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일 - 이탈리아 로마 야누스 한인민박에서
콜로세움으로 가기위해 지하철을 타고 중앙인 테르미니역에서 갈아타고 갔다. 로마는 지하의 유물들이 방대하게 남아있기 때문에 지하철이 구석구석 뻗어있지는 않지만 단 두 지하철 라인인 A, B가 거의 모든 관광지를 연결하고 있어서 편했다.
거대한 로마시대의 경기장인 콜로세움을 보는 순간 영화 글레디에이터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영화의 한 장면이 생생하게 떠오르면서 이곳에서 싸웠을 검투사들이 생각났다. 역시 배경이 되는 어떠한 지식들이 겹쳐질 때 관광은 더욱 흥미롭고 재미있어지는 것 이라고 생각됐다.
콜로세움으로 들어가는 입장은 수많은 관광객들 때문에 수월하지 않았고 내부에 있는 경기장도 많이 부서졌지만 내부 지하의 모습은 이 경기장의 숨은 곳까지 얼마나 거대한곳인지 짐작하게 했고 더욱 더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건물은 1층부터 도리아, 이오니아, 코린트 양식으로 4개 층이 서로 다르게 지어졌다고 한다. 대단한 것은 5만 명이 넘는 사람이 수월하게 입장할 수 있도록 80개가 넘는 아치문이 있었고 관객은 10분이면 모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고 한다.
콜로세움을 모두 둘러보고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개선문을 지나 포로 로마노에서 로마 시대의 웅장하고 화려한 과거를 엿보았다. 그중에 카이사르가 아들처럼 아끼던 브루투스의 손에 생을 마감했던 장소인 원로원은 특히 더 실감났다.
넓고 예쁜 정원인 팔라티노도 돌아보고 로마 귀족이 열광하던 전차 경주가 열리던 대전차 경기장도 보았다. 지금은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황량하지만 공터의 크기로 미루어 보았을 때 얼마나 큰 경기장이었는지 짐작됐다.
산타 마리아인 코스메딘 성당의 입구에 있는 해신 트리톤의 얼굴이 있는 진실의 입도 보았는데 이 조각은 원래 로마 시대의 하수구 뚜껑인데, 입에 손을 넣고 거짓말을 하면 입을 다물어 손을 잘라버린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하수구’뚜껑이라고 한다. 어떻게 이 하수구 뚜껑이 이렇게 유명한 관광 명소가 된 것에는 영화 로마의 휴일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베네치아 광장으로 버스로 환승해 간 후에 트레비 분수에 도착했는데 아침엔 강하지 않던 물줄기가 강하게 나오고 야경이 더해져 정말 멋있었다.
사람들도 무척 많았는데 저마다 동전을 던지며 소원을 빌고 있었다.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첫 번째 동전은 로마에 다시 올 수 있기를, 두 번째 동전은 평생의 인연을 만날 수 있도록, 세 번째 동전은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이혼을 바랄 때 던진다는 설이 있어서 재미있었다.
10월 2일 - 이탈리아 로마 야누스 한인민박에서남부투어를 하기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간단히 밥을 챙겨먹고 테르미니역 근처 모임장소로 향했다. 내가 선택한 관광사 말고도 다른 관광 그룹도 있어서 처음에 헷갈렸지만 잘 찾아갔다. 투어비용을 지불하고 인원체크를 한 뒤에 출발했다. 나폴리는 위험한 일이 많이 발생한 선례가 있기 때문에 1년 전부터 남부투어에서 제외했다고 했다.
나폴리에서 조금 더 가면 있는 폼페이 유적지를 갔는데 이 유적지는 기원 8세기부터 휴양지로 개발된 도시라고 한다. 하지만 79년 8월 24일에 베수비오 화산의 거대한 폭발로 인해 한순간에 멸망하고 만 도시이다.
오랜 세원동안 잊혔던 폼페이는 18세기에 발굴되면서 다시금 빛을 보게 되었는데 화산재에 덮여 있던 폼페이는 2000여 년 전의 생활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2000여 년 전의 높은 생활수준을 짐작할 수 있게 해주었다.
약 30명이 되는 투어 손님들을 한 장의 티켓으로 들어 갈 수 있도록 표를 끊고 현지 이탈리아 가이드와 함께 가며 유적지의 설명을 들었다. 이것은 본래 현지 가이드가 아닌 타국 가이드가 설명하는 것은 불법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탈리아가 관광산업에 얼마나 신경을 쓰고 있는지 짐작이 됐다.
마리나 문을 지나 공회당, 아폴로 신전, 공회장, 제우스 신전을 지나 비극시의 집에 도착했는데 이곳에는 입구에 있는 바닥의 ‘개 조심’모자이크가 재미있었다. 이 모자이크는 집을 지키는 것처럼 사슬에 묶인 개의 모습을 모자이크로 만들어놓았고 그 밑에는 ‘개 조심 cave canem’이라고 쓰여 있었다.
