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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인천 영산정사에서 법회교재로 사용하는 “신행법보”와 “신행문”그리고 “불법청보”에 게재했던 교리상식을 원광스님이 편집하여 펴낸 “불교기초교리”책자에서 옮겨 기록한 것입니다. 1회부터 8회까지 나누어 올릴 것이오니 불자라면 꼭 한번쯤 읽어 보시고 바른 신행생활에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불교! 바르게 알고 생활합시다(1)
☞ 고통과 어려움이 있을 때 부처님께 의지하면 해결되나?
불교를 믿는 사람이 부처님께 의지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자기가 겪고 있는 고통이나 어려움 따위가 해결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부처님과 같은 자격을 성취하려고 부처님을 본받아 마음과 행실을 닦는데 힘을 기르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교를 신행하는 자가 부처님께 의지할 때는 오로지 부처님의 마음과 행실을 본받아 스스로 자신의 능력을 키우도록 해야 되는 것입니다. 만약 부처님이 대신하여 고통이나 어려움 같은 것을 해결해 줄 것으로 생각하고 의지하면 이것으로 인하여 사이비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혜가 적고 마음이 연약한 사람에게는 순진하게 부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깊고 부처님의 보살피심이 있음을 깨끗하게 믿는 마음이 강하면 자연히 지혜가 커지고 약한 마음이 튼튼해져 고통과 어려움이 해결되는 불가사의한 뜻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이 무엇인가?
극락세계에 계시며 설법하시는 부처님의 이름입니다.
“나무”란 귀의한다는 말이요, “아미타”는 영원하다는 말이며 “불”이란 깨달은 이, 눈 뜬 어른이라는 말 입니다. 그러니까 “나무아미타불”은 우리말로 영원히 눈 뜬 어른께 귀의한다는 말이며 또 “관세음보살”은 이 세상 중생들의 고통 받는 소리를 다 관찰하여 보는 깨달은 어른이란 뜻입니다. 즉 부처님의 자비하신 바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진리에 눈뜨고 자비를 행하면 그것이 곧 아미타불이요, 관세음보살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부처님의 이름을 부를 때에는 경건하고 정성스런 마음으로 “나무아미타불”이라고 하든지,“관세음보살”하든지 오직 하나만을 똑바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 부처님께 정성스럽게 하면 누구든지 복을 주는가?
불교에서 부처님께 정성을 다하는 것은 부처님을 받드는 불제자의 도리로서 하는 것이요. 각자가 부처님을 정성껏 받드는 것으로써 자신의 행동과 마음의 수양을 쌓아가는 것이지 부처님께 어떤 바람이 있어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부처님은 이 천지간에서 밝은 등불이 되시는 분이며, 중생들이 마땅히 가야할 길을 인도하여 주시는 길잡이가 되시는 분이므로 정성tm럽다고 해서 누구든지 무조건 복을 주신 다든가, 정성스럽지 않다고 해서 복을 주지 않는 다든지 하는 차별된 처사를 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마음이 못된 사람이 복 받을 행실은 하지 않고 부처님께 정성스럽게 뭘 했다고 해서 그에게 복을 준다든가, 정성스럽게 안 했다고 해서 마음이 바르고 복 받을 행실을 하는 선량한 사람과, 또한 마음이 착한데도 불쌍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복 주지 않고 소홀히 한다면 그것은 거룩한 성인의 처사가 아니며 무질서를 만드는 존재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원래 복이라는 것은 부처님이 주시는 것이 아니고 각자의 마음과 행실에 달려 있는 것이며 부처님은 다만 복 받는 방법만 가르쳐 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하여 복 받는 법을 배우고 실천해야 되는 것입니다.
☞ 부처님 오신 날에 등불을 밝히는 뜻은?
등불은 어둠을 밝히는 빛입니다. 어둠은 우리들의 마음을 가려 놓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마음의 어둠을 밝혀 광명의 세계를 이룩해야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우리들의 마음에 등블(자등,법등)이 되시려 오신 것입니다. 고로 우리가 밝혀야 할 등불은 마음의 등불이며, 지혜의 등불이며, 법의 등불인 것입니다. 이 등불은 크고 강한 믿음으로써 밝히는 것이며, 온 정성을 기울려 밝혀야 하는 것입니다. 이 등불은 아무렇게나 켜는 것이 아니며 손쉽게 켜지는 것도 아닙니다. 더욱이 이 등불은 돈 주고 살 수 있는 것이거나, 누가 대신 켜주는 그런 편리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이 등불은 오로지 한 등불에 티 없는 믿음과 지극한 정성이 담긴 마음과 행동으로 우리들 마음의 모든 어리석음을 반성하고 넓은 지혜를 밝히는 수행으로써 “자신의 등불”을 켜고 “법의 등불”을 비춰야 비로소 큰 공덕이 되는 것입니다.
