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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9 편
열두 사도
139:0.1 예수가 유대인의 왕이 될 것을 희망했던 사도들이었지만, 유다를 제외한 11명이 끝까지 예수를 따른 것은 예수가 땅에서 아름답고 올바른 일생을 살았다는 것을 증명한다.
사도들은 예수로부터 하늘나라에 관하여 배웠다. 예수는 그들로부터 진화 세계들에 사는 인간의 성품에 대하여 배웠다. 이 열두 사람은 많은 다른 종류의 인간 기질을 대표했고 다수가 이방인의 핏줄을 상당히 지녔다.
사도들은 알패오 쌍둥이를 제외하고, 모두 회당 학교의 졸업생이었고 온 갈릴리에 그보다 더 좋은 유대인 학교는 없었다.
사도들이 “무지하고 배우지 못했다”고 너희의 기록들이 언급할 때, 랍비의 학문을 배우지 않고 랍비의 성서 해석 방법으로 훈련받지 않았다는 생각을 전하려 한 것이었다. 분명한 것은 경직되고 판에 박힌 교육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는 것 뿐이다. 사춘기부터 계속 그들은 어떻게 사는가를 배우는 체험을 따로 가졌다.
1. 안드레, 처음 선택된 사도
139:1.1 하늘나라 사도단의 단장 안드레는 가버나움에서 태어났다. 안드레는 미혼이었지만, 결혼한 아우 시몬 베드로와 함께 살았다. 두 사람은 어부였고, 세베대의 아들들,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동업자였다.
서기 26년 사도로 뽑힌 해에 안드레는 33살이었다. 예수보다 만 1살이 많았고 사도들 가운데 가장 연장자였다. 열두 사도 중에서 가장 유능한 사람이었다. 웅변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면에서 능력이 동료들과 같은 수준이었다. 예수는 안드레에게 별명, 친근한 호칭을 준 적이 없다. 사도들이 금방 예수를 주라 부른 것처럼, 안드레에게도 책임자에 해당하는 명칭으로 안드레를 불렀다.
안드레는 조직에 능했지만, 행정에 더욱 유능한 사람이었다. 그는 마지막까지 사도단의 감독으로 남아 있었다.
대중설교는 잘 못했지만 개인전도에서는 유능했다. 동생 시몬은 가장 위대한 하늘나라 전도자 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 안드레는 열두 사도를 훈련시키는 예수의 계획을 지지하는 중요한 인물이었다.
안드레는 예수의 모든 일정을 보통 알고 있었다. 이해심 있는 집행자요 유능한 행정가였다. 눈앞에 닥친 문제를 신속히 결정하였고, 권한 바깥 분야의 문제라고 판단될 경우 곧장 예수에게로 갔다.
139:1.6 안드레와 베드로는 사이가 좋았다. 베드로의 설교를 통해서 2천 명이나 복음을 믿게 되었을 때, 안드레는 아우에게 말했다.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지만 그럴 수 있는 동생이 있어서 기쁘구나.” 이에 베드로는 대답했다: “하지만 형이 나를 주께 데리고 가고 끈질기게 나를 그에게 붙들어두지 않았더라면 내가 이런 일을 하려고 여기에 있지 않았겠지.”
오순절 뒤에 베드로는 이름이 났다. 그러나 나이가 위인 안드레는 “시몬 베드로의 형”이라고 소개를 받으며 여생을 보내는 것을 언짢아한 적이 없다.
안드레는 사람을 판단하는 데 뛰어났다. 가룟유다가 문제가 있을 때에도 다른 사람들은 의심하지 않았어도 안드레는 무언가 문제가 있음을 알았다. 안드레가 하늘나라에 크게 봉사한 것은 복음을 선포하려고 파송된 첫 선교사들을 선택하는 문제로 베드로ㆍ야고보ㆍ요한을 조언한 것, 또한 하늘나라 행정 사무를 조직하는 일에 관하여 이 초기 지도자들과 상담한 것이다. 사람들에게서 숨은 재능을 발견하는 재주가 있었다.
예수가 하늘로 올라간 뒤에, 안드레는 주의 말씀과 행적을 몸소 기록하였고, 후일에 많이 편집된 복사판은 1백 년이 지나서 알렉산드리에서 불에 타버렸다.
안드레는 맑은 통찰력, 논리적 생각, 굳은 각오를 가진 사람이었고 그의 성격의 큰 장점은 뛰어나게 차분한 성질이었다. 그의 기질의 문제점은 열심이 모자라는 것이었다.
139:1.11 열 두 사도들은 특별히 마음을 끄는 예수의 몇 가지 성격 특성 때문에 각자 예수에게 이끌렸다. 안드레는 예수의 한결같은 진실성, 꾸밈없는 기품 때문에 예수를 찬미하였다.
후일의 박해로 사도들이 예루살렘에서 흩어졌을 때, 안드레는 아르메니아, 소 아시아, 마케도니아를 거쳐서 여행했다. 수천 명을 하늘나라로 인도한 뒤 아카이아 지방의 파트라스에서 십자가에 못박혔다. 십자가에서 숨이 끊어지기까지 이틀간의 비극의 시간 내내 복음을 선포했다.
2. 시몬 베드로
139:2.1 시몬은 서른 살이었고 결혼하여 아이가 셋 있었으며, 가버나움 가까이 벳세다에서 형 안드레와 장모가 함께 살았다. 베드로와 안드레, 이 두 사람은 세베대의 아들들과 함께 고기잡이하는 동업자였다.
