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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아스와 룻
(룻기 2:8-16))
하나님께서 우리인생가운데 베푸시는 법칙 중의 하나는, 심은 대로 거둔다는 사실입니다.
선을 심는 사람은 선을 거두고, 악을 심는 사람은 악을 거두게 됩니다.
보리를 심는 사람은 보리를 거두게 되고, 쌀을 심는 사람은 쌀을 거두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세상에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연처럼 보이지만, 필연만 있을 뿐입니다.
꾸준히 선을 심은 사람은- 언젠가 그 선이, 우연처럼 보이는 좋은 복을 불러 오게 되는 것입니다.
꾸준히 악을 심은 사람은- 언젠가 우연처럼 보이는, 악의- 결과를- 맞이하게-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꾸준하게, 누가 보던지 안 보던지, 알든지 알지 못하든지, 선을 심고- 하나님이 뜻대로 살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가 이르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보아스와 룻의 한 만남에 대해서- 보았습니다.
이방여인이었고, 과부였고, 보잘 것 없는 여인이었지만~ 룻이
그 지방의 유지였고, 홀로 사는 남자였고, 영향력 있는 축복사람 보아스를 만나게 된 거---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룻의 선한 행동이, 룻의 바른 믿음의 행동이,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사람을 만나게 한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예비하신 한 만남을- 그들은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바로 이런 보아스와 룻이 처음 만나서- 대화를 나눈 장면입니다.
본문에 보면, 보아스는 룻에게 큰 은혜를 베풀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많은 것을 배려하게 되지요.
그리함으로 보아스와 룻이, 한 걸음 더 가까워지게 되고, 나중에는 서로 부부의 인연을- 맺게 되는 것을 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성경은 단순한 이야기책이 아닙니다.
성경은 단순히 역사책이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수천 년 전에 있었던 한 여인의 삶이지만, 우리는 이 여인의 삶을 통하여 역사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보길 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먼 옛날의 이야기이지만, 이스라엘의 이야기이지만, 이 말씀을 보는 이유인 것입니다.
많은 성경학자들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보아스와 룻과의 관계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보게 됩니다.
죄악 중에 있고, 병들고, 방황하고, 고통과 아픔 중에 있는 룻을--- 보아스가 거둬들인 것처럼,
더럽고, 추하고, 하나님을 멀린 떠난 우리를, 하나님은 암탉이 병아리를 품듯이- 당신 품에 품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보아스와 룻의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를 통하여, 하나님과 성도와의 아름다운 사랑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이 진리의 말씀인 것이고, 이것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아스가 룻에게 베푼, 은혜들을 바라보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들을 기억하는 귀한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첫째로 보아스가 룻에게 베푼 은혜는, 무엇입니까?
ㅇ그것은 보호의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본문 8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룻] 2:8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들으라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며 여기서 떠나지 말고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
[룻] 2:9 그들이 베는 밭을 보고 그들을 따르라 내가 그 소년들에게 명령하여 너를 건드리지 말라 하였느니라 목이 마르거든 그릇에 가서 소년들이 길어 온 것을 마실지니라 하는지라.
보아스는 제일 먼저 룻의 안전이 걱정 되었습니다.
이곳은 이방 땅이고, 그리고 홀로 사는 여인이었습니다.
아직 젊은 처자였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불량스러운 남자들이, 이 여인을 함부로 헤할까봐~ 함부로 대할까봐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밭으로 이삭 주우러 가지 말고, 내 밭에만 있으라.
내 밭이 굉장히 넓고 여러 군데 있으니, 그 밭에만 있고ㅡ 내가 일꾼들에게 너를 건드리지 말라고 특별히 지시해 두었으니, 안전하게 내 밭에서- 네 생계를 해결하여라.
그리고 또 하나 부탁을 합니다.
목이 말라 물이 필요하거든, 물 뜨러 멀리 가지 말라.
당시는 우물이 멀리 있었습니다.
그래서 물을 길러 가다가 혹시라도- 봉변을 당할까봐~~~ 멀리 있는 물로 가지 말고, 내 일군들이 떠다 논 그 그릇에서 물을 먹으라.
