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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공동체와 레지오 마리애의 신학적인 자리매김 차동엽 신부 (인천교구사목연구소장/인천가톨릭대학 사목신학교수) | ||||||||||||||||||||||||||||||||||||||||||||||||||||||||||||||||||||||||||||||||||
Ⅰ. 서론 Ⅱ. 성찰 기준으로서 조직론 1. 조직론 2. 조직론적 판별 준거
1958년 경기도 화성 출생 1955년 서울 가톨릭 대학교 신학부 졸업 1991년 오스트리아 비인대학 성서신학 석사학위 1991년 사제 수품 1996년 오스트리아 비대학 사목신학 박사학위 1997년 인천 강화본당 주임 1997년부터 인천교구 가톨릭 대학교 교수 1999년 7월 인천교구 고촌본당 주임 2001년 2월 인천교구 사목연구소 소장 저서 : 공동체 사목 기초(소공동체 원리와 방법)2001 소공동체 기초 교실(교회 일꾼 학습용) 2001 역서 : "어른들은 바보예요" 생활성서사 1994 | ||||||||||||||||||||||||||||||||||||||||||||||||||||||||||||||||||||||||||||||||||
소공동체와 레지오 마리애는 한국 천주교회에서 가장 비중 있는 교회 조직으로서 공존하고 있다. 오늘날 한국 천주교회에서 이 두 가지가 없는 본당 사목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근자에 들어와서 이 양자의 관계에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조직, 구성원, 회합 시간 등의 면에서 서로 간섭하거나 충돌하거나 경합을 벌이는 일들이 드물지 않게 일어났던 것이다.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여러 가지 접근과 처방이 도모되었으나 양자를 동시에 만족시켜줄 만큼 시원스런 방안은 아직까지 제시되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러한 사정을 배경으로 하여 '소공동체와 레지오 마리애의 신학적 자리매김'이라는 결코 만만치 않은 과제를 수행함에 있어서 필자(논자)는 철저하게 '소공동체와 레지오 마리애의 신학적 자리매김'이라는 논점에 머물고자 한다. 따라서 실제 본당에서 모색되고 있는 다양한 처방들, 곧 현실적인 고민들은 일단 괄호 안에 묶어두기로 한다. 즉, '신학적 자리매김'이라는 과제를 풀어야 하는 본 고찰은 철저히 이론적인 담론의 성격을 띨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들어간다. 보다 정확히 말해서 '신학적 자리매김'이라기 보다는 '신학적·사회학적 자리매김'이라는 표현이 더 옳을 것이다. 왜냐하면 학문적으로 이 문제는 사회학의 조직론에 밀접히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소공동체와 레지오 마리애라는 조직 개념이 신학적 함의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신학적'이라는 관형어는 그대로 유효하다 할 것이다. 따라서 일단 전체적인 접근법으로서 우리는 '신학적·사회학적' 이라는 테두리를 전제하고 들어가기로 한다. 고찰의 객관성과 학문성을 담보 받기 위하여 다음의 과정을 거칠 것이다. 첫째, 사회학에서 거론되고 있는 조직이론들을 일별하면서 소공동체와 레지오 마리애를 조직적인 면에서 자리매김해 줄 수 있는 판별 준거를 추출할 것이다. 둘째, 앞에서 추출된 판별 기준들에 상응하는 소공동체 및 레지오 마리애의 특성들을 가려낼 것이다. 셋째, 첫 번째와 두 번째 작업의 결과를 상응 관련시킴으로써 소공동체와 레지오 마리애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밝힐 것이다. 