시몬은 모든 친구에게 변덕스럽고 충동적인 사람으로서 잘 알려져 있었다. 가볍게 준 ‘베드로’란 이름에 새롭고 중요한 뜻을 예수가 붙인 것은 참말이다.
시몬 베드로는 충동적인 사람이요 낙천가였다. 격한 감정, 생각 없이 말을 계속 뱉었기 때문에, 끊임없이 곤경에 빠졌다. 이것은 주로부터 여러 번 가볍게 꾸지람을 받은 원인이었다. 베드로가 아주 일찍부터 형 안드레와 상의했기 때문에 더 이상 곤란에 빠지지 않게 되었다.
베드로는 말을 잘하고 극적이고 유창한 연설가였다. 또한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타고난 지도자요, 머리가 빨리 도는 사람이요, 깊이 따지는 사람이 아니었다. 빨리 결심하고 갑자기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남들은 바닷가에서 예수를 보고 놀라서 떠들었지만, 베드로는 물 속에 첨벙 뛰어들어 주를 맞이하러 물가로 헤엄쳤다.
베드로가 가장 찬미한 예수의 한 가지 특성은 더할 나위 없는 부드러움이었다. 잘못한 사람을 겨우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 일곱 번이나 용서한다는 교훈을 결코 잊지 않았다. 예수를 경솔히 부인한 것을 용서받았다는 것을 확신하고 나서, 그는 수천 명에게 구원의 빛이 되었다.
139:2.6 예수는 베드로의 결점이 머리에 있고 마음에 있지 않음을 알았다. 용기와 비겁을 아주 설명하기 힘들게 섞어 가진 사람이었다. 그의 인품의 큰 장점은 충성심과 우정이었다. 베드로는 정말로, 참으로 예수를 사랑했다. 베드로는 박해와 어떤 다른 형태의 직접 공격도 견딜 수 있었지만, 그는 비웃음 앞에서 시들고 오그라들었다. 정면 공격에 부딪쳤을 때 용감한 군인이었으나 뒤에서 공격받아 놀랐을 때는 두려워서 움츠러드는 겁쟁이였다.
베드로는 나중에 안티옥에서 비웃는 유대주의자들과 마주쳤을 때, 그는 태도를 바꾸고 일시 이방인들로부터 물러났고, 이렇게 하여 바울의 비난을 받게 만들었다.
그는 사도들 가운데 처음으로 예수가 사람과 신의 성품을 한 몸에 가졌음을 진심으로 고백하였고 또 처음으로―유다를 빼고―예수를 부인한 사람이었다. 베드로는 환희의 구름 속에 싸이고 극적인 열심에 빠졌다가 평범하고 사무적인 현실 세계로 내려오기를 싫어했다.
예수를 따르면서, 그리고 비유로 말하자면, 그는 행렬을 이끌든지 아니면 뒤에서 처졌다―“멀찌감치 뒤에서 따랐다.” 그러나 그는 열두 사도 가운데서 뛰어난 전도사였다.
경솔하게 주를 부인한 뒤에 그는 자아를 발견했고, 예수가 용서했다는 것을 완전히 확신했을 때, 하늘나라의 불꽃은 그의 혼 안에서 아주 밝게 타올라서, 그는 어둠 속에 앉아 있던 수천 명에게 구제하는 큰 빛이 되었다.
139:2.11 예루살렘을 떠난 뒤에, 그리고 바울이 이방 기독교 교회 사이에서 으뜸가는 인물이 되기 전에, 베드로는 두루 여행하면서 바빌론으로부터 고린도까지 모든 교회를 찾아보았다. 바울이 세운 많은 교회를 찾아보고 돌보기까지 하였다.
베드로의 말투와 가르침의 얼마큼은 누가가 부분적으로 기록한 설교와 마가 복음에 나타난다. 그의 힘찬 말투는 베드로 전서라고 알려진 서한에 더 잘 나타나 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가 유대인 메시아라는 것을 유대인들에게 확신시키려는 잘못을 계속하였다. 죽는 바로 그날까지, 시몬 베드로는 머리 속에서 예수가 유대인의 메시아라는 개념, 그리스도가 세상의 구원자라는 개념, 사람의 아들이 하나님, 즉 온 인류를 사랑하는 아버지의 계시라는 개념, 이 세 가지 사이에서 계속하여 갈팡질팡하였다.
베드로의 아내는 여러 해 동안 여인단의 회원으로서 수고했다. 베드로가 예루살렘에서 추방되었을 때 모든 여행에 그를 따라다녔다. 훌륭한 남편이 목숨을 바친 날, 이 여인은 로마의 경기장에서 사나운 짐승들에게 던져졌다.
이렇게 베드로는 직무가 충만하게 성취될 때까지, 힘차고 영화롭게 하늘나라의 기쁜 소식을 외치면서 예루살렘을 떠나갔다. 주가 돌아가신 것처럼―십자가에서―죽어야 한다고 그를 체포한 사람들이 그에게 귀띔해 주었을 때, 자신을 높은 명예를 받은 자라고 여겼다. 이렇게 시몬 베드로는 로마에서 십자가에 못박혔다.
3. 야고보 세베대
139:3.1 세베대의 두 아들인 사도들에게 예수는 “우뢰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형인 야고보는 사도가 되었을 때 서른이었다. 결혼하고 아이가 넷 있었고, 가버나움의 교외, 벳세다에서 부모 집 가까이 살았다. 야고보와 아우 요한은 사도들 가운데 누구보다도 예수를 더 오래 알았던 장점이 있었다.
