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불교의 다양한 형태
V. 미국 불교와 인종 문제
다인종·다문화로 구성된 미국에서 아시아에 시원을 둔 불교는 인종 문제를 제기할 수밖에 없다. 이제껏 우리는 미국의 불교 신자 문제를 그들의 믿는 형태, 불교에 접촉되는 양태만을 언급했지 인종 구성을 중심으로 한 논의는 제외시켰다. 그러나 실제로 불교는 아시아 이민자들에게 전수된 이민 역사의 전통에서 연원되고 있다. 그러나 이제껏 예증으로 보여준 일화들은 미국 사회에서 백인 중심의 이야기들, 즉 백인들이 어떤 경로를 통해 불교를 알게 되었느냐 하는 점이었지, 아시아계 불교인이 어떻게 불교를 이질적인 풍토에서 수행해 갔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었다.《백조는 어떻게 호수로 오게 되었는가(How to Swans Came to the Lake)》라는 미국 현대 불교의 고전적 작품의 저자인 릭 휠즈(Rick Fields)는 미국의 불교는 백인 불교(White Buddhist)라고 못 박으며 자신의 논지를 편다. 불교의 시원과 그 전수가 아시아와 아시아인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으나, 미국의 불교 현장을 볼 때 미국의 불교를 이민 불교와 백인 불교로 나누는 것 자체가 인종주의적 문제를 내포한 분류상의 모순이라고 비판한다.
어떤 경우에서 이건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다양성의 풍경도를 현실은 보여주고 있다. 한쪽으로 '미국 티벳 불교'(American Tibetan Buddhist), '미국 일본 선불교'(American Japanese Zen Buddhist), '미국 한국 불교'(American Korean Buddhist), '미국 미얀마(혹은 비파사나) 불교'(American Burmese[Vipassana] Buddhism)가 있으며. 다른 한쪽으로 이민 아시아 불교가 있고 미국에서 태어난 이중 문화에 속하는 그들의 자손이 있다. 곧 '일본계 미국 불교'(Japanese American Buddhist), '한국계 미국 불교'(Korean American Buddhist), '월남계 미국 불교'(Vietnamese American Buddhist), '미얀마계 미국 불교'(Burmese American Buddhist)가 다른 쪽에 위치한다.
이 개괄적으로 조잡하게 분류하려는 시도는 문제를 제기한다. 대략 일본계 미국인의 미국 불교 교회(Buddhist Churches of America: 공식 약칭 BCA)의 경우는 완전히 미국에 문화적으로 동화된 일본계 미국인의 제4대 세대로 구성되었고 백인 미국인들이 끼어있다. 그렇다면 이런 경우 어떤 의미로 이민 불교 혹은 소수민 불교라고 하겠는가?
두 부분으로 분류된 '미국 일본 불교', '미국 한국 불교'라 했건, '일본계 미국 불교', '한국계 미국 불교'라 했건 그것은 혼잡스럽고 조잡한 개괄적 분류에 지나지 않으며 오히려 현실성도 없으며 미래지향적인 지표도 없다고 본다.
그는 이어 '유럽계 미국'(Euro-American)이나 '서구화된 불교'(Western Buddhist)라는 말을 모두 거부한다. 그런 어휘를 사용한다고 해서 각기 다른 국가나 국가적 양태가 구분되지 않는 것은 물론 지금은 모두 불교 전통을 고향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문화적 차원에서 창의적으로 적응해가는 진정한 자유스러움, 다문화적 성격, 많은 특징 여건에 따른 변화를 주는 미국 불교의 정토를 구현하는 좋은 기회라고 주장한다.
미국 불교의 미래를 전망하는 강한 '미국화된 불교'(Americanized Buddhism)의 성립을 제창하는 소리일 수 있다. 케네드 타나카(Kenneth Tanaka)는 미국 불교의 인종 문제를 더 극명하게 드러내며 불교 신자 문제는 역사적 배경이 고려된 더 광범위한 고찰이 요청된다고 반론을 펴고 있다.