이것은 큰 특혜입니다.
대단한 은혜를 베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첫 번째 은혜는, 보호하심 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험한 인생길 살아가며, 고통을 당할 수도 있고, 어려움을 당할 수도 있고, 아픔을 당할 수도 있고, 병들 수도 있고, 사업에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결코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떼어 놓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일을 통하여, 당신의 보호하심을 우리가운데-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의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내가 병중에 있을지라도, 지금 내가 고난 중에 있을지라도, 지금 내가 시련 중에 있을지라도, 내 인생을 주관하시고- 내 인생을 보호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믿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권면합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입니다.
이 고통을 통하여- 하나님께- 가까이 가게 할 것입니다.
이 상처는-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내기 위한 것이 될 것입니다.
옛날에 하나님을 잘 믿는 노인이 한분 계셨습니다.
이 분이 여행할 일이 있어서, 말에 자신의 짐들을 싣고, 또 자신의 집에서 기르는- 닭 한 마리를 데리고, 여행길에 친구로 삼으려고 함께 길을 떠났습니다.
며칠을 가다가- 한 마을에 들어가서- 그 마을에 텐트를 치고 자려고 하는데, 동네 사람들이 몰려 나와서- 나가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인심이 사나운지, 자기 동네 안에는 낯선 사람이 거할 수 없으니, 동네 밖으로 나가라는 거예요.
노인이 아무리 사정해 보았지만, 인심이 사나운 동네사람들이 그를- 내 쫓고 말았습니다.
그는 할 수 없이 쫓겨나--- 마을 바깥에 있는 한 우물가 곁에 천막을 치면서- 불평의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 감사했어요.
하나님의 무슨 뜻이 있겠지요?
하나님- 내가 멸시당하고 천대 받았지만, 그래도 하나님으로 인하여 감사하며, 찬송합니다.
그리고 그곳에 천막을 치고, 호롱불을 켰어요.
성경을 보려고 하는데 갑자기- 강한 바람이 불어와서- 그만 그 호롱의 불을 꺼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다시 일어나 불을 켤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다시 불평이 나왔어요.
“하나님 어찌하여 이런 시련을 주시는 것입니까?”
“하나님 말씀을 보려고 하는데요~~불이 꺼지다니요?”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무슨 다른 뜻이 있겠지. 생각하고 일찍 잠자리에 누웠습니다.
한 참 잠을 자는데, 어디서 -푸드득, 푸드득- 닭이 날개 치는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봤더니, 늑대라는 놈이 와가지고, 닭을 물고 달아나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친구고, 자신의 여행의 동반자를 말입니다.
이 할아버지가 몽둥이를 들고 쫓아갔지만, 늑대의 걸음을 노인이 당할 수가 없었어요.
얼마큼 쫓아갔다가. 늑대를 놓쳐 버리고 말았습니다.
허탈한 마음으로, 터덜터덜 와서 보니- 이게 웬일 입니까?
텐트 밖에 묵어놨던 말이- 달아나고 없는 거예요
어디로 달아났는지, 누가 훔쳐 갔는지 모르겠는데, 말이 없어진 거요.
하나님, 내가 여행을 어떻게 하라고 이러십니까?
말에 물건을 싣고 가야 될 것- 아닙니까?
내 평생의 동반자인 닭도 없어졌습니다.
그는 슬픈 마음을 가지고 -
그러나 하나님의 다른 뜻이 있을 거라고- 마음을 달래면서, 텐트에 들어가 잠이 들었습니다.
동이 튼 후에- 그가 나가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멀리 보이는 마을에, 불길이 치솟고 있었습니다.
가서 봤더니, 밤에 도적 떼들이 들어와 가지고, 마을을 불 지르고, 사람들을 죽이고, 물건들과 짐승들을- 다~~뺏어간 것이었습니다.
만일 그가 마을 입구에 등불이 켜져 있었더라면, 그걸 보고 도적들이 왔을 거예요.
만일 도적 떼들의 말발굽 소리에 놀래서, 닭이 울음을 울었더라면, 아마 그 닭도 뺏기고 노인도 죽었을 것입니다.