이를 토대로 이 양자의 바람직한 관계 모색을 위한 원론적인 방안을 제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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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직론 사회집단 및 조직의 분류는 사회학자들에 따라 다양한 관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구성원의 결합 의지에 따른 퇴니스(T nnies)의 분류, 구성원의 접촉방식에 따른 쿨리(Cooley)의 분류, 구성원의 공통 관심에 따른 매키버(MacIver)의 분류, 구성원의 소속감에 따른 섬너(Sumner)의 분류, 조직의 주요 목표에 따른 에치오니(Etzioni)의 분류 등이 있다. 다음의 (표 1)은 그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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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표를 훑어보면 금새 퇴니스, 쿨리, 매키버의 분류 사이에 어떤 보이지 않는 중첩(overlapping)이 있지만 그밖의 섬너와 에치오니의 분류법은 이들과는 상당한 차별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앞의 세 학자들의 견해에 주목하면서 성찰의 실마리를 풀어가고자 한다. 그들의 이론을 일별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퇴니스는 『게마인샤프트와 게젤샤프트』(Gemeinschaft und Gesellschaft, 1887)에서 인간의 의지를‘본질의지'(자연적 의지)와‘선택의지'(합리적 의지)로 구분하면서 이 두 의지에 상응하는 실재적·유기적인 게마인샤프트와 관념적·기계적인 게젤샤프트라고 하는 사회적인 범주를 제시하였다. 게마인샤프트[Gemeinschaft: 공동사회(共同社會)]란 본질의지(本質意志: Wesenswille)에 기초한 전인격적(全人格的) 결합체를 의미한다. 본질의지란 사고작용보다 의지의 작용이 지배적인 것으로서 실제적으로는 공감(共感), 습관 등으로 나타나고 그 복합적·사회적 형태는 일체성(一體性), 관습, 종교 등으로 구체화된다. 이와 같은 본질의지에 따른 사람들의 결합관계는 감정적이고 매우 긴밀하다. 감정의 대립이나 증오와 같은 분리적 요소를 가지면서도 본질적으로는 사람들이 항상 결합해 있는 사회를 게마인샤프트라고 말하는 이유도 바로 그 점에 있다. 게젤샤프트[Gesellschaft: 이익사회(利益社會)]란 선택의지(選擇意志:K rwille)에 기초한 수단적·일면적(一面的) 결합체를 의미한다. 선택의지란 사고작용이 지배적으로 작용하여 의지작용을 포함하고 있는 의지를 말하며, 실제적으로는 타산, 의식성(意識性) 등으로 나타나고, 또 복합적·사회적 형태는 협약(協約), 정치, 여론 등으로 구체화된다. 이러한 선택의지에 따른 사람들의 결합관계는 관심이 일치하는 데가 있고 등가(等價)의 교환이 전제가 되는 경우에만 성립한다. 게젤샤프트가 합리적·계약적 성질을 가지고 여러 결합요소를 지니면서도 본질적으로는 사람들이 항상 분리되어 있는 사회라고 여겨지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남이 일정한 범위를 넘어서 자기 영역에 들어서는 것을 거부하고, 이성적 자유를 보유하면서 생활을 영위하는 게젤샤프트는 근대사회에서 게마인샤프트 시대 다음으로 성립하지만 이는 항상 사람들 사이에 긴장관계를 만들어내고, 개인의 원자화와 소외를 초래하기도 한다. 둘째로 쿨리는『인간본성과 사회질서』(Human Nature and Social Order, 1902)에서 구성원들간의 접촉방식에 따라 1차집단(primary group)과 2차집단(secondary group)으로 분류하였다. 1차집단은 대면적(對面的:face to face) 접촉에 따른 친밀한 결합이 있는 집단으로서 구성원들은 심리적으로‘우리'라는 단어로 표시되는 강한 공속감(共屬感), 일체감(一體感), 친밀감을 공유(共有)한다. 이는 자발적이고 무의식적으로 형성된 집단으로서 가족, 어린이들의 놀이집단, 이웃, 동료 등이 이에 속한다. 1차집단은 규모가 비교적 작으며 성원들이 상호 인접해 있고 성원들의 관계가 지속적일 때 성립된다. 