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세례 (1450)
피에르 델라 프란체스카
피에르 델라 프란체스카(Piero della Francesca, 1416-1492)는
르네상스 시대의 가장 걸출한 화가 중 한 명이며 수학자이다.
그가 고향 성당에 그린 <그리스도의 세례>는 제단화라는 특수성 때문에
화폭은 반원형과 사각형의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그 누구도 수학자인 그보다 더 기발하게
이러한 화면분할을 이용할 수는 없었을 게다.
반원의 중심에는 하얀 비둘기가 날개를 활짝 펴고 예수님을 향하고 있다.
그런데 비둘기의 두 날개가 사각형의 선과 수평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사각형의 중심선에는 예수님이 서 있고,
사각형의 중심점에는 예수님의 배꼽이 있다.
또 정중앙을 가르는 수직선을 그으면
비둘기의 머리 부분, 세례수와 그릇, 예수님의 얼굴 중심선,
합장한 두 손, 예수님의 오른쪽 다리가 놓이게 된다.
그뿐이 아니다.
색칠과 기하학적 형태를 통해 가장 완벽한 도식을 만들어 냈다.
그림에 있는 네 그루의 나무를 보아라.
단지 색의 깊이를 달리하여 색칠함으로써
근경과 중경과 원경을 구분하여 나타내지 않았는가?
장소를 한번 보자.
구불구불 흐르는 강은 요르단강을 나타내지만,
주변의 자연풍광은 분명 토스카나 지방 풍경이다.
그리고 요르단강물을 들여다보면 물의 흐름이 끊어져 보이고,
예수님은 마른 땅에 서 계신다.
이것은 모세가 홍해 바다를 갈랐듯이 예수님이 요르단강을 갈랐고,
예수님은 새로운 모세로 우뚝 서 계신다는 작가의 의도가 보인다.
등장인물을 한번 보자.
중앙에는 예수님께서 옷을 벗고 합장한 자세로 세례를 받고 계신다.
예수님 곁에는 세례자 요한이 물을 떠서 그분의 머리에 붓고 있다.
그리고 그 뒤에는 한 남자가 세례를 받기 위해 옷을 벗고 있다.
그 사람 뒤에는 정교회 사제복장을 한 사람이 네 명 서 있다.
이들은 길을 가던 중이다.
그런데 한 사제가 오른팔을 들어 세례자 요한처럼 세례 주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것은 작가가 같은 세례를 받은 교회의 일치를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나무와 나무 사이에 세 명의 천사가 세례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
왜 천사가 세례의 현장에 있었을까?
천사는 하느님과 인간을 이어주는 존재요,
세례 또한 하느님과 인간을 이어주는 예식 아닌가?
그래서 하늘을 대변하는 원의 중심에는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날고 있고,
땅을 대변하는 사각의 중심에는 예수님이 서 계시는데,
하늘과 땅을 세례 수가 이어주고 있다.
붉은 상의를 입고 있는 천사는 세례자 요한의 표정을 살피고 있다.
그래서 그 천사의 오른손과 세례자 요한의 손짓이 같다.
가운데 화관을 쓴 천사는 예수님의 옆모습을 응시하고 있다.
그래서 천사와 예수님은 발의 각도도 같고, 똑같은 흰색 옷을 입고 있다.
또 월계관을 쓴 천사는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 이 천사는 시선을 통해 우리에게 세례의 증인이 되라고 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세례의 증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 천사가 쓰고 있는 월계관처럼 평화를 세상에 심는 것이다.
하늘이 열리고 그분의 음성이 들린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르 1,9-11)
그분 마음에 드는 아들이 되기 위해 우리도 예수님처럼 평화의 사도가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