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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단막극 페스티벌 세 번째 공연팀 극단 라나앤레오 창작집단 곰 조은컴퍼니
공연명 1, 고 장준하 40주기 서쪽하늘에 별이 뜬다.
2, 우찌니 카에루
3, 긴 귀향항로
공연단체 1, 라나앤레오
2, 창작집단 곰
3, 조은컴퍼니
작 연출 1, 김사빈
2, 김나영, 강제권
3, 김제훈
공연기간 2015년 2월 3일~8일
공연장소 혜화동 동숭무대 소극장
관람일시 2월 7일 오후 3시
혜화동 동숭무대 소극장에서 극단 라아앤레오의 김사빈 작 연출의 <서쪽 하늘에도 별이 뜬다>, 창작집단 곰의 김나영 작, 강제권 연출의 <우찌니 카에루>, 그리고 조은컴퍼니의 유진 글래드스턴 오닐의 <긴 귀향항로>를 관람했다.
1, 극단 라나앤레오의 김사빈 작 연출 故 장준하 40주기 <서쪽 하늘에도 별이 뜬다>
장준하(張俊河) 선생은 1918년 평안북도 의주군(義州郡) 고성면(古城面) 연하동(煙霞洞)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 조부에게 한학을 배웠고 대관보통학교를 마치고 평양에 있는 숭실(崇實)중학교에 입학하여 1년을 다니다 교사였던 부친의 전근지(轉勤地)를 따라 신성(信聖)중학교로 전학하였다. 숭실전문학교(崇實專門學校)에 진학할 예정이었으나 일제의 탄압으로 학교가 폐교되자 1938년 정주에 있는 신안소학교에서 교사로 부임하였다. 3년 동안 학생을 가르치며 학교의 발전을 위해 추진한 여러 공로를 인정받았다. 1941년 고등 신학교육을 받기 위해 일본 동경으로 건너갔으며 도요대학[東洋大學] 예과(철학)를 거쳐 니혼[日本]신학교를 졸업하였다. 당시 니혼신학교에는 문익환, 전택부, 김익준 등 한국에서 건너간 많은 학생들이 수학하고 있었다.
1942년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며 아시아에서 승승장구했던 일본이었지만 1943년 미국의 반격으로 전세가 역전되자 조선인 학생들을 강제로 징집하기 시작했다. 장준하는 일본유학을 1년으로 마감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신안소학교 시절 제자였던 김희숙(金熙淑)과 결혼하고 1944년 1월 20일 학도병으로 전쟁에 참전하였다. 조선군사령부 39여단 42연대에 배속되어 그해 2월 중국 장쑤성(江蘇省) 쉬저우(徐州) 쓰카다[塚田]부대에 배치되었다. 탈출의 기회를 엿보다가 7월 7일 홍석훈(洪錫勳), 김영록(金永祿), 윤경빈(尹慶彬)과 함께 일본군부대를 탈출하여 중국군에 합류했다. 이때 먼저 탈출하였던 김준엽을 만나 평생의 동지가 되었고 중국공산군의 습격으로 그의 부대가 괴멸되자 광복군이 있는 충칭[重慶]까지 6000리 길을 걸어서 이동하였다. 충칭으로 가는 도중 안후이성[安徽省] 린취안[臨泉] 중앙 군관학교 임천분교에 설치된 광복군 간부 훈련반에서 기초적인 제식훈련을 받았으나 교육내용이 부실하자 훈련병들이 자체적인 수업을 진행하고 《등불》이라는 필사본 잡지를 발간했다. 《등불》은 후일 《사상계》로 발간된다. 1945년 1월 31일 53명의 동지들과 걸어서 파촉령의 험준한 겨울산을 넘어 충칭[重慶] 임시정부에 도착하여 김구 주석을 만났다. 하지만 임시정부는 난립한 정당으로 혼란스러운 상태였고 임정 국무위원들과 갈등을 일으켜 중경을 떠났다.
