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부터 숲길이다. 한라산 중턱 1000m 고지니까 그럴만하다 해도 1시간 넘게 이어진다. 그리곤 분화구. 다시 30분을 올라야 정상이다. 숲의 연속이다. 여느 한라산 자락의 숲과 달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세월을 참아내고 맛을 일궈내는 묵은지처럼 발길을 이어가야 한다. 정상의 풍광은 땀을 보상하고도 남는다. 동쪽으론 가을 억새 뒤쪽으로 한라산이 성큼 다가온다. 남서쪽으론 멀리 산방산을 배경으로 제주의 오름들이 한폭의 산수화처럼 펼쳐진다. 깊은 맛의 묵은지처럼 산과 바다, 제주의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는 노로오름이다.
노로오름은 한라산 정상에서 서쪽으로 8.5㎞ 지점인 1000m 고지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리 139번지 일대에 위치하고 있다. 붉은오름(표고 1061.0m)·노로오름(〃1070.0m)·한대오름(〃921.4m) 등 3개의 오름이 북동에서 남서방향으로 2㎞ 간격(정상간 거리)으로 이어진 '3형제 벨트'의 가운데다. 남동쪽에 1100도로와 인접해 있는 삼형제큰오름까지도 2㎞여다.
노로오름은 펑퍼짐한 오름이다. 비고는 105m로 368개 오름 가운데 99번째에 불과하나 면적은 47만5274㎡로 58번째다. 저경은 884m에 둘레는 2611m다.
노로오름은 1개의 원형 분화구와 5개의 원추형 분화구를 가진 복합형 화산체다. 동북동 방향 400여m 지점에 원형과 원추형 분화구 1개씩을 가진 족은노로오름(〃H)과는 별개의 화산체다. 이 2개의 오름 사이에 표고 1036m의 언덕(〃G)이 있어 세 봉우리가 기복을 이루며 연결돼 있는 모습이다. 족은노로오름은 비고 34m(313번째)·면적 9만5867㎡(260〃)·표고 1019.2m(36〃)로 역시 작다.
노로오름은 예전에 노루가 많이 서식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노로'는 노루의 옛말로 제주어로 '노리'라고 하여 '노리오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한자로는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 등에는 뜻을 따서 장악(獐岳), '제주군읍지(1899년)' 등은 음을 따서 노로악(老路岳)이라고 썼다.
신제주로터리에서 노로오름 입구까지는 22.1㎞다. 평화로를 타고 15㎞를 가다 원동교차로에서 좌회전한 뒤 1.8㎞ 지점에서 만나는 산록서로를 횡단, 바리메오름을 지나 5.3㎞ 들어가야 한다. 족은바리메 입구를 기준으로 700m 지점 갈림길에서 좌회전, 임도(탐방로 지도 I)를 타고 1.0㎞ 지점에서 우회전해서 1.6㎞ 더 들어가면 노로오름 입구(〃A)다.
▲ 한라돌쩌귀. 사진=김철웅 기자
노로오름 역시 타이어매트 등 인위적인 시설이 없어 탐방의 맛은 있는데 길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탐방시간의 3분의2 이상이 소요될 만큼 입구에서 오름 자락까지 거리가 만만치 않고 주변 오름에서 이어지는 다양한 탐방코스 때문에 나무에 묶여있는 표식도 혼란을 초래하기 일쑤다.
시작은 한라산 자락의 여느 오름처럼 숲으로 시작이다. 바닥은 조릿대로 덮여 있어 한라산을 오르는 기분도 든다. 표고 1070m에 비고가 105m이니 오름자락은 표고 965m여서, 표고 740m인 탐방로 입구에서 그곳까지 표고 225m는 오름이 아니라 한라산 자락을 타는 셈이다.
출발 후 10분이면 첫 번째 건천이 나온다. 폭이 5m에 달할 만큼 규모가 작지 않다. 비록 말라 버렸지만 산에서 만나는 물의 흔적은 청량하다. 다시 10분쯤 지나 나오는 갈림길(〃B)에선 왼쪽이다. 분화구를 거쳐 오름을 시계방향으로 돌며 정상부로 가는 코스다. 나뭇잎들이 형형색색 가을빛으로 옷을 갈아입으며 가을임을 알린다. 노로오름이 아니랄까봐 노루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커다란 석부작처럼 뿌리고 바위를 칭칭 감고 서 있는 나무들이 보인다. 그것들이 움켜쥔 것은 바위가 아니라 생명이다. 출발후 1시간이 다 되어 분화구(〃C)에 도달했다. 비교적 넓은 면적의 분화구를 있는 화구벽이 웅장한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 참여로. 사진=김철웅 기자
분화구를 나와 오른쪽(동쪽)으로 8분을 가면 넓은 습지(〃D)다. 애초에는 물이 있었던 것 같으나 오름의 흙이 씻겨 내려와 쌓이면서 육화가 많이 진행된 듯 수생식물이 거의 없다.
