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4월 9일, 대법원 확정 판결 18시간 만에 인혁당 관련자 8명에게 사형이 집행되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1995년 4월 25일 MBC는 사법제도 100주년을 기념하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위해 판사 315명에게 설문을 보냈다. 판사들은 ‘우리나라 사법사상 가장 수치스러운 재판’으로 인혁당 사건 재판을 손꼽았다. 국제법학자회의도 4월 9일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선포했다.
2005년 12월,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는 인혁당 사건이 박정희 대통령의 자의적 요구에 의해 미리 수사 방향이 결정되었다고 발표했다. 반국가 단체로 지목되었던 인혁당이 사실은 서클 수준이었으며, 수사과정에서 각종 고문이 자행되었다는 사실도 밝혔다.
2007년 1월 23일, 서울중앙지법은 8명에 대한 대통령 긴급조치 위반, 국가보안법 위반, 내란 예비 · 음모, 반공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작가정신은 법관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법이다. 소설가 김원일은 2005년 인혁당 사건을 다룬 소설집 《푸른 혼》을 펴내었다. 책의 곳곳을 읽어본다.
“여기가 신성한 법정이라구? 여기 그저 오물이 쌓여 있는 곳일 뿐이야!”
“전시 중 군무 이탈이나 항명죄에 따른 즉결처형이 아닌, 평화시대에 사법부 최고기관의 확정판결이 있은 직후 금방 처형했다는 말은 뜬소문으로나마 들어본 적이 없었다. 길게는 몇 년, 짧게라도 몇 개월 후에 집행하게 되고, 군 형사법도 국방부장관 결재까지는 두서너 달이 걸리는 게 보통이라는 말을 들은 바 있었다.”
“한스러운 피, 흙 속에서 천년토록 푸르리라.”
“탁상공론의 나약한 정의보다는 조직력과 힘을 갖춘 불의가 승리함을 현실에서 목격하고 있었다.”
“국토분단이 가져온 민족적 비극을 통렬히 비판하고 제국주의와 독재자로부터 물려받은 소라 껍데기 속의 안일을 청산함으로써 민족 자주역량을 확대하고 승리의 그날까지 전진하자.”
“그는 눈을 번쩍 떴으나 앞은 어둠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푸른 혼》에 사형 집행 후 서도원, 도예종, 송상진, 우홍선, 하재완, 이수병, 김용원, 여정남 8명의 영혼이 ‘신세계’를 향해 나란히 걸어가는 장면이 나온다. 그들은 진정 어디로 갔을까? 1626년 4월 9일 타계한 베이컨의 “어떤 책은 맛만 보면 되고, 다른 어떤 책은 이해하면 되고, 소수의 책은 꼭꼭 씹어서 소화를 해야 한다”라는 말을 떠올리며, 다시 소설을 읽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