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 잡고 날 잡아 간 삼천포였습니다. 내 날과 편 날을 견주니 2월 18일이 맞아 떨어졌습니다. 악양서 돌아 다녀오기에도, 거쳐서 악양으로 향하기에도 만만찮은 거리여서 간다간다 하면서도 그 동안 가지 못한 삼천포였습니다. 간 김에 삼천포 동백꽃, 노산 산다화도 보고 올 참이었는데, 더 좋은 곳으로 발걸음 옮기는 통에 노산 동백꽃 완상은 뒤로 미루어졌습니다. 삼천포, “갈매기도 술에 취하는 그리움 밖에 없을” 만큼 그리움 주는 곳입니다.
|
“쿵ㆍ쿵ㆍ쿵 공룡 발자국 足足 1억년 세월 足足” 고성군 하일면의 상족암을 묘사한 어느 신문의 기사 제목입니다. 달묵 거사가 좋은 곳으로 우리를 데려다 주었습니다. 달묵 거사의 안내로 삼산면의 ‘이니스프리’도 알게 되었는데, 발자국 족족, 세월 족족이 문양으로 새겨져 있는 상족암 그 잔잔한 바다를 고향바다인 것처럼 보게 되었습니다. 상족암, 평평한 상위에 새겨진 발자국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 쌍족암, 발자국이 나란히 새겨져서 부르는 이름, 파도가 뚫은 굴이 쌍 굴이어서 붙여진 이름의 그곳.
|
"바닷가로 나가요 네? 노래 불러드릴께요." 여자가 말했다. 그러나 우리는 일어나지 않았다. "바닷가로 나가요, 네? 방이 너무 더워요." 우리는 일어나서 밖으로 나왔다. 우리는 백사장을 걸어서 인가가 보이지 않는 바닷가의 바위 위에 앉았다. 파도가 거품을 숨겨가지고 와서 우리가 앉아 있는 바위 밑에 그것을 뿜어놓았다. "선생님" 여자가 나를 불렀다. 나는 여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자기 자신이 싫어지는 것을 경험하신 적이 있으세요?" 여자가 꾸민 명랑한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기억을 헤쳐 보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언젠가 나와 함께 자던 친구가 다음날 아침에 내가 코를 골면서 자더라는 것을 알려주었을 때였지. 그땐 정말이지 살맛이 나지 않았어." 나는 여자를 웃기기 위해서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여자는 웃지 않고 조용히 고개만 끄덕거렸다. 한참 후에 여자가 말했다. "선생님, 저 서울에 가고 싶지 않아요." 나는 여자의 손을 달라고 하여 잡았다. 나는 그 손을 힘을 주어 쥐면서 말했다. "우리 서로 거짓말은 하지 말기로 해." "거짓말이 아니에요." 여자는 방긋 웃으면서 말했다. "<어떤 개인 날> 불러드릴께요." "그렇지만 오늘은 흐린걸." (김승옥의 무진기행, 김수용의 안개 일부)
87년, 내 면상 피부가 지금보다는 훨씬 더 그런대로 팽팽하던 시절, 학생처장이라는 이름으로 총학생회 간부들을 인솔하여 데리고 가 봉사활동을 한 곳이 이곳, 덕명리 이 마을이었습니다. 지금 와서 보니 초등학교 자리가 빈 공터로 되어 있습니다. 그 때, 아마 일요일, 비가 내렸던가, 비 내린 후 안개였던가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초등학교로 갔더니 숙직하던 여선생님이 교문으로 나와 마을 이야기, 교문과 이어진 바다 이야기, 그 바다 족족 공룡 발자국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부산이 집이라고 했습니다. 나도 부산서 왔다고 했습니다. 말하는 여선생님은 그곳을 이야기했지만 듣는 나는 <무진기행> 또 <안개>의 그 여선생님의 이야기로 들었습니다. 교문 앞의 나무(아마 포구나무) 두 그루, 그 아래서 보는 낮은 바다, 인상적이었습니다. 지금 와서 보니 학교도, 교문도 없어졌네요. 나무는 서 있고. 그 때 나무보다 작은 것 같기도 한데 그래도 비교적 큰 걸 보니 그 나무들인 것 같기도 합니다.
|
|
|
그 때, 혼자서 걸었던 걸음이 여러 번이었습니다. 초등학교 마당에서 저 쪽으로 쭉 가면 상족암이고 이쪽으로 쪽 가면 옹기가 옹기종기 쌓인 옹기가마에 닿았습니다. 옹기 가마 그곳, 지금은 <가마랑>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87년 그 이후, 헤아려 보니 세월이 제법 흘렀군요. 그 때의 허름한 집들은 온데 간데 없어졌습니다. 앞선 달묵 거사 뒤따라 온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
|
떠나갈 사람보다 갈매기가 더 많은 삼천포에서는 / 안주를 시키지 않아도 좋다 / 간밤 뭍내음에 취한 배들이 해장술로 시작하는 / 삼천포 술집들은 그리움을 퍼다가 판다 / 삼천포 바다는 항구에서 시작되었다 / 낮술에 시달리는 실비집 유리문도 바다밖에 모른다 / 낮에 마시는 술을 탓할 사람은 없지만 / 서성거리는 갈매기를 시비 걸지 말아라 / 삼천포에는 / 갈매기도 술에 취하는 그리움밖에 없다 (달묵 박영현 / 삼천포 항구, 낮술)
삼천포, 떠나갈 사람보다 갈매기가 더 많다는 곳, 안주를 시키지 않아도 좋은 곳, 간밤 뭍내음에 취한 배들이 해장술로 시작하는 곳, 그리움을 퍼다가 파는 술집이 있는 곳, 바다가 항구에서 시작되는 곳, 낮술에 시달리는 실비 집 유리문도 바다밖에 모르는 곳, 서성거리는 갈매기를 시비 걸면 안 되는 곳, 갈매기도 술에 취하는 그리움밖에 없는 곳, 그곳에서 달묵 거사님과 만남 기쁨이 무척 컸습니다. 편도 삼천포 공기가 새삼 온화하고 정겹다고 말했습니다. 달묵 거사의 삼천포, 삼천포의 달묵 거사. |
첫댓글 달물거사...괜찮아 보이는뎁쇼? 고성의 옹기 가마터는 아직 못 가봤는데 언제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공룡 발자국 화석과 옹기 가마가 묘하게 어우러져 풍기던 그 때의 원시적 분위기가 새삼 되살아 났습니다.
역시 대단하신 길 위의 로맨티스터이십니다. 한줄 한 줄 꿰시는 줄마다 낭만과 사유가 묻어나는 명 해설가시네요. 정겨워서 좋습니다. 언제 저런 사진들을 다 찍어셨고 옹기굴 사진은 어디서 구했대요. 내 홈에도 좀 올려주이소.
급해서 출처를 밝히지 못했습니다. 가마랑 홈피에서 빌려온 사진들입니다. 엉성한 것은 내가 찍은 것이고. / 주말에 나무 심으러 내려갔다가 돌아온 후 홈피에 올리겠습니다.
오래전에 가본 삼천포... 바다를 늘 볼 수 있음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점에선 달묵님이 부럽고, 벌써 봄빛으로 부드러운 바람이 있는 남녘이 그립네요~! 여긴 아직도 공기가 칼칼하데...
온화한 항구 도시, 작은 도시가 삼천포입니다. 다녀가신 적이 있으시군요. 이제 부는 바람은 봄바람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