누가 진정한 미국 불교(American Buddhist)를 대변하고 있는가? 백인 불교도(White Buddhist)만이 미국 불교의 창안에 기여한 유일한 사람들이며, 소수민 불교도는 그 과정에 실질적인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했다고 말한다면 동양계 미국인(Asian American)은 상처를 입게 된다. 이러한 생각은 훨씬 오랜 역사를 지닌, 지금은 미국에 도착한지 2세기나 되는 동양계 미국인 불교도들이 이룩한 업적을 무시하는 것이다. 동양계 미국인들의 비판을 따르면 불교가 진실한 의미의 미국적인 것이 된다는 것은 백인들이 심각하게 불교에 참여할 때에만 가능할 것이라고 시사한다. 그럴 때 이러한 형태의 불교를 '미국화된 불교'(American Buddhist)라고 부를 수 있으며 지금 아시아계 불교도들이 믿고 있는 '미국 속의 불교'(Buddhist in American)와는 확연히 구분될 것이다.
타나카 교수는 인종 문제를 거론하고 있지만 실제로 그는 미국 불교의 과거에 대한 성찰과 나아가 휠즈와 같이 미래를 전망하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의 주장에는 실제로 미국에 불교가 유입되는 초기의 두 사건을 상기시키고 있다. 첫째가 중국, 일본의 이민자들의 이민 보따리 속에 불교도 함께 담아 들어오고 있다. 그리고 그것의 총화로 대표시킬 수 있는 것이 미국 불교 교회(BCA)이다. 곧 이민자와 함께 그들의 신앙을 담지하고 있었던 것이 불교이고 그것이 미국 종교의 판도에 또 하나의 모자이크를 구성하고 있다. 두 번째 사건은 일정한 자격을 갖춘 승직 전문인들이 미국인들과 학문적·종교적 교류를 갖기 시작함으로 해서 불교가 미국 땅에 본격적으로 퍼지게 된다. 1893년 시카고 세계 박람회와 연결되어 개최된 '세계 종교 의회'(World Parliament of Religions)를 통해 일본의 불교 승려들이 소개 되었다. 조동종·일연종·천태종·진언종·선종의 대표들이 참석하였고, 대표 중에 한 명이었던 샤쿠 쇼엔은 1905년 미국으로 다시 들어와 선종의 임제선을 현양시키고 있다. 이것이 아마 미국에서 선이 발전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으며 그의 제자인 D. T. 스즈키는 미국 선 유행의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다. 이 세계 종교 의회를 통해《Monist》지의 편집인인 폴 케이러스(Paul Carus)가 불교에 대한 심각한 관심을 표하게 되는 것은 물론 후에 D. T. 스즈키는 폴 케이러스의 출판사인 'The Open Court Publishing Company'에서 일하며 공부하게 된다. 스즈키의 활동은 미국에서의 불교 전파, 선(禪) 전파의 결정적 역할을 담당하게 되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시카고 종교의회와 신지학회의 활동, 그리고 뉴잉글랜드의 초기 불교 수입의 면모들이 미국 백인들을 통한 미국 불교 유입의 초기 단계이다. 타나카의 주장은 이러한 과거 역사적 면모를 무시하고 백인 위주의 미국 불교를 언급하는 일은 편견일 수밖에 없고 현실과 현장을 무시한 단견이라고 논박하는 것이다. 과거의 '미국 속의 불교'(Buddhism in America)는 이렇게 서술될 수 있으나 앞으로의 '미국적 불교'(American Buddhism)는 달리 방향을 잡아 지향되어야 하며 그 가운데는 분명 아시아계 미국인의 역할이 포괄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한편 인종 문제에서 항상 논의되는 말이지만 아프리아계 미국인(Afro-American)의 불교에서의 위치는 무엇일까. 아니 미국 속의 불교이거나 미국화 된 불교에서 유색 흑인의 입장은 어디에 자리 잡을 것인가? 아마 대표적인 흑인 불교인으로 가수 티나 터너가 있으며, 시인이자 미국 뉴욕시립대 교수인 벨 후크스(bell hooks)가 있다. 특히 벨 후크스는 인종 문제와 결부된 흑인 불교인의 입지를 말한다. 그리고 불교의 정신세계가 인종·문화를 초월하지만, 미국 불교인 구성 속에는 휠즈의 주장과는 달리 인종차별이 엄존하고 있음을 항변한다. 그의《인종문제의 각성(waking up racism)》이란 글은 사회의 소수인으로 억압받던 흑인이 불교를 믿는다고 할 때 제기되는 '자연스럽지 못한 질문'들에서부터 시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불교에 대한 그들의 관심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는 수많은 나의 백인 동지들은 내가 불교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상스럽게 생각하며 굉장한 것이나 보는 듯 하다. 드디어는 "그래서 너는 어떻게 하여 선(Zen)에 관심을 갖게 되었지? 어느 곳에서 처음으로 관심을 갖게 되었니? 아니면 네 스승은 누구니?"하고 심문하듯 한다.