1945년 4월 이범석의 제안으로 광복군 장교가 되었고 한국으로 잠입하기 위해 비밀리에 진행된 미국 OSS대원으로 자원하여 특수 게릴라 훈련을 받았고 광복군 육군 대위가 되었다. 그러나 8월 15일 일본이 항복하자 국내 잡입 작전은 취소되고 말았다. 8월 18일 연합군 군사사절단의 일원으로 이범석(李範奭), 김준엽, 노능서와 함께 미군기를 타고 여의도에 착륙하였지만 일본군의 거부로 하루만에 다시 중국으로 돌아갔다. 1945년 11월 23일 임시정부 요인들과 함께 미군 수송기편으로 귀국하였으며 주석 김구(金九)의 수행비서로 역할하였다. 하지만 이범석의 권유로 김구가 당수로 있는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을 떠나 조선민족청년단(일명:족청)에 가입하여 교무처장이 되었다. 이범석은 이승만 측의 인물로 정치적 입장을 달리했고 정권쟁취를 위한 독단에 환멸을 느껴 곧 그만두고 말았다. 이후 그는 정치에 관여하지 않았다.
1948년 한국신학대학에서 신학공부를 하였고 출판사 한길사를 설립하여 문화사업을 전개하였다. 또한 한길회를 창립하여 뜻을 같이 하는 인사들과 함께했다. 한국전쟁 중인 1953년 피난지인 부산에서 문교부장관 백낙준(白樂濬)의 추천으로 문교부 산하 국민사상연구원에 소속되어 종합교양지 《사상(思想)》을 창간하였다. 하지만 이기붕(李起鵬)과 박마리아의 방해로 폐간되자 이름을 바꾸어《사상계(思想界)》를 창간하였다. 《사상계》는 1955년 6월을 기점으로 발행부수가 2배로 확대되었고 이승만의 독재정치를 비판하는데 앞장섰으며 국내 지식인의 이목이 집중되는 최고의 잡지로 등극하였다. 장면 내각에서 국토건설본부 기획부장을 맡아 국가 건설을 위한 정책기획을 담당했다. 하지만 1961년 5·16군사정변으로 한국사회가 또다시 격랑에 휩싸이게 되자 당시 혁명정부의 민정이양을 두고 박정희(朴正熙), 김종필(金鍾泌) 을 비판하는데 앞장섰고 이때문에 장준하와 《사상계》는 위기에 내몰렸다. 1962년 한국인 최초의 막사이사이(Magsaysay) 언론상을 수상하면서 장준하와 《사상계》가 이룬 업적을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박정희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추진했던 대일외교, 월남파병 등의 정책을 비판하였다. 1967년 정계에 들어가 그해 제7대 신민당 소속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1971년 신민당을 탈당하고 《사상계》 사장으로 복귀하였으며, 1973년 민주통일당최고위원이 되었다. 1974년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등을 통하여 박정희정권에 맞섰고, 범민주세력의 통합에 힘썼으나 1975년 8월 17일 경기 포천군 소재 약사봉에서 추락하는 의문의 사고로 사망하였다. 저서에 《돌베개》가 있다.
무대는 배경에 영상으로 시대적 상황을 알린다. 장준하, 김구, 박정희, 같은 역사적 인물의 영상이 투사되고, 개량한복을 입은 출연자와 흰 와이셔츠에 검은 바지를 입은 출연자가 역사적 인물의 특징을 부각시키며 연기한다. 일제치하에서의 독립만세운동 장면이라든가, 학생들의 4 19혁명 장면, 시위대의 모습이 배우들이 무대를 종횡으로 누비며, 뒹굴기도 하고, 마치 삼배일보를 하는 듯한, 장면 하나하나가 동선으로 구현되고, 연기자들의 대사가 시적으로 표현되는가 하면, 뇌성 벽력같은 전쟁 포화 음과 탱크의 굉음을 효과음으로 삽입하고, 총성으로 장면변화를 꾀하는 등 연출력이 감지되는 공연이었다.
구재숙, 박진수, 김강훈, 전세훈, 이현진, 공하성, 동하, 서민우, 이창규, 이홍재, 김진영, 김민우, 김승은, 박미리, 성수경, 박승현 등 출연자 전원의 열연은 객석의 자리한 장준하선생 기념 사업회 회원과 장 선생의 장남 장호권(67세)씨와 홍성훈(아동문학가 70세)씨의 갈채를 받고, 작품을 쓴 김사빈 연출을 칭찬하고 격려했다.