이 유능한 사도의 기질은 모순 덩어리였다. 분개심을 일단 충분히 건드렸을 때 그는 특히 격렬했다. 성낸 것을 언제나 정당화하고 변명하는 것이 그의 버릇이었다. 그는 뛰어난 대중 연설가였다. 베드로 다음으로, 마태 또는 야고보였다.
야고보는 어떤 의미에서도 변덕스럽지 않았어도, 하루는 조용하고 말이 없다가 다음 날에는 아주 훌륭한 연사요 이야기꾼이었다. 보통 예수와 함께 거리낌없이 이야기했지만, 열두 사도 가운데, 한 번에 며칠씩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열두 사도 가운데서 예수의 가르침의 참 뜻과 중요성을 가장 가깝게 깨달았다. 처음에는 더디었지만, 훈련을 마치기 전에 개념을 알아들었다. 다능한 안드레와 성급한 베드로, 그리고 말이 적은 아우 요한과 잘 어울렸다.
안드레와 베드로처럼 두 형제가 아주 잘 하지는 못했어도 두 형제는 서로에게 관대했다. 서로에게 무척 다정했고 언제나 행복한 놀이 친구였다. 주께 사마리아인들을 죽이라고 하늘에서 불을 불러 내리고 싶어 한 것은 이 “우뢰의 아들”들이었다. 야고보가 때 이르게 죽은 것은 동생 요한의 격렬한 성질을 크게 고쳤다.
139:3.6 예수의 성품에서 야고보가 가장 감탄한 것은 주가 이해심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었다. 예수가 성공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 부자와 가난한 자를 이해하고 관심을 보인 것은 그의 마음을 크게 움직였다.
야고보 세베대는 안정된 사색가요 계획하는 사람이었다. 활기가 넘치는 사람이었지만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그는 베드로를 안정시키는 뛰어난 평형 바퀴와 같은 사람이었다.
그는 겸손하고 꾸밈 없이 나날이 섬기는 사람이요, 허세부리지 않는 일꾼이었다. 하늘나라의 참 뜻에 관하여 무언가 일단 깨닫자 아무런 특별한 보상을 찾지 않았다. 야고보는 열두 사도 중에서 처음으로 순교자가 되었다. 헤롯 아그립바는 어느 다른 사도보다도 야고보를 두려워했다. 그는 조용하고 말이 없었지만, 그의 확신은 용감하고 변함이 없었다.
야고보는 일생을 충만히 살았다. 종말이 다가왔을 때 정말 은혜롭고 꿋꿋하게 견디었다. 야고보를 고발하고 밀고한 사람도 너무 감동을 받아 예수의 제자들과 합세하였다.
4. 요한 세베대
139:4.1 요한은 24살이었고, 사도들 중에 가장 나이가 어렸다. 미혼이었고 부모와 함께 벳세다에서 살았다. 요한은 예수의 가족을 상대하는 일을 맡았고, 마리아가 살아 있는 한, 이 책임을 계속 맡았다.
열두 사도 중에서 가장 나이가 어렸다. 예수의 집안 일을 담당하여 주와 가까이 관련되었기 때문에 주께 무척 소중하기는 했지만, 그가 “예수가 사랑한 제자”였다고 진실로 말할 수는 없다. 요한이 예수의 개인 조수 세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는 사실은 이 그릇된 생각을 더욱 그럴듯하게 만들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사도가 된 뒤에 안드레에 의해 예수에게 개인 조수로 배치되었다.
요한 세베대의 성격은 사랑스러운 특성도 있지만 감추어진 자만심도 있었다. 요한은 예수의 절친한 친구에 가까웠고, 자기가 “예수가 사랑한 제자”라고 여겼는데, 예수가 빈번히 일을 맡긴 제자였기 때문이다.
요한의 성격에서 가장 좋은 특징은 신뢰할 수 있는 성품이었고, 가장 큰 약점은 자만심이었다.
139:4.6 요한이 가장 고맙게 여긴 예수의 특성은 주의 사랑, 그리고 이기심이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뒤에 사랑과 형제에게 헌신하는 감정이 후일에 그의 인생 전체를 지배하였다. 이 “우뢰의 아들”은 “사랑의 사도”가 되었다.
요한은 그의 성미를 건드렸을 때를 제외하고, 말이 많지 않았다. 생각이 많아도 말이 적었다. 그러나 그는 놀라운 창조적 상상력을 타고 났다.
조용하고 내성적인 요한에게는 편협하고 지나치게 참을성이 없었다. 이런 점에서 야고보와 비슷했는데, 사마리아인들 머리 위에 하늘에서 불을 불러내고 싶어했다.
예수가 충실하게 자신의 어머니와 가족을 돌보려고 준비한 것, 집 없이 지내는 것, 예수의 가족이 예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예수를 깊이 동정하였고, 예수가 늘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에 의지하며 생활하는 것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이것은 요한의 여생에 뚜렷하고 영구한 변화를 일으켰다.
요한은 가장 차분하고 대담한 용기가 있었다. 예수가 붙잡힌 날 밤에 그를 따라갔고, 죽음의 문턱까지 함께 간 유일한 사도였다. 열두 사도가 식사할 때 보통 예수의 오른 편에 앉았다. 사도 중에서 처음으로 부활을 믿은 자였다. 주가 부활하신 뒤에 바닷가에 왔을 때, 제일 먼저 주를 알아보았다.
139:4.11 세베대의 이 아들은 초기 기독교 운동이 전개될 때 베드로와 아주 밀접히 관계되었고, 예루살렘 교회의 주요한 지지자 중의 하나가 되었다. 오순절 날에 베드로의 오른팔과 같은 지지자였다.