폼페이 유적지를 모두 둘러보고 근처의 식당에서 화덕에서 직접 구워내는 전통 나폴리피자를 맛보았는데 무척 맛있었다. 나폴리 피자의 조건은 까다로웠는데 진정한 나폴리 피자는 베수비오 산 남쪽의 화산분지에서 재배되는 '산마르자노 토마토'와 캄파니아와 라치오의 전용 사육 시설에서 키우는 물소 젖으로 만든 '모차렐라 디 부팔라 캄파니아치즈'같이 지역 고유의 재료를 사용한다. 나폴리피자협회에서 지정한 재료들로 만들어야하고 꼭 화덕에서 구워야 한다.
식사를 마치고 아말피 해변중하나인 포지타노로 향했다. 아름다운 해안 풍경이 펼쳐지는 작은 마을 소렌토를 지나 포지타노에 도착했는데 사진에서 보던 그리스 산토리니와 비슷한 느낌의 해안 휴양지였다.
아슬아슬한 절벽 도로에서 바라보는 포지타노는 정말 예뻤는데 이곳은 세계에서 죽기 전에 가봐야 할 곳 1위를 차지한 곳이라고 했다. 입이 떡 벌어지는 장관을 구경하며 해안가에 발을 담구고 오랜만에 여유를 즐겼다.
10월 3일 - 이탈리아 피렌체 차오벨라 한인민박에서오늘은 이탈리아 피렌체로 이동하는 날이다. 무척 많이 있는 예약비가 필요한 고속기차를 제치고 시간은 더 걸리지만 유레일패스만으로 탈 수 있는 도시 간 이동기차를 탔다. 한 가지 큰 단점은 이 기차는 내가 원하는 피렌체 S. M. N역 이 아닌 다른 역에서 정차한다는 것이 걸렸지만 그것은 그곳에서 이동하면 될 문제이고 이렇게 고생 할 생각하고 탄 것이기 때문에 괜찮았다. 앉아서 갈수 있는 것만 해도 얼마나 복인가 인도에서 뼈저리게 깨달았기 때문일까? 이건 별거 아니었다.
피렌체에 도착해서 역을 살펴보고 내가 있는 위치를 파악한 후에 버스정류장을 찾아 나섰다. 여기저기 해매면서 버스를 찾다가 조금 조급해진 마음에 앞에 정차하는 버스를 덥석 타버렸다.
불안한 마음에 이 버스가 피렌체 S. M. N역으로 가냐고 물어봤더니 다행이도 이 버스는 그 근처에 정차한다고 한분이 말씀해주셔서 중간에 내려 잘 도착했다. 숙소까지 다시 한 번 버스를 또 타서 공중전화를 이용해 사장님이 마중 나와 주셨다(이 숙소는 픽업 시스템이었다).
피렌체 시내 설명을 듣고 두오모를 시작으로 시내를 둘러보았다. 피렌체의 상징 두오모는 강성한 피렌체 공국의 종교적 중심지였다고 한다. 464개의 계단을 따라 꾸폴라로 올라가면 피렌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가 나오지만 가격도 비싸고 사람들도 너무 많고 결정적으로 ‘눈이 아무리 밝아도 제 코는 안 보인다.’는 속담처럼 두오모의 지붕위로 올라가면 정작 멋진 두오모는 안보이기 때문에 옆에 있는 지오또의 종탑에 올라 두오모와 피렌체 시내 전경을 보았다. 마지막으로 미켈란젤로 광장까지 올라서 예쁜 피렌체의 야경을 보고 숙소로 돌아왔다.
10월 4일 - 이탈리아 피렌체 차오벨라 한인민박에서 피사의 사탑을 가기위해 피렌체 S. M. N역에서 기차 출발 시간표를 확인하고 그냥 기차에 올라탔다. 나는 유레일패스가 있기 때문에 지역 기차를 탈 때에는 티켓이 유레일패스기 때문이다. 셀렉트패스의 경우에는 여행일자를 하루 소모해야하지만 내 것은 글로벌패스이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어서 편했다.
약 1시간이 걸려 피사 중앙역에 도착했다. 피사의 사탑까지 걸어서 도달하는 순간 주변에 보이는 수많은 사람들이 같은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고 있는 것이 무척 우스꽝스러우면서 재미있어 보였다. 나는 혼자 왔기 때문에 주변을 죽 둘러보고 한국인을 찾아서 나 또한 원근법을 적극 활용해 피사의 사탑과 함께 웃긴 사진들을 많이 찍었다.
피사의 사탑은 옆에 있는 두오모의 부속 종탑으로 흰 대리석으로 만든 기둥이다. 1173년 피사 출신의 건축가 보난노 피사노가 공사를 시작해 1350년 시모네가 완성했다. 모래로 된 약한 지반과 단 3m밖에 안되는 석조 토대 때문에 3층이 완성된 초기부터 기울어지기 시작해서 일단 공사를 중지하고 연구해본 결과 기울기는 해도 무너지지는 않으리라는 결론을 내려 공사를 재개해서 결국엔 완성했다고 한다.
그러나 조금씩 기울어지기 시작한 사탑을 고치기 위해 1990년부터 입장을 금지시키고 사탑을 조금씩 끌어올리는 작업을 시작해 2001년에 공사를 마무리해서 지금의 피사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사실 피사의 사탑이 유명해진 이유가 멀쩡한 탑이 기울어서 사람들의 관심을 한눈에 받았고 과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자유낙하 실험이 주된 원인이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피사의 사탑에 올라가려면 예약과 함께 제한된 인원만 입장시킨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