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증인의 지방회중의 장로가 되어 동경했던 임무 중 하나는 뛰어난 공개강연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봉사의 종 시절에도 공개강연을 안한것은 아니지만, 장로가 하는 공개강연과는 회중성원들의 인식자체가 다른 것이지요.
45분간 두 쪽의 골자만을 가지고 준비하기에 나름 창의적인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어 개인적으로 퍽 맘에 드는 일이었습니다. 증인조직에는 뛰어난 공개강연자가 많습니다. 지방회중에도 간혹 있지만 대다수 순회감독자들은 뛰어난 언변을 자랑합니다. 물론 타고난 언변도 있겠지만 꾸준하고 치밀한 개인연구를 바탕으로 탄탄한 기승전결을 유지하고 목소리의 강약, 청중과의 호흡, 적절한 비유나 경험담을 통해 청중들을 사로잡습니다. 수 년간 신권전도학교를 통해 지침서의 내용만 잘 숙지하고 훈련한다면 어느 정도는 달변의 연사가 될 수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지침서는 연설능력을 키우는데 상당히 좋은 교재인 것이 틀림없습니다.
제가 들은 공개강연들 중 인상적인 내용들이 있습니다.
25년전 벧엘장로였던 김인복씨가 공개강연에서 한 [신권적 전략]에 관한 연설은 당시 학구열에 불탔던 20대의 저에게 강한 호기심을 일으켰습니다. 다윗이 미친 척을 하고 아브라함이 아내를 부인한 사건들은 사기나 거짓말이 아니라 하느님의 일을 완성키 위한 신권적 전략이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위에 있는 권세로부터 신권사업을 방해받을 때 지혜롭게 행동해야 한다, 알 필요가 없는 사람들에게 사실을 숨기는 것은 거짓말이 아니다...라는 논조였죠. 제법 설득력이 있어 보였습니다.
신당동 벧엘사무실의 장로였던 전재관 씨의 마태 24장의 끝의 희랍어 해설 즉 찰나적 끝(텔로스)과 장기간적 끝(신텔레이아)에 관한 강연도 상당히 매력적이었습니다. 신세계에 대한 열망을 구체화하는 계기가 되었죠.
탈 증인을 하기 몇 해 전 순회감독자 안재성씨로부터 들은 [상대적 개념과 절대적 개념]에 대한 내용도 제 사고를 흔들어 놓았습니다. 어떤 사상이 절대적 지위를 차지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만들었죠. 성서는 절대적이지만, 성서에 대한 해설은 어떤 검증을 거쳐 절대적 지위로 올라갈 수 있을까에 대한 문제는 쉽지 않은 문제였습니다.
흥미롭게도 공산권 특히 북한과 같은 폐쇄적인 나라에서도 어릴 적부터 웅변이나 연설을 상당히 강조하여 교육합니다. 우리는 흔히 보도를 통해 웅변조의 막힘없는 인터뷰를 하는 북한주민이나 어린이들을 볼 수 있습니다. 증인시절에는 간과했던 사실이지만, 이러한 연설능력과 논리력은 별개의 문제였습니다. 특정사안에 대해 찬반자료를 비교분석하고 논리적으로 결론을 도출하는 능력은 웅변의 기교가 아니라 자유로운 사고와 선입견없는 연구능력과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제가 이런 출판물논조를 극대화하는 연설능력이 아니라 논리력에 중점을 둔 개인연구를 진작부터 하였다면, 좀 더 빠른 탈증인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또한 출판물에서 발췌한 세상 서적들의 근거들에 대해 직접 해당도서들을 찾아 보는 노력을 몇 번만 했더라도 워치타워가 얼마나 편협적이고 부분적인 발췌를 하며 본질을 왜곡하고 합리화하는 방법을 쓰는지 벌써 알았을 것입니다
JW조직은 출판물간의 비교분석이나 성서와의 대조는 강조하지만, 어느 곳에도 다른 논조의 종교출판물이나 증인비판물을 참고하여 연구하라는 표현은 쓰지 않습니다. 학문이나 연구란 바로 이런 선입견없이 찬반자료를 비교분석하는 일이 기본이 되어야 함에도 말입니다. 특정한 방향으로만 사고하고 연설하라는 말이나 진배가 없습니다. 북한정권이 공산주의 비판서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지향적 매체를 금지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겠지요.
