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이레Jehovah-jireh / 자연벗
하나님은 창조역사의 기뻐하심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세기 1:31]>
을 결코 잊지 않으시고 당신의 백성을 염려하여 준비하시는 역사歷史로
영혼 구원의 관리와 취급取扱을 해 나가시는 분입니다.
그리하여 더 좋은 소망으로 채워주시고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사람의 순종(선善)을 기대 하셨던 하나님은 불순종(악惡)에 빠진 사람을
하나님의 동산에서 세상으로 쫓아내시기에 이릅니다.
뱀(사탄Satan)의 간계에 빠져 선악과를 따먹었으므로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때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뱀에게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세기 3:15]>
하셨는데, 여기서 뱀은 사탄Satan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대적자對敵者란 뜻으로 인류 역사 내내 하나님의 사람을 타락의 늪에
몰아넣는 악한 세력을 뜻합니다.
여기서는 사탄을 동물(뱀)로 비유하고 있지만 사탄은 사람이거나,
사람의 탈을 쓸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사람을 꾀이며, 하나님을 대적 할 테니까요.
사실 악한사람만큼 악하고, 잔인한 사람만큼 잔인한 동물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마태복음 3:7]>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마음속에 보이지 않게 침입하여 우리의
마음에 악한 생각을 만들게 하고 우리를 타락의 늪으로 몰아가려합니다.
위에 말씀을 통하여 알 수 있듯이 이세상은 사탄의 세력과 여호와
하나님의 세력으로 나뉘어 다니엘 예언서 12장의 <끝날>까지,
요한계시록의 <사탄의 패망>까지 싸울 것을 예고하고 있으며, 여기서
말씀하신 <네 머리를 상하게 할 여자의 후손>이란 동정녀童貞女로
태어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한 것이며, 이 사탄의 세력은 인류의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을 모함하여 죄가 없음에도 그를 십자기에 못
박아 발꿈치를 상하게 하고 죽음에 이르게 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그를 부활復活로 사망권세에서 일으켜 세우시고, 잠시 하늘에 계셔
재림을 통한 영원한 승리를 예고하고 있음을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알 수 있듯이 예수님을 우리에게 새로운 소망으로 보내심에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에게 영생할 길을 열어 놓으심으로 여호와이레
Jehovah-jireh 하나님이심을 나타내고 계십니다.
에덴동산Garden of Eden은 야훼동산, 하나님의 동산이란 뜻입니다.
에스겔도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스겔 28:13]>이라 쓰고 있습니다.
이 동산에서 사람을 세상으로 내어 쫓으실 때부터 하나님은 인류의
장래를 준비하셨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선악나무>와 <생명나무>를 동산에 두어 사람의 순종을 시험하시기
이전부터 이미 모든 준비(여호와이레Jehovah-jireh)가 계셨음을
<선악나무>와 <생명나무>를 동산에 두어 사람의 순종을 시험하신
것으로 미루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 준비가 없으셨다면 <선악나무>와 <생명나무>를 동산에 두실
필요도, 사람의 순종을 시험하실 필요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5장에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창세기 15:1]>
임을 자청 하시며, 자기 종을 상속자로 아뢰는 아브람에게 하늘의 뭇
별과 같이 네 자손이 많을 것을 예고하시며,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될 것을 약속하심에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기고[창세기 15:6]>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창세기 15:13]>하십니다.
(이 말씀도 창세기:37장~출애굽기:14장을 통하여 여호와이레
Jehovah-jireh가 성립합니다.)
이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언약을 세우심에 아브람의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창세기 15:8]>하는
물음에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올지니라[창세기 15:9]>하신
것은 당시 중근동 지역에서 계약 당사자 간 계약이행체결 행위로써
희생짐승 벌려놓고 그사이를 지나가는 의식이란 계약쌍방 누구든지
계약을 깨뜨리면 짐승처럼 죽음을 상징하는 엄숙한 서약 행위였으며,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창세기 15:17]>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사이로
지나심을 보여주신 것으로 굳건하신 여호와이레Jehovah-jireh성취를
아브람에 예고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분명히 짚어야할 대목이 있습니다.