야고보가 순교한 뒤 몇 년이 지나자, 요한은 형의 부인과 결혼했다. 여생에 마지막 20년 동안 그는 사랑스러운 손녀의 보살핌을 받았다.
요한은 몇 차례 감옥에 갇혔고 4년 동안 팟모 섬으로 추방되었다. 요한은 재판받을 때 지혜로왔다. 교회가 “하늘나라”가 아니라 “헌신하는 영적 모임”이며, 통치하는 권력이 아니라 사랑으로 봉사하는 것이라 가르쳤다.
팟모 섬에 잠시 추방되었을 때 요한은 계시록을 썼는데, 계시의 큰 부분들이 없어졌고 다른 부분들은 제거되었다. 조각나고 불순물이 섞인 형태로만 간직되었다.
요한은 아시아 교회들의 주교가 되었고, 99살때 “요한에 따른 복음”을 쓰는 동료 나단을 지도했다. 에베소에서 서기 103년에 자연사했고, 그때 나이는 101살이었다.
5. 호기심 많은 빌립
139:5.1 빌립은 다섯째로 뽑힌 사도였고, 예수와 처음 네 사도가 갈릴리의 가나로 가는 길에 부름을 받았다. 빌립은 예수를 알고 있었다. 예수가 정말로 위대한 사람일거라 생각지 않았다. 빌립은 또한 안드레ㆍ베드로ㆍ야고보ㆍ요한이 예수를 구원자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에 얼마큼 영향을 받았다.
빌립은 사도들과 합세했을 때 27살이었다. 최근에 결혼했지만, 아이가 없었다. 빌립은 언제나 눈으로 보기를 바랐다. 그는 상상력이 모자랐고, 그의 인품에 큰 약점이었다. 그는 평범하고 사무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훌륭한 식사 담당자였다. 가장 좋은 특징은 철저하게 일을 처리하는 성향이었다. 수학 머리가 있고 체계 있게 일을 처리했다.
4년 동안 몇 번, 모든 사람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먹을 것을 마련하지 못했다. 긴급시의 필요에도 준비되지 않은 적이 드물었다. 사도 일행의 식당 부서는 총명하고 유능하게 관리되었다.
빌립은 꼼꼼하게 확실히 일을 처리하였다. 그의 체질에서 약점은 전혀 상상력이 없는 것이었다. 그는 날마다 보는 평범한 보통 사람의 전형이었다. 예수가 가르치고 설교하는 것을 들으려고 온 군중 속에는 그러한 남녀가 허다하게 있었고, 그들은 주의 자문 위원회에 자기들과 같은 사람이 명예로운 자리에 올라 있는 것을 지켜보고 큰 위로를 얻었다.
139:5.6 빌립은 예수의 한없는 너그러움을 찬미했다. 언제나 아끼지 않고 베푸는 예수의 태도를 존경했다.
그는 평범했고 영적 통찰력이 크게 모자랐다. 주의 심오한 강론 한가운데서 서슴지 않고 어리석은 질문을 해서 예수를 멈추게 하곤 했다. 그러나 예수는 이런 답답한 질문을 하는 것 때문에 한 번 꾸짖으면, 빌립의 마음을 너무 상하게 하여 다시는 묻지 않을 것을 예수는 잘 알았기 때문에 한번도 나무라지 않았다. 예수는 설교하던 말씀보다 빌립의 어리석은 질문에 정말로 더욱 흥미를 느꼈다. 예수는 온갖 종류의 사람들에게 최고로 관심을 가졌다.
식사를 담당하던 이 사도는 개인을 상대로 매우 설득력 있고 성공적인 일꾼이었다. “오라”하고 말하는 크고도 드문 재주를 가졌다. 나다니엘과의 대화에서 나사렛 예수의 이견이 있을 때 빌립의 효과적인 대답은 “와서 보라”는 것이었다. 모든 상황이 일어나는 대로 부딪쳤다. 부모들도 아이들에게 “가서 이리 하고 저리 하라” 말고, “우리를 따라 오라, 우리가 더 좋은 방법을 너희에게 보여주고 가르쳐주리라” 말하는 것을 빌립으로부터 배울 수 있다.
빌립은 새로운 형편에 적응하는 능력이 없었다. 사마리아로 들어가서, 주한테서 지시를 받은 대로 신자들에게 설교하고 세례를 주었을 때, 그는 이들이 진리의 영을 받았다는 표시로 개종한 사람들에게 손 얹기를 삼갔다.
주가 돌아가신 이후 사마리아인을 위하여 한 일, 그리고 복음을 위하여 나중에 한 모든 빌립의 수고는 대단히 성공했다.
139:5.11 그의 아내는 담대한 여자였고, 빌립의 십자가 밑에 서서 그를 죽이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소식을 선포하라고 그를 북돋았다. 성난 유대인들이 돌로 쳐죽일 때에야 조용해졌다. 맏딸 레아는 히에라폴리스에서 이름난 선지자가 되었다.
열두 사도의 식사 담당이었던 빌립은 하늘나라에서 대단한 사람이었고, 어디에 가든지 영혼을 구했다. 믿음 때문에 마침내 십자가에 못박혔고 히에라폴리스에서 묻혔다.
6. 정직한 나다니엘
139:6.1 나다니엘은 주가 스스로 고른 여섯째 사도였다. 친구 빌립이 그를 예수에게 데리고 갔다. 그들이 예수와 마주쳤을 때, 빌립과 함께 세례자 요한을 보려고 내려가는 길이었다.
