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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30:15 | |
“너희의 생명을 속하기 위하여 여호와께 드릴 때에 부자라고 반 세겔에서 더 내지 말고 가난한 자라고 덜 내지 말지며”. | |
30장의 내용은 분향할 단(1)과 물두멍(18)의 식양과, 관유(25)와 향(34)에 관한 말씀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간에 “생명의 속전” (12)에 관한 말씀이 들어 있습니다. 생명의 속전이란 우리들의 죄 값을 대신 지불하신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대한 예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인은 “향단, 물두멍, 생명의 속전, 관유”등을 번제단과 결부시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왜 그렇게 하고 있는가는 내용을 보시면 이해가 될 것입니다. 이를 네 단원으로 나누어 상고하겠습니다.
첫째 단원(1-10) 번제단과 결부된 향단
둘째 단원(11-16) 번제단과 결부된 속전
셋째 단원(17-21) 번제단과 결부된 물두멍
넷째 단원(22-38) 번제단과 결부된 관유와 향
첫째 단원(1-10) 번제단과 결부된 향단
“너는 분향할 단을 만들지니 곧 조각목으로 만들되 장이 일 규빗, 광이 일 규빗으로 네모 반듯하게 하고 고는 이 규빗으로 하며 그 뿔을 그것과 연하게 하고”(1-2).
분향할 단을 만들라 하십니다. 이를 정금으로 싸고, 금테를 두르고, 금고리를 만들고 하신 대로 모두가 금으로 만들라 하십니다. 놋으로 만든 번제단을 “놋단”이라 하듯 금으로 만든 향단을 “금단”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 향단의 위치는 “그 단을 증거궤 위 속죄소 맞은 편 곧 증거궤 앞에 있는 장 밖에 두라”(6)고 말씀합니다.
① 향단에서 오르는 향연(香煙)은 기도를 상징(계 8:3-4)합니다. 문제는 누구의 기도인가가 중요합니다.
② 이 향단도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중보(中保)사역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위치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점을 ⑤번에서 보게 될 것입니다.
③ 놋 단이 우리의 죄를 위하여 대속의 죽음을 죽으신 십자가를 상징하는 것이라면, 금단은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 8:34)를 상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④ “아론이 아침마다 그 위에 향기로운 향을 사르되”(7) 합니다. 망각하지를 마십시오. 이 향단에 조석으로 향을 사르고 있는 대제사장 아론의 어깨와 가슴에는 열 두 지파의 이름이 새겨져 있음을! 번제단에서 죽임을 당하신 주님은 항상 살아서 하나님 앞에서 형제를 위하여 간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번제단에서 구속하신 형제를 잃지 않으시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제사장은 이 두 단(壇) 즉 “번제단과 향단” 사이에서 섬겼던 것입니다.
⑤ 여기 하나의 난제(難題)가 있습니다. 구약성경에서는 향단의 위치를 “장 밖에”(6) 두라고 명하셨는데 신약성경에서는 금향로가 “휘장 뒤 지성소”(히 9:3-4), 그러니까 “장 안에” 있는 것으로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휘장 밖이냐? 휘장 안이냐? 질문을 드려보겠습니다. 휘장이 찢어진 후에 제1차로 들어간 분이 누구인지 아시겠습니까? 성경은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히 6:19-20) 하고 주님이셨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구약시대(히 9:8)에는 우리의 중보자는 휘장 밖에 있었으나, 신약시대에 와서 그가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하늘 지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 9:12)고 증거한 히브리서 기자가 향로의 위치를 장 안에 있는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은 너무나 합당하다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 8:34)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형제여, 이제는 우리들도 휘장 밖에서 기도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히 10:19-20) 하십니다.
본문을 주목해보십시오. 향단에는 “뿔”(2, 3, 10)이 있습니다. 뿔은 능력을 나타냅니다. 기도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 능력은 “향단 뿔을 속죄제의 피로 속죄할지니라”(10) 하신 대로 그 피를 믿는 데서 오는 담대함이요 능력임을 명심해야만 합니다. 이것이 번제단과 결부된 향단의 의미입니다.