불교! 바르게 알고 생활합시다(2)
☞ 부처님은 신인가?
부처님이란 말은 원래 범어로 붓다라는 말을 중국에서 한문으로 불타라고 옮겨 쓴 것을 우리말로 불이라는 글자의 뜻대로 쓴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이란 우리말은 인도의 붓다와 같은 것이며, “붓다”라는 말은 깨달은 이“라는 뜻이 됩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은 곧 깨달은 분을 가르키는 것이며, 이것은 인간이든 신이든 그 어떤 존재라도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부처님은 신이라든가 인간이라든가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깨닫고 무엇에 눈 뜬 것을 부처라 하는가? 제 본심을 깨닫고 제 성품에 눈 뜬 것을 말하며, 이 우주 천지의 모든 법칙을 깨닫고 중생의 길에 눈뜨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부처라는 것은 말로써 이름 지을 수 없는 것이고 각자가 경험해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 부처님이 열반하신 것은 죽음이 아닌가?
열반이라는 말은 범어로 니르바나(Nirvana)라고 하는 것인데 이 말은 적멸(고요히 꺼진 것), 멸도(꺼지고 건넌 것)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열반이라는 것은 우리의 몸과 마음의 모든 번뇌와 고통이 고요히 꺼지고 평화롭고 안락한 경지로 건너간 상태가 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열반은 부처님만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바르게 착실한 수행을 쌓아서 깨달음을 얻으면 다 열반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때에 육신이 살아있는 상태에서 정신적으로 열반의 상태에 이르는 것을 유여열반(나머지가 있는 것)이라 하고, 육신까지 사라지는 것을 무여열반(나머지가 없는 것)이라고 합니다. 부처님이 열반하신 것은 이 무여열반에 이르신 것이라 합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열반은 고통과 불안이 있는 중생들의 죽음이 아니라 평화와 안락이 있는 영원한 삶의 결실인 것입니다. 그래서 열반은 죽음이 아닌 것입니다.
☞ 부처님께 참회하면 죄가 없어지는가?
참화라는 것은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뉘우치고 살피며, 앞으로는 결코 저지르지 않을 것을 다짐하며, 현재의 잘못을 고쳐나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래 참회하는 것은 자기 스스로 반성하는 것이지 부처님께 하는 것이 아닙니다. 때문에 자기의 마음가짐을 반성하지 않고 또한 행동을 고치지 않고 부처님 앞에 와서 용서를 빈다고 해서 자기가 저지른 잘못에 대한 결과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중생은 너무나 어리석어 지혜가 없고 약하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 참회하며 살아 나갈 수 있는 정신과 능력이 부족한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을 의지하며 부처님께 간절하고 진실한 참회를 드리면 자연히 마음이 굳세 지고 힘을 얻게 되는 것이므로 부처님께서 우리들에게 “죄업을 지은 자라도 모든 불보살의 명호를 생각하고 염불하며 지극한 마음으로 참회하면 모든 죄업이 가벼워지며 마침내 안락의 결과를 얻게 된다.”고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 부처님 오신 날의 내력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내력은 지금부터 약 2548년경에 중인도(네팔)의 카필라국의 석가족 정반왕의 아들로 음력 4월 8일 룸비니 동산에서 태어났습니다. 이때 왕비 마야 부인의 오른쪽 옆구리가 터지며 왕자가 탄생했는데, 왕자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사방의 천하를 둘러보고 일곱 걸음을 걸으며, 한 손으로 하늘을 가르키고 한 손으로는 땅을 가르키며 “천상천하유아독존, 삼계개고 오당안지”라고 외치시니, 대지가 흔들리며 하늘에서는 꽃비가 내리고 온 찬지의 만물이 모두 부처님 오심을 기뻐하였습니다. 이처럼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오로지 중생의 세계에 큰 인연이 있으므로 오신 것입니다. 그 큰 인연은 다름 아닌 우리 중생의 삶과 죽음에 대한 심각한 문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는 우리 불자들은 이 큰 인연을 다시금 명심하고 크게 발심하여 이 인연이 헛되지 않도록 정진해야 되는 것입니다.
불교! 바르게 알고 생활합시다(3)
☞ 부처님이 신이 아니라면 인간에게 복을 줄 수 있는가?