2, 창작집단 곰의 김나영 작, 강제권 연출의 <우찌니 카에루>
<우찌니 카에루いえにかえる[家に帰る]>는 <집에 돌아가>라는 일본어다.
공항 대기실에서 어머니가 아들 부부와 함께 하와이로 가려고 비행기 탑승시간을 기다린다. 어머니는 호남 방언을 쓰고, 며느리는 일어를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 일본인 며느리라는 설정이다. 아들의 새 일자리가 하와이에 있는지, 아들 부부가 떠나려는데, 모친이 커다란 가방을 꼭 끌어안고 있는 모습에서 필시 함께 떠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아니나 다를까 모친은 집과 고향을 버리고 떠나는 것이 몹시 언짢은 표정이고, 말끝마다 아들에게 투정을 부린다. 아들이 잠시 자리를 비우자,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대화가 시작되는데, 어머니는 일본말을 못하고, 며느리 역시 한국말에 서투르니, 현재 전 국민의 유행어처럼 된 의사소통이니, 불통이니 하는 단어가, 이 경우에 딱 들어맞는 것으로 느껴진다.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음료수를 사다 드리려고, 따뜻한 커피와 냉커피 중 어떤 걸 마시겠느냐고 묻지만, 며느리의 말귀를 못 알아들으니, 시어머니가 그냥 횡설수설하는 소리를 잘 못 알아듣고, 며느리는 커피와 시원한 음료수를 사 온다. 그러나 시어머니는 음료수에 손도 대지 않는다. 아들이 돌아와 어머니의 언짢아하는 기색을 눈치 채고, 어머니의 마음을풀어드리려 들지만, 어머니 귀에는 아들의 소리가 당나귀 귀에 코란 읊기다. 아들내외도 차츰 티격태격하기 시작하고, 급기야 결별의 위기까지 보이는 듯싶지만,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자고 하는 말 한마디가 가족의 앞길을 결정짓는 소리가 되고, 며느리도 <우찌니 카에루>하고 외치는 장면에서 연극은 끝이 난다.
강유미, 간제권, 정혜선 등 출연자들의 호연과 성격창출이 대중적이고 관객의 호응을 불러 일으켜 갈채를 받는 성공적인 공연이 되었다.
3, 조은 컴퍼니의 유진 글래드스턴 오닐 작, 김제훈 각색 연출의 <긴 귀향항로>
유진 글래드스턴 오닐(Eugene Gladstone O'Neill, 1888~ 1953)은 노벨 문학상을 받은 미국의 희곡작가이다. 오닐의 희곡은 미국 연극에서 처음으로 사실주의 기법을 도입한 것으로, 그 점에서 러시아 희곡 작가인 안톤 체호프, 노르웨이 희곡 작가인 헨리크 입센, 스웨덴 희곡 작가인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와 연관된다. 그의 작품에는 최초로 영어를 미국 방언으로 발음한 대화가 포함되어 있다. 그의 작품 <느릅나무 밑의 욕망(Desire Under the Elms)>(1924)은 한 가족 내에 숨겨진 욕정을 그려내고 있으며, <위대한 신 브라운(The Great God Brown)>(1926)은 부유한 사업가의 무의식 세계를 모색한다. 또한 퓰리처상 수상작 <기묘한 막간극(Strange Interlude)>(1928)은 한 여성의 복잡하게 얽힌 사랑을 추적한다. 이러한 인상적인 연극들은 강렬한 억압 속에서 원시적 감정이나 혼돈 속으로 빠져드는 다양한 성격의 인물들의 내면세계를 드러내고 있다.
오닐은 계속해서 소포클레스의 고전 <오이디푸스>에 기초한 <상복(喪服)이 어울리는 엘렉트라(Mourning Becomes Electra)>(1931)라는 제목으로 묶은 희곡 3부작에서, 가족 내의 사랑과 지배에 관한 프로이트적인 억압을 탐색하고 있다. 후기 대작들로는 죽음을 적나라하게 다룬 <얼음장수 오다(The Iceman Cometh)>(1946)와, 하룻밤 사이에 일어나는 가족과 그들의 육체적·정신적 퇴화 과정에 중점을 둔 자전적인 희곡 <밤으로의 긴 여로(Long Day's Journey Into Night>>(1956) 등이 있다.