질문의 맥락이 이미 궤도를 벗어난 것이고 흑인이 선에 관심을 갖는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이상하게 생각되는 것 자체가 이미 인종주의의 출발이라고 생각한다. 인종주의 문제가 불교계 내에서마저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그는 흑인이 그들의 인종·문화적 연관으로 볼 때 불교와 아무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숙명처럼 지니고 있어야 하며, 마치 불교를 선택했다는 일이 흑인으로서 백인성(Whiteness)을 선택하였다는 것과 동의어로 간주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라고 지적한다. 이런 시선과 분위기는 결국 미국 흑인들로 하여금 인종 차별에 대한 침묵을 가져오고, 이 침묵은 그런 항변의 목소리가 존재함을 웅변하고 있다(We hear the silence of those voices)고 표현한다. 미국적 불교를 '소유'하고 있으며 그것을 '지배'하는 것을 허용함으로써 백인들은 편하게 느끼고, 흑인은 침묵하고 또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함으로써 미국 불교는 백인불교화 하는 것이다.
그의 주장은 일견 지나친 인종의식에 사로잡힌 발언처럼 들린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흑인 불교 신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거나 아니면, 기껏 그들의 신행 형태를 창가학회 선교에 의해 개종한, 그리하여 선교의 물질적 혜택을 입는 중하류층으로 분류되는 점을 볼 때, 벨 후크스의 항변은 충분한 타당성을 지닌다. 나아가 월남전을 겪고 시민운동에 참여한 60년대, 70년대의 가장 자유주의적인 성향의 백인 상류층은 불교의 정신세계에서 인종 문제를 '사라져 버릴'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 이 백인들 스스로가 자기를 반(反)인종주의자라고 지나치게 당연시하고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문제를 낳고 있다. 그런 착각이 인종주의 문제를 무시하고 침묵해버리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하바드 대학 종교학 교수 다이아나 액크(Diana Eck)는 미국 사회의 흑백문제, 나아가 아시아계의 불교 문제를 화해시키려고 하면서, 이렇게 결론을 짓고 있다.
이민자 불교도들이 자신의 유산을 보존하려는 충동과 유럽· 미국인 불교도들이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는 충동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합치될 것이다. 한 종교나 한 문화적 유산 전통을 유지하는 것만이 충분한 것은 아니다. 이 유산은 또한 새로운 분위기에서 새로운 세대를 키워가야만 한다.
VI. 미국 불교의 세 유형
이 '두 불교'의 유형은 다민족 구성요건을 충족시키지도 못하며, 또 포괄적이지도 않고, 심지어 인종차별적인 점까지 드러내고 있다. 따라서 이런 점을 극복할 수 있는 세 가지 분류가 제기되고 있다. 수입 불교(Import Buddhist), 수출 불교(Export Buddhist) 그리고 수하물 불교(Baggage Buddhist)가 바로 그것이다.
첫째
수입 불교는 실수요자의 요청과 필요에 따라 스스로 각자 추구하여 받아들이는 불교이다. 달리 '엘리트 불교'라고 호칭될 수 있는 것으로 앞서 인용하였던 대부분의 자작의 불교도들, 책방 속의 불교인, 침실 전등 밑의 불교인, 법 메뚜기 불교인 등등이 모두 이 부류에 속한다. 따라서 이런 불교인들은 대개 고등 교육을 받았으며 백인으로 미국의 중상류층을 형성한다. 그 사회의 엘리트 계층에 속하는 멤버로서의 적어도 상류층의 요건이 구비되어 있어야 한다. 가설적으로 이런 사람을 설정해 볼 수 있다. 1950년대 미국의 중서부에 거주하며 자기 동네 도서관에서 선에 관한 책을 읽고 일찍이 듣지 못한 굉장한 것이 있구나 하고 생각한다. 다음 비행기표를 사고 일본의 교토로 날아가 참선 수행을 시작한다. 몇 년 후 돌아올 때 쯤 해서 선(Zen) 센터를 설립하고 혹 자신의 스승을 이곳으로 청빙해 온다. 강조점은 내가 모든 것을 주선하고 자신의 필요에 따라 이 모든 과정과 일들을 수입하고 있는 것이다.