만일 텐트 밖에 말이 서 있었더라면, 그 말을 뺏으러 가는 노인도 죽었을 것입니다.
그는 바람으로 호롱불을 끄시고, 늑대를 통하여 닭을 물어가게 하시고, 그리고 말을 도망가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했다는 것이에요.
그런 것들을 잃어버렸지만, 자신의 생명을 구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에게, 단편적인 역경과 고통은 있을 수 있습니다.
말이 도망가는 역사가 있어요.
늑대가 와서 내 재산을 뺏어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바람이 불어- 등불을 끄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합력하여 - 그에게 유익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바라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낮의 해가, 밤의 달이- 우리를 헤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 보아스는 제일 먼저, 룻에게 이런 보호함의 은혜를- 베풀었던 것입니다.
이방여인으로 낯선 땅에 와서, 배타적인 유태인의 마을에 와서, 그가 겪은 곤혹을 하나님이 지킨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땅에서 순례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을 핍박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을 헤하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를 멸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앞길을- 지키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보아스를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에게- 보호하심을 베푸시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은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
12절의 말씀입니다.
보아스가 룻에게 말합니다.
[룻] 2:12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
보아스는 룻의 안전을 보장해 줬을 뿐만 아니라, 그에게 위로의 말씀을 합니다.
‘니가 고통가운데 있지만, 여호와의 날개가 너를 지키기를 원하노라. 하나님께서 네게 온전한 상주시기를 원하노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의 삶의 무게가 무거울 때에, 우리가 고통가운데 있을 때에, 우리가 신음할 때에, 우리 가운데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권면합니다.
설교를 통하여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말씀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찬양을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기도 가운데 하나님은, 음성으로, 감동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사람의 위로는 동정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계산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위로는 위로로 그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위로는, 하나님의 능력과 만나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통이 심할 때에, 하나님의 위로의 음성이 더 크게 들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음할 때에, 그 분의 속삭임이, 큰 음성으로 들리는 것입니다.
남자가 살다가 -너무 힘이 들 때면-지갑에 있는 와이프-사진을 꺼내본답니다.
내가 이 사람과도 사는데 -세상에 못할 일이 어딨겠나?
여자도 살다가 –너무 힘이 들 때면-지갑에 있는 남편-사진을 꺼내본답니다.
내가 이것도 사람 만들었는데-세상에 못할 일이 어디 겠나?
오늘 고통가운데 있는 성도여러분, 아픔가운데 있는 성도여러분, 괴로움가운데 있는 성도여러분,
세상으로부터 오는 소리에 귀를 닫고- 하나님의 위로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통하여 선포되는- 여러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때- 하나님의 은혜를 보게 될 것입니다.
오래전에 영국의 목사님이셨던, 뉴-먼 이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이 분은 목회를 하다가, 큰 상처를 입게 되었어요.
열심히 목회를 하고,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교인들이 잘 따라주지 않는 것입니다.
순종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그 목사님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았습니다.
목회를 몇 년 하다 보니까- 뉴-먼 목사님이-몸도 마음도- 다~~ 병들게 되었어요.
더 이상 목회를 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말을 하고, 몇 달 동안 쉬기 위하여- 이탈리아의 한 항구 도시로 갔습니다.
몇 달을 그 곳에서 쉬었지만, 그의 몸과 마음이 다~~ 회복되지 않았어요.
그의 마음에 상처가 너무 깊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교회와의 약속했던 시간이 되어서, 이제 돌아가야 할 때가 다가와- 그는 내키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배에 올라탔습니다.
그런데 배가 움직이지 않는 것이었어요.
‘선장님 시간이 됐는데 왜 배가 출항하지 않습니까?’
“바람이 불어야 나갑니다.”
그 당시는 배가- 돛단배 였던 모양입니다.
바람이 불어야만 갈 수 있는 배였는데, 바람이 불지 않는다는 거요
‘이때는 항상 바람이 부는 철인데, 오늘은 이상하게 바람이 불지 않아 배가 출항할 수 없습니다. 기다려야 합니다.’
‘얼마나 기다려야 합니까?’
