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 <비극의 탄생>
200219094. 철학. 문보경
▶주제- 이성을 떠난 세계의 인식은 받아들여질 수 있는가.
▶구성- 1) 완전한 예술은 환상(아폴로적인 것)과 도취(디오니소스적인 것)의 결합이다.
2) 이런 완전한 예술은 고대 그리스 비극에 존재했다.
3) 이런 완전한 예술이 사라진 것은 에우리피데스와 소크라테스의 탓이다.
4) 완전한 예술로의 복귀가 필요하며, 바그너가 그런 예술의 생산자이다.
▶의견- 이 책의 전반적인 토대는 예술의 발전은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결합이라는 것이다. 아폴론적이라는 것은 형식적 기능을 수행하는 논리적인 차원이며 정밀함을 상징하는데 반해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유기적인 세계전체를 말하는 것으로 동적인 차원이다. 그리고 충동적인 예술의 힘을 말한다. 세계의 구성에 있어서 아폴론적인 것은 표상에 해당하며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비극의 내면적인 힘에 해당된다. 니체는 세계와 삶의 본질 또는 근원을 힘에의 의지로 파악하는데 아폴론적인 것은 형식적인 것이기에 도달할 수 없다고 본다. 그렇기에 껍데기를 벗어 던져야 하는 것이다. 그는 아폴론적인 것의 상징으로는 소크라테스를 내세우며 오성법칙, 사실성, 인과율의 원리를 표현하며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대표적인 것은 프로메테우스를 제시한다. 불을 가져다 준 신, 이성적인 것을 벗어나 힘에의 의지로 삶의 본질을 파악하는 니체의 의도는 옳지 못한 세계의 원인을 해명하여 참다운 세계, 힘에의 의지를 발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극적 삶과 그 삶에 대한 의지는 니체에게 삶의 예술의 근간이 되는데 그에게 예술의 미적 현상이 삶의 능력과 직결된다는 것은 진정한 삶의 이미지가 영원한 변화의 과정 속에 놓여 있으며 그런 점에서 예술의 이미지와 연관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되는데, 즉 삶의 의지가 억눌려지거나 약해진 사회에서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예술인 것이다. 이 책에서 니체는 ‘오직 예술만이 두려움이나 현존재의 불합리에 대한 구역질나는 생각을 사는 보람을 주는 표상으로 바꿀 수 있다.’(p.48)고 단언적으로 말하고 있는데 이로써 예술의 기능은 삶의 의지를 자극하여 그 의지를 극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디오니소스적 도취는 인간으로 하여금 가치를 고양시키도록 해준다. 인간은 그의 육체에서 생겨나오는 감정과 열망과 욕망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벗어 던져야만 하는 고통의 분비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인간은 고귀하고 영원불변하며 항상 동일자적 모습을 가지는 초월적 대상을 추구하지 않는다. 디오니소스적 도취는 이러한 인간들로 하여금 삶을 즐거워하고 긍정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예술은 바로 이러한 도취상태의 예술가에 의한 작품 활동인 것이며 예술가는 자신의 육체에서 발생하는 모든 욕망과 열정과 감정을 그의 작품 속에 쏟아 붓게 됨으로써 넘쳐 주체할 수 없을 그것을 발산해야만 하는 상태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작품 속으로 주입하는 것이다. 이는 나약한 자가 행하는 것처럼 대상으로부터 그 생명을 빼앗아 소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명의 기운을 그 대상에 심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여기에서 그토록 훌륭하고 강한 희랍인들에게 있어서 도대체 비극적 신화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디오니소스적인 거대한 현상은 또한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의문이 생긴다. 니체는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소크라테스주의를 대립시킴으로써 우회적으로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아폴론적인 것의 대립을 말하고 있는데 니체에게 있어서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삶의 근본적인 힘임에 반해서, 소크라테스적인 것, 다시 말해 아폴론적인 것은 이론적 인간의 무기로 보여 진다. 그러므로 니체가 말하는 비극적 신화에 대립되는 것은 소크라테스적인 것이다. 니체가 파악한 소크라테스주의는 서구의 합리주의의 온전하지 못한 뿌리이며 염세주의의 원천이다. 또한 실천력을 결여한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인간 삶에 기여하지 못하는 공허한 탁상공론일 뿐이다. 그러므로 니체는 당시의 문명을 지배하고 있는 학문 일반을 소크라테스주의라는 말로써 경멸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그의 통쾌한 해석이 나를 번쩍 뜨이게 하였고 오늘날 그의 사상이 회자되며 주목을 가지게 되는 이유도 오늘날 일반으로 작용하는 소크라테스적 사상들에 질린 우리들에게 신선한 공기로서 활력을 불어주는 작용을 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디오니소스적인 것을 삶의 본래적 원리로 보는 그는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를 부정하는 반기독교주의자가 되지 않을 수 없으며 그 유명한 신은 죽었다는 말을 한 것이 아닐까. 소크라테스주의에 의하면 삶은 이론적, 도덕적으로 해명되며 그와 같은 해명은 삶에 오로지 적대적인 것으로 니체에게는 받아들여진다. 곧, 니체는 극단적으로 이론화, 형식화된 삶을 극복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 그리스 비극을 해명함으로써 삶 자체, 즉 조화로운 삶을 제시한 것이 아닌가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