이 수입을 위한 일차적인 필요 요건은 물론 돈과 여가 있는 시간이다. 그러기 위해서 그는 사회의 중상류층일 수밖에 없고 고등 교육을 받은 사람이어야 한다. 아마 현각 스님도 결정적으로 이 부류에 속하게 될 것이다. 예일 대학, 하바드 대학원 출신이고, 중상류 가정 배경이고, 사회정의를 위한 반대 운동에 참여하였고, 스스로 불교를 알기 위해 한국에 나와 많은 참선 수행을 하였다. 얀 내티에의 정의가 아니더라도 그는 전형적인 미국 불교 신자인 것이다. 그리고 그 숫자가 미국 불교인의 대종을 이루고 있으니 우리의 현각 스님은 한 분만 있는 것이 아니고 수백, 수천의 현각 스님이 있는 셈이다. 이 엘리트 불교의 특성은 또 이런 세속적인 조건 이외에 항상 참선 수행에만 관심을 갖는다는 점이다. 엘리트 불교도 구성 성분은 다양하여, 티벳의 불교, 월남과 태국 등 동남아 불교, 동북 아시아의 일본 불교, 한국 불교 등에서 수행을 하였으나 그 특징을 개괄하면 티벳 불교, 관법수행(Vipassana), 선(禪)으로 요약된다. 다시 이 셋을 관통하는 특징은 참선 수행이다. 따라서 이들은 참선-명상에 사로잡혀 있을 뿐 사원 제도나 윤리적 계율의 실행에는 관심이 없다.
참선수행에 따른 스캔들이 자주 발생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아무 곳이나 적당한 모임의 장소를 마련하고 스승 한 분을 모셔 수행을 한다. 따라서 안정되지 못한 수행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특히 티벳 승려와의 성추문 사건이 곳곳에서 발생한 것이 그것이다. 따라서 불교의 많은 점들이 사부대중으로 구성된 승가 공동체에서 형성되는데 이들은 개인주의적 수행· 명상에만 관심이 집중되어 있고 그것이 불교의 요체라고 생각한다. 수입되었다고 할 때 생각되는 외형은 미국적인 의상을 입고, 내용이 순수한 아시아적인 불교가 되는 형태는 있을 수 없다. 수입 과정에서 이미 수입자 자신의 혼합적인 이념이 배어들어 있으며, 대부분은 당장 읽는 책에서 아이디어를 얻는 것이다. 말하자면 또 하나의 오리엔탈리즘적 창안, 자신의 상상력과 실제의 아시아 지역의 배경과는 상관없는 작위적인 아시아가 탄생되는 것이다. 현재 살아 움직이는 아시아의 현장불교와는 아무런 유사성이 없는 새로운 전통이 생기는 것이다. 아마 이런 배경이 불교학의 새로운 방향으로 대두되는 사회 참여의 불교, 환경과 불교, 낙태와 불교, 정치와 불교, 여성문제와 불교와 같은 새로운 영역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두 번째
수출 불교는, 선교적인 운동에 의해 전수되는 불교로서 기독교식의 개종 선교 운동처럼 일정한 불교 교단이 주도하여 자신의 교단의 신도로 개종시키는 경우이다. 곧 복음주의적 불교(Evangelical Buddhism)라고 할 수 있으며 일본의 창가학회가 그 대표적 예가 된다. 공급 위주의 불교이며 모체가 되는 교단에서 현실적· 물질적 보조를 제공하며 교단에서의 일정한 직업까지 부여받는다. 첫 번째 부류가 여유 있는 백인 상류층으로 구성된 것이 특징이라면, 이 범주는 하류층에 속하며 아프로-아메리칸을 위시한 라틴계의 중남미인들 혹은 동양계 미국인들로 교육 수준과 생활 수준이 떨어진 유색 인종인 것이 통계로 밝혀지고 있다. 그러나 흑인들 전체가 이 부류에 속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앞서 말한 전형적인 아프로-아메리칸인 벨 후크스와 같은 경우가 있음을 기억해 두어야 할 것 같다.