“그야 모르지요. 하나님이 바람을 주실 때까지 우리는 기다립니다.”
배에서 며칠을 있다 보니까- 그의 마음에 불만이 더 깊어집니다.
“하나님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 왜 바람을 주시지 않습니까?
내가 빨리 교회로 돌아가서- 목회해야 되는데, 내 몸도 맘도 지쳤는데,
이렇게 배타고 가는 여행까지 힘들게 하시면, 내가 어떻게 하나님이 일을 합니까?”
불평이 가득 찼어요.
배에서 내릴 수도 없었습니다.
언제 바람이 불지 알지 못하니까- 늘 배에서 대기하고 있어야 하니- 얼마나-피곤하겠습니까?
그렇게 며칠을 지나게 되었는데, 한 밤 중에 선장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갑판 위에 나가보니- 선장이- 두 손을 들고 하늘을 향하여 -경배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 보세요. 이제 바람이 불 것 같습니다. 저 먹구름이 걷히고, 별들이 보이니, 바람이 불려는 징조입니다. 이제 닻을 올리고 떠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뉴-먼 목사님이 놀라 묻습니다.
‘선장님, 이 밤에 출발한다는 말입니까? 앞이 보이지 않는데요?’
“예- 걱정하지 마십시오. 밤에는 별 빛이 우리를 안내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저 별이, 우리가 갈 곳을 안내 할 것입니다.”
‘그렇게 가다가- 배가 멈추면 어떻게 합니까? 바람이 그쳐서 망망대해 한 밤중에 배가 멈추면 어떻게 합니까?’
“그러면 우리는 또 바람을 기다립니다.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우리는 하나님이 인도하는 대로 나갈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수십 년의 선장생활을 통하여, 하나님이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인도하는 것을 보아 왔습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이제 출발할 준비를 하십시오.”
그는 평신도 였던 선장의 고백 앞에-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나는 내가 목사로서 그 만한 믿음도 갔지 못했었구나.”
그는 그 배위에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하나님, 제가 교만하였습니다.
내가 죄인 것을 알지 못하고, 잘 못이 내게 있는 것을 알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서 찾으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인도하는 은혜를 의지 하지 아니하고, 내 교만과 생각으로- 열 걸음을 나가려고 했습니다. 이제 주님만 바라보며, 한 걸음씩 한 걸음씩 나가기를 원합니다.”
그 순간에 그의 병든 몸도, 마음도- 치유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선상에서 지은 찬송시가- 바로 379장의 내용입니다.
(1)
내 갈 길 멀고 밤은 깊은데 빛 되신 주
저 본향 집을 향해 가는 길 비추소서
내 가는 길 다 알지 못하나 한걸음씩 늘 인도 하소서
(2)
이전에 방탕하게 지낼 때 교만하여
맘대로 고집하던 이 죄인 사하소서
내 지은 죄 다 기억 마시고 주 뜻대로 늘 주장 하소서
(3)
이전에 나를 인도 하신 주 장래에도
내 앞에 험산 준령 만날 때 도우소서
밤 지나고 저 밝은 아침에 기쁨으로 내 주를 만나리 아멘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뉴-먼 목사님처럼, 삶에 지치고, 피곤하신 분들 계십니까?
여러분의 자녀들이 여러분의 뜻대로 살지 않아서, 가슴 시린 분이 계십니까?
하는 사업이 잘 풀리지 않아서, 늘 돈 문제 가운데- 시달리고, 불안과 공포가운데- 살아가는 분이 계십니까?
육신의 질병으로 인하여서, 삶에 소망이 없고, 몸의 고통가운데 시달리는 분이 계십니까?
인간관계의 고통으로 인하여서, 사람 보는 게 두렵고, 사람에게 받은 상처로 인하여, 잠 못 이루시는 분이 계십니까?
눈을 들어 한 걸음씩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권면합니다.
