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을 도와 드립니다”
팽창하는 이혼법률시장
이동훈 기자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있는 법무법인 한우리 이혼소송연구소(소장 고정한 변호사)는 지난해부터 24시간 무료상담 전화를 운영하고 있다. 새벽 2~3시쯤 전화를 걸어와 이혼을 문의하는 사람이 더러 있기 때문이다. 이 연구소는 토·일 주말은 물론 명절과 공휴일에도 전화 상담요원을 배치해 이혼소송 문의전화를 받는다. 특히 매년 설과 추석 연휴 직후에는 문의전화가 폭주한다.
이혼소송을 상담하러 온 의뢰인을 돌려보내는 경우도 있다. 같은 사무실을 아침에는 부인이 찾아왔다가, 저녁에는 남편이 찾아오는 경우다. 이혼소송 역시 법적 소송인지라 변호사가 쌍방을 동시에 대리해 사건을 수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혼소송연구소 관계자는 “이 경우에는 할 수 없이 한쪽을 정중히 돌려보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조혜련·류시원씨 등 유명 연예인들의 이혼 소식이 줄을 이으면서 이혼 전문 변호사에 대한 관심이 높다. 특히 한류스타 류시원씨의 부인 조모씨가 이혼 전문 변호사로 유명한 고순례 변호사를 선임한 것은 서초동 법조계의 화제로 떠올랐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 관계자는 “고순례 변호사는 이 업계에서 베테랑으로 손꼽힌다”며 “류시원씨가 고생 좀 해야할 것”이라고 했다.
24시간 무료 전화·문자 상담
지난 4월 19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1년 혼인·이혼 통계’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이혼 건수는 모두 11만4300건. 2008년 6월 ‘홧김 이혼’을 방지하기 위해 ‘이혼숙려기간제’를 도입한 이후 전반적으로 줄어드는 추세지만, 여전히 높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우리나라의 이혼율은 47.4%로 미국(51%)과 스웨덴(48%)에 이어 세 번째다.
이혼율이 고공행진을 거듭하자 이혼 법률시장 역시 팽창하고 있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가정법원 주변에는 다른 소송을 마다하고 이혼소송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률사무소가 수십 곳이다. 최근에는 부산·대구·광주·대전 등 지방가정법원 주변에도 성업 중이다. 변호사들의 전문성 역시 강화되는 추세다. ‘이혼 전문 변호사’를 자처하는 상당수 변호사들은 이혼소송전략센터, 이혼소송연구소와 같은 간판을 내걸고 이혼소송 수임을 하고 있다.
서초동에서 이혼소송을 전문 취급하는 박순덕 변호사는 “서초동 가정법원 일대에만 이혼 관련 사건만 전문 취급하는 변호사 사무실만 30곳 정도”라며 “변호사 수가 늘면서 이혼 전문 변호사로 특화하는 사람도 같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변호사들 간에 수임경쟁도 치열하다. 결혼생활을 하면서 누구나 한번쯤 이혼을 생각해 보지만 정작 누구를 통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최근에는 “국제 이혼 소송을 겨냥한 이혼 전문 변호사들도 늘고 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다. 중국 국적의 조선족 동포들이 한국 국적 취득을 목적으로 위장결혼한 뒤 이혼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이 경우 한국말 소송상담도 문제가 없어, 이혼 전문 변호사들의 새로운 수입원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한다.
이에 법률사무소들은 지하철역에 한글과 한자 광고판을 붙이는 것은 기본이고,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한 홍보에도 열심이다. 365일 24시간 1 대 1 무료전화상담과 무료문자상담 등도 대표적 마케팅 수단이다. “한밤중 부부 싸움을 하다 홧김에 이혼을 결정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데 착안한 서비스”라는 것이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혼소송은 대개 변호사 상담, 소장 작성, 가정법원 제출, 가사조사관 조사, 조정위원회 조정회부, 재판과 판결, 이혼신고 단계를 거친다. 결혼과 마찬가지로 이혼 역시 쌍방의 법적 행위이기 때문에 절차가 복잡하다. 이혼 전문 변호사들은 이혼 상담부터 이혼 신고에 이르는 전 과정에 법적 조언을 해준다.
“절차 복잡해 1년 가까이 걸려”
“‘나홀로 이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다. 박순덕 변호사는 “이혼소송에는 다른 소송에는 없는 가사조사, 부부상담 등의 제도가 있고, 가압류, 가처분 등의 보전처분과 사전처분 등 복잡한 절차를 거친다”며 “또 증거가 부족한 가사사건의 특징상 전문적 경험과 지식이 많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결혼은 다들 하지만 이혼까지 해본 사람은 몇이나 되느냐”는 말도 이 때문에 나온다. 또 주민등록등본, 가족관계등록부, 혼인관계증명서 등등 서류가 수십 종 필요한데, 무슨 서류를 준비해야 하는지, 어디에 제출해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에 이혼서류 준비만 전문적으로 대행하는 업체도 성업 중일 정도다. 이혼서류 대행업체인 디보이스퀵의 한 관계자는 “평일에 시간 내기도 힘들고 자녀가 있으면 수십 종의 서류를 떼러 다녀야 한다”고 했다.