부처님은 신인가? 인간인가? 하고 의심하지만 부처님은 신도 인간도 아닙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때로는 신도 되고 때로는 인간도 되며 내지는 온갖 것으로 다 나타날 수 있는 능력과 지혜가 있습니다. 그런데 복이라는 것은 원래가 부처님이 직접 만들어서 인간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이 복을 받는 것은 “봄철에 씨를 심어 여름내 잘 가꾸고 길러서 가을에 수확을 보는 농사”와 같아서 우리들 자신이 스스로 복이 되는 씨를 심고 복이 되는 싹을 잘 길러서 복된 수확을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복이라는 것은 우리들이 마음씨가 바르고 거짓이 없으며, 그 마음씨대로 행동하며 그것을 잘 길러갈 때 그 결과가 평안과 만족과 즐거움을 가져오게 되는 것이므로 이것을 복된 것이라 하는 갓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은 이 복의 씨를 심는 법과 가꾸는 법 등을 가르쳐 주시는 우리들의 스승이십니다.
☞ 부처님이 왜 이 세상에 오시는가?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셨다”는 말은 인간의 역사상에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신 것을 말하는 것이며,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큰 깨우침이 있어서 생활상에 훌륭한 빛이 있게 되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이 이 세상에 왜 오셨는가?”하는 문제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만, 석가모니 부처님이 왜 이 세상에 오셨는가? 하는 것을 알아보면 되겠습니다. 경전 말씀에 보면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시는 것은 큰 인연이 있어서다.”라고 하셨습니다. 그 큰 인연이란 중생들에게 생사에 관한 문제를 해결해야 할 인연이 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우리 중생에게는 이 생사문제가 참으로 심각한 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큰 일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부처님이 오시는 일입니다. 외냐하면, 부처님이 오신다는 것은 우리들의 마음에 큰 깨우침이 있어 진리의 눈을 뜨게 되는 것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중생들에게는 이 깨우침과 눈뜨는 것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되는 것이므로, 부처님이 오시는 것은 이 큰 일을 위한 인연 때문인 것입니다.
☞ 부처님이 중생들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는 거라면, 중생을 제도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부처님이 중생을 제도한다는 것은 중생의 어리석음을 깨우쳐 줌으로써 중생이 스스로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을 걷도록 하여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먼저 알아 두어야 할 것은 “부처님은 지금 어디에 어떻게 존재하는가?”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지금 우리 중생이 마음속에 부처님을 믿고 공경하는 그 속에 있으며, 부처님은 원래 다른 존재가 아니고 중생이 스스로 마음을 깨끗이 하여 어리석음을 깨달으면, 그것이 곧 부처이기 때문에 중생의 마음을 떠나서는 부처님은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이 중생을 제도한다는 것은 사실상 중생이 어리석음을 깨달아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청정한 마음이 곧 부처님이라 하는 것이며 이 부처님은 중생이 있는 세계에 어느 곳이든 항상 존재하고, 중생이 어리석음을 깨달아 제 정신을 차릴 때면 반드시 나타나 중생의 고통과 어려움을 제도하는 것입니다. 어리석고 연약한 중생들은 이 사실을 모르므로 다만 부처님을 믿고 의지하며 정성껏 받들고 공경하면, 자연히 마음이 깨끗해지고 튼튼해져서 마침내 청정한 마음이 부처님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 부처님의 도움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불교를 믿는 사람들은 부처님께 도움을 얻을 것을 생각하기 전에 반드시 부처님이 어떤 분이시며 어디에 계신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부처님은 청정하고 원만한데 계시며 차별이 없고 밝은데 계시는 분입니다. 그러면 그 곳은 어딘가? 이 세상에서 참으로 “청정하고 원만하여 차별이 없고 밝은 곳”은 우리 중생의 마음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마음을 버리고 딴 곳에서 결코 부처님을 만나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청정한 마음이 곧 부처”라고 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참으로 부처님의 도움을 얻으려면 우리의 마음을 깨끗이 하여 정성을 다하며, 차별심을 갖지 말고 어리석음을 깨우쳐 밝은 마음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알아둘 것은 우리가 마음을 청정히 할 수 있다면 사실상 부처님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 청정해진 그 마음이 곧 부처이기 때문입니다.
☞ 불교의 부처님도 타 종교의 신들처럼 영험을 보이는가?
부처님은 인간과 천상 그 밖의 모든 세계에서 중생들의 길을 가르치시고 인도하시는 큰 스승이십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가르침은 인간이든 신이든 모두 존중히 여기고 받들어야 하는 것이므로, 부처님을 그 어떤 인간으로도 비교할 수 없고 또한 신으로도 비교할 수가 없는 분입니다. 한마디로 부처님은 타 종교에서 믿는 신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하며 또한 다른 신과 비교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원래 영험(신통력)이라는 것은 소견이 좁은 신들이 부리는 재주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에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영험을 보이지 못하도록 계율로써 금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중생들을 교화하는 데는 반드시 바른 길로 인도해야 하며, 밝은 정신을 깨우쳐 주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영험을 보이면 철없고 마음 약한 중생들은 영험에만 반하여 제 정신을 차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부처님이 영험을 보일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존재라고 생각해서는 큰 잘못입니다.