이같은 집단의 구조적인 특성이 어린이의 사회성(social nature)이나 이상(사랑, 봉사, 자기희생, 페어플레이 정신, 자유와 시민적 정의 등의 관념)을 형성한다. 1차집단은 규범, 가치, 상징 등을 성원에게 학습시키는 일종의 배움터로서 문화를 전수하는 기능을 한다. 성인이 된 후에도 정서적 만족을 누릴 수 있는 토대가 되어 사회적인 인간관계를 강화·안정시키는 기능을 다한다는 점에서 1차적인 중요성을 가진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의 근대화·도시화와 함께 1차 집단의 인간관계는 구조적으로 보다 광범한 규모의 인간관계 속에 확산되어 중요기능이 차차 쇠퇴하고 있다. 최근에는 거대한 사회조직 속의 소집단(클럽·동아리·그룹 등)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1차 집단적 구조나 기능을 분석해내려는 시도가 지배적인데, 후에 쿨리도 이러한 집단을 의사적(擬似的) 1차 집단(pseudo primary group)으로 분류하였다. 이에 반해 2차집단은, 특정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그 목표의 달성을 위해 인위적으로 만든 집단으로서 성원간의 관계가 공식적(formal), 비인격적(impersonal), 분절적(segmental), 도구적(instrumental)이다. 쿨리는 사회계급, 국민사회, 지역집단, 많은 관심집단 및 이해집단, 연령이나 성(性)에 의한 집단, 군중과 같은 일시적 집단 등을 2차집단의 유형으로 분류하였다. 2차집단의 지배적인 추세는 1차집단이 가지는 인간감정이나 사회기능의 쇠퇴를 의미하지만, 반대급부로 근대생활을 영위함에 있어서 피할 수 없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한 집단은 1차집단과 2차집단의 성격을 모두 가질 수 있으나 집단에 따라서 어느 한쪽의 성격이 강한 경우가 보통이다. 셋째로 매키버는 『커뮤니티론』(Community, 1917)에서 조직을 구성원의 공통관심에 따라 공동체(community)와 결사체(association)로 분류한다. 공동체의 개념에는 영토적인 공간, 개인간의 긴밀한 친숙함과 접촉 그리고 이것을 인근집단과 구별시켜 주는 특별한 통합적 기반 등의 특성이 포괄되어 있다. 즉, 같은 지리적 지역 내에서 상호 연관된 여러 가지 기능을 수행함으로써 그 성원들의 최소한의 기본 생물학적 내지 사회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여러 상호의존적인 사람들의 자기충족적인 결사체라고 할 수 있다. 공동체 성원들은 같은 지역에서 긴밀하게 얼굴을 맞대고 상호작용을 하면서 일체감 또는 소속감을 갖게 된다는 특징이 있다. 공동체의 자급자족능력은 사회에 비해 훨씬 제한되어 있지만, 그 한계 내에서 보다 밀접한 관계와 깊은 상호이해를 갖고 있으며, 이 특수한 통합의 접착제로는 인종, 국적, 종교 등이 있다. 공동체는 어느 정도의 사회적 응집력으로 특징지어지는 사회생활의 지역 내에서 함께 생활하고, 함께 소속되고, 함께 나누는(living together, belonging together, sharing together) 공동체 의식을 가진 집단으로서 대표적으로 지역사회가 이에 속한다. 결사체는 특정한 관심을 추구하며 일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인위적·계획적으로 형성되는 집단이다. 한 두 가지의 특정관심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집단을 형성해서 서로 협력하고 그들의 목표를 추구할 때 결사체가 형성된다. 결사체는 그 종류도 다양하고 조직의 형태나 운영 방식도 일정하지 않지만 조직의 관심과 목표의 성격에 따라서 여러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소속원의 교양이나 취미 또는 친목에 관심을 두는 '친목집단', 소속원의 이익에 관심을 집중시키는 '이익집단',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돕기 위한 '사회봉사집단'이 있는가하면 국가사회적인 문제 해결이나 인류의 복지 또는 사회정의와 같은 사회적인 목표에 관심을 두는 '시민운동단체' 등이 있다. 