모든 것의 문제는, 내게 있는 것임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먹구름이 걷히고, 찬란한 별들이 떠오르고, 그리고 하나님은 한 걸음씩 내 발걸음을- 인도해 나갈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합려 하여 -내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위로의 말씀을 뉴-먼 목사님이 들었던 것처럼 여러분도 예배를 통하여 들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보아는 룻의 안전을 책임 졌을 뿐만 아니라, 그에게 위로의 말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 주시는 것뿐만 아니라, 시시때때로 우리를 고통 가운데서, 위로하시는- 아버지가 되시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보아스는 룻에게, 특별한 배려의 축복을 주었습니다.
15절의 말씀입니다.
[룻] 2:15 룻이 이삭을 주우러 일어날 때에 보아스가 자기 소년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그에게 곡식 단 사이에서 줍게 하고 책망하지 말며
[룻] 2:16 또 그를 위하여 곡식 다발에서 조금씩 뽑아 버려서 그에게 줍게 하고 꾸짖지 말라 하니라
당시에 이삭을 주우러 다니는 여인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보아스는, 룻에게만 특별한 배려를 합니다.
그의 일꾼들에게 말 합니다.
‘룻을 뒤에서 줍게 하지 말고, 제일 앞에서 곡식 단 사이에서 줍게 하라. 그리고 곡식 단을- 다 가지고 오지 말고, 한 움쿰씩 빼서 떨어트려라.
룻이 주서 갈 수 있게~’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보아스는 룻에게- 특별한 배려를 한 것입니다.
아이들 수십 명이 뛰어놀아도, 어머니는 한 아이에게만 가 있습니다.
자신의 아들에게 입니다.
어머니가 귀한 사람은, 그 아이가 귀히 여기는 아이의 친구입니다.
수백, 수천- 아무리 귀한 집 자식들이 있어도, 내 아이에게 잘 해 주는 아이에게- 어머니의 관심과 축복이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분의 아들이요, 딸인 우리에게- 특별하게 배려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당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창세기 12장 3절에- 이와 같이 약속하셨습니다.
[창] 12: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 할 거라고 말을 합니다.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내 자녀와 함께 하는 자에게- 복 주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어버이의 마음입니다.
내 자식이 못 났어도, 어버이의 눈에는 귀한 아들입니다.
못 생겼을 지라도, 그 어머니와 아버지 눈에는- 세계에서 가장 멋있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부모이기 때문입니다.
나를 낳아 주신 분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분이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여 새로운 생명을 주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특별한 배려를 해 주시는 것입니다.
보아스가 룻에게 베푼 바로- 이런 특별한 배려의 축복이- 하나님을 믿는 백성에게- 있게 되는 것입니다.
네 번째로 보아스는, 룻을- 자신의 식탁으로- 초대하였습니다.
14절입니다.
[룻] 2:14 식사할 때에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이리로 와서 떡을 먹으며 네 떡 조각을 초에 찍으라 하므로 룻이 곡식 베는 자 곁에 앉으니 그가 볶은 곡식을 주매 룻이 배불리 먹고 남았더라.
이것은 당시 상황으로 보면- 상상하기 힘든 장면입니다.
여인이 그 남편과 한 식탁에서 식사 할 수 없었어요.
하물며 룻은 이방여인입니다.
그리고 여기는 주인이고, 여기는 그 주인의 밭에서 떨어진 나단을 주어서 먹고 사는 노예와 같은 일꾼입니다.
그런데 보아스는, 이런 모든 신분의 차이를 초월하여, 룻을 자신의 식탁으로 초대합니다.
그리고 맛있는 음식을, 풍성한 음식을- 그와 나누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구원 받았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 됨을 의미합니다.
자녀는- 그 아버지와 같이- 그 상에 앉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종이 아니요, 그 분의 아들이요, 그 분의 딸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군림하고 통치하는 분이 아니고, 우리를 돌보시고, 사랑하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어느 종교가- 그들이 믿는 신과 그 백성이, 한 식탁에서 식사를 합니까?
세상의 모든 종교의 신은, 군림하고 통치합니다.
인간을 다스립니다.
인간을 지배하고, 정복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 되시며, 우리를 섬기시며, 우리의 눈물을 닦아 주시며, 우리를 위로하시며, 우리와 함께 식사하시는 사랑의 주인이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보아스는, 룻을 그 식탁에 초청하여서, 같이 동등한 자격으로 음식을 나누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하나님을 알지 못했을 때에,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 그 분은, 우리의 죄를 없다 하시며, 우리를 자녀 삼아 주셨습니다.