사도들과 합세했을 때 25살이었고, 부모와 함께 가나에서 살았다. 열두 사도 중에서 나다니엘과 가룟 유다가 가장 교육을 잘 받았다. 나다니엘은 전에 상인이 되려고 생각했다.
그는 “속임수가 없었다.” 이것은 그의 큰 미덕이었고 그는 정직하고도 성실했다.그의 약점은 자부심이었다. 그의 집안, 그가 살던 도시, 그의 명성과 민족을 아주 자랑스러워하였고, 너무 지나치지 않으면 이 모두가 칭찬할 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나다니엘의 개인적 편견은 극단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있었다. 자신의 개인 의견에 따라서 사람들을 미리 판단하는 성향이 있었다. 예수를 만나기도 전에, “나사렛에서 어떤 좋은 것이 나올 수 있느냐 ”하고 서슴지 않고 물었다. 그러나 완고하지는 않았다.
열두 사도 중에서 최고의 이야기꾼이었다. 예수는 심각한 것과 쓸데없는 것에 대하여 나다니엘이 길게 연설하는 것을 듣기를 좋아했다. 나다니엘은 차츰차츰 예수와 하늘나라를 더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사도들은 모두 나다니엘을 사랑하고 존경했다. 가룟유다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분별 없이 유다는 예수에게 가서 그에 대하여 불평했다. 예수는 말했다: “유다, 너에게 맡겨진 일을 잘 하고 형제 나다니엘로 하여금 하나님께 자신을 설명하도록 내버려 두어라.” 이 기억은 자신을 속이는 가룟 유다의 가슴 속에 오래 남아 있었다.
139:6.6 사도들이 긴장하고 일이 얽혔을 때, 안드레조차 위로받지 못한 형제들에게 무슨 말을 할까 불안해할 때, 나다니엘은 철학이나 번쩍이는 유머로 긴장을 풀어주곤 했다.
나다니엘의 의무는 열두 사도의 가족을 돌보는 일이었다. 그래서 때때로 사도 회의에서 자리를 비웠다. 열두 사도는 자기 집안의 복지가 나다니엘의 손에서 안전히 지켜진다는 것을 알고서 안심하고 쉬었다.
나다니엘은 예수의 너그러움 때문에 그를 아주 존경했다. 그는 사람의 아들이 얼마나 마음이 넓고 관대한지 생각해 보고 또 생각해 보았다.
이 사도는 메소포타미아와 인도로 가서 하늘나라의 기쁜 소식을 외치고 신자들에게 세례를 주었다. 동료들은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 결코 알지 못했다. 그는 하늘나라에서 위대한 사람이었고 주의 가르침을 퍼뜨리느라고 많은 공헌을 세웠다. 나다니엘은 인도에서 죽었다.
7. 마태 레위
139:7.1 안드레가 일곱째 사도 마태를 뽑았다. 마태는 가버나움에서 세금 걷는 사람이었다. 그는 서른한 살이었고, 결혼하고 네 아이가 있었다. 얼마큼의 재산이라도 있는 유일한 사도였다. 사업가요 사회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잘 어울렸다.
안드레는 마태를 사도들의 재무 담당자로 세웠다. 인간의 성품을 날카롭게 판단하는 자요 무척 유능한 전도자였다. 매우 진지한 제자요, 날이 갈수록 예수의 사명을 믿고 하늘나라를 확실히 믿은 사람이었다. 동료 사도들은 보통 그를 “돈줄”이라 불렀다.
레위의 장점은 마음을 다하여 사도들의 운동에 헌신한 것이다. 세리인 그를 예수와 사도들이 받아들였다는 것은 지난날에 세금을 걷었던 사람 편에서 넘치게 감사할 원인이었다. 마태의 약점은 인생을 물질적으로 보는 관점이었다. 그러나 모든 면에서 아주 좋아졌다.
마태가 가장 고맙게 여긴 것은 주의 용서하는 성품이었다. 오직 믿음이 하나님을 발견하는 사업에 필요하다는 것을 지치지 않고 되풀이하곤 했다. 언제나 하늘나라를 “하나님을 발견하는 이 사업”이라 말하기를 좋아했다.
마태는 과거가 있는 사람이었지만 훌륭하게 처신했다. 후에 동료들은 세리의 성과를 자랑스럽게 여겼다. 마태는 예수의 말씀에 대하여 광범위하게 노트를 적었다. 이 노트는 나중에 예수의 말씀과 행적을 적은 이사돌의 이야기에 기초로 쓰였고, 마태 복음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139:7.6 가버나움의 실업가요 세금 걷는 사람이었던 마태의 위대하고 쓸모 있었던 생애는 후세를 통해서 수천의 다른 실업가ㆍ관리ㆍ정치가도 “나를 따르라” 이르는 주의 매력 있는 목소리를 듣도록 인도하는 수단이 되었다. 마태는 다가오는 하늘나라 사자들에게 적절히 자금이 조달되도록 처리하는 일에 더할 나위 없이 헌신했다.
버림받고 절망하는 남녀들이 예수의 말씀을 들으려고 모였고, 그는 결코 한 사람도 돌려보내지 않았다.
마태는 주의 가르침을 직접 듣는 사람들이 자유로 내는 헌금을 받았으나, 드러내놓고 군중에게 돈을 요청하지 않았다. 그리 많지 않은 자기 재산의 거의 전부를 주와 사도들의 일에 바쳤지만, 이것을 전부 알고 있던 예수를 제외하고 그들은 이렇게 돈 낸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예수와 동료들이 그의 돈을 더럽게 여길까 두려워서 마태는 공개적으로 사도의 기금에 기부하기를 망설였다.
