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기
2010년 9월 23일 아침 9시에 한국학중앙연구원 좋은 인연 앞에서 청계산을 등반한다는 이야기를 엊저녁에 민경수군( 字 君實)으로부터 듣고 날이 좋으면 참가하겠다고 했다. 밤 11시에 일찍 잠자리를 들기 전에 일기예보를 들었다. 2시 30분에 잠이 깨어 밖을 내다보니 비가 올 것 같지는 않았다. 7시 40분에 집을 나섰다. 내가 1착으로 도착을 했다. 곧 이어 민군실군이 도착을 했고, 신종원 교수, 박은주 여사, 그리고 처음 뵙는 이병덕 사장을 만나 인사를 했다. 간다고 했던 외국인 대학원생들은 연락이 되지 않아 10분을 기다리다가 출발을 했다. 우리는 청계사 아래의 주차장에 이 사장의 차를 세워두고 청계사로 올라 이수봉, 국사봉을 돌아오는 코스로 등산하기로 합의를 보고 그대로 시행했다. 청계사에 들러 맑은 샘물을 한 모금씩 마시고, 와불이 있는 곳을 거쳐 이수봉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지난 가을 충주 월악산에 갔다가 허벅지에서 쥐가 나서 등산을 포기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이 번 등산도 내심 나 자신의 건강을 체크하는 계기로 삼고 갔다. 이수봉에 도착하기 전 헬기장 근처에 중간 쉼터를 잡고 간식을 나눠 먹었다. 간식을 먹는 동안 이병덕 사장이 우리나라 화폐에 나오는 인물이 모두 이씨라는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자유당 때의 이승만 사진, 세종대왕, 율곡 이이, 퇴계 이황 모두 성이 이씨여서 신사임당 사진을 오만원권에 넣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보니 허튼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았다. 민군실 군은 이순신도 셋째 아들이었고, 역사상 유명한 사람이 셋째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나와 자기도 그렇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타당한 이야기라고는 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이 사장은 자기가 막내여서 막내가 당하는 불리한 조건도 이야기 했다. 이런 이야기의 발단은 내가 KBS, TV 방송에 나온 11명의 자식을 두었다는 이야기와 9명의 자식을 두었다는 이야기에서 시작되어 우리나라가 곧 고령화사회가 될 것이며, 젊은이 중 4명 3명이 결혼을 포기한다는 이야기 등 출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온 이이야기였다.
그리고 우리는 이수봉 정상에 오르니 “자연사랑은 후손에게 물려줄 유산입니다”라는 돌에 새긴 구절을 보고 나는 탄천 가에 써 붙인 휘장이 “탄천은 후손에게 잠간 빌려온 것입니다”라는 표현을 문제 삼아 성남시장에게 그 휘장을 제거하기를 요구하는 민원서류를 냈다가 엉뚱한 답변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하며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국사봉까지 우리는 그리 어렵지 않게 올라왔다. 오는 도중에 7줄기로 뻗은 갈참나무를 보고 사진을 찍었다. 이는 한자로 표현한다면 칠지력(七枝역)이라고나 할 까 ? 오늘은 하늘은 아주 청명하여 가시거리가 20Km를 넘어 40 km 떨어진 인천의 영종도 육교가 보였고, 수리봉, 북악산이 보여 이를 사진으로 찍었다. 산의 정상에 오른 기분을 최고조로 만끽할 수 있었다. 오늘의 산행은 천시와 지리 그리고 인화를 모두 얻었다고 할 수 있다. 민군과 나는 다른 약속이 있어 연구원 쪽으로 내려오는 길을 택했다. 둘이서 인간이 살아가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며 내려왔다.
이수봉 정상에서
국사본정상에서 북악이 멀리 보이고 있다.
멀리 영종도로 가는 인천대교가 보이고 있다. 국사봉에서 서쪽으로
참나무 가지가 7개나 뻗은 것은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청계산 길은 내가 이미 여러 차례 등산한 코스였고, 흙이 많아서 관악산 등산과는 대조적으로 정겨운 산이었다. 10Km의 등산로를 등산 스틱도 없이 주파한 생각을 하니 등산도 마음 먹기에 달린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일체 유심조라는 말은 함부로 쓰는 말이 아니다. 이런 등산에 함부로 써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했다. 하루의 즐거운 산행을 마치고 청계산 손두부 집에 와서 순두부 식사를 했다. 15-6년전 어머님을 모셨던 기분을 회상하면서 맛있게 먹었다. 안주인이 우리 고향인 부여의 규암분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더욱 정감이 갔다.
첫댓글 쾌청한 날씨의 개운한 산행만큼이나 사진도 잘 나왔군요.산행기도 잘 읽었습니다. 바라기는 더욱 연부역강(年富力强)하시어 수와 기력은 미수(眉叟)와 번암(樊巖) 상공에 필적하고 그에 부응하는 유산기(游山記)도 많이 남겨주시기를 앙청고대하나이다.
비교의 대상이 너무나 어려운 분들을 들고 있습니다. 지금 생각으로는 어느 것 하나 그분들에게 언감생심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선생님, 등산기 잘 읽었습니다. 어제 저는 시골에서 밤 늦게 서울에 도착하여 전화 주신 것을 인지하지 못하였습니다. 이렇게 청명한 가을날 선생님 모시고 산행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서 아쉬움이 큽니다. 다음 기회에 불러 주시면 꼭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김선생의 생각이 나서 전화를 걸어본 것입니다. 오랜 만입니다. 바쁘시지요. 즐거운 추석을 보냈을 것으로 믿습니다. 건승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