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연중 제33주일(세계 가난한 이의 날)
너희는 무화과나무를 보고 그 비유를 깨달아라.
어느덧 가지가 부드러워지고 잎이 돋으면 여름이 가까이 온 줄 알게 된다.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사람의 아들이 문 가까이 온 줄 알아라.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은, 갑자기 일어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연결된 것처럼, 흐름을 이루며 나타납니다.
계절의 변화가 그러하고, 일상에서 만나는 자연 현상들도 그렇습니다.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옵니다.
그런데, 같은 봄 이라도,
이제 막 시작하는 봄 이 있고, 여름에 가까운 봄 이 있습니다.
이제 막 시작하는 봄은, 겨울의 쌀쌀한 기운을 간직하고 있지만,
조금씩 따듯해지며, 봄을 알리고,
여름에 가까운 봄은, 기분 좋은 따듯함과 함께, 조금은 더워지는 듯한 모습으로,
여름을 알립니다.
비도 그렇습니다.
비 역시, 내리 기 전에, 비가 내릴 것같은 느낌이나
기압의 변화 등을 동반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계절의 변화, 날씨의 변화에
늦지 않게, 또는 재빠르게 대응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모습을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날씨가 더워지는데, 초 봄 옷차림을 하거나,
비가 예상되는데, 우산을 준비하지 않아, 비에 맞거나,
한다면,
단지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을 너머,
감기에 걸릴 수 있는 상황, 건강을 해치게 되는 상황을
마주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계절의 변화, 날씨의 변화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하면,
큰 일이 난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주인공이 되시고, 예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는
오늘 날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에 대한 고민과 대처는
계절의 변화, 날씨의 변화 만큼
민감하지 않는 듯 보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신지 벌써 2,000 여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의 역사 안에서,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했던 수많은 사람들은,
각자가 처한 상황에서, 예수님을 자신들 삶의 중심에 모시려고
무단히도 노력했습니다.
박해 시대에는, 예수님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기도 하고,
박해 시대 이후에는, 온전히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사막이나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각 시대마다, 예수님을 내 안에 모시기 위한
새로운 방법들이 요청되는데,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는
어떠한 시대이고, 어떠한 자세가 필요한 것일까요?
신앙과 관련하여, 이 시대의 가장 큰 걸림돌이 있다면,
그것은,
논리가 곧 모든 것인 사회 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곧,
하느님 조차도, 논리 안에 가두려고 하는 사회 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 누구도, 나의 아버지를, 나의 어머니를
논리로 증명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루에 10번 이상 나를 사랑한다고 하셔야만,
일 년에 5번 이산 나에게 선물을 주셔야만,
나의 아버지, 나의 어머니 이신 것이 아니라,
나의 아버지는 그냥, 당연히, 나의 아버지 이시고,
나의 어머니는 그냥, 당연히, 나의 어머니 이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이러니 하게도, 신앙적인 것을,
또, 우리가 믿는 하느님을,
논리로 증명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논리적으로 설명될 수 없다고 생각되면, 하느님조차
부정하려는 모습을 보입니다.
논리적인 사고는 중요합니다. 그리고,
논리적인 사고가 신앙을 지켜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만, 논리적으로 설명되는 것만을
받아들이겠다는 태도가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하여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용서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용서는 논리를 뛰어넘는 것입니다.
용서는, 상처를 받은 사람이,
용서를 청하는 사람의 사과를 받아들여 줄 때에만 이루어지는데,
그것은 논리로 설명될 수 없습니다.
사랑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사랑 자체가, ’조건 없는 것‘인데,
’조건 없다‘는 것 자체는, 논리적으로
’오류‘에 해당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는,
그 사랑 때문에,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셨고,
그 사랑 때문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은,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만큼,
예수님 덕분에, 살맛 나는 곳이 되었습니다.
이 모든 일은,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사건 들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렇게,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사건들로 인해
혜택을 보며 살아갑니다.
사랑이란, 신앙이란,
바로 이러한 것입니다.
논리로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 있기도 하지만,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만을
받아들이려는 생각은, 그 자체로
물리쳐야 하는 유혹인 것입니다.
우리가, 나 자신을 논리적으로 증명하려고 하지 않고,
나의 아버지, 어머니를 논리적으로 증명하려고 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가 믿는 하느님, 예수님은, 신앙은,
물론, 어떤 부분에 대하여, 어느 정도는,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자체로,
논리적이지도 않고, 논리 안에 갖혀 있지도 않습니다.
하느님, 예수님 그리고 신앙은,
논리로 온전히 설명될 수 없다는 진리를
기억하도록 합시다. 그리고,
하느님, 예수님 그리고 신앙을
머리로만 만나려고 하지 않고,
삶에서 직접 부딪히고, 체험하려는 은총을
겸손되이 청합시다.
너희는 무화과나무를 보고 그 비유를 깨달아라.
어느덧 가지가 부드러워지고 잎이 돋으면 여름이 가까이 온 줄 알게 된다.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사람의 아들이 문 가까이 온 줄 알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