래.. 하는 호기심이 마구 들죠 여러분?
그런 아말피의 정원의 이미지를 향으로 표현해내고자 한 이 향수는요, 이탈리아의 여름, 밝고 건강한 태양이 있고, 상쾌한 바다 바람이 불고, 에메랄드빛 바다와 하늘의 경계선이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푸르고, 정원에는 풀과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고, 좁은 해안가 언덕 마을의 골목 가득을 매우고 있는 레몬의 향기, 바로 그런 걸 담고자 한 향수에요. 향취를 프레쉬 우디 그린 계열로 구분하는데요, 그토록 아름다운 아말피 해안을, 여름의 이탈리아를 담아내기 위해서 아말피산 탠저린, 시칠리아산 레몬, 칼라브리아산 베르가못 같은 탑노트 항료를 전부 남부 이탈리아에서 공수해 만든 향수입니다. 그렇다고 시트러스 계열의 향기만 나는 건 아니죠. 오히려 일반적인 시트러스 향수와는 달리 그저 상큼하고 신선한 느낌에서 끝나지 않아요. 베티버(뿌리에 강한 방향성이 있는 허브에요), 샌달우드, 스파이시 핑크 페퍼(붉은색 후추) 같은 강한 향료가 미들 노트를 차지하고 있는데요, 다행인 건 생각처럼 미들 노트가 강하게 표현되지 않고 은은하게 감돈다는 것, 그게 큰 매력이에요. 너무 강했다면 되게 무겁거나 아주 시원하면서 남성적으로 표현됐을 수도 있는데 그렇지 않거든요. 그리고 베이스 노트로 용연향과 머스크가 고급스럽게 감돌아 사람들마다 고유한 체취와 잘 어우러지며 은은함을 발산하게 되죠. 그래서 일반적인 시트러스 향수를 생각하고 얘를 대한다면, ‘엥? 이게 시트러스 향이야?’ 이런 생각이 드실 거에요.
톡 쏘는 시트러스의 느낌보다는 오히려 은은하게 퍼지는 시트러스! 기품 있게 표현된 시트러스의 절정을 경험한 듯한 기분? 푸른 정원, 새파란 바다, 그리고 따사로운 태양의 열기를 식혀주는 짭조름한 듯 싸한 바다 바람의 공기가 느껴지며 가슴을 시원하게 만들어줘요. 그냥 상쾌한 게 아니라 뭔가 귀티가 폴폴 나는 상쾌함이라고 표현하는 게 좋을 듯해요. 그래서 왠지 자유로운 영혼에 어울릴 법한 향이죠. 일상 속 답답함과 스트레스를 날려줄 향기, 한 해 동안 열심히 일하다가 한여름, 해안가로 멋지게 여유로운 휴가를 떠난 사람에게서 묻어날 법한 그런 향기요. 화사한 화이트 컬러의 요트룩 패션에 아주 잘 어울릴 것도 같아요. 전 이런 향 어디에서도 맡아본 적이 없어 참 좋더라고요.
맷 데이먼이 주연인 영화 <리플리> 아시죠? 거기에 보면 미국인 선박 부호의 망나니(?) 아들로 여자 친구와 함께 그저 놀고 먹으며 아버지의 재산을 탕진하며 여유를 즐기는 젊은 주드 로가 나오잖아요? 이탈리아 해변(아마 나폴리죠 거긴?)에서 귀족적 색채가 물씬 풍기는 삶을 사는 주드 로. 저는 쟈딩 다말피의 향을 처음 맡았던 그 순간, 영화 <리플리>가 떠올랐어요. 이 향수 자체가 이탈리 여름 해안을 모티브로 하는 데다가 크리드 향수 자체가 워낙 귀족적 느낌이 강하다 보니까, 어쩐지 영화 속 주드 로나 기네트 펠트로와 아주 잘 어울리는 향기라는 연상이 되었거든요. 크리드에서 이 향수는 여자 향수로 구분하지만, 뭐 제가 봤을 때 남자가 뿌려도 괜찮을 법한! 너무 여성스럽지 않은 여자 향수? 어쨌든 아말피의 귀족적 여름을 떠올리게 하는 올여름 가장 추천하고 싶은 향수지만, 누구에게나 추천하기엔 가격 부담이 큰 쟈딩 다말피였습니다.