당연히 컬트종교나 독재정권에서 연설능력을 키우는 것은 다른 사람의 사상이나 출판물의 논조를 극대화하는데 촛점이 맞추어집니다. 청중을 집단최면의 상태로 이끌기 위해서는 탁월한 연설능력이 필요합니다. 히틀러나 김일성이 청중을 사로잡는 달변가였다는 사실이 이와 관련이 있겠지요.
지금은 인터넷을 통한 정보의 홍수시대입니다. 사람을 만나지 않아도 다양한 매체로 특정사상을 얼마든지 조사할 수 있습니다. 과거처럼 현란한 워치타워 연사들의 연설에 고개를 연신 끄덕이고 방향이 정해진 개인연구만을 거듭하는 영구동토층의 증인맹종자들이 적어지고 있는 이유입니다. 아무리 통치체가 반대자들과의 교제를 막아도 몰래 켜진 모니터로 불손?한 정보를 접하는 증인청년들의 눈까지 감시할 수는 없겠지요. 종교의 대물림 정도로나 침례수가 발생하고 야외봉사에서는 가뭄에 콩 나듯 관심자가 나오는 현실, 내면의 고통으로 무활동과 비정규를 선택하는 무리들....JW공개강연의 위력은 숨을 죽이고 있습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기억나는 공개강연이 있습니다. 아마 20년도 넘은 것 같습니다. "시간을 내어 영적인 것을 묵상함" - 김낙정(벧엘 번역부 장로) 십대 후반 영어공부에 한참 빠져있을 때 지방회중에 방문한 벧엘 번역부 장로의 연설은 감동적이었죠. 봉사의 종이 되서 꼭 저 연설을 해 보리라 맘 먹었습니다. 저도 몇 번 공개강연을 한 기억이 나네요. 그 때도 골자에 없는 내용을 많이 섞어서 충고를 받았던 기억도 납니다.ㅋㅋ
연설을 잘하는것보다 중요한것은 좋은 내용의 연설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워타조직의 지도자급 상층부를 포함하여 어느 누구도 통치체에서 정해준 골자를 벗어난 연설내용을 작성할 자유를 가진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연설은 자신의 마음을 담은 진정한 것이 결코 될 수 없으며 조직의 선전도구에 불과할 뿐입니다. 여증의 연설과 북한사람들의 연설은 천편일률적이며 다양성과 개성이 없습니다. 그들은 개성을 배척하며 조직에 위험한것으로 간주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만물을 창조하실때에 다양성과 개성을 존중하시며 그것을 아름답게 보십니다. 그러한 다양성과 개성을 말살하는 조직을 하느님께서 어떻게 보실까요?
@한울타리글쎄요 한정된 곳에서 그런 일이 있었는지 모르나 다른곳 일반적으로 말하기는 아닌것 같습니다 대표기도의 시간 내용 중요성을 강조할 순 있어도 미리 기도문을 작성하고 검사받고 기도한다는것은 상상이 안되는군요 대회기도 경험자들은 동의안할겁니다 저의 경험도 그렇습니다 미리 작성된 기도문은 기도가 아닌거죠 만약 일부에서 한정된 시기에 그랬다면 입 다물지 못할 일이고 형제들 사이 알려지게 됩니다 지역대회기도를 검열할 장로라면 대회사회자 대회프로그램감독자일텐데 그럴리가... 기도를 검열 당할 수준의 장로가 대표기도를 임명받았다는거군요.???
기도검열에 대해서는 약간의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지역대회와 순회대회에서 연단도 올라가 보고 자진봉사도 해보았지만, 전면적인 기도검열은 없었습니다. 20여년전 서울19순회대회에서 아는 장로형제가 자기 기도에 도취되어 20분 정도 기도를 해버리는 바람에 순회대회장이 발칵 뒤집힌 적이 있지요. 그 이후에 시간 조절에 대해 주의를 주는 경우는 보았지만, 기도검열이라는 명목으로 사전에 내용을 내고 검사받는 것은 없었습니다. 기도란 즉흥연설의 일종이고 골자가 없기 때문이며 문서를 보고 하는 기도는 없는것으로 압니다만..
첫댓글 올만에 보는 공강 골자네여^^
저도 개인적으로 기억나는 공개강연이 있습니다.
아마 20년도 넘은 것 같습니다.
