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호 PD “한류, 우리 민족 감성적 DNA서 탄생”
[아트샤워_6회] ‘겨울연가 콤비’ 윤석호 PD & 오수연 작가
홍지연 기자(news@kocca.or.kr)
KBS 드라마 <겨울연가>로 한류의 불을 지폈던 윤석호 PD·오수연 작가 콤비가 지난 14일 역삼동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을 찾았다.
사실상 <겨울연가>와 <가을동화> 등을 통해 일본, 대만 등 아시아권 한류 형성에 큰 몫을 담당했던 이들 콤비는 일련의 작업과 얽힌 이야기들로 방송 제작 현장의 고민을 생생히 들려줬다.
윤석호 PD는 이날 아트샤워 첫머리에 “요즘 한류가 식어가는 것 같은데, 이런 자리를 빌어 한류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게 돼 좋다”고 소감을 밝혔다.
“<가을동화> 때 은서가 가족이 떠난다는 소식을 듣고 학교에서 뛰쳐나오던 장면은 예천입니다. 집에서 떠난 차를 본 것은 강릉, 터널 장면은 삼척이죠.”
윤석호 PD의 드라마 작업에 대한 강한 애착이 드러나는 대목. <가을동화>의 성공으로 <겨울연가>, <여름향기>, <봄의 왈츠> 등 이른바 ‘계절 시리즈’를 만들어온 그는 우리나라 4계절의 아름다움을 화면에 담기 위해 팔도를 누비며 촬영장소 물색에 열을 올린 것으로 유명하다.
이러한 노력이 결실을 맺어서인지 <겨울연가>는 어느덧 한류의 대명사가 됐다. 윤 PD는 <겨울연가> 등으로 수백 명의 일본 기자가 몰렸던 상황을 회상하며 “드라마 한 편으로 양국의 딱딱했던 자리가 편안해지는 것을 보면서 인간의 문화가 갖는 위력이 얼마나 큰가를 느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초심도 많이 흐려진 것 같아 안타까운 소감도 밝혔다. 드라마의 성공으로 투자자들이 대거 몰리고, 프로덕션들이 난립하는 가운데 좋은 콘텐츠보다는 돈을 잘 버는 데만 급급해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다.
윤 PD는 그런 마음으로는 절대로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한류가 어느 날 갑자기 오지 않았고, 한, 흥, 신명 등 복합적인 정서에 기반한 우리 민족의 DNA인 만큼” ‘한탕주의’로 갑작스레 만들어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
또 최근 ‘미드’, ‘일드’의 인기로 전문적인 소재를 다룬 드라마들이 각광을 받으면서 소재 기근이라는 평가까지 받고 있는 상황. 그는 그러나 여전히 한국드라마에 희망이 있다고 믿는다. 한국 드라마는 한 번 보고 마는 ‘소비’하는 드라마가 아니라 ‘간직’하는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가령 우리에게는 ‘내가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말이 주는 어떤 느낌이 있죠. 그렇지만 미드에서는 그런 말이 의미가 없어요. 하지만 우리는 그 말 하나로 고민하고, 약간 느리기도 하죠. 우리(아시아)의 차별성이라 생각해요. 소비하지 않고 간직하는 드라마를 하고 싶어요. <겨울연가> DVD가 많이 팔린 것도 사람들이 그것을 간직하고 싶어서일 겁니다. 좋아하면 간직하고 싶잖아요. ‘미드’는 제가 볼 때 간직해서 가끔 꺼내보지는 않을 것 같아요. ‘간직하는 문화’, 그게 생명력이 있는 거죠.”
첫 미니시리즈였던 <가을동화>에서 <겨울연가>, <웨딩>, <러브레터> 등 히트작을 써온 오수연 작가는 한국 드라마가 가족과 사랑 이야기에 치중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드라마의 분량을 들었다.
“제 경험으로는 드라마의 길이 때문인 것 같아요. 16부작, 20부작 등은 하나의 주제를 다루기에는 너무 긴 시간입니다. 보통은 하나의 주제를 다루기에는 10회 정도가 적당한데, 일본이 그렇고, 미국은 시즌제이죠. 한국은 20회를 끌다보니 가족 등 보다 보편적인 정서가 편입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대학 3학년 때 친구(최율미 아나운서)를 따라나서 KBS 방송문화원 작가 과정 1기를 거쳐 드라마 작가로 데뷔한 그는 순정만화와 같은 특유의 이야기로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실제로 황미나, 신일숙, 김혜린 등 어릴 때 즐겨봤던 순정만화 작가들이 그에게 많은 영향을 줬다고 했다.
오수연 작가는 그러한 자신의 작품 느낌들에 대해 “사랑은 이야기의 일부로서 있었고, 순정만화의 감수성을 소리 내서 말하면 유치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사랑의 직설적 표현을, 연애의 과정 자체를 이야기했던 것 같다”고 자평했다.
아직 쪽대본까지 써본 적은 없지만 그의 말에 따르면 척박한 방송 제작 현실에 맞춘 작가들의 고군분투는 치열하다.
“드라마 하는 동안은 신발을 신어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머리를 감을 시간이 없죠. <웨딩> 때에는 마지막 4회분 정도는 침대에 쓰러져 썼던 것 같아요.(웃음)”
윤석호 PD와 오수연 작가는 이날 서로에 대한 애정어린 마음을 숨김없이 드러내며 ‘찰떡궁합’을 과시하기도 했다. 윤 PD는 “나는 동화같은 이야기를 좋아하고, 오수연은 그런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유일한 작가라고 생각한다”면서 “좋은 영혼을 가진 작가가 있고, 그 곁에 있어 뿌듯하다”는 말로 칭찬했다. 오 작가는 “데뷔작 미니시리즈를 시작으로 15년을 알고 지냈는데 세계관, 가치관이 비슷하고 저를 잘 알고 잘 표현해주시는 것 같다”고 화답했다.
이들은 이밖에도 현행 드라마 제작 시스템과 드라마상의 PPL 사용, 저작권 문제 등 방송계 제작 현장에서 부닥치는 크고 작은 문제들에 대해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2008-5-23 1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