둘째 단원(11-16) 번제단과 결부된 속전
“네가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를 따라 조사할 때에 조사 받은 각 사람은 그 생명의 속전을 여호와께 드릴지니 이는 계수할 때에 그들 중에 온역이 없게 하려 함이라”(12).
① 계수 함을 받은 자는 “생명의 속전”을 드리라고 명하십니다. 그래야만 온역이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온역”은 흑사병과 같은 역병을 일컫는 말로 곧 죽음을 뜻합니다. 생명의 속전을 드리지 않으면 곧 죽임을 당하게 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② 왜냐하면 죄 값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나 계수 할 때 속전을 드리라고 말씀하는 것이 아님을 유념하십시오.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12)를 조사할 때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택하신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수 가운데 들기 위해서는 누군가 그의 죄 값을 대신 지불하는 “생명의 속전” 곧 구속이 필요함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③ 그러므로 “너희 생명을 속하기 위하여 여호와께 드릴 때에 부자라고 반 세겔에서 더 내지 말고 가난한 자라고 덜 내지 말지며”(15) 하시는 것입니다. 이는 모든 영혼의 가치가 동일함을 나타냅니다.
④ 신약성경에서는 이 진리가 “그(그리스도)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면 증거할 것이라”(딤전 2:6) 하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되었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형제가 계수 함을 받아 생명 책에 오르게 된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속전을 드려주셨기 때문임을 기억하고 있습니까? 천하 인간에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말씀합니다. “아무도 결코 그 형제를 구속하지 못하며 저를 위하여 하나님께 속전을 바치지도 못할 것은 저희 생명의 구속이 너무 귀하며 영영히 못할 것임이라”(시 49:7-8). 이것이 번제단과 결부된 속전의 의미입니다.
셋째 단원(17-21) 번제단과 결부된 물두멍
“너는 물두멍을 놋으로 만들고 받침도 놋으로 만들어 씻게 하되 그것을 회막과 단 사이에 두고 그 속에 물을 담으라 아론과 그 아들들이 그 두멍에서 수족을 씻되 그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 물로 씻어 죽기를 면할 것이요”(17-20).
물두멍은 놋으로 만든 큰 대야입니다. 제사장이 성소에 들어갈 때에 수족을 씻고 들어가야 “죽음을 면할 것이요”(20) 하십니다. 이점은 21절에서도 “그들이 수족을 씻어 죽기를 면할지니” 하고 거듭 강조되어 있습니다.
이점에서 생각해야할 점은 하나님은 “죽음”을 거듭 거듭 경고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시내산에 강림하실 때도 “지경을 범하지 말지니 범하는 자는 정녕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19:12, 21)고 거듭 경고하셨습니다. 제사장의 옷과 결부해서도 “그것들을 입어야 죽지 아니하리니”(28:43, 35) 하고 거듭 경고하셨습니다. 이제 물두멍과 결부해서도 “물로 씻어 죽기를 면할 것이요” 하고 반복해서 경고하십니다. 여기에 공통점이 있는데 모든 경우가 하나님을 가까이 하다가 죽임을 당할까 보아 경계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약시대의 특성입니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하나님을 가까이 하다가 죽임을 당하게 된다는 말인가? 그것은 분명합니다. 죄 때문에 그러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사장이 물두멍에서 씻어 죽기를 면할 것이요 하심은 물두멍의 물이 주님이 흘리신 보혈의 상징임을 말씀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물두멍의 위치를 “회막과 단(번제단) 사이에 두라”고 명하시는 것입니다. 번제단을 통하고, 물두멍을 거쳐, 회막(성소)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죽임을 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순서가 말해주고 있듯이 번제단이 있음으로 물두멍의 존재의미가 성립이 되는 것입니다.