"시간을 내어 영적인 것을 묵상함" - 김낙정(벧엘 번역부 장로)
십대 후반 영어공부에 한참 빠져있을 때 지방회중에 방문한 벧엘 번역부 장로의 연설은 감동적이었죠.
봉사의 종이 되서 꼭 저 연설을 해 보리라 맘 먹었습니다.
저도 몇 번 공개강연을 한 기억이 나네요.
그 때도 골자에 없는 내용을 많이 섞어서 충고를 받았던 기억도 납니다.ㅋㅋ
김낙정? 중립동료인데 ... 수년전 특파로 좌천 -_-
김낙정 맞는것 같아요.
좌천된 것도 들었습니다.
구조조정이라고 하던데.
한 번 뵙고 싶네요.
자리 한 번 만들어 주세요.
퇴계원쪽에 계시다고 들었는데, 장호원인가?
연설을 잘하는것보다 중요한것은 좋은 내용의 연설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워타조직의 지도자급 상층부를 포함하여 어느 누구도 통치체에서 정해준 골자를 벗어난 연설내용을 작성할 자유를 가진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연설은 자신의 마음을 담은 진정한 것이 결코 될 수 없으며 조직의 선전도구에 불과할 뿐입니다. 여증의 연설과 북한사람들의 연설은 천편일률적이며 다양성과 개성이 없습니다. 그들은 개성을 배척하며 조직에 위험한것으로 간주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만물을 창조하실때에 다양성과 개성을 존중하시며 그것을 아름답게 보십니다. 그러한 다양성과 개성을 말살하는 조직을 하느님께서 어떻게 보실까요?
허허...
그래도 최근에는
대회중 기도는 사전검열(?)을 안거친다고 하더군요...
해서 대회기간중 너무 길어진 기도탓에 3층에 있던 노약자들이 다수 어지러움증을 걲었다는 풍문이....
기도검열이라....그런게 있었나요?
제 경험으로는 없었는데...시간제약을 약간 시킨 적은 있습니다만,..
지역대회때..일부 형제들에게.. 기도를 사전에 적어서 제출하도록 하여 확인받는 경우가 종종있었습니다.
@한울타리 글쎄요 한정된 곳에서 그런 일이 있었는지 모르나 다른곳 일반적으로 말하기는 아닌것 같습니다
대표기도의 시간 내용 중요성을 강조할 순 있어도 미리 기도문을 작성하고 검사받고 기도한다는것은 상상이 안되는군요 대회기도 경험자들은 동의안할겁니다 저의 경험도 그렇습니다 미리 작성된 기도문은 기도가 아닌거죠 만약 일부에서 한정된 시기에 그랬다면 입 다물지 못할 일이고 형제들 사이 알려지게 됩니다 지역대회기도를 검열할 장로라면 대회사회자 대회프로그램감독자일텐데 그럴리가... 기도를 검열 당할 수준의 장로가 대표기도를 임명받았다는거군요.???
전부는 아니었는데 일부 장로들이 기도할 내용을 적어서 읽는 기도를 하는 경우가 종종있었습니다(가끔 기도하다가 긴장해서 말문이 막히는거 때문에)
그래서 가끔 확인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기도검열이란 무슨내용의 기도를 할 것인지 미리 알리는 것을 말합니까?
글쎄요 그런건 없는데요...
사전 준비라는 명목으로 많은 검열이 행해지죠. 안타까운 일.
기도검열에 대해서는 약간의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지역대회와 순회대회에서 연단도 올라가 보고 자진봉사도 해보았지만, 전면적인 기도검열은 없었습니다. 20여년전 서울19순회대회에서 아는 장로형제가 자기 기도에 도취되어 20분 정도 기도를 해버리는 바람에 순회대회장이 발칵 뒤집힌 적이 있지요. 그 이후에 시간 조절에 대해 주의를 주는 경우는 보았지만, 기도검열이라는 명목으로 사전에 내용을 내고 검사받는 것은 없었습니다. 기도란 즉흥연설의 일종이고 골자가 없기 때문이며 문서를 보고 하는 기도는 없는것으로 압니다만..
이제는 다른 회중으로 강연을 다니지 않아서 편하군요.교통비 받는것도 부담이였는데. .
대회때의 기도내용이 이해되지 않아 아멘이라고 외치기가 부끄러운기도를 볼때 검열은 하지 않은것 같으나 신중하게 임명하는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