여러분, 하인은, 아랫사람은 주인을- 아무 때나 만나지 못합니다.
그러나 자녀는, 아무 때나 아버지 방에 들어 갈 수 있는 거요
아무 때나 어머니에게 전화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런 권세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랑으로 우리를 붙드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식탁의 교제를 베푸신 것입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로, 보아스는 룻에게, 만족함의 축복을 베풀었습니다.
14절 후반 부에 보면, ‘룻이 배불리 먹고 남았더라.’
이 당시 문화가운데서 배불리 먹는 다는 것은, 아주~ 부자나 가능한 일이 었어요.
이방여인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배불리 먹는 것으로 그치지 아니하고, 배불리 먹고 남았다. 그랬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은, 천지의 창조주이십니다.
금과 은의 주인 되십니다.
그 분은 우리의 생명과 죽음을 주관하는 분입니다.
그 분에게는 모든 권세와 영광이 있는 것입니다.
그 분의 자녀가 되었다고 하는 것은→그 분의 모든 영광과 그 분의 모든 권리를, 동등하게 누릴 자격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 앞에 입을 크게 벌려서, 간구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후회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의 것이 될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5천 명을 먹이고, 12광주리를 남기셨습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깊은 곳에 그물 던진 베드로의 그물이- 찢어지도록 고기가 많이 잡혔던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시시한 분이 아닙니다.
대충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은 넘치도록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구하는 것-100배로, 1,000배로 주시는 축복의 아버지인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부모의 마음 아닙니까?
자꾸만 주고 싶은 거여
여러분 이것이 사랑하는 사람의 속성 아닙니까?
그 사랑하는 자에게, 내 생명을 줄 지라도 아깝지 않은 것입니다.
내 옷이라도 벗어 주고 싶은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사랑의 속성이고, 부모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신- 부모이시고,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생명을 주시기까지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어찌하여 그 모든 것을 우리에게 더하여 주시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간구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권면합니다.
뜨겁게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소망하고 바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후회 주시고, 배부르게 먹게 하시고, 남게 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보아스를 통하여, 룻에게 베푼 은혜를 보며, 우리는 하나님이 그 백성에게 베푸시는 은혜의 유사성을 봅니다.
보호의 축복을 받았으며, 위로의 축복이 임하였고, 특별한 배려의 축복이 있었고, 교제의 축복과 만족함의 축복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런 사랑을 받은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까?
보아스와 같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 보아스의 이~위대한 인격이, 그의 신앙으로부터 나왔음을 보게 됩니다.
그는 룻을 축복하며, 곳곳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축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 특별한 배려를 받은 사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 보아스와 같은 섬김과 행함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을 보세요?
우리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 전날 밤에,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우리는 흔히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형편이 좀 나아지면 도울 께요?
내 삶도 고통스러운데요?
내 하나 몸도 보관하기도 쉽지 않은 대요?
어떻게 남을 돕습니까?
내 형편이 좀 나아지면, 살만 해 지면 남을 돕겠습니다.
내 코가 석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섬김은, 자신이 고통가운데 있을 때에, 자신이 죽음으로 인하여 신음하고 있을 때에, 새벽에 잡혀서 고난당하고- 져야할 십자가로 인하여- 아플 때에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섬김의 본을 보이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섬김이란, 그리스도인의 배품이란, 그리스도인의 사랑이란
오늘 내가 힘들고 어려울 지라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나보다 더 어렵고 힘든 사람에게--- 주의 복음을 증거 하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여, 그들의 상처를- 보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그런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권면합니다.
예)20년 전에 한 목사님이-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평생 외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처음 타 봤어요.
이름 조차 생소한 저 영국의 북쪽에 있는 에딘버러 라는 도시로 가게 되었어요.
목사님 손에는 가서 있을 수 있는- 최소한의 경비와 하숙집 주소 하나만 딱 적혀 있었어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그 낮선 도시로 가는 목사님의 마음은, 참 두려움 가운데 있었습니다.