한가지 더 유념해야할 것은 “놋으로 물두멍을 만들고 그 받침도 놋으로 하였으니 곧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의 거울로 만들었었더라” (38:8)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거울을 통해서 자신의 죄을 깨닫고 물두멍에서 씻음을 받아야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점을 신약성경에서는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히 10:22)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번제단과 결부된 물두멍의 의미입니다.
넷째 단원(22-38) 번제단과 결부된 관유와 향
“너는 상등 향품을 취하되 유질 몰약 오백 세겔과 그 반수의 향기로운 육계 이백 오십 세겔과 계피 오백 세겔을 성소의 세겔 대로하고 감람 기름 한 힌을 취하여 그것으로 거룩한 관유를 만들되”(22-25).
관유에 관해서는 29장에서 제사장 위임예식을 살펴보면서 말씀드린 바가 있습니다. 관유는 기름부음 즉 성령을 나타냅니다. 본문에서는 관유의 제조방법과 그 용도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몸에 붓지 말며 이 방법대로 이와 같은 것을 만들지 말라 이는 거룩하니 너희는 거룩히 여기라”(32) 하십니다. 이를 신약적으로 말한다면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으려니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눅 12:10)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관유를 대제사장의 머리에만 붓는 것이 아니라 “너는 그것(관유)으로 회막과 증거궤에 바르고 상과 그 모든 기구며 등대와 그 기구며 분향단과 및 번제단과 그 모든 기구와 물두멍과 그 받침에 발라 그것들을 지성물로 구별하라”(26-29)고 말씀하심을 보게 됩니다. 이는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서 “신령과 진정”으로 섬겨야함을 나타냅니다. 이를 알았기에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성령(관유)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번제단)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빌 3:3)고 선언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한 좋은 예가 있습니다.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갈 5:19) 하고 “육체의 일”들을 열거한 다음에 “오직 성령의 열매는”(갈 5:22) 하고 성령으로 봉사할 때에 맺어지게 되는 열매를 열거합니다. 차이를 아시겠습니까? 사람이 하는 일을 가리켜 “육체의 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반면 성령으로 봉사할 때에는 “성령의 열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일과, 열매”를 분별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주님의 교회를 섬길 때에 “일”만 하느라고 분주한 것은 아닌지, 아니면 하나님께서 기쁘심으로 열납하시는 성령의 열매를 맺고 있는지 점검해 보아야만 할 것입니다.
너희를 위하여 만들지 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소합향과 나감향과 풍자향의 향품을 취하고 그 향품을 유향에 섞되 각기 동일한 중수로 하고 그것으로 향을 만들되 향 만드는 방법대로 만들고 그것에 소금을 쳐서 성결하게 하고 그 향 얼마를 곱게 찧어 내가 너와 만날 회막 안 증거궤 앞에 두라 이 향은 너희에게 지극히 거룩하니라”(34-36).
이는 향을 만드는 방법입니다. 성경에서 “향”은 기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며 나의 손드는 것이 저녁 제사같이 되게 하소서”(시 141:2) 합니다. 신약성경에서도 “향이 가득한 금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계 5:8),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여 보좌 앞 금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계 8:3-4) 합니다.
그러므로 금향단에서 올라가는 향연은 첫째, 우리의 중보자되시는 그리스도께서 드려주실 기도를 나타냅니다. 둘째, 이제는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성도들이 제사장이 되어 하나님 앞에 나아가 드려야 하는 기도로 적용이 됩니다. 기도란 하나님과 “만나고, 말씀을 받는” (25:22) 통로인 것입니다. 이점에서 주목하게 되는 것은 그 향을 “너희를 위하여 만들지 말라”(37)는 말씀입니다. 무슨 뜻일까요?
① 속되게 하지말고 거룩하게 성별 하라는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② 보다 더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약 4:3)을 경계하신 말씀으로 다가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