사실 크리드는 보틀 디자인만 봐도 되게 품격 있어 보이거든요. 향수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봐도 값져 보여서 진열된 것만 보더라도 ‘어머! 저 향수 좀 봐, 되게 비싸게 생겼네!’라고 생각할 만한 포스가 뿜어져 나와요. 맞아요. 크리드는 정말 비쌉니다. 올여름 가장 추천하고 싶지만 부담스럽다고 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어요. 이전에 소개한 아닉 구딸과 산타 마리아 노벨라도 부티크 향수라 만만한 가격은 아닌데, 크리드는 그보다 훌~쩍 더 먼발치에 있는 가격대! 맨 처음, 비싼 부티크 향수라는 얘기로 시작했는데.. 크리드 향수 가격을 안내해보자면, 가장 적은 용량인 30ml가 보통 198,000원, 75ml는 323,000원입니다. 그리고 120ml는 378,000원! 사실 75ml와 120ml는 용량 차이에 비해 가격 차이가 얼마 나지 않기 때문에요, 크리드 향수를 살 거라면 차라리 120ml짜리를 사는 게 이득이라는 조언부터 던질게요. 그리고 제가 방금 소개한 쟈딩 다말피 있죠? 걘 크리드에서 브랜드 탄생 250주년을 기념하며 250ml 대용량으로 럭셔리한 유리 보틀에 담겨 한정판으로 출시했었는데요, 보면 ‘우와~ 갖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지만 욕심내기엔 뒷목 잡고 쓰러질 가격! 75만원대인가 그렇거든요. 물론 250ml면 꽤 넉넉한 용량이긴 하지만.. 아무리 그걸 감안해도.. 털썩! 부티크 향수 중에서도 꼭대기에 있는 향수, 하지만 태생부터가 왕족과 귀족의 향수였으니 ‘뭐 그래..’하고 생각하고 마는 거죠.
크리드에 보면 향수와 라인을 같이 하는 향초들이 나와요. 꽃을 연상시키는 그 우아한 유리 jar 디자인이며 금칠된 뚜껑에 새겨진 음각 로고, 그 뚜껑을 열면 굳이 불을 붙이지 않아도 강렬하게 확산되는 향이 심장을 콩닥콩닥이게 만들죠 갖고 싶은 소유욕이 콕콕 자극되니까요. 하지만 가격을 알고 나면 이젠 심장이 쿵덕쿵덕 뜁니다. 가격에 놀래서요. 발길을 돌리고, 마음 속 로망 향초로, 언젠가 내 저 녀석을 살 날이 오겠거니 하는 마음을 고이 간직하게 되죠. 가장 대중적인 향초 양키캔들 아시죠? 양키캔들에서 미디엄 자를 제일 많이 쓰잖아요? 그게 411g이에요, 그 반쯤인 200g이면 크리드 향초가 그리 크지 않다는 거 감이 오시죠? 그런데 그게 무려 145,000원입니다. 크리드는 그래요. 향수나 향초, 방향제를 워낙 좋아해서 독창적인 좋은 향기에 기꺼이 비용을 치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저에게조차도.. 크리드는 심호흡을 여러 번 하게 만드는 브랜드입니다.
그래도 위안을 삼자면.. 다른 향수에 비해서 향의 지속 시간이 비교적 길다는 것! 그건 아마 원료의 함량에서 기인한 장점 같아요. 크리드는 타 향수 브랜드에 비해 천연 향료의 함량이 압도적으로 높거든요. 또한 각 향의 원료도 가장 유명한 원산지(주로 유럽)를 찾아서 공급 받아 만드니까요. 그리고 또 다른 향수들이 쉽게 따라올 수 없는 기품이 담긴 독창적인 향이 무엇보다 큰 매력이죠. 디자인에서부터 뿜어져나오는 그 고귀한 자태란, 한번쯤은 소유하고 싶은 욕심을 자극시키긴 해요. 왕족과 귀족, 유명 셀러브리티들이 선호하는 소수 상류층을 위한 향수라는 데에서 그 값비싼 가격을 합리화시킬 의미를 찾는다면 찾을 수 있겠죠. 그래서 크리드는 무조건 추천하고 싶은 부티크 향수는 아니에요. 언제 강남에 있는 백화점(현대 압구정, 갤러리아 EAST, 신세계 강남점)에 나갈 일이 있다면 크리드에 들려 시향이라도 해보시라 이거죠. 