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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아름다운 미술관★ 원문보기 글쓴이: 정암
오래된 도시 교토(京都)에서도 옛 정취가 가장 잘 남아있다는 기온(祇園)의 거리를 돌아다닐 때였습니다. 기온이 원래 유명한 게이샤 구역이라기에 혹시 얼굴에 하얗게 분칠을 하고 화려한 기모노를 입은 여인을 보게 되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고 있었죠. 그러다 이 사람들과
마주쳤답니다!
하지만 엉터리 분장이 아니라 비싼 값(우리 돈으로 무려 10만원에서 20만원! )을 주고 진짜와 똑같이 정교하게 화장을 하고 의상을 차려입는 것이라고 하니 이 관광객들을 보는 것도 못지않게 재미있는 일이었죠.
우선 저 관광객들은 엄밀히 말하면 게이샤가 아니라 마이코로 분장한 것이더군요. 저 사람들처럼 머리에 붉은 띠를 매고 꽃장식을 많이 달고 있으면 마이코라고 하네요. 마이코는 정식 게이샤가 되기 전의 견습생 같은 것인데, 춤, 노래, 악기 연주, 시, 서예, 다도, 옷 입는 법 등등을 철저히 배우고 혹독한 훈련을 거친 다음에야 정식 게이샤가 된다고 합니다. 이때 저 붉은 띠를 자르는 성인식을 한다고 하고요. 정식 게이샤가 된 다음에는 머리카락을 좀더 크게 부풀리고 머리장식은 좀더 심플하게 하는 것 같더군요. 옆에 있는 사진을 보세요.
이 사람은 70년대 일본 최고의 게이샤로 불렸던 이와사키 미네코입니다. 올해 초에 개봉된 영화 “게이샤의 추억 Memoirs of a Geisha”의 원작 베스트셀러가 이 여인의 경험담을 많이 참고했다고 하지요. 하지만 이 사람은 소설이 나온 후에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멋대로 바꾸고 게이샤 문화를 왜곡했다고 대단히 화를 냈다고 합니다. 소설과 영화에 보면 주인공이 성인식을 하면서 처녀성을 경매에 붙여 가장 비싼 값을 부른 손님에게 파는 설정이 나오는데 이런 풍습은 유녀(遊女)인 오이란에게나 있지 예술을 하는 자인 게이샤에게는 없는 일이라면서요. 결국 이 사람은 자신이 직접 수필을 써서 냈는데 그와 관련된 기사를 보고 싶으면 저 사진 출처를 클릭해보세요. 일본의 화장방 (1873) 지라르 Marie-Francois-Firmin Girard (1838-1921) 작 캔버스에 유채, 개인 소장
이 그림은 일단 재미있는 게 사실입니다. 유럽인이 19세기의 아카데믹한 화법으로 그려낸 일본 게이샤들이라니! 정교하게 묘사된 의상이며 가구며 소품이며...일본풍을 정확하게 나타내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합니다. 그리고 그림이 전체적으로 화사해서 눈을 즐겁게 합니다. 하지만 이 그림에서 진정한 일본 정서가 느껴지나요? 오달리스크와 노예 (1839) 앵그르 Jean-Auguste-Dominique Ingres (1780-1867) 작 캔버스에 유채, 포그 미술관, 매사추세츠
오달리스크 Odalisque 는 아시다시피 터키 황제의 시녀나 후궁을 가리키는 말이죠. 그런데 일련의 오달리스크 그림으로 유명한 앵그르는 사실 터키나 다른 서아시아 국가에 가본 적도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앵그르나 그 시대의 다른 화가들은 “오달리스크” 란 제목으로 누드를 그리기를 즐겼을까요? 아마 누드에 늘 “비너스”라는 제목을 다는 것이 지겨웠기 때문일 테죠. 주변에 이국의 소품을 배치해서 색다르고 신비로운 느낌도 주고, 또 “이 그림의 배경은 우리가 사는 유럽이 아닌 이국이다. 거기선 이렇다더라, 나도 확실히는 모르지만”이라는 핑계 아래 화가의 성적 환상을 더 대담하게 표현했겠죠. 이런 데서 오리엔탈리즘 Orientalism 의 부정적 의미가 나오기도 하는 거고요. 두폭 벽걸이 (1820) 우타가와 구니히데 작 비단에 채색, 84.7 x 29.5 cm, from www.kobijutsu.co.jp
왼쪽에 있는 여인은 게이샤, 오른쪽에 있는 여인은 오이란입니다. 기모노의 특징인 “오비”라는 넓은 띠를 게이샤는 뒤로 매듭이 가게 매고 오이란은 앞으로 매듭이 가게 맵니다. 또 오이란은 비녀(?)를 부채살처럼 꽂은 독특한 머리모양을 합니다. 그리고
오이란이 옷을 전반적으로 더 화려하게 입습니다. 앞으로 우동집에 걸려있는 미인도를 열심히 보고 게이샤인지 오이란인지 구분해볼 생각입니다.