☞ 불교를 믿는 목적이 무엇인가?
불교란 부처님의 가르침을 말하는 것이며 그 가르침의 목적은 중생들로 하여금 모든 고뇌에서 해탈하여 열반에 이르고 마침내 성불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부처님의 가르침에 목적은 우리들 마음 가운데 쌓여 있는 모든 괴로움과 근심 걱정을 깨끗이 털어버리고 평화롭고 안락한 마음이 되게 하여 마침내 부처님과 같은 훌륭한 존재가 되도록 깨우쳐 주는데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교를 믿는 목적은 다름 아닌 해탈과 열반과 성불을 위한 것이어야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불교 믿는 사람들을 보면 그 목적이 구구각색일 뿐 아니라, 오히려 불교와는 너무도 거리가 먼 목적을 가지고 절에 찾아다니고 있는 것을 볼 때 근심스럽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 불교는 기복신앙인가?
불교가 기복신앙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는 불교가 어떤 것인지 알고 나서 생각할 문제인 것입니다. 불교는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부처님은 누구이며 무엇을 가르치셨나? 부처님은 석가모니이시고 길을 가르치셨습니다. 길이 무엇인가? 인간이 살아 나아갈 길입니다. 어떻게 살아 나가는 길을 말하는가? 옳고, 평화롭고, 인간답게 살아 나가는 길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가르침은 순전히 기복만 하는 불교라고는 할 수가 없습니다. 복이라는 것은 자신이 스스로 정성을 다하여 복 받는 일을 해야 성취되는 것이요, 누가 대신 만들어서 갖다 주는 것이 아닙니다.
☞ 불교와 다른 종교의 다른 점은?
불교는 부처님의 가르침으로서 부처님은 역사적으로 석가모니불이고, 현실적으로는 우리들의 깨달은 본심이며, 그 가르침은 “어리석음(무명)으로 인하여 온갖 苦가 생기므로 이것을 깨달아 고에서 벗어나 열반의 경지에 이르러 성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제 정신을 가지고 자신의 본심을 “깨달아 부처가 되라!”하는 것이 다른 종교와 다른 점인 것입니다. 이 밖에 생활상으로 결과적으로도 많은 다른 점은 다음 편에 다루기로 하겠습니다.
☞ 불교는 무엇을 믿는 종교인가?
불교의 신앙대상은 불 법 승 삼보입니다. 삼보를 믿고 받들며 그대로 생활하는 것이 불교를 믿는 것입니다. 자세히 말하면 부처님(佛)과, 가르침(法), 스승(僧)의 세 가지를 믿고 의지하여 받들고 그 뜻을 실천하며 수양을 쌓아가는 생활을 하는 것이 불교를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처님은 어떤 분이고 무엇을 가르쳤으며, 어떤 스님들을 믿고 받들어야 되는가? 부처님은 석가모니 부처님으로서 이 세상에서 가장 거룩하신 어른이시고 마음을 수양하여 죽고 사는 일을 해결하고 마침내 부처가 되는 법을 가르쳤으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올바르게 전해주는 슨;a들을 믿고 받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교는 무슨 신을 믿는 것도 아니고 특정한 존재를 믿는 것도 아니며, 점을 보거나 사주관상 따위를 보는 그런 미신적인 것은 더욱 아닌 것입니다. 불교는 오로지 삼보만을 믿고 행하는 것입니다.
☞ 불교를 믿으면 잘 살 수 있는가?
불교는 조건적으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꼭 무엇이 이루어진다든지, 소원대로 된다든지 무조건 믿기만 하면 잘 살 수 있다든지 하는 등의 조건을 내세워 사람들로 하여금 믿게 하는 그런 어리석은 종교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우리 인간이 잘 살고 못사는 것은 다 자기 자신의 정신 상태와 능력 여하에 달려 있는 것이지 부처님이나 하느님이나 그 밖의 어떤 존재가 만들어다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은 우리 인간들이 스스로 밝은 길을 찾아서 잘 살 수 있는 인간이 되도록 올바른 정신을 가질 것을 가르쳤으며, 훌륭히 슬기롭게 능력을 길러가는 법들을 가르치셨습니다. 이러한 불교를 믿고 따라서 실천할 때 우리의 생활이 잘 될 것은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귀를 기울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배워 생활에 밝은 지혜를 얻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첫댓글 이글은 대원불교대학 카페에서 스크랩 하였는데 그림이 전부 깨져서 복사해 올렸습니다
불교를 제대로 알고 생활한다면 일체가 모두 법이니 얼마나 행복한 일일까요~ 지혜로 바라보는 세상 행복할겁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