소송에 걸리는 기간도 만만치 않다. 고정한 변호사는 “소장 작성에서 이혼 신고를 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이 적어도 10개월 이상”이라고 말했다. “증거가 확실해 1~2개월 안에 속전속결로 끝내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극히 드물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더욱이 이혼도장을 찍는 것보다 이혼에 수반되는 재산분할, 위자료, 양육권, (자녀)면접교섭이 더 복잡하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다. 특히 이혼을 결심한 부부들은 대개 감정이 틀어질 대로 틀어진 상태다.
이에 ‘한 달에 자녀를 언제 어디서 몇 번 만난다’와 같은 면접교섭의 세세한 부분에서도 한 치의 양보를 않는다고 한다. 예컨대 자녀 면접교섭권의 경우 ‘여름방학, 겨울방학 때 각 7박8일씩 만난다’처럼 지극히 세부적인 사항까지 협상을 거쳐 문서화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혼소송 중에 있는 부부들은 7박8일의 개시 시점을 두고서도 “방학 초기에 만나게 할 것이냐” “방학 중간에 만나게 할 것이냐”를 두고 으르렁거리며 옥신각신한다고 한다.
- ▲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가정법원 photo 허재성 영상미디어 기자
이혼에 필요한 증거 확보 역시 마찬가지다. 가정폭력이나 불륜, 외도 같은 이유로 이혼소송을 준비하는 사람은 결정적 증거 확보가 관건이다. 하지만 법원이나 경찰서 근처에 갈 일이 드문 일반인 입장에서는 녹음이나 녹취, 이메일과 문자 메시지, 사진 등 증거를 확보해 이혼소송에 임하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
이혼 전문 변호사들은 이 과정에서 증거 확보를 도와준다. 확실한 증거의 유무가 이혼 성사는 물론 재산분할과 자녀양육권, 면접교섭권 같은 권리를 결정하는 재판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소송 중 통화 내역과 카드 사용내역 등을 확보하고, 숨겨진 재산을 찾아내 재산분할때 반영하는 것도 이혼 전문 변호사들의 몫이다.
박순덕 변호사는 “이혼사건은 구체적 증거가 없는 경우가 많고 요즘은 프라이버시 보호 때문에 모텔 문을 두드려도 잘 안 열어 준다”며 “가정폭력의 경우 112 신고기록이나, 불륜의 경우 문자나 이메일을 사진으로 촬영해 두는 등 간접 증거를 활용하는 방법을 조언해 주고 있다”고 말했다.
“200만~300만원 저가수임도 늘어”
이로 인해 이혼 전문 변호사들은 ‘가정파괴범’이란 욕을 듣기도 한다. 이혼소송의 경우 여성들이 먼저 내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인데, 이때 이혼을 당하는 남편들로부터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이 섞인 협박 전화도 비일비재하게 걸려 온다고 한다. 하지만 이혼 전문 변호사들은 “가정폭력과 불륜, 외도로부터 당사자를 지켜낸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법조계에서 여성 변호사들의 활약이 유독 두드러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류시원씨의 이혼소송 업무를 맡은 고순례 변호사가 대표적이다. 이 밖에 박순덕·신은숙·김삼화·이명숙 변호사 등도 서초동 법조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이혼 전문 변호사라고 얘기된다.
박순덕 변호사는 “이혼상담을 하면 몇 년 세월을 풀어놓는데 여성 변호사들이 엄마나 누나같이 좀 더 차분하게 잘 들어준다”며 “숨겨진 예금 재산을 찾아서 꼼꼼히 정리하는 능력은 여성 변호사가 남자보다 뛰어나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남성들도 주로 인맥이 덜 겹쳐 이혼 소문이 안 퍼지는 여성 변호사를 선호하는 추세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혼을 앞두고 이혼 전문 변호사를 잘 활용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승소율이 높은 이혼 전문 변호사를 찾는 것은 기본이다. 또 “이혼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성공보수금을 약정하는 것이 좋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현재 이혼 전문 변호사들은 민사 사건과 같이 착수금과 성공보수금으로 나눠 수임료를 받는다. 이혼 소송에 들어가는 인지대와 송달료, 감정비, 속기료 등 부대비용은 제외한 금액이다. 수임료는 사건 난이도, 증거 유무, 의뢰인의 개인 사정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예컨대 이혼 이유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성격차이’로 인한 이혼은 상당히 난이도가 높은 편에 속한다. 마땅한 증거도 없고, 이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는 이혼 성사 여부에 따라서 성공보수금까지 합산하면 1000만원을 훌쩍 넘기기 일쑤다.
하지만 요즘은 이혼소송 수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200만~300만원의 착수금에 저가수임하는 경우도 부쩍 늘었다고 한다. 법무법인 한우리 이혼소송연구소의 고정한 변호사는 “평범한 40대 주부가 가정폭력으로 이혼할 경우에는 착수금만 400만~700만원 정도 들어간다고 보면 된다”며 “요즘은 발품을 팔고 다니며 가격을 비교하는 의뢰인들이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