왼쪽의 그림은 대표적인 미인도 작가로 18세기 후반에 왕성하게 활동했던 기타가와 우타마로(喜多川歌 1754-1806)의 목판화입니다. 오른쪽의 그림은 해남 윤씨 집안에서 전해 내려오는 작자 미상의 수묵채색화고요. 18세기에서 19세기 중반 사이에 그려졌을 것으로 추정되지요. 왼쪽 그림의 여인은 속이 비칠 듯 말 듯한 얇은 감색의 여름의상을 입고 (우타마로는 같은 옷을 입은 여인을 여러 번 그렸답니다. 이 옷이 아주 마음에 들었나 봐요 ) 부채를 들고 있습니다. 오른쪽 그림의 여인은 팔을 들어 크게 올린 머리를 만지고 있는데, 짧은 삼회장저고리 아래로 살짝 드러난 속살, 하얀 손과 새카만 머리카락의 대조, 입술과 띠의 강렬한 붉은색, 우아한 곡선을 그리는 눈썹과 여유만만한 눈초리 등등이 상당히 고혹적입니다. 큰머리 여인 (19세기 초 추정) 김홍도 金弘道 (1745-1810년대) 작 종이에 채색, 24.7 x 26.0 cm 서울대박물관 소장
이 그림은 한국 회화사의 거장인 김홍도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는데 확실치는 않습니다. 굵은 선으로 표현된 녹색 치마와 붉은 경대의 강렬한 대조, 그리고 여인의 살짝 내민 발이 인상적인 작품이에요. 거울을 보는 여인 (1808) 가쓰시카 호쿠사이 葛飾北齋·(1760-1849) 비단에 채색, 86.1 x 32.4 cm from www.kobijutsu.co.jp
이 그림은 “거대한 파도”나 “불타는 후지산” 등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우키요에의 거장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작품입니다. 그의 걸작들이 대개 목판화인 반면에 이 그림은 직접 붓으로 그린 것이지요. 늘씬한 여인이 우아한 곡선을 만들며 몸을 뒤로 젖히고 거울을 바라보는 모습입니다. 일본 회화에서만 자주 볼 수 있는 독특한 테마인 뒷모습의 미인도인 것이죠. 일본 의상 자체가 뒷모습의 아름다움을 중시하지요. 옷깃을 오비에 가깝게 아래로 늘여서 목덜미를 드러내 은근한 관능미를 발산하고 오비의 매듭을 뒤로
늘어뜨립니다.
이어령의 “축소지향의 일본인 (1986)”에서는 이것이 일본 특유의 “닫쳐진 뒷모습으로 열린 앞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게 한 함축미”라고 합니다. 미인도 (19세기 초 추정) 신윤복 申潤福 (1758-?) 작 비단에 담채, 113.9 x 45.6cm 간송미술관
이건 설명이 필요 없는 그림이지요. 너무나 잘 알려져서 얼핏 진부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물끄러미 들여다볼수록 역시 걸작은 걸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답니다. “흑운(검은 구름)”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얹은머리와 탐스럽게 부풀어있는 치마의 멋진 균형, 의상의 절제된 색깔에 액센트를 주는 노리개와 그 노리개를 움켜잡고 있는 하얀 손이 주는 미묘한 에로티시즘, 그리고 어딘지 애달픈 느낌을 주는 앳된 얼굴과 가녀린 어깨선까지... 과연 미인도 중 으뜸이라 할 만해요. 벚꽃 아래 미인과 그 시녀 (1805년경) 초분사이 에이시 鳥文齋英之 (1756-1829) 비단에 채색, 104.6 x 41.0 cm from www.kobijutsu.co.jp
신윤복과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고 활동한 일본의 화가 에이시의 작품입니다. 당대 한국의 대표적인 미인화가가 신윤복이라면 일본의 대표적인 미인화가는 우타마로와 에이시였지요. 고바야시 다다시의 “우키요에의 미(2004)”에 따르면 에이시는 무사계급의
명문가에서 태어나 우키요에 화가가 된 아주 파격적인 케이스였으며 따라서 에이시의 미인도는 그의 신분을 반영하듯 격조 있고 우아하며 정적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상인계급의 화가인 우타마로의 미인도가 통속적이고 관능적이면서 생동감이 넘치는 것과 대조적이지요. 마지막으로 머리를 만지고 있는 미인도 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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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사랑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