런던에서 국내선으로 비행기를 갈아타고, 도착했던 시간은, 비행기 연착으로- 밤 10시 정도 되었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린 몇 명 안 되는 영국 사람들은- 그들의 가족과 다~ 흩어지고, 그 큰 공항에는- 목사님 혼자 남게 되었어요.
영어도 잘 안되고, 돈도 아슬아슬하게 가져온 목사님은, 택시를 타고 가기로 맘 먹었습니다.
이미 대중교통은 다~~끊어진 시간이었습니다.
택시 승차장에 가서, 택시에 짐을 싣고, 그 기사에게 하숙집 주소를 주었습니다.
그 운전기사가 목사님에게 많은 것을 물었는데, 한 마디도 알아 들을 수가 없었어요.
왜냐하면 정식 영어도 아니고, 그 스코틀랜드에 있는- 스커트식 엑센트는- 영국 사람들도 말을 잘 못 알아 듣는다고 합니다.
하물며 외국에 처음 나온, 말이 짧은 사람에게는, 더더욱 들리지 않았어요.
더듬 더듬 하며, ‘목사님은 나는 한국에서 온 목사고, 여기서 공부하기 위해서 왔다고’ 얘기 했습니다.
그가 많은 말을 목사님에게 했는데, 딱 한 마디만 귀에 들어 왔습니다.
I am a christion too
그 소리만 들어 왔어요
나도 기독교인입니다. 그러더라고요
그 말 외에는 인상 좋다는 것 외에는, 그 아저씨가 뒤에 머리 숫이 별로 없다는 거 외에는- 별로 보이는 게 없었어요.
그런데 목사님이 가져온 주소가 문제였어요.
옮겨 적는다고 적었는데, 스펠링이 중간중간 틀려서, 그런 주소가 없는 거예요
이 택시 기사는 중간에 택시를 세우고 공중전화에 가서 여기저기 전화를 해서, 1 시간이면 올 거리를, 한 3시간 걸려서 삥삥 돌아왔습니다.
이미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어요.
하숙집 주인도 자다 나와서 부스스한 얼굴로 나왔고, 이 기사 양반도 얼굴이 피곤함이 묻어 났어요.
얼마나 미안한지,
그런데 그는 싫은 내색 하지 않고, 목사님 가방을 들고 방까지 가져다주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그 하숙집 주인에게, 목사님을 소개 하는 것이었어요
목사님이 몇 마디 한 것을 알아듣고, 잘 부탁한다고, 마치 당신의 동생이나 조카처럼 그렇게- 부탁을 하고, 그 집을 다 돌아본 다음에, 마지막으로 목사님에게 한 마디 하고 떠났어요.
목사님은 딱 요금 밖에 줄 돈이 없었어요.
당연히 팀을 주어야 할 상황이지만, 돈도 없었고, 마음에 여유도 없었어요.
딱 그 돈만 부끄럽게 내 밀었을 때, 그는 그 돈을 받으면서 환한 미소로 목사님에게- ‘하나님이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합니다.’
God bless you
목사님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 마음씨 좋은- 그 영국의 에딘버러의 택시기사의 모습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아하, 이게 그리스도 인의 모습이구나. 이게 그리스도인의 사랑이구나. 저 동양의 이름 모를 나라에서 온 젊은 목사에 대하여, 자신도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는 그 하나의 이유만으로, 2시간, 3시간 삥삥 돌고, 틀린 주소를 바로 잡아서 찾아준 그 사랑을, 목사님은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아닙니까?
내가 힘들다고, 나는 도움 받아야 될 사람이야,
내가 고통 벗어난 후에, 그 때 내가 남을 도울 께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닙니다.
오늘 보아스가 부자였고, 유지였지만--- 모든 게 다 행복한 상황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에게도 고통과 아픔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런 상황 가운데서도, 룻에게 이런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세상에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이루어지는, 우연처럼 보이는 필연만 있을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주의 뜻대로 아름다운 행위를-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선을 만들어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의 삶에 이 룻이 받은 거와 같은--- 보아스와 같은 삶이 넘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