습지에서 5분을 더 올라가면 개활지(〃E)다. 표고 1040m지점인데 오래된 묘가 하나 있다. 지금도 올라오기 힘든 이곳에 일찍이 무덤을 쓰고 산담을 했으니 대단하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숲 너머 오름 정상부가 보인다.
7분여를 더 가면 정상부다. 북동쪽의 어승생에서 시작된 한라산의 능선의 힘은 웅장함 그 자체다. 살핀오름·이스렁오름 뒤로 삼형제큰오름 등 삼형제 오름의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그 오른쪽엔 한대오름이다.
여기서 남쪽으로 10m 더 가야 최정상(〃F)이다. 이곳의 풍광도 만만치 않다. 남서쪽으로 한 폭의 산수화가 펼쳐져 있다. 동쪽 풍광이 강렬했다면 이쪽은 부드러움이다. 멀리 산방산과 그 너머 제주의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남서부권 오름들이 점점이 자리하고 있다. 1시간30분을 올라온 보람이 있다.
▲ 노로오름 남서쪽 풍광. 사진=김철웅 기자
삼각점이 있는 정상에서 산방산 쪽으로 난 길이 오름의 남쪽 능선을 타고 내려오는 코스다. 서쪽 길은 다시 분화구(〃C) 입구를 거쳐 왔던 길로 되돌아가는 코스다. 하산엔 1시간 남짓, 전체 3시간이면 탐방에 충분하다.
노로오름은 낙엽활엽수림과 삼나무 인공조림지·화구습지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분화구를 중심으로 아그배나무 등 육화가 많이 진행된 습지 식생도 잘 관찰할 수 있다.
등산로를 따라 개서나무와 곰의말채를 비롯, 아그배·쪽동백·음·층층·때죽·대팻집·산뽕·솔비나무 등이 서식하고 있다. 정상부로는 윤노리·산딸·쥐똥·보리수나무와 산수국·산철쭉 등의 출현이 많고, 분화구의 정상을 따라선 꽝꽝나무·좀쥐똥나무 등의 관목림이 형성돼 있다.
김대신 한라산연구소 연구사는 "오름 정상부는 고산지역과 유사, 노로오름처럼 해발 1000m 이상 지역은 고산지역 종들의 분포 하한선이 되어 식물종피난처가 되는 경우가 많다"며 "제주황기·반디미나리 등은 노로오름의 정상부 등에 잘 적응된 예"라고 말했다. 김철웅 기자
사슴과의 포유류 '노루'
신선과 함께 특별했던 지위
한라산 상징서 유해 동물로
노루는 소목(偶蹄目) 사슴과의 포유류다. 몸길이 100∼120㎝, 어깨높이 60∼75㎝, 몸무게 15∼30㎏로 같은 사슴과의 꽃사슴(몸길이 150㎝)보다 작다. 수컷만 가지 3개의 뿔이 난다.
제주도 등 우리나라 전역은 물론 중국·중앙아시아와 유럽 등지에도 분포한다. 계절에 따라 털 색깔이 바뀌는데 여름털은 황갈색 또는 적갈색, 겨울털은 점토색을 띤다. 겨울털에는 엉덩이의 백색 반점이 크게 나타난다.
노루는 원칙적으로 일부일처제로 만약 짝이 포수에게 잡히면 그 근처를 수일간 울며 돌아다닌다고 한다. 국민 가곡인 '비목(碑木)'에 "궁노루 산울림 달빛타고…"처럼 궁노루(사향노루)가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1964년 비무장지대에서 초소장으로 근무할 당시 봤던 돌무덤 주인인 '6·25 용사'의 넋을 기리며 '비목'이란 시를 쓰면서, 언제가 대원들이 잡아온 궁노루 수놈으로 회식한 뒤 매일 밤 부근에서 홀로 남은 암놈이 울어대던 애처로움에 잠을 이룰 수 없었던 작사가 한명희의 기억이다.
제주에서 노루는 특별했다. 제주 사람들은 한라산 정상엔 신선들이 타고 다니는 흰 사슴인 백록(白鹿)이 산다고 믿었다. 그 백록에게 먹였다는 맑은 물이 백록담의 유래다. 아울러 매년 복날 백록담에서 목욕하던 선녀들의 벗을 몸을 보고 만 한라산 산신령이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사 백록으로 변했다는 전설도 있다.
그래서 노루는 한라산의 상징으로 1980년대 중반 멸종위기에 몰릴 때는 보호 대상의 귀한 몸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상위 포식자가 없는 상황에서 개체수가 급증하며 농작물 피해는 물론 로드킬 등 교통사고, 무차별 섭이로 인한 한라산 식생 파괴 등 부작용 또한 급증하고 있다. 한시적이긴 하나 올해부터 3년간 포획 대상인 유해조수로 전락했다. 인간과의 공존을 위해선 적정 개체수 확보를 통한 부작용 최소화인 만큼 불가피한 조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김철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