레위는 많은 돈이 그의 주머니로부터 나왔다는 것을 예수가 알았으면 하고 얼마나 바랐는지! 주가 이것을 다 알고 있음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 그가 하늘나라 복음을 선포하러 떠났을 때 실질적으로 무일푼이 되었을 정도까지 마태가 그들에게 기부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어느 사도도 모르고 죽었다.
139:7.10 마태는 예루살렘 북쪽으로 여행하면서, 하늘나라의 복음을 전도하고 세례를 주었다. 시리아ㆍ카파도치아ㆍ갈라시아ㆍ비티니아ㆍ트레스를 거쳐 갔다. 트레스 지방의 리시마키아에서, 어떤 믿지 않는 유대인들이 로마 군인들과 짜고 그를 죽음으로 몰았다. 이 세리는 승리를 거두고 죽었다.
8. 토마스 디디머스
139:8.1 토마스는 여덟째 사도였고, 빌립이 그를 선택하였다. "의심하는 토마스"로 알려졌지만, 사도들은 늘 의심하는 사람으로 여기지는 않았다. 그의 머리는 논리적이고 회의하는 종류였던 것이 참말이지만, 그는 일종의 대담한 충성심을 가졌다.
사도들과 합세했을 때 29살이었다. 결혼하여 네 아이가 있었다. 교육을 거의 받지 않았지만, 날카로운 머리를 가졌다. 그는 우수한 부모의 아들이었으며 부모는 티베리아스에서 살았다. 토마스는 열두 사도 중에서 참으로 분석하는 머리를 가진 사람이었다. 사도 집단에서 참된 과학자였다.
토마스가 어렸을 때의 가정 생활은 불행했다. 그는 자라서 무척 까다롭고 다투기 좋아하는 성질을 가졌다. 아내조차도 그가 사도들과 합세하는 것을 보고 반가워했다. 비관적인 남편이 집을 떠난다는 생각에 그 여자는 마음이 놓였다. 베드로도 처음에는 토마스가 언제나 의심한다고 형에게 불평했지만, 사도들은 점점 그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들은 그가 더할 나위 없이 정직하고 굽힘없이 충성스러운 것을 발견했다. 이처럼 예수의 고귀한 인격과 접촉하게 되었다. 주와 이렇게 관계를 가진 것은 당장에 토마스의 성향 전체를 바꾸기 시작했고, 동료 인간에 대한 그의 정신적 반응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
토마스의 장점은 움츠러들지 않는 용기와 분석하는 머리였다. 큰 약점은 의심하는 성향이었고, 육체를 입은 일생 동안 내내 이것을 완전히 이기지 못했다.
토마스는 여행 일정을 관리하였다. 훌륭한 집행자요, 뛰어난 사업가였지만, 그의 변덕스러움은 장애가 되었다. 하루는 어떤 사람이고 다음 날에는 또 다른 사람이었다. 예수와 사도들과 접촉한 것이 이 더러운 내향성을 대체로 고쳐주었다.
139:8.6 예수는 토마스를 매우 좋아했고, 여러 번 함께 길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었다. 문제 있는 사람들이 예수의 영적ㆍ철학적 가르침의을 온전히 알아듣지 못했어도 그들을 하늘나라로 들어가도록 북돋아주었다. 열두 사도 사이에 토마스가 낀 것은 예수가 정직하게 의심하는 사람들도 사랑했다는 변치 않는 선언이었다.
예수가 안정된 인품을 가진 것에 토마스는 주를 존경했다. 사랑이 넘치면서 정당하고 공평하며, 단호하지만 완고하지 않으며, 차분해도 무관심하지 않으며, 무척 도움이 되지만 간섭하거나 독재하지 않으며, 강해도 동시에 부드러우며, 분명하지만 거칠거나 무례하지 않으며, 부드러워도 흔들리지 않으며, 순수하고 티 없어도 남자답고 적극적이고 힘차며, 용감하지만 성급하거나 무턱대고 덤비지 않으며, 자연을 사랑하지만 숭배하지 않고, 유머와 익살이 있어도 들뜨거나 경박하지 않은 사람을 토마스는 갈수록 더 찬미하고 존경했다. 아마도 그는 열두 사도 가운데 누구보다도, 예수를 가장 높이 지적으로 이해하고 그의 성격을 파악했다.
토마스는 안전 제일 정책을 주장했지만, 집단의 결정을 망서리지 않고 따랐다. 주가 위험을 택하기로 결정하려 했을 때 “친구들아, 움직이자. 같이 가서 함께 죽자!”하는 용감한 말로 사도들을 일깨웠다.
토마스는 분석하는 성질이었고 단순히 회의하지는 않았다. 개인의 육체적 용기에 관한 한, 그는 열두 사도 가운데 가장 용감한 축에 속했다.
토마스는 때때로 우울하고 시무룩했다. 토마스가 기운이 빠졌을 때, 회복하도록 도와준 사람은 때때로 나다니엘이었고, 때때로 베드로였으며, 알패오 쌍둥이 중 하나도 자주 그렇게 하였다. 아주 침울해졌을 때 그는 예수와 만나기를 언제나 피했다. 그러나 주는 이것을 모두 알았고 그가 이렇게 우울증으로 시달리고 의심으로 고생할 때 그의 사도를 이해하는 마음을 가졌다.
139:8.11 때때로 토마스는 혼자 하루나 이틀 떠나 있도록 안드레에게 허락받곤 했다. 그러나 그러한 길이 지혜롭지 않음을 곧 깨달았다. 앞으로 나갈 때가 실제로 다가왔을 때, “갑시다!”하고 말한 것은 언제나 토마스였다.