세 번째
수하물 불교는 아마 필자 자신도 이 부류에 속한다고 생각되는 유형으로서, '이민 보따리' 속에 불교라는 집안 전래의 종교를 그대로 싸갖고 들어온 경우이다. 오늘날 미주 각지에 산재한 한국의 절과 법당들은 대개의 경우 이러한 이민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간혹 미국인들이 참석하는 경우가 없지 않으나 이민자들과 결혼한 혹은 그 자제들과의 결혼을 통한 배우자들로서 집안의 결합을 통해 불교를 알게 되고 주로 제사나 집안과 연관된 행사에 참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민 불교'라는 명칭으로 부를 수 있는 이 부류는 실제로 종교적인 것과는 상관이 없다. 대부분의 이민 그룹이 초기 청교도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종교적인 이유로 신천지에 발을 디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불교도는 세속적인 이유들을 지닌, 경제적 기회, 정치적 박해, 개인 혹은 가족의 안정을 위해 이민을 한 것으로 종교는 부수적으로 첨가되어 따라 왔을 뿐이다. 곧 이민의 경험이 이민 보따리의 구성 내용이며 그 가운데 불교라는 내용물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1850년경의 중국 이민자, 1890년대의 일본 이민자들이 불교를 들여왔듯이, 1965년 새 이민법의 발효로 이번에는 교육받은 전문계층의 이민 그룹이 새 물결로 들어온 것이다. 빈약한 영어와 미국 직업에 종사할 수 있는 능력이 결여된 이들은 사회 경제적으로 하류 계층에 속할 수밖에 없다. 아마 전세기의 하와이 사탕수수 밭이나 서부의 철도 부설 '꾸리'(苦力)으로 이민 온 사람들과 사회 계층상의 신분은 실제로 큰 차이는 없는 듯 하다. 이런 여건에서 이민불교는 일정한 특권적인 위치를 부여받지도 못하는 조직을 갖고 불교 모임을 시작하는 것이 상례이다. 오히려 신도 구성이 단일적인 인종구성이므로 반(反)아시아적인 인종차별의 목표가 되기도 한다.
이민불교의 승단은 따라서 불교교리에서 말하는 말 그대로 '피난처'(삼귀의례의 원문 해석은 불·법·승 삼보에 피난처=귀의처를 구한다고 서원한다)의 역할을 한다. 이 이민불교 조직은 앞서 말한 백인 엘리트 불교이거나, 복음주의적 선교대상의 불교와는 달리 광범위한 기능과 목적을 지니게 되었다. 곧 생존을 위한 것이 일차적이어서 마치 미주 한인교회들이 초기 이민자들을 위한 '생존의 출발점' 역할을 했듯이 월남, 태국 등 동남아시아 이민자들이 살아남기 위한 중요한 거점 역할을 한다. 미주 한국의 사찰도 이런 주류 이민그룹에 잘 적응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것이 현실이다. 다른 기능의 하나는 문화적인 충족을 위해서이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같은 행동양식과 고국의 문화적 유산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적합한 장소이다.
그런데 하나의 물음이 생긴다. 이 이민그룹이 마련한 불교행사에 엘리트 불교도가 참석하여 같은 종교인으로 서로를 나누는 집회를 갖는가? 필자의 관찰에 의하면 답변은 거의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새 이민법 이후, 2세대, 3세대들의 두드러진 사회 활동이 드러나면서 양상은 새로운 방향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보다 좋은 교육과 직업, 또 전문인들이 배출되면서 동화의 속도가 빨라지고 따라서 이 이민불교의 성격도 다변화될 조짐을 보인다. 미국불교교회(BCA)는 이러한 변화 적응의 전형적인 불교로서 그곳에서 이민적인 성격을 찾기보다 오히려 엘리트 불교적인 성격이 강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 한국 이민불교의 경우는 어떤가? 이민 일세대의 늙은 계층이 사라지면 다음 세대의 몇 사람이 이 이민사찰을 참석할 것인가? 영어는 물론 미국 문화· 사회 변화와는 차단된 이 '피난처'를 즐겨 찾을 2, 3세대는 드물 것 같다. 아마 한국불교는 안이하게 미주에 진출한 사실을 '세계화'로 즐거워 할 일이 아니라 현지에 적응하고 뿌리 내릴 수 있는 방안과 앞을 내다보는 부처님의 지혜를 계발해야 될 듯싶다.
