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동물보호구역
신용목
도심 공원에서는 벤치에 누운
사람이 야생이고
건너 고깃집 야외식탁을 들러온 바람은
검은 냄새의 문명이다
빈 낙엽 한 장 누더기처럼 내려와
습성처럼 어깨를 덮는
빌딩 숲속서 나온 한 야생이 다른 야생을 깨워 삶은 계란 하나를 내밀고 캄캄한 동굴 속으로 흰 계란속이 허기를 몰고 떨어지고 동굴 밖에서 누런 계란껍질이 닭 대신 비둘기를 키워 공원을 사육하는
한 번에 한 개비씩 담배를 빌려가는 손과 얼룩의 세월이 반질하게 몸에 붙은 외투와 거기 문서처럼 꽂힌 신문지와 희멀거니 먼 데 걸어놓은 동공과 그러고도 한사코 불은 빌려가지 않는
빳빳한 머리카락이 푯말처럼 서 있는
*『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 (창비, 2007)
사람을 쬐다
유홍준
사람이란 그렇다
사람은 사람을 쬐어야지만 산다
독거가 어려운 것은 바로 이 때문, 사람이 사람을 쬘 수 없기 때문
그래서 오랫동안 사람을 쬐지 않으면 그 사람의 손등에 검버섯이 핀다 얼굴에 저승꽃이 핀다
인기척 없는 독거
노인의 집
군데군데 습기가 차고 곰팡이가 피었다
시멘트 마당 갈라진 틈새에 핀 이끼를 노인은 지팡이 끝으로 아무렇게나 긁어보다가 만다
냄새가 난다, 삭아
허름한 대문간에
다 늙은 할머니 한 사람 지팡이 내려놓고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 바라보고 있다 깊고 먼 눈빛으로 사람을 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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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경남 산청 출생. 1998년 ≪시와 반시≫로 등단
2005년 제1회 젊은 시인상 수상. 2009년 제1회 시작 문학상 수상
시집 『상가에 모인 구두들 』『 나는 웃는다』
첫댓글 좋은 시 잘 감상했습니다. [사람을 쬐다] 공감이 갑니다. 감사합니다.
즐감합니다. 시의 맛이... 톡톡...감사합니다. 늘..
또 배움을 한움큼 가지고 갑니다.^^
좋은 시 추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람은 사람을 쬐어야지만'... 사람을 쬐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