토마스는 의심을 품고 부닥치고 이기는 인간의 위대한 본보기였다. 그는 위대한 지성을 가졌고, 헐뜯는 비평가는 아니었다.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었고, 예수와 그의 일이 진정하지 않았더라면 토마스와 같은 사람을 처음부터 끝까지 붙들어둘 수 없었다. 그는 사실에 대하여 날카롭고 확실한 감각을 가졌다. 그의 머리는 참된 과학자―토마스 디디머스―의 머리였고, 그는 나사렛 예수를 믿었다.
토마스는 재판과 십자가 처형이 있던 시절을 잘 견디었다. 한동안 의심하는 우울증에 굴복했으나 결국 믿음과 용기를 불러일으켰다. 오순절 뒤에, 키프러스, 크레테, 북 아프리카 해안, 시실리로 가서 전도하였고, 말타에서 처형될 때까지 토마스는 줄곧 전도하고 세례를 주었다. 죽기 바로 몇 주 전에, 그는 예수의 일생과 가르침에 관하여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
9 - 10. 야고보와 유다 알패오
139:10.1 알패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유다는 아홉째와 열째 사도였다. 야고보와 요한 세베대가 이들을 선택하였다. 이들은 26살이었고 결혼했다. 야고보는 아이가 셋, 유다는 둘이 있었다.
동료 사도들의 철학 토론이나 신학 논쟁을 거의 알아듣지 못했으나 그러한 무리의 막강한 사람들 사이에 자기들이 낀 것을 알고 기뻐했다. 이 두 사람은 용모, 정신의 특성, 영적 이해의 범위가 거의 동일했다.
안드레는 이 쌍둥이를 군중 정리에 배치했다. 설교 시간에 주요 안내자였다. 사실은 열두 사도 중에서 보통 일을 하는 심부름꾼이었다. 소모품 다루는 일에 빌립을 도왔고 나다니엘을 위하여 돈을 가족들에게 전해 주었다. 그리고 어느 사도에게도 언제나 도움의 손길을 뻗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서민들의 무리는 자기들과 같은 두 사람이 사도들 틈에 자리를 얻어 존경받는 것을 알고 크게 용기를 얻었다. 이 평범한 쌍둥이는 소심한 신자들의 무리를 하늘나라로 데려오는 수단이었다. 서민들도 자기들과 무척 비슷한 공식 안내원들이 그들을 인도하고 관리한다는 생각을 더 친절하게 받아들였다.
이들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사도들 틈에 낀 것을 보고 많은 소심한 신자들이 하늘나라로 들어왔다. 타대오와 레베오라고도 불렀다. 사도들 중에 가장 "작은 자"들이었고, 이를 알고 기뻐했다.
139:10.6 야고보는 주의 단순한 성품 때문에 예수를 사랑했다. 유다는 예수가 겸손한 데 마음이 끌렸다. 머리는 높은 수준이 아니었으나, 하나님의 아들이었고 하늘나라의 동료였다.
유다 알패오는 주가 티 내지 않고 겸손했기 때문에 예수에게 마음이 이끌렸다. 그러한 성격의 위엄과 연결된 그러한 겸손이 유다의 마음을 크게 끌었다. 언제나 예수가 특별히 행한 일에 관하여 침묵을 지키라고 분부한 사실은 이 단순한 자연의 아이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
예수는 하찮은 신분을 업신여기지 않고 오직 죄와 악을 업신여긴다. 야고보와 유다는 하찮은 사람이었지만 또한 충실했다. 단순하고 무지했어도 또한 마음이 넓었고 친절하고 너그러웠다.
어떤 부자가 재산을 팔고 가난한 자를 돕지 않으면 전도사로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거절한 그날, 이 두 사람은 얼마나 자랑스러워했는가!
예수와 가졌던 모든 관계에서 겨우 한두 번 쌍둥이는 대중 앞에서 감히 물었다.
139:10.11 쌍둥이는 끝까지, 심판과 십자가 처형과 절망이 있던 그 날까지 충실하게 섬겼다. 예수를 믿는 중심 신앙을 결코 잃지 않았고, 그의 부활을 처음으로 믿은 사람들이었다 (요한을 빼고). 그러나 하늘나라가 서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주가 십자가에 못박힌 뒤에 곧, 가족에게 그리고 고기잡이 그물로 돌아갔고 그들의 일은 끝났다.
11. 열심당원 시몬
139:11.1 시몬 베드로가 열한번째 사도 시몬을 선택하였다. 그는 좋은 가문을 가진 유능한 사람이었고 가족과 함께 가버나움에서 살았고 28살이었다. 그는 불 같은 선동자요 또한 생각지 않고 떠벌리는 사람이었다.
열심당원 시몬에게는 사도 무리의 오락 담당이었고, 사도들의 오락 활동을 매우 효과 있게 조직한 사람이었다.
시몬의 장점은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충성심이었다. 심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남자나 여자를 만났을 때, 새 사람이 하늘나라 신자가 되는 것을 보는 데는 보통 15분 정도 걸렸다.
시몬의 큰 약점은 물질적인 머리였다. 그러한 지적 변화와 감정의 변화를 이룩하는 데 4년은 너무 짧았지만, 예수는 언제나 그에게 참을성을 보였다.
시몬은 예수의 침착성, 곧 확신, 차분한 태도, 설명할 수 없는 평온함을 찬미했다.