혹여 시향하다 마음에 쏘~옥 들어오는 향이 있거든, 언젠가 내가 저 아이를 데려오리라, 내 것으로 삼겠노라 하는 로망 정도쯤은 가져도 괜찮잖아요. 그런 의미에서의 소개라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부티크 향수 시리즈2에서 고급스러운 비누 잔향 같다며 제가 최근에 2병째 쓰고 있는 산타 마리아 노벨라 향수 프리지아를 추천해드렸잖아요? 크리드에도 이처럼 비누 잔향 같은 뽀송뽀송 순결한, 그리고 청초한 이미지를 풍기는 향수가 있답니다. 쟈딩 다말피와 더불어 제가 가장 괜찮다고 생각하는 크리드 향수에요. 크리드 향수는 대개 향의 강도와 발산력이 강한 편이라고 앞서 말씀드렸죠? 그런데 이 향수는 굳이 표현하자면 크리드스럽지 않게 아주 은은하고 고요하게 향이 퍼지는 특성이 있어요. 비누 잔향 느낌을 주려면 당연히 그래야겠죠? 아름다운 로맨틱 영화 한 편을 떠올리게 하는 것처럼 아련하게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잊혀지지 않는 향기인데요. 여리여리함, 순수함, 그런데 결코 그 순수에 사로잡힐 것만 같은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향수 러브 인 화이트(Love in White)가 바로 비누 잔향 같은 크리드 향수랍니다. 제 취향에서 크리드에서 최고의 향수를 꼽자면 러브 인 화이트, 그리고 그 다음이 쟈딩 다말피에요. 러브 인 화이트를 제일이라고 생각하는 건, 요즘의 제가 이런 여리여리하고 순결한 향기의 매력에 빠져 지내기 때문이에요. 한창 프레쉬 향수의 시트러스 싱그러움에 빠져 지낼 때가 있었다면, 요샌 비누 잔향 같은 향기가 그렇게도 좋을 수가 없더라고요.
러브 인 화이트는 사랑, 평화, 순수의 이미지를 향기로 표현해내고자 했어요. 여러 가지 꽃 향기가 블렌딩되어 있는데요, 그렇다고 플라워 향기가 강하게 도는 향수는 아니에요. 오히려 주조를 이루는 향은 파우더리함. 처음 뿌릴 때부터 전혀 강한 느낌 하나 없이 고요하게.. 길고 오래 가는 우아한 파우더리함이 감각을 깨우는 듯한 향수에요. 굳이 계열을 구분하자면 플로럴 & 오리엔탈인데, 보통 향수에서 오리엔탈이라고 말하는 건 머스크 같은 게 든 파우더리한 향을 말한답니다. 그런데 또 대개 오리엔탈 계열의 향수는 함량 조절 실패시 매우 독하다는 인상을 줄 수가 있거든요. 그런데 얜 또 안 그래요. 여리여리 맑은 공기를 통해 느껴지는 청초한 향의 느낌! 깨끗한 린넨 침구에서 느껴질 것 같은 맑은 향기! Love, peace, pure 이러한 향의 이미지를 시각적으로도 극대화시키기 위해 깨끗한 화이트 보틀에 담았거든요. 크리드 향수는 대개 투명한 유리병에 담겨 있는데, 마침 제가 여러분들에게 추천하는 향수 중 2개가 크리드 중에서는 튀는 디자인을 특징으로 하네요. 스프링 플라워는 불투명 핫핑크 보틀, 러브 인 화이트는 불투명 화이트 보틀에 담겨 있으니까요. 전요, 이 화이트 보틀이 이 향기와 참으로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화이트만큼 그 순결함을 표현하기 좋은 컬러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러브 인 화이트를 시향하는 순간, ‘아~ 그래 이거야!’하고 이 깨끗한 화이트 보틀이 향을 음미하기 전에 먼저 전해주는 시각적 이미지와 향의 느낌, 그리고 ‘love in white’라는 이름 3가지가 굉장히 서로 잘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했답니다.
