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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비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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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ambi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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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ion no : 249 (아프리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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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적 752.614㎢ 아프리카 중부의 내륙 국가로 산림지대.
인구 10,307,333명(2003년 7월 추정치)
수도 10,307,333명(2003년 7월 추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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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투 98% 벰바근족, 느얀자근족, 통가, 로지근족, 툼부카족, 랄라-비사, 카온데, 룬다, 람바,루발레, 렌제, 코이산(부시맨) 서부에 4개종족 1.000명 미만외국인 2% 남아시아인(대부분 인도의 구자라트), 유럽인, 전쟁을 피해 고향을 탈출한 콩고와 앙골라 출신의 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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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해독률 78%(감소추세, 기능상으로 25%) 공용어 영어 교역어 주로 소수 종족이 사용하는 벰바어와 느얀자어 전체언어 41. 성경번역언어 전체15, 신약8, 부분3, 진행중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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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외화 수입원은 구리 채굴과 제련이다. 독립 이후 누린 번영은 고압적인 사회주의와 농업에 대한 경시, 만연한 부패로 곧 상실하고 말았다. 세계 구리 가격의 하락과 주변 국가의 전쟁으로 인한 불안정한 상태 탓에 실질적으로 재정 파탄의 위기에 처했다. 칠루바 정부는 경제를 일부 개혁하긴 했지만, 부패 근절의 노력을 거의 하지 않았다. 에이즈가 전국을 휩쓸었고 보건 수준이 최악으로 떨어졌다. 인간개발지수 0.431. 174개국 중 151위. 1인당외채 GNP의 148% 1인당소득 370$(미국의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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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영국에서 독립. 1991년까지 카운다 대통령의 지도 하에 일당제 민주주의. 부패의 만연, 경제 붕괴, 일당 체제에 대한 반발심으로 인해 다당제 선거가 실시되었다. 칠루바 정부는 경제 회복에 기여하고 언론의 자유를 허용하는 한편 낙태, 포르노, 매춘을 금지시키는 등 긍정적인 업적을 많이 남겼지만 민주적인 자유를 수호하지 못했고 잠비아 국민 대부분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지 못했다. 환멸감이 팽배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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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운다의 사회주의적 인본주의가 정부 정책이었다. 활동적인 기독교인 칠루바 대통령은 1991년 잠비아를 기독교국가라고 선포했으나 모든 종교에 대한 자유를 허용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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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정령숭배 12.62%, 이슬람교 1.40%, 바하이교 0.40%, 무종교 0.40%, 힌두교 0.14%, 기독교 8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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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개신교35.51, 독립교회 14.55, 성공회 2.40, 카톨릭 33.48, 정교회 0.06, 유사 기독교 4.86, 미등록 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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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교파집단 복음주의 25%, 카리스마틱 18.9%, 오순절 1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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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송선교사 P.I.A 18개국 22단체 228명 잠비아 182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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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선교사 P.I.A 24개국 66단체 566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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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임을 공언한 칠루바 대통령이 1991년 취임한 이래로 잠비아는 복음에 개방적이다. 하나님을 찬양하자. 공직자들이 헌신하며, 그 마음과 세계관과 사회 구조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빚어지도록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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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위기, 빈곤과 실업, 그리고 에이즈의 전국적 확산으로 인해 잠비아 사람들은 점점 더 하나님을 찾고 있다. 기독교인의 생활 방식, 신학, 예배 형식이 진정한 아프리카식으로 표현되고, 신앙이 피상적으로 되지 않도록 기도하자. 정부와 교회가 현재의 사회 문제들을 적절하게 다루도록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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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비아에서 사역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자. 선교의 문이 열려서 말씀을 가르치는 것, 의료 사역과 기술 훈련과 같은 많은 사역 기회들이 있다. 사역자들이 그들이 직면하고 있는 도전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도록, 그리고 기독교인들이 일어나서 잠비아 교회를 전략적이고 겸손하게 돕도록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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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찌라 - 살전5: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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