창세기11장 말미에 보면 데라의 족보가 소개 되고 있으며,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기 전에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창세기 11:31]>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이때는 분명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기 전이었으며, 무슨
이유에선지 데라가 그 가족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기위해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이미 하란에 이르렀으며, 데라가 그곳 하란에서
죽었을 때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들이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함을 아시고
아브람의 애비 데라가 하란에서 죽었을 때 아브람에게 이르셨다는 것에
주목해야합니다.
성경에 그들이 왜 고향을 떠났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으므로
그들의 목표는 <가나안 땅>이였고 이미 하란이란 땅에 도착하여 잠시
거류를 했다는 점에서 볼 때 <가나안 땅(하나님의 뜻)>에
<가고자(데라와 아브람의 행함)>의 의미에서 풀어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시가 있기 전에, 이미 목표를 향해 가고(잠시 거류) 있는
그에게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세기 12:1]>하신
것은 매우 의미심장함을 내포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가나안 땅(하나님의 뜻)>을 향해 <가고자(행함)>하는
사람에게 여호와 하나님은 그런 사람의 마음속을 아시고 그런 사람에게
이르시며, 여호와이레Jehovah-jireh하심을 깊이 알아야 하며, 우리도
영적인 할례(이면적 유대인이 되어 마음의 할례를 통하여 영에 있는
[로마서 2:29])를 통하여 우리의 죄와 과거 잘못을 떠나가게 함
[여호수아 5:9]을 입어 가나안 땅(예수 안에 거함)에 입성해야 합니다.
창세기22장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경외함과 믿음과 순종이 어느
정도인지 시험하시려고 백세 때 주신 귀한 아들이삭을 번제도 드리라
하십니다.
이는 사람생각과 상식을 초월하는 엄청나게 어려운 난제임에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아브라함은 주저하지 않고 번뇌하지 않고 아들이삭을
번제물로 드릴 것을 결심하고 실행합니다.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제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가져다가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창세기 22:3~10]>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창세기 22:13]>
여기에서 번제에 쓸 쪼갠 나무는 2000년 후 십자가의 예표이고,
제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곳멀리 바라본 것은 현시점에서
2000년 후에 예수님의 사흘만의 부활하심을 바라다본 것이며,
종들에게 기다리라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한 약속함은 예수 재림의
약속이며, 번제나무를 가져다가 그의 아들이삭에게 지운 것은 장차
예수님이 지고가실 고행의 십자가 지심을 예표하고 있으며, 번제에 쓸
희생제물 어린양은 예수님을 예표 하니 종내에는 예수님의 재림으로
하나님의 사람들의 구원하실, 아직은 진행 중인 여호와이레
Jehovah-jireh의 예표입니다.
이삭이 리브가를 아내로 삼은 것도,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버지의 집과 내 고향 땅에서 떠나게 하시고 내게 말씀하시며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가
그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실지라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지니라[창세기 24:7]하는 말씀으로 미루어 볼 때
여호와이레Jehovah-jireh를 하신 것입니다.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간 것도 창세기 15:13에서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언약을 세우신 것을 이루시려고 준비하신 것이며,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된 것도, 야곱 가족이 애굽으로 내려간 것도 모두가
여호와이레Jehovah-jireh입니다.
이같이 성경 역사를 보면 모든 장면 장면이 당신의 백성을 염려하여
여호와이레Jehovah-jireh임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고작 아브라함을 위하여 이삭을 대신한 숫양 한마를 준비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창조역사의 기뻐하심<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세기 1:31]>을 결코 잊지 않으시고
당신의 백성을 염려하여 준비하시는 역사歷史로 영혼 구원의 관리와
취급取扱을 해 나가시는 분입니다.
그리하여 더 좋은 소망으로 채워주시고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준비하심의 궁극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하나님의 백성)의 영혼 구원을 원해서입니다.
여호와이레Jehovah-jireh는 그것을 아는 사람의 축복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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