家(가), 家門(가문), 門中(문중)의 의미
한국명문 (2006-01-17 오후 5:57:24) Hit : 129 Vote : 14
家(가), 家門(가문), 門中(문중)의 의미
家(가)란 사전을 찾아보면 여러 가지의 뜻이 있다. 첫째 “집, 가옥, 가정, 가족”을 뜻한다. 둘째 “호적에 등록된 친족의 한 단체”라고 정의하고 있다. 여기서 ‘친족’이란 촌수가 가까운 겨레붙이의 개념으로 배우자 및 8촌 이내의 부계 혈족을 뜻한다. 다시 말해 家(가)란 8촌 이내의 부계 혈족의 한 단체를 일컫는다. 셋째 “가문, 일족, 姓(성), 겨레붙이”를 뜻한다.
위의 사전적인 풀이를 바탕으로 좀 더 자세히 정리해 보면 家(가)란 첫째 사람이 사는 건물인 ‘집(가옥)’, 둘째 그 집에 사는 ‘가족’, 셋째 8촌 이내의 ‘친족’, 넷째 친족(8촌 이내)이 발전하여 10여 촌 내외의 친척이 이루는 ‘동족 마을 형태의 가문’, 다섯째 한 곳에 수백 년을 세거하며 20촌 내외의 친척들이 이루는 ‘집성촌 형태의 문중’, 여섯째 姓(성)과 本(본)이 같은 전국에 흩어져 사는 ‘일가친척 모두’라 풀이할 수 있다.
이 家(가)의 정의를 요약하면 협의의 家(집, 가족)가 있고 광의의 가문, 문중, 씨족이 있다. 이 家(가)자가 사용될 때 협의의 용어(집, 가족)를 뜻하는지 광의의 用語(용어), 즉 家門(가문), 문중, 씨족 중 어느 것을 뜻하는지 구분하기란 용이한 일이 아니다. 문맥이나 말하는 사람의 의도를 간파하여 어느 것인지를 가려야 한다.
家(협의의 가)는 가옥, 가족, 호주가 있는 사회의 가장 작은 집단이다. 家門(가문)은 가까운 일가들의 父祖(부조) 崇仰(숭앙) 조직이다. 할아버지를 기점으로 하여 위계가 중시되는 조직이다. 다시 말해 가문은 선조를 숭앙하는 일가들의 상하 조직체이다. 가문은 어른의 의견을 존중하는 가부장적 권위주의 조직이다. 가문은 종적인 흐름, 즉 수직 관계를 중시하는 조직이다.
‘가문’ ‘문중’이 사전에서는 같은 말로 취급되고 있다. 그러나 문중은 가문과 분명히 다른 뉘앙스가 있다. 문중은 개성이 있는 일가들이 모인 공동체이다. 문중은 원로나 존장이 있기는 하나 종원 다수의 힘이 무시되지 않는 일가들의 공동체다. 요즘으로 말하면 다수결의 민주주의 색채가 저변에 깔려 있는 조직이다. 공론이 중시되고 공중 질서가 확립되었으며 횡적 교류가 왕성한 조직이다.
문중은 가문과 대비했을 때 그 의미가 더 선명해 진다. 門中(문중)과 家門(가문)은 둘 다 門(문)자를 공통으로 사용하는 반면에 전자는 中(중)자를 쓰고 후자는 家(가)자를 쓰는 것이 다르다. 문중은 中(중)자에 특색이 있고 가문은 家(가)자에 특색이 있다. 中(중)자는 ‘가운데’를 뜻하며 ‘부합하다’ ‘합당하다’ ‘바르다’의 뜻을 두루 갖추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과불급이 없는 道(도)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 여기서 여러 사람의 의견을 절충하여 대중의 지혜로운 의견을 존중하는 일가들의 공동체로서 합당하고도 바른 의사 결정을 추구하는 경향을 갖고 있는 조직체이다. 문중은 가문이 발전하여 형성된 유림의 진보적인 단체이며 공론을 중시하고 공공성을 존중하는 유림들의 이상적인 조직이다.