러브 인 화이트를 처음 뿌릴 때는 싱그러움이 먼저 가볍게 퍼집니다. 그건 이 향수의 탑 노트가 오렌지 필(peel, 껍질)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건 잠시 잠깐, 곧이어 여러 가지 꽃의 향연이 눈 앞에 펼쳐지는 듯 아이리스, 불가리안 로즈, 매그놀리아, 수선화 같은 꽃 향기의 하모니가 번지죠. 그런데 이렇게 여성스러움을 뽐내는 꽃의 향기도 그렇게 강하진 않아요. 러브 인 화이트의 결코 잊혀지지 않는 아련한 매력은 바로 은은한 잔향, 그런데 금세 사라지지 않게 그게 굉장히 오랜 시간 감돌아 체취와 어우러지는 데에서 나타나거든요. 남자 향수처럼 부담스러운 오리엔탈 향이 아닌, 매우 순결한 오리엔탈 향인데 그 베이스 노트의 잔향은 바닐라와 용연향, 그리고 샌달우드의 블렌딩으로 탄생되었답니다. 바닐라를 제외한 나머지 2개 향은 생소하죠? 살짝 설명하자면.. 우선 용연향! 얘는 앞서 쟈딩 다말피에서도 나왔던 향료인데요, 이건 대표적인 동물성 항료입니다. 일반적으로 향수에는 동물성 항료를 잘 안 쓰는데, 용연향은 희귀한 원료이기도 하고, 동물성 향료 중 으뜸이라 할 수 있는 항료입니다. 향유고래 수컷의 장(창자) 속에 생기는 물질을 알코올로 녹여 추출해내는 향료거든요. 아시죠? 고래 자체가 포획이 금지된 녀석이라 안 그래도 구하기 힘든데, 여러 고래 중에서도 몸집이 어마어마하게 큰 향유고래의 장에서 나오는 원료니까요. 웬만한 향수 브랜드에서는 그래서 감히 욕심을 내지 못하는 항료가 용연향입니다. 최고급 향수의 원료로만 쓰일 수밖에 없어요. 크리드라서 가능한 것 같아요.
그리고 샌달우드는 아로마 테라피에 관심이 많은 분이라면 그 이름을 들어보셨거나 이미 그 향을 아실 거에요. 그래도 제법 유명한 허브니까요. 우리나라에서는 ‘백단향’이라고 하는데요, 좀 강렬해요. 에로틱하면서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것 같은데 또 한편으로는 기분을 차분하게 가라앉혀주는 양면적인 특징을 지닌, 아로마 테라피를 얘기할 때 빠뜨릴 수 없는 향이랍니다. 그래서 샌달우드는 향수는 물론 향초 원료로도 굉장히 애용되는 허브에요. 특히 남성 향수의 원료로 인기 좋은 향! 크리드에서는 샌달우드를 굉장히 즐겨 사용하는데도, 이걸 너무 남성적인 색채로만 드러나지 않도록 표현하는 데에 기막힌 노하우가 있는 것 같아요.
만약 용연향과 샌달우드가 강하게 드러났다면, 러브 인 화이트의 아련함은 탄생하지 못했을 거에요. 그 강한 향을 바닐라가 감싸 안으며 은은하지만 잊혀지지 않은 아련함이 완성된 것 같거든요. 처음 맡는 순간 사로잡혀 뒤를 돌아보게 하는 향이 아니에요. 노골적으로 이성을 유혹하는 듯한 향과도 거리가 멀죠.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그 인상이 오래 잊혀지지 않으면서 아련하게 기억을 자극시키는 느낌, 너무도 순결해서 감히 내 것이 아닌 것 같지만 내 것으로 삼고 싶은 강렬한 충동이 동시에 들어서 이성과 감정이 충돌하는 경험을 하게 만들어요. 저는요, 샌달우드 향 단독으로는 별 매력을 못 느끼는 사람이에요. 오리엔탈적인 색채가 너무 강해서 제 호감을 못 사거든요. 아로마 에센셜 오일로 샌달우드 향을 맡아본 적이 있어서 사실 러브 인 화이트에 샌달우드가 들어갔을 줄은 상상도 못했네요. 샌달우드는 꽤 강렬하니까. 그런데 샌달우드가 바닐라와 용연향과 블렌딩되었을 때 청초함과 순결함, 거기에 더해진 우아한 관능미로 표현되는 것을 몸의 모든 감각으로 느끼며 샌달우드에 대한 선입견을 버렸죠. 아~ 이래서 크리드가 부티크 향수구나, 이래서 7대째 조향사 가문을 자랑스러워 하는구나, 여러 가지 향의 어우러짐을 최고의 비율과 조합으로 만들어내는 대단한 능력이 있는 브랜드구나 했답니다. 러브 인 화이트를 경험하면서요.