결사체는 다음과 같은 몇가지 점에서 다른 조직체와 구별된다. ① 강제나 경제적·물리적 보상 때문이 아니라, 구성원 각자가 자발적으로 참여한다. ② 자발적 소속원들은 다른 조직체성원에 비하여 조직의 목표에 대한 신념이 뚜렷하고 조직 활동에도 애착을 가지고 열성적으로 참여하는 경향이 있다. ③ 전담 직원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구성원들이 생활의 일부분으로 가외 시간을 이용하여 참여한다. ④ 소속원의 자격이나 범위의 제한 조건이 까다롭지 않으며, 가입 의사가 있고 시간과 돈 그리고 노력을 많이 투여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운영되고 업무가 추진된다. ⑤ 소속원들의 지위와 역할 분담이나 위계서열이 엄격하지 않고, 구성원의 토론과 합의를 통하여 업무의 지속성이 유지된다. 이상의 고전적 조직 구분을 종합적으로 조망(眺望)할 때 우리는 조직을 크게 유사범주Ⅰ과 Ⅱ로 나눌 소지가 충분히 있음을 보게 된다. 즉, 공동집단(퇴니스), 1차집단(쿨리), 공동체(매키버)는 유사범주Ⅰ로, 이익집단(퇴니스), 2차집단(쿨리), 결사체(매키버)는 유사범주Ⅱ로 묶을 수 있겠다. 확실히 유사범주Ⅰ에 속하는 조직들 사이에는 공통 특성이 지배적인 가운데 다소의 분산요인들이 발견되고 유사범주 Ⅱ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 ||||||||||||||||||||||||||||||||||||||||||||||||||||||||||||||||||||||||||||||||||
이제 남은 절차는 조직의 판별 준거로서 특성 인자들을 추출해내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많은 변수들을 체계적으로 범주화하기 위하여 편의상 『한국사회와 개신교-종교사회학적 접근』에 제시된 다섯 가지 사회학적 준거를 원용하고자 한다. 그 다섯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준거는 인간적 준거이다. 이는 조직이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사실에 기초하며 그 집합적 전기(collective biography)가 자원(自願)적이냐 강제적이냐에 따라서 조직의 성격을 규정한다. 즉 어떤 인구학적·생태적 상황으로부터 어떤 상호작용이 '우리'를 형성하는가를 파악함으로써 인간관계의 특성을 분류해 낸다. 두 번째 준거는 신념적 준거이다. 이는 조직이 공동목표로서 추구하는 가치구조 또는 신념체계의 양상에 따라 조직의 성격을 규정해 주는 준거이다. 여기서는 어떤 가치이념이 사회화되어 신념노선 또는 이데올로기를 이루고 있는가 하는 것을 분별해내는 것이 중요하다. 즉 어떤 가치 체계가 집단의 정체성(group identity)을 이루고 있는가를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세 번째 준거는 문화적 준거이다. 이는 조직이 지향하는 핵심 가치를 어떤 문화적인 매체를 통하여 표현하고 구현하는가 하는지를 판별하여 조직유형을 구분하게 하는 준거이다. 여기서 관건이 되는 것은 상호소통의 근간을 이루는 언어와 상징이다. 네 번째 준거는 제도적 준거이다. 이는 조직이 어떤 제도적 규범 또는 장치에 의거하여 운용되는가에 관심을 모은다. 자율성, 계획성, 역할 분담, 조직체계 등의 정도와 양상에 따라서 한 조직의 성격을 규정하는 준거이다.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 준거는 도덕적 준거이다. 이는 어떤 도덕적 가치가 한 조직의 집단적 행위를 이끌고 공동체 구성원의 집합적 결속을 증대시키는 행동 규범으로 작용하는가 하는 데에 초점을 맞춘다. 이상의 다섯 가지 준거에 입각하여 앞에서 고찰한 퇴니스, 쿨리, 매키버의 조직론에서 명시적(explicit)으로 또는 비명시적(implicit)으로 언급된 특성들을 체계적으로 범주화하면 다음의 (표 2)와 같이 정리된다.