미국 불교 신자들은 서로 다른 범주의 신도들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아가 한 범주의 신도가 다른 범주의 신도를 생각하고 있는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잠깐 언급한 엘리트 불교 신자가 이민불교 모임에 참여하지 않고, 그 반대의 현상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서로는 서로를 존재하지 않는 타자로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돈 모레알(Don Morreal)의 획기적인 방대한 불교 조직과 모임에 대한 저술인《미국 불교도》(Buddhist America)에는 창가학회가 삭제되어 있고, 릭 휠즈의 고전적인 저술에서는 1890년 이후의 복음주의적 불교에 대한 언급은 전무하다. 서로를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는 간단한 예이기도 하지만, 앞서 예로든 벨 후크스의 '침묵함으로써 존재'하는 흑인 불교도 여기서 제외되고 있는 것 같다.
아직 미국의 불교를 묶을 수 있는 이제까지 제시된 어떤 방법보다, 이 세 분류법은 더 편리한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 그리고 그 미국 불교의 구성 내용을 어느 정도 펼쳐볼 수 있는 훌륭한 지도의 역할을 한다. 그러나 미국 불교의 모습을 좀더 상세하게 관찰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점을 더 고려에 두어야 할 것 같다. 곧 이제껏 언급된 신도 구성 문제, 인종문제, 실천수행의 내용 문제를 개관하였으나 더 나아가 미국 불교의 교단의 민주화 문제, 불교적인 관점에서의 사회· 문화· 정치에 대한 참여적인 관점들,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것들이 미국의 불교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 하는 것을 과제로 삼지 않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덧붙여 지적하고 싶은 것은 서양 심리학과 불교의 관계이다. 실제로 상담 심리학을 위시한 심리학 연구에 종사하는 학자들이 불교에 관한 깊은 관심을 표명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불교 신자가 되고 있다. 서구에서 불교와 가장 긴밀한 관계에 있는 다른 전통적인 서구학문이 존재한다면 아마 심리학이 될 것 같다. 융의 여러 저술들의 특징이며 그의 개인적인 관심이 영향을 미쳤다고도 생각이 드나, 실제로 불교의 한 껍질만 속으로 들어가 불교의 마음의 변이를 생각하면 곧장 서구 심리학의 여러 이슈들과 그대로 접하고 있다.
심리학 교수인 료 이마무라(Ryo Imamura)는 미국에서의 불교와 심리학의 상관관계를 이렇게 접목시키고 있다.
미국 중류 백인 계층은 모든 것을 심리학화 시키는 경향이 있듯이 동양계 미국인 불교도인 나도 불교를 모든 것에 연관시키려는 성향을 지니고 있다. 나는 불교를 두부와 같다고 본다. 두부와 같이 불교는 어떤 여건과도 서로 상치되지 않고 공존하며 어떤 인종과도 서로 지배하지 않고 공존한다. 또 나는 불교를 거름이라고 생각한다. 그 속에서 모든 신앙과 수행은 풍성하게 잘 자라고 있으며 그것을 대체시키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그것처럼 불교와 심리치료는 그대로 공존하며 아주 쉽게 서로 침투되고 있다.
오늘날 '선과 무엇'이라는 타이틀이 많은 것 만치, 불교와 심리라는 표제는 거의 유행처럼 되어 있다. 불교와 심리학은 이제 미국 불교에서 서로 안팎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을 정도이다. 이마무라의 '두부'와 '거름'이라는 표현이 주는 것 같이 불교는 이제 심리학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 섞여 들고 있어 다양한 표제들을 낳고 있다. 불교와 여성문제(페미니즘), 불교와 환경문제, 불교와 윤리문제, 불교와 낙태·중절문제, 불교와 현실참여문제 등 아마 우리가 현대 사회, 특히 서구 사회가 제기 하는 모든 문제의 앞머리에 불교를 관형어로 붙이면 훌륭한 연구 소재로 등장된다. 그 것은 실로 거름이며 두부일 수밖에 없는 재료의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 연구소재의 틀(패러다임)을 누가 어떻게 짜고 있느냐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또 서구적 패러다임에 의해 그 초기적 문제가 제기되고 나름대로의 방향으로 연구가 진행해 온 것이 사실이라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또 그것을 그대로 우리가 받아 수용하고 소화해가는 과정에 있다면 우려의 단계를 지난 미국화된 불교를 현각스님과 함께 보따리로 우리가 수입을 하고 있는 셈이다. 미국 속의 불교는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으며 그것은 미국화에로 나아가고 있다. 아마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할 변형된 불교를 대면하게 될는지도 모른다.