139:11.6 시몬은 토론을 좋아했고, 유대인과 율법을 따지거나 그리스인과 지적 논쟁을 벌이게 되면, 그 과제가 시몬에게 배당되었다.
예수는 하늘나라라는 상급 개념을 받아들이도록 시몬을 설득했다. 그는 언제나 저항하는 당의 편을 들었지만, 이제 영과 진리의 한없고 영원한 진보를 부르짖는 진보 당파에 들어갔다. 시몬은 뜨거운 충성심을 가졌고 열심으로 몸소 헌신하는 사람이었으며 예수를 깊이 사랑했다.
예수는 사업가와 노동자, 낙천주의자와 비관주의자, 철학자와 회의론자, 세리와 정치가와 애국자와 같은 편에 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 열렬한 유대인 민족주의자에게 예수는 “사회ㆍ경제ㆍ정치 질서의 개선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한 후 늘 이렇게 덧붙이곤 했다: “그것은 하늘나라의 사업이 아니라. 우리는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데 몸을 바쳐야 한다. 신성한 아버지의 뜻과 성품을 대표하는 외에 아무것도 우리가 당장 관여해서는 안된다.” 처음엔 어려웠지만 차츰 주의 가르침을 깨닫기 시작했다.
예루살렘의 박해 때문에 흩어진 뒤에 시몬은 잠시 물러나 있었다. 민족주의 애국자로서, 예수의 가르침을 좇아 항복했고, 절망에 빠졌지만 몇 년 안에 희망을 불러일으켰고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러 떠나갔다.
139:11.11 시몬은 알렉산드리아로 갔고, 나일강 상류에서 일한 뒤에 아프리카의 심장부로 가서 일하고, 거기서 묻혔다.
12. 가룟 유다
139:12.1 나다니엘이 열두번째 사도 가룟 유다를 골랐다. 유다의 부모는 사두개인이었고, 아들이 요한의 제자들과 합류했을 때 그와 인연을 끊었다.
서른이고 미혼이었다. 사도들 중에 가장 교육을 많이 받았고, 유일하게 유대 지방 사람이었다. 겉으로 교양 있는 사람처럼 보이는 버릇을 가졌다. 머리가 잘 도는 사람이었으나 정직한 사람은 아니었다. 유다는 정말로 자신을 이해하지 못했다. 자신에게 정말로 성실하지 않았다.
안드레는 유다를 열두 사도의 회계로 임명했고, 주를 배신하기 직전까지, 그는 정직하고 충실하고 아주 유능하게 맡은 직무를 수행했다.
유다가 찬미한 예수의 특성은 하나도 없었다. 열한 사도가 우러러본 그 사람을 자기 만족에 빠진 사람으로 주제넘게 자주 비판했다. 그는 예수가 자신의 권력을 주장하기를 두려워한다고 생각했다.
유다는 정말로 뛰어난 경영자요 멀리 내다보는 유능한 재정가였다. 그리고 조직에 빈틈없는 사람이었다. 열둘 가운데 아무도 유다를 비판한 적이 없다. 유다는 주와 동료 사도들에게 언제나 재정적으로 충실했다는 것을 안심하고 믿으라. 돈은 결코 그가 주를 저버린 동기가 될 수 없었다.
139:12.6 유다는 부모가 애지중지해서 길러서 버릇없는 아이였다. 지는 것을 못 견디는 사람이었다. 공평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가졌고 친구들의 말과 행동을 오해하는 재주가 있었다. 그를 잘못 대접했다고 생각된 사람들에게 앙갚음하는 버릇이 있었다.
처음부터 주는 이 사도의 약점을 충분히 이해했고 그를 사도 모임에 들어오게 하는 위험을 잘 알았다. 그러나 똑같은 기회를 주는 것이 하나님의 아들들의 성품이다.
빛을 정직하게 받아들이고 그에 따라 충실하게 살지 않을 때 빛은 그 혼 안에서 어두움이 되는 경향이 있다. 예수의 하늘나라 가르침에 대하여 유다는 지적으로 자랐지만, 다른 사도들처럼 영적 성격을 얻는 데 진전이 없었다.
유다는 기분을 여러 번 상했고, 가장 좋은 친구들, 아니 주까지도 비정상으로 의심하게 되었다. 얼마 안 되어 앙갚음하려는 생각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고마워하는 어떤 여인이 비싼 향이 든 상자를 예수의 발 앞에 깨뜨리자, 유다에게 이것은 낭비인 듯하였다. 그의 공개적 항의가 예수에게 싹 묵살되었을 때 쌓이고 쌓였던 모든 미움ㆍ상처ㆍ악의ㆍ편견ㆍ질투, 그리고 일생 최대의 원한을 가지도록 결정하였고, 앙갚음을 하기로 작정했다.
139:12.11 예수는 사람의 도덕적 자유를 다치지 않으면서 유다가 나쁜 길로 가려 하는 것을 막으려고 가능한 모든 일을 했다.
분노로 싹이 튼 배반 계획이 진행되는 동안 그는 뉘우침과 부끄러움을 몇 순간 겪었다. 자신의 머리 속에 하나의 변명으로서 예수가 아마도 권능을 행사하여 마지막 순간에 자신을 구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품었다.
오랫동안 품었던 복수 욕구를 채우려고 은화 서른 잎에 친구 팔기를 가벼이 여긴 이 변절한 필사자는, 현실을 도피하는 연극에서 목숨을 끊었다.
열한 사도는 소름이 끼쳤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예수는 배반자를 불쌍히 여길 뿐이었다. 세계들은 유다를 용서하기 어려움을 깨달았고 방대한 우주에서 두루 그의 이름을 피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