(상호 일치하는 특성은 ◎, 상호 유사한 특성은 ○, 관련성이 모호한 특성은 △로 표시한다) | ||||||||||||||||||||||||||||||||||||||||||||||||||||||||||||||||||||||||||||||||||
그렇다면 소공동체와 레지오는 어떤 조직론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는가? 앞에 진술된 내용들을 염두에 두고 양자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들을 종합분석하면서 상응하는 특성인자를 찾아내는 것이 당면한 과제이겠다. 먼저 소공동체의 특징요소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인간적 준거에 비추어 볼 때 소공동체는 '선택의지'(신앙의 선택)를 기조로 하여 교회공동체라는 조직을 이룬다고 볼 수 있으나, 일단 한 개인이 공동체의 구성원이 된 이후에는 가족관계(예수님께서는 자주 교회공동체가 형제자매적 운명공동체임을 강조하신 바 있다)와 같이 '본질의지'로 관계가 지속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최초 신앙의 선택에서는 유사범주Ⅱ의 특성(선택의지)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으나 그 이후 신앙생활에 있어서는 오히려 유사범주Ⅰ(긴밀한 인격적 인간관계, 일체감)의 특성을 지닌다고 판단된다. 둘째로 신념적 준거에 비추어 볼 때 소공동체는 전통적 교회이상(교회론)의 연장선(延長線)상에서 시대와 상황에 부합하는 교회의 존재방식으로서 부각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이천 년 역사를 통해 존속해 온 교회가 어떻게 하면 전통(성서)과 사회와 시대여건에 부응하여 최적의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에 대한 여러 대안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소공동체는 확실히 유사범주Ⅰ의 신념적 특성(일반적 가치=포괄적 이상)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사료된다. 셋째로 문화적 준거에 비추어 볼 때 소공동체는 말씀을 통한 부활하신 예수님의 현현과 구성원들의 친교를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즉 그룹 말씀나누기 안에 역동적으로 현존하시는 예수님의 체험, 친교(정서적인 친교, 음식의 친교)를 통해 드러나는 하느님 백성의 일치가 소공동체가 지니는 대표적인 문화적인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흘러나온 축제적인 기쁨과 환희, 충만, 일치 등이 소공동체를 지배하는 문화적 분위기라는 사실을 관찰할 수 있다. 이러한 요소들은 확실히 유사범주Ⅰ에 속하는 것들이다. 넷째로 제도적 준거에 비추어 볼 때 소공동체는 본래 성령의 이끄심에 의해 발생하고 자라나는 '아래로부터의 교회'의 면모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런 성향은 특히 남미나 유럽, 일부 아시아권 등지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그러나 교회 교도권이 소공동체의 가능성과 중요성을 인식하면서, 점차 '위로부터'의 지원을 받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비공식적이고 개방된 구조와 절차'(유사범주Ⅰ)를 특성으로 지니고 있었던 소공동체가 '공식적이고 폐쇄된 구조와 절차'(유사범주Ⅱ)를 중히 여기는 일사불란한 조직체계(구역반 조직)로 탈바꿈 해왔다고 볼 수 있다. 다섯째로 도덕적 준거에 비추어 볼 때 소공동체는 전통(성서)으로 집단의 행위를 규제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복음과 교회 교도권의 가르침을 절대적으로 존중하고 있다. 이는 유사범주Ⅰ에 속하는 특성이다. 다음으로 레지오의 특성요소들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첫째로 인간적 준거에 비추어 볼 때 레지오는 '평신도 사도직 수행'이라는 특수한 목적을 가진 이들에 의해 인위적으로 조직된 단체로서 이 목적에 헌신하고자 하는 신앙인은 자신의 선택에 따라 레지오 단원이 된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구성원들은 전인격적인 관계를 맺는다기보다는 활동을 위한 부분적인 관계만을 맺는다. 이들은 자신들의 원의(願意)와 선택에 입각한 특수한 연대의식(자율적 '우리'의식)을 형성한다. 이는 확실히 유사범주Ⅱ에 속하는 특성이다. 둘째로 신념적 준거에 비추어 볼 때 레지오는 단원들의 성화를 통하여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낸다는 특수한 목적을 가지고 있음이 드러난다. 단원들은 교회의 지도에 따라 성모님과 교회의 사업에 기도와 활동으로 협력함으로써 이 목적을 달성한다. 이를 위해 각 단원들은 마리아의 정신으로 무장되어야만 한다. 결국 레지오 마리애는 유사범주Ⅱ에 속하는 신념적 특성(특정한 가치: 이데올로기)을 지닌다고 판단된다. 