家(가), 家門(가문), 門中(문중)을 상관관계를 살펴보면 그 뜻이 더 분명해진다. 家門(가문)은 家(가)와 門中(문중)의 특색을 함께 갖고 있다. 家(가), 家門(가문), 문중의 응용이다. 예컨대 名家(명가)와 名門(명문)은 동의어이지만 사용을 할 때는 엄연한 구분이 있어 그 둘을 마음대로 바꿔 사용할 수 없다. 다시 말해 호환작용이 자유롭지 않다. ‘서울 대학은 명문이다.’는 괜찮지만 ‘서울대학은 명가이다’는 좀 거슬린다. ‘김치의 명가’는 괜찮지만 ‘김치의 명문’은 어딘지 좀 어색하다.
내앞은 학봉 김성일 부친 청계 김진 가문의 집성촌 이름이다. 그 가문을 일컬어 내앞 家(가)라고 하면 아주 이상하게 들린다. 그렇게 부르는 사람이 없다. 창평은 제봉 고경명 가문의 집성촌 이름이다. 그 가문을 일컬어 창평가 家(가)라고 부르면 역시 어색하다. 전자의 내앞 家(가)를 내앞 문중, 후자의 창평 家(가)를 창평 문중이라 하면 자연스럽다. 그러나 김진 문중, 고경명 문중은 좀 어색하다. 의성김씨 문중, 장평고씨 문중이란 말은 자연스럽다. 문중은 누구 한 사람의 것이 아니기에 성명을 붙이지 아니 하고 지명이나 씨족 등 공동체의 이름 등을 붙여 사용할 때 그 표현이 자연스러워 진다.
家(가)자 앞에 지명을 붙여 부르는 것은 어색했지만 사람 성명을 붙이면 어떨까? 김성일 家(가), 김진 家(가), 고경명 家(가)는 가능하다고 본다. 가문 앞에 성명은 어떨까? 김성일 家門(가문), 김진 家門(가문), 고경명 家門(가문) 괜찮을 듯하다. 그러나 김성일 家(가)와 김성일 家門(가문)은 어감이 좀 다르다. 사전에서는 家(가)가 곧 家門(가문)이라고 하였으나 실지로 사용해 보면 색조가 좀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김성일 家(가)란 김성일의 근친, 즉 8촌 이내의 부계 혈족을 지칭하는 의미가 강하게 느껴진다. 김성일 家門(가문)은 김성일을 파조로 하여 400여 년간 내앞에서 세거해 온 의성김씨 일족을 지칭한다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진다. 혹자는 김성일 家(가)를 김성일 가문, 즉 내앞의 400년간 의성김씨 일족을 뜻한다고 강변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일반적으로 전자의 의미가 강한 것이 사실이고 그런 의미로 쓰였을 때 그 용어가 가장 자연스런 표현이 된다.
그러므로 家(가)는 김성일, 김진, 고경명 등의 주체가 있고 문중은 주체의식이 약하며 공동체 의식이 강하다. 家(가)는 ‘김치의 명가, 약주의 명가’ 등에서 보듯 ‘김치’ ‘약주’라는 대상이 분명하다. 그러나 ‘명문 서울 대학, 명문 하버드 대학’ 등에서 보듯 門(문)자가 들어가면 대상이 있되 그것이 분명치 않거나 모호하며 복합성을 띄게 된다. 서울 대학, 하버드 대학이라는 대상이 있지만 그것은 주체가 분명한 어느 하나가 아닌 총장, 교수, 학생 등으로 이루어진 복합체, 공동체일 뿐이다.
家門(가문)은 門中(문중)에 비하면 공동체 성격이 훨씬 약하고 협의의 家(가)에 가깝다. 家門(가문)은 家(가)에 비하면 협의의 家(가) 성격이 약하고 문중의 공동체 성격이 강하다.
가문은 기본형이고 문중은 발전형이다. 가문은 인간의 자궁이며 문중은 인물의 거푸집이다. 가문은 인간을 낳고 문중은 인물을 키운다. 가문은 문패가 있고 문중은 레테르(라벨)가 있다. 가문은 할아버지를 중시하고 문중은 상품명이나 제조처를 중시한다. 가문은 가내 결속을 우선으로 하지만 문중은 타문중과 교류를 더 중히 여긴다. 가문은 희생과 보은의 관계에 있지만 문중은 그 구성원이 경쟁관계에 있다. 문중과 가문은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表裏(표리)관계로서 영원한 한 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