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고종 종정을 역임한 불이성 법륜사 중창주 덕암 대종사의 탄신 100주년을 기리는 대법회가 10월 12일 오전 11시 30분부터 불이성법륜사(한국불교전승관) 3층 대불보전에서 봉행된다.
태고종(총무원장 인공)은 덕암 대종사의 탄신기념일을 즈음한 10월 8일부터 12일까지 큰스님의 사리친견과 유물전시회, 서예ㆍ사진 전시회를 불이성 법륜사에서 개최하고 있다.
지난 8일에는 덕암 대종사의 생애와 사상을 돌아보는 세미나를 한국불교전승관 1층 대회의실에서 열었다.
*덕암 대종사는 어떤 분?

덕암 대종사(1913-2003)는 한국불교근현대사의 가슴아픈 역사인 비구와 대처승 간의 분규를 온몸으로 겪었던 역사의 산증인이다.
덕암 대종사는 1913년 경북 문경에서 출생했고, 1930년 금강산 유점사에서 벽산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운암 화상을 계사로 사미계를 수지했다. 1935년 일본 도쿄 대성학교 졸업한 후 1942년 철원 심원사 불교전문강원 대교과를 졸업했다. 1950년 동국학원 감사, 1951~1964년까지 조계종 재무국장 및 부장 등을 역임했다.
1950∼1960년대 비구·대처승간 분규가 발생하자 스님은 종단 화합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그러나 화합이 여의치 않자 대종사는 비구승이었지만 대처승 쪽에 힘을 실었다.
1970년 대처승 중심으로 출범한 태고종의 초대 총무원장을 맡았고, 이후 태고종이 분규의 상처를 씻고 전통종단의 면모를 갖추는데 전력을 다했다. 스님은 2003년 11월 22일 불이성 법륜사에서 세수 90세, 법랍 74세로 입적했다.
덕암 대종사의 일생 가운데 가장 중요한 순간은 비구승이었지만 원만한 분규 해결을 위해 대처승 편에 서는 결단을 내린 것이었다. 덕암 대종사의 입장은 역사적 필연으로 대처를 했으나 그들도 승려인데, 승려로 살아갈 길을 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덕암 대종사는 취처승을 일거에 배척한다면 불교의 기반이 붕괴할 수도 있다는 대자비심으로 스승 대륜 스님을 도와 태고종 창종의 산파역할을 담당했다.
태고종의 초대 총무원장을 역임한 덕암 대종사는 이후 태고종 종정에 추대되었고, 평생을 자신의 본사인 금강산 유점사의 서울 포교당이었던 불이성 법륜사에 주석하며 지냈다. 종정에 추대되었을 당시 잠시 순천 선암사에 주석했던 기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일생을 불이성 법륜사를 지켰다.
교학과 수선, 계행과 염불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덕암 대종사는 한국불교가 비구대처간 다툼의 상처를 딛고 중흥하기 위해서는 오로지 승려들의 현대적 교육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현실에 맞는 포교를 해야한다는 사상으로 평생을 일관했다. 그의 이같은 원력은 전한국포교사협회 창설로 표면화되었고, 이 대열에 조계종의 무진장, 암도, 무비 스님 등이 함께 했다.
덕암 대종사는 태고종 승려에게 비구라는 말은 맞지 않으며, 보살승이라는 호칭이 적합하다고 강조해 현재까지도 태고종은 보살승 정신에 입각한 대승교화종단을 표방하고 있다.
(미디어붓다)
첫댓글 청정비구이지만 스스로 대처승 입장에 서신 분 - 덕암스님은 중생을 위해 모습을 굴린 보살이자 대도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