셋째로 문화적 준거에 비추어 볼 때 레지오는 '성모님의 강력한 지휘 아래, 세속과 그 악의 세력에 맞서는 교회의 싸움에 참가하기 위해 형성된 군대'로서, 뱀을 밟고 있는 성모상, 단기(벡실리움 Vexillum Legionis), 그림 등을 통해 악의 세력과의 싸움을 상징화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묵주기도, 까떼나(Catena) 등의 기도문들은 험한 영적 전쟁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승리할 것을 확신하는 믿음과 소망의 표현들로 점철되어 있다. 이 때문에 레지오에서는 영적 긴장, 투쟁, 단합, 일사불란, 희생 등의 측면이 부각된다. 종합적으로 유사범주Ⅱ에 속하는 문화적 특성(인위적·계획적·의도적 상징요소)들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넷째로 제도적 준거에 입각하여 볼 때 레지오의 구조는 공식적이고 폐쇄적인 군대조직과 유사한 것으로 드러난다. 성모님을 총 사령관으로 하여 최하위 조직인 쁘레시디움(Praesidium), 쁘레시디움의 상위조직으로서 20-25개의 쁘레시디움을 관리하는 '평의회'인 꾸리아(Curia), 꾸리아의 상위조직으로서 몇 개의 본당에 있는 꾸리아를 관리하는 '상급 평의회'인 꼬미씨움(Comitium), 꼬미씨움과 세나투스의 중간 단계인 레지아(Regia), 국가 차원의 '최상급 평의회'인 세나투스(Senatus), 그리고 전 세계의 레지오 마리애 조직을 관장하는 관리 기관인 꼰칠리움 레지오니스(Concilium Regionis)로 편성된다. 이들 조직은 체계를 갖추어 관리 운영되고 있으며, 지시 및 순명의 군대식 조직의 특성을 지니고 있어 모든 결정이 상부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하향식으로 전달된다. 구성원들의 역할이 엄격히 분화되어 있다는 것도 중요한 특징이다. 결국 유사범주Ⅱ에 속하는 제도적 특성을 지니는 것으로 판단된다. 다섯째로 도덕적 준거에 입각하여 볼 때 레지오의 집단행위를 규제하는 규범은 레지오의 교본이다. 교본은 레지오를 하나로 결집시키는 행동의 기틀로 작용한다. 레지오 단원들은 교본에 따라 모든 회합, 기도, 활동 등 레지오와 관련된 모든 일을 수행한다. 물론 레지오 교본은 교회의 전통(성서)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볼 수 있겠으나 확실히 레지오의 일차적인 규범이 교본임에는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다. 이는 레지오가 유사범주Ⅱ의 도덕적 특성을 지니고 있음을 나타내준다. | ||||||||||||||||||||||||||||||||||||||||||||||||||||||||||||||||||||||||||||||||||
소공동체와 레지오의 조직론적 자리매김은 Ⅲ에서 고찰된 특성인자를 Ⅱ에서 설정된 준거에 비추어 성찰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이 성찰의 결과는 다음의 (표 3)으로 요약된다
( ●은 명확하게 부합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음을 나타내고, ◐은 본래 특성상 부분적으로 부합할 경우를 나타내고, ◑은 부가적으로 발생하거나 부여된, 부분적으로만 부합하는 특성을 나타낸다)
표의 내용을 종합적으로 조망할 때, 소공동체는 대체로 유사범주I에 속하는 조직체의 성격을 띠고 있는 반면, 레지오 마리애는 유사범주Ⅱ에 가까운 조직체의 성격을 지니는 것으로 나타난다. 소공동체가 미미하게 2개의 소영역에서 유사범주Ⅱ의 특성을 띠고 있고 레지오 마리애가 4개의 소영역에서 유사범주Ⅰ의 특성을 띠고 있지만, 이들이 대체로 부분적으로 부합하는 특성(◐)이거나 부가적인 특성(◑)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소공동체와 레지오는 확실히 고유한 특성을 지니는 상이한 조직유형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이는 소공동체가 레지오를 대체할 수 없고 레지오가 소공동체를 대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즉 소공동체가 존속해야 하는 존재이유와 가야할 길을 레지오 마리애가 대신할 수 없고 레지오 마리애가 존속해야 하는 존재이유와 가야할 길을 소공동체가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체로 사회학자들은 유사범주Ⅰ의 조직체를 시대를 초월한 사회의 기반 조직체로 보면서 사회가 분화되고 특화될수록 다양한 형태의 유사범주Ⅱ의 조직체가 생겨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유사범주Ⅱ는 인간이 지니고 있는 본능인 소속감, 안정, 형제애 등을 온전히 충족시켜줄 수 없기 때문에 유사범주Ⅰ을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역으로 유사범주Ⅰ에 속하는 조직체는 유사범주Ⅱ의 출현을 필요로하는 시대적·정황적 요청을 효율적으로 충족할 수 없기 때문에 유사범주Ⅱ의 조직체를 대신할 수 없다고 본다. 말하자면 이 양자는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소공동체와 레지오 마리애도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있다.