오닐은 전통적인 막과 장의 분리법을 파기하고(<기묘한 막간극>은 9막으로 되어 있으며, <상복이 어울리는 엘렉트라>는 공연하는 데 9시간이 필요하다), 아시아나 그리스 연극에 등장하는 마스크를 사용하며, 셰익스피어적인 독백과 그리스 연극적인 코러스를 도입하고 조명과 음향을 통한 특수효과를 이용함으로써, 연극을 새롭게 정의했다. 그는 미국 최고의 극작가로 널리 인정받게 되었고, 1936년에 미국 극작가로서는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밧줄>,<갈증>, <늪>, <카디프를 향하여 동쪽으로>, <긴 귀향항로>는 유진 오닐의 단막 중 걸작이다.
<긴 귀향항로>의 줄거리는 런던 부둣가의 한 하류 주점. 이 가게의 주인인 죠와 종업원 닉의 사소한 일거리에 대한 갈등으로 이 작품이 시작된다. 처음 그들의 가게는 파리만 날린다. 작업복차람의 여종업원의 모습에서 한가한 주점임이 드러난다. 그러던 중 한 배의 선원들이 이 한명이 다른 가게로 가자며, 자신이 전에 이 가게에서 사기를 당했었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여자가 보이지를 않으니, 다른 가게로 가겠다는 소리를 하지만, 예쁘게 차린 요염한 모습의 여급들이 등장하자, 선원들은 환호와 함께 자리를 잡는다. 선원들의 음주와 여급과의 어울림이 춤으로 진전하면서 주점의 분위기는 급상승한다. 반면 한쪽에서는 올슨이라는 선원이 술에 약한지 바닥에 쓰러진다.
올슨이 쓰러진 뒤 그를 제외한 선원들은 잠시 돌아가게 된다.
선원 올슨은 깨워져 일어나게 되고, 여급 중 미모가 출중한 한 명과 대면을 한다. 여급에게 반했는지 올슨은 신상을 털어놓는다. 오랜 항해 끝에 이제야 돈을 모아 집으로 돌아가려 한다고... 주점주인 죠와 미모의 여급의 사랑 꾐에 넘어가 약을 탄 술에 곯아떨어진 올슨은 몸에 지닌 돈을 모두 털리고 밖에 끌려가 버려진다.
대단원에서 선원들이 되돌아오고, 그들은 올슨의 소식을 묻지만, 주점주인의 잘 돌아갔다는 대답에, 선원들은 술을 주문하고 다시 등장한 여급들과 어울리는 장면에서 연극은 끝이 난다.
무대는 주점이다. 왼쪽에 카운터와 주방이 있고, 오른쪽에 내실로 들어가는 입구가 보인다. 중앙에는 탁자와 의자가 놓여있다. 무대 왼쪽 객석 가까이에 이 술집으로 들어오는 문이 있고 간판이 걸렸다. 객석 출입구가 등퇴장 로로 사용된다. 각색과정에서 여급의 인원수가 불어나고, 여급출연자들의 모습이 예쁜데다가 요염하기까지 해 남성관객의 시선을 끌어당긴다. 그녀들과 선원들의 무용장면이라든가, 술대작하는 장면 또한 남성관객의 눈길을 집중시키에 충분하다. 또한 각색에서 술에 약을 섞어 올슨에게 먹이는 것도 극적효과를 상승시킨다. 게다가 건장하고 거칠어 보이는 선원들의 성격설정과 대비되는 올슨의 온화하고 정적인 성격과 단아한 모습은 여성관객의 시선을 집중시키기도 한다. 올슨이 죠와 닉의 제물이 되었지만 대단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와 상관없이, 다시 몰려들어와 떠들며 술잔을 드는 선원들의 모습이 다른 사람의 모습 같지 않다고 느낄 즈음 연극은 끝이 난다.
이한수리, 김병욱, 최선일, 류광환, 양호열, 강대진, 오수지, 주수빈, 류리라, 전익수 등 출연자 전원의 성격창출과 호연이 연극의 분위기 상승의 결정적 역할을 하고, 김제훈 연출이 오닐의 원작을 발전적으로 각색해 극적 흥미를 배가시킨 공연이라 평하겠다.
2월 7일 박정기(朴精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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