끝으로 E. O. 라이샤워가 '중국이 불교를 변화시킨 것처럼, 불교가 중국을 변화시켰다.'고 예지적으로 발설한 말을 '미국이 불교를 변화시킨 것처럼, 불교가 미국을 변화시켰다.'고 또다시 되풀이 할 수 있을지는 미주 불교인· 학자로서 초미(焦眉)의 관심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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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용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위원. 영남대 객원교수. 하버드대학 동아시아 문명과 언어학과 수료. 주요 논문으로〈불교학 연구의 문화배경에 대한 성찰: 구미 불교학 연구동향〉등이 있다.
미국속의-주석
20) Rick Fields, “Divided Dharma: White Buddhists, Ethnic Buddhists, and Racism”, The Faces of Buddhism in America, ed by Charles Prebish and Kenneth Tanaka, Univ. of Calif. Press. 1988.
21) Kenneth Tanaka, “Epilogue: The Colors and Contours of American Buddhism”, The Faces of Buddhism in America, pp. 287-298.
22) 신지학회(Theosophical Society, 神智學會)의 활동 역시 미국 불교 전파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다. 미국 동북부 뉴잉글랜드 지역에서 도로(Henry David Thoreau)가 유진 뷰르누프(Eugene Burnouf)의 불어판 법화경을 영어로 번역하여 초현실주의자(Transcendiatalist) 그룹이 발간하는 잡지에 기고한다. E. E. 샐리즈베리(Salisbury)의《불교의 역사에 대한 단상(Memoir on the History of Buddhism)》이 역시 유진 뷰르누프의 영향 아래서 1844년 <미국 동양학회(American Oriental Society)>에서 발표된다. 이 시기쯤 하여 불교는 훌륭한 동양 사상?종교로서 뉴잉글랜드에 잘 소개되고 있다. 이런 풍토 위에 블라바츠키(Helena Petrova Blavatzki)와 올컷(Henry Steel Olcott)대위가 1875년 뉴욕에 신지학회를 설립했을 때 뉴잉글랜드의 백인 불교 애호인과 이 학회는 상당히 일맥상통하여 상보적인 관계에 있게 된다. 신지학회는 일찍 공식으로 자신의 정신적 입장을 이렇게 표명해두고 있다. “보편적인 인류의 형제애의 핵(核)을 구성하며 그것은 인종?신념?성?계급?피부색과 관계없이 이룩되며,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는 모든 종교? 철학? 과학을 연구하고, 그러한 연구의 중요성을 현양하고 자연의 법칙과 인간에 내재는 육체적인 힘을 관찰한다.”고 천명했다. 이 선언은 뉴잉글랜드의 초현실주의자 뿐 아니라 이곳의 거개의 종교인들에게 외형상 그대로 상합하는 이상으로 보였으며 이질적으로 받아들여질 여지가 없었다.
23) Bell hooks, “Waking up Racism”, Tricycle: The Buddhism review, Vol IV, No. 1, Fall 1994, pp. 41-45.
24) Diana Eck, “Two Buddhism or One?”, The Faces of Buddhism in America, p. 63에서 재인용
25) 비판받고 있는 이분법적 분류유형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① Rick Fields의 White Buddhist / Ethnic Buddhist
② Charles Prebish의 Asian Immigrants / Caucasian American
③ Thomas Tweed의 Asian-American / Euro-American
④ Paul Numbrich의 Asian-Immigrants / American Converts 로 나누고 있다.
26) Jan Nattier, “Visible, Invisible”, Tricycle: The Buddhism Review, Vol. V. No. 1, Fall 1995. 미국의 불교를 세 형태로 분류하는 시도는 얀 내티에(Jan Nattier) 뿐만이 아니고 몇몇 학자들이 각기 다른 유형을 제시하고 있다.
① Richard H. Seager, “American Buddhism in the Makiking”
㉠ 구 아시아계 미국인 불교 - 조동종의 미국불교교회(BCA)
㉡ 유럽계 미국인 불교 - 백인불교
㉢ 소수이민계 불교 - 1965년대 이후의 아시아계 이민 불교
② Catherine Albanese, “America: Religion and Religious” - 얀 내티에와 무척 흡사한 내용의 분류
㉠ 명상적인 (참선) 불교 - 백인의 참선에 대한 관심
㉡ 복음주의적인 불교 - 창가학회와 같은 선교불교
㉢ 교회 형태의 불교 - 미국불교교회(BCA)와 같은 불교
27) Ryo Imamura, “Buddhist and Western Psychotherapies”, The Face of Buddhism in America, pp. 228-2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