결론적으로 소공동체와 레지오 마리애를 우리는 다음과 같이 자리매김할 수 있겠다. 첫째, 소공동체는 교회의 기반조직체이고 레지오 마리애는 교회의 특수목적 사도직 수행 조직체이다. 전자가 교회의 존재(being)에 비중을 둔 조직체 유형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교회의 사명수행(doing)에 비중을 둔 조직체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소공동체가 교회의 존재방식(The question of being: How to exist)에 대한 대안이라고 한다면 레지오 마리애는 교회의 사명수행(The question of doing: What to do)에 대한 대안인 것이다. 즉 소공동체는 최적의 교회 존속을 위한 교회의 기반조직체로서 의의를 지니는 반면 레지오 마리애는 그렇게 존재하는 교회가 역점을 두어 수행해야 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결성된 특수목적 조직체로서 의의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존재(being)가 행위(doing)에 우선하며 행위의 기반인 것과 같이, 엄밀히 말해서 소공동체가 레지오 마리애에 우선하는 존재 기반임을 부인할 수 없다. 결국 소공동체는 전신자의 문제요 레지오 마리애는 가입 의사를 지닌 특정 신자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소공동체와 레지오 마리애는 상호 대체 불가능하며 오히려 상호보완적이다.레지오 마리애가 소공동체 조직으로 흡수되어 소공동체가 레지오 마리애 체제를 취하는 것은 존재방식 또는 존재기반을 등한시하고 목적추구만을 강조하는 기형적 현상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 또한 소공동체를 무시하거나 소홀히 여기고 레지오만을 강조하는 본당의 사목 정책도 같은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역으로 소공동체만을 강조하고 레지오를 등한시하거나 해체하는 조치는 교회의 다양한 사도직 활동(apostolic action)을 무력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 셋째, 본당에서 발생하는 이 양자의 경합 내지 갈등의 해결을 위해 양자택일의 방식을 피해야 한다. 사명수행(doing)은 존재(being)의 기반이 탄탄할 때 제대로 이루어지고, 존재(being)는 사명수행(doing)으로 보람을 누린다. 넷째, 조직적인 면에서 소공동체와 레지오 마리애는 원칙론적으로 상호 제휴나 통합을 배제한다. 조직적인 면에서 볼 때 소공동체는 본당-교구의 교계체제에 예속되는 반면 레지오 마리애는 그 밖에 있는 꾸리아(Curia)-꼬미씨움(Comitium)-레지아(Regia)-세나투스(Senatus)-꼰칠리움 레지오니스(Concilium Regionis) 에 예속되어 있다. 즉 전혀 다른 지휘계통의 조직이 교회의 사명이라는 공통목표를 접촉점으로 하여 한 영역 안에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양자는 적절한 상호배합이나 변형을 원칙적인 면에서는 서로 허락하지 않는다는 분명한 경계선을 지니고 있다. 다섯째, 레지오 마리애에 대한 객관적인 접근이 요망된다. 엄밀히 말해서 교회의 사도직 수행(apostolic action) 단체는 레지오 마리애 이외에도 무수히 많다. 대표적인 것으로 MBW(Movement for Better World), 성령쇄신(Charismatic Movement), 꾸르실료(Cursillo), 포콜라레(Focolari), CLC(Christian Life Community), ME(Marriage encounter), 네오카테쿠메나토(Neocatecumenato), 지속적인 성체조배회, 빈첸시오, 연령회(선종봉사회), 성모회 등이 있다. 이들은 교구 또는 본당차원에서 교회의 사명을 풍부하고 다양하게 수행하는데 도움이 되는 조직체들이다. 그런데 주지하다시피 레지오 마리애는 한국의 본당 사목에 도입되어 거대한 조직을 형성하는데 성공하였다. 본당 사목에 있어서 풍요롭고 다채로운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사실 타사도직 단체들도 사목적인 지원을 균형있게 받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
본질에 부합하고 형평성을 갖춘 교회의 조직 운용을 위해서는 위에서 제시된 원론적인 제안들을 열린 마음으로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처방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이 애당초 이 글이 지니는 한계였음을 아쉬워하면서, 향후 소공동체와 레지오 마리애 사이의 바람직한 관계 정립을 위해 미천한 토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글을 맺는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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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대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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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돌님
원문으로 다시 올렸으니 열심히 공부하세요.
알찌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