워낙 전세계 유명인들에게 사랑을 받는 부티크 향수 브랜드 크리드라고 했잖아요? 러브 인 화이트는 안젤리나 졸리, 그리고 미국에서 요즘 최고의 패셔니스타로 여겨지고 있는 미셸 오바마 있죠? 영부인, 그녀의 향수로도 명성을 떨치고 있어요.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여성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안젤리나 졸리, 그녀가 러브 인 화이트를 선택한 건 아주 탁월하지 않았나 싶어요. 노골적인 섹시미를 풍기는 사람이 옷이나 향기마저도 너무 노골적으로 섹시함을 풍기면, 그건 오히려 매력을 더 떨어뜨리게 만들잖아요? 이렇게 청초하고 아련한 향을 자신의 시그니처 향으로 삼으면서(뭐 러브 인 화이트를 얼마나 오래 앞으로도 쓸 지, 아니면 그냥 한 두 번 쓰고 만 건데 브랜드에서 적극 홍보자료로 활용하는 건지 모르겠지만요) 섹시한 이미지에 청초하고 아련한 향은, 그녀에게 반전 매력을 더해주죠. 안젤리나 졸리의 섹시함에 우아한 기품이 더해지는 것 같고, 야상적이면서도 왠지 보호해주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드니까요. 그래서 딱 봐도 그저 순수하고 깨끗해 보이는 어리고 순수한 여성이 뿌리는 것보다 성숙한 여성이 이걸 뿌렸을 때 오히려 더한 매력이 드러날 것 같아요. 그래서 전, 이 향기를 성숙한 여성미가 절정으로 표현되는 30대, 그리고 의외로 40대에게도 꽤 잘 어울릴 거란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아마도.. 산타 마리아 노벨라의 프리지아 다음으로 저의 시그니처 향수는 러브 인 화이트가 될 것 같답니다. 저에게 로망인 향수 이렇게 여러분에게도 소개하며 글을 마쳐요. 훗~
첫댓글 헉 250미리 병 넘 이쁘다~~라고 할 참이었는데.....75만원이라니요.................................ㅠㅠ
그렇죠. 저도 매장에서 헉 이랬어요. 저 향수는 그냥 완전 크리드 마니아를 위한 스페셜 에디션쯤으로 생각해야지요.. 우리의 것이 아니라.. ^^;
마지막 안젤리나졸리 사진에 뿅~~ 가격이 넘 사악하지만 한번쯤 써보고파지네요 ㅠㅠ
졸리 멋져요. 빌리 밥 손튼과 결혼했을 땐 참 비호감 여배우였거든요 제겐. 그런데, 피트를 만난 이후, 그리고 피트 이전부터 그랬지만.. 자신의 영향력으로 세상을 좀 더 건강하고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그녀의 모습에 참으로 감동을 많이 받곤 하면서, 왠지 그녀가 더 아름다워보이더라고요. 실제보다 더. 훗~
먼나라 얘기같은 가격대...안젤리나 졸리가 쓴다는 저 향수 궁금하네요~
가성비가 좋은 향수는 아니지만,, 크리드만의 차가운 잔향이 잇어서 저도 좋아해요 남자들한테 은근 인기 많더라구요~~전 여자지만 실버마운틴, 러브인화이트와 블랙요 윤주님은 확실히 청초모드인듯ㅋㅋ그런데 화장품에서 니치향수로 넘어오시는 분들 늘어나네요..요새 니치향수 대세긴 한가봐요^^
맞아요. 크리드는 정말이지 가격이 너무 비싸요. 그냥 로망쯤으로 두어도 좋을 것 같고, 향수에 투자할 준비가 되어 있으신 분들은 크리드에 충성을 고하기보다는, 한 두 번쯤 경험해봐도 좋을 법한 그런 향수 같아요.
와..... 메일 읽으면서, '시향해보고 맘에 들면 일단 젤 작은걸로 사봐야지'했는데^^^^^^^^^^^^^^^^^* 프루비님 말씀대로 요새 진짜 니치향수가 뜨고있나봐요ㅠㅠ 이제는 그냥 제 체취같은 구찌 엔비미 드디어 절반이상써서 다음 향수를 물색중인데 다들 부띠끄향수를 추천해주더라구요. (친구들은 유행이 아니라 나이를 먹어서라고 하지만ㅜㅋㅋㅋㅋ)하 근데 이번 소개제품은 가격이....... ㅠㅜㅋ 그래서 더 기대되는 향이에여! 눅눅한 날이라 그런지 더욱요!
윤주님 덕분에 삶의 질을 업그레이드해주는 팁을 얻어갑니다. 늘 감사해요^^
궁금해지는 향~~그런데 너무 가격이 ㅜㅜ 그래도 어떤향인지 참 궁금하네요^^
시향해 보고 싶어요~~~안그래도 요즘 향수가 좋아지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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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까지, 어깨가 무거워집니다. 그저 부담스러운 무게감이 아니라, 기분 좋은 책임감 같은 거요. 새겨 듣겠습니다. 천지를모르고 님!
실버마운틴 쓰고 있는디.. ㅋㅋ 약간 중성적인 향이라서! 러블리함은 없지만 시크한 맛이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