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하나님의 심리학
사람들을 신을 향한 인식의 차이에 따라 유신론자들과 무신론자들로 나눕니다. 즉, 신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신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로 나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은 무신론자가 되기에는 너무도 이상한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천재적인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은 ‘물리학적인 신앙’과 ‘절대에 대한 경외감’을 고백했던 것입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무신론자가 되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무슨 일이든지 원인과 결과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보고 있는 모든 결과들은 다 원인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원인이 없이 우연을 말하는 것이 바로 무신론입니다.(‘진화론’같은 이론이 대표적입니다.) 그러니 무신론이 더 비논리적이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우리 마음의 신을 향한 그리움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근원을 알 수 없는 외로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군중 속에서의 고독”이 늘 우리를 괴롭힙니다. 이 마음의 빈 공간은 오직 신만이 채울 수 있는 것입니다. 이를 철학자들은 종교성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인간은 절망 절대절명의 상황에서는 다 어떤 식으로든 신을 찾는 것입니다.
첫 번째가 신의 객관적인 증거라면, 두 번째는 신의 주관적인 증거라고 할 수 있겠죠?
오늘은 신 존재 증명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신의 존재가 우리 삶을 더 가치 있고 아름답고 균형 있게 하며, 더 바르게 만드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 신이 참 신이라면 말입니다.(이상한 이단 사이비적인 신들이 너무 판을 치고 있는 세상이라 신의 이미지도 참 많이 실추되어 있습니다. 세계 5대 종교의 신들은 절대로 그렇게 난잡하지 않습니다.)
신을 조롱했던 정신분석학자 프로이드 조차도 이 존재를 “수퍼에고”(superego,초자아)라고 표현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에 의하면 이 “수퍼에고”가 인간의 도덕성을 결정한다고 합니다. 무신론적인 신적 표현인 것입니다.
인간은 무언가를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심리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삶 적으로 안정이 됩니다. 문제를 그 신을 바로 알고 바로 믿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이를 통해 인간은 현실적인 도덕성과 질서를 유지하게 됩니다. 이에 더하여 영적이고 내세적인 아름다움도 준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야기가 너무 멀리 갔네요... 오늘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지금부터입니다.
인간은 그래서 무신론자든 유신론자든 기도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넘어질 때 누구든지 “아이쿠~ 하나님~”하고 신을 부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신께 기도할 때, 한 쪽 마음이 불편해 집니다. ‘나 같은 사람의 기도를 신이 들어 주실까?’하는 것입니다. 소위 말하는 “얌체기도”가 효험(?)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에는 “하나님의 심리학”의 이해가 필요합니다. 즉, 하나님의 마음을 알면 기도를 제대로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신은 인간의 부모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의 메커니즘은 부모의 마음처럼 움직입니다. 그러므로 신께는 얌체기도가 없습니다. 오히려 아무리 남들이 손가락질 하는 파렴치한이라도, 그 부모는 그를 돌보고 감싸 안습니다.
오히려 눈치코치 없는 기도가 더 효험이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은 우리의 부모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적인 기도, 자기 욕심만 채우는 기도, 세속적인 기도, 기복적인 기도, 얌체기도,... 신의 마음을 이해하면 모두가 거룩한 기도입니다.
이런 마음을 너무도 잘 이해한 시가 있습니다. “성찬경” 시인의 기도에 대한 시를 소개하며 이 칼럼을 마칩니다. 여러분, 기도하십시오. 신은 언제나 부모처럼 당신의 신음에 귀 기울이시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십니다.
“은총을 내려주시는구나 -성찬경-
은총을 내려주시는구나.
야속하다 싶을 만큼 묘하게
표 안 나게 내려주시는구나.
슬쩍 떠보시고 얼마 있다가
이슬을 주실 때도 있고
만나를 주실 때도 있고
밤중에
한밤중에
잠 못 이루게 한 다음
귀한 구절 하나를 한 가닥 빛처럼
내려주실 때도 있다.
무조건 무조건 애걸했더니
이 불쌍한 꼴이 눈이 띄신 모양이다.
얻어맞아도 얻어맞아도
그저 고맙다는 시늉만을 했더니 말이다.
시늉이건 참이건
느긋하게건 절대절명에서건
즉시 속속들이 다 아신다. 다 아신다.
그러니 오히려 안심이다.
벌거벗고 빌면 그만이다.
은총을 내려주시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