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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찾아보기가 이미 힘들어졌지만 옛날에는 일상적으로 쓰였던 곡식을 되는 도구들입니다. 말에는 뚜껑이 있는 것으로 보아 곡식을 되는 용도로만 쓰이지 않고 보관하는 용기로도 사용하였나 봅니다. 둥그런 원통형의 것은 말[斗]이고 사각형의 것은 되[升]입니다. 말에도 대두와 소두가 있고 되에도 사진처럼 용량에 따라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보통 열 되가 한 말이 되고 다섯 말이 한 가마니였죠. 위에 나왔던 것처럼 말은 한자로 두(斗)라고 합니다. 그러나 원래 두(斗)자는 말보다는 되와 더 상관이 있는 글자였습니다. 자루가 달린 되의 모양을 본뜬 글자가 바로 두(斗)자입니다. 옛날 어릴 적에 제사 때가 되면 술 도가(都家)에 술을 받으러(사러) 가는 심부름을 많이 하였는데 그때 술을 퍼담는 도구가 자루가 달린 되처럼 생겼습니다. 중국역사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옛날의 자루가 달린 되입니다. 물론 술을 퍼담는 되처럼 생긴 기물은 자루가 훨씬 길었댔죠. 말 두(斗) 감골문-금문-금문대전-소전-해서 사진과 한자는 언뜻 보면 그다지 닮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이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이는 이미 앞에서 몇 번 언급한 것과 같이 세로로 된 필사도구에 맞춰서 쓰다(혹은 새기다) 보니 자연스레 이렇게 바뀐 것이지요. 어떻습니까? 이렇게 보니 위의 사진과 같이 자루와 곡식을 넣는 쪽이 확연해보이지 안습니까? 밤하늘에 보면 북쪽에 저 모양 비슷하게 생긴 별자리가 있습니다. 7개로 구성이 되었는데 모양이 비슷하기 때문에 북쪽에 있는 말(되) 모양의 일곱 별자리라는 뜻으로 북두칠성(北斗七星)이라고 합니다. 옛날 사람들은 별자리 하나 허투루 보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어릴 때부터 서양교육이 주가 되어서 자연 시간에 북두칠성을 큰곰자리라고 배운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북두칠성의 위에 곰 그림을 덧씌워 놓았는데, 저만 그랬을까요? 아무리 상상력을 발휘해도 별자리와 곰 그림을 연관시켜 이해하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저렇게 자루 달린 되처럼 생겼다고 설명을 하면 얼마다 간단하게 해결됩니까? 신화 등의 문화직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여기에서 동양사람들이 훨씬 더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사고를 지녔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북두칠성은 실제로는 국자 모양이라고 외었습니다만. 술을 퍼는 국자는 한자로 작(勺)이라고 하며 훈은 "구기"입니다. 실제로 술을 퍼는 자루가 긴 국자가 구기인데 제대로 안 것이지요. 아래의 모델은 김미신(金美辛)이라고 하는 중국교포입니다. 엄격히 말하자면 국적이 중국인이니까 발음이 "진메이신"이 되는 것이지요. 요즘 교포 중에서 제일 잘 나가는 모델이라죠. 그런데 이마에 예쁜 문양을 새겨넣었습니다. 당나라 때 궁녀들이 예쁘게 보이려고 많이 그려넣은 듯 장이머우(張藝謀) 감독의 연인(戀人)에서 장쯔이(章子怡)도 같은 분장을 한 예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얼굴을 예쁘게 꾸미기 위해서 살짝 분장을 하는 것은 괜찮습니다. 그러나 죄인들의 경우에는 뺨에나 이마에 송곳으로 먹실을 넣었습니다. 죄수의 성격과 사안에 따라 눈을 찌르기도 하였습니다. 아래의 사진은 요즘음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송곳입니다. 그러나 옛날의 죄수들에게는 이 송곳이 아주 끔찍한 악몽을 떠올리게 하였을 것입니다. 중국에서는 죄를 경중에 따라 다섯 가지로 분류하고 각기 다른 형벌을 가했는데 가장 약한 형벌이 바로 묵형(墨刑: 黥)이었거든요. 그 뒤 순차적으로 코를 베는 형벌인 의형(劓刑), 무릎의 연골을 도려내는 월형(刖刑: 臏), 남성을 거세하는 궁형(宮刑), 사형에 해당하는 대벽(大辟: 處斬)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작은 죄라도 재판을 받았다 하면 기본적으로 묵형 이상의 형벌은 받았겠지요. 묵형을 집행할 때 쓰는 형구(刑具)가 바로 송곳입니다. 이 송곳은 한자로 신(辛)이라 하였는데 갑골문부터 보입니다. 이 형벌을 받으면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이는 바로 한자의 훈인 "맵다"에서 고스란히 배어납니다. 요즘은 이 글자를 아는 애들이 상당히 많더군요.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애즐이 즐겨먹는 라면의 브랜드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매울 신(辛) 갑골문-금문-소전-해서 이 형벌을 받은 사람의 모양은 어떨까요? 요즘은 인권도 인권이지만 신체에 이렇게 가해지는 형벌보다는 경제적 제재조치가 훨씬 더 많은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에 체벌보다는 경제력을 박탈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런 흔적을 엿볼 수 있는 드라마가 한편 있었습니다. 2010년 경에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던 드라마 <추노>에 나타납니다. 노비의 이마에 "종 노(奴)"자를 새겨넣은 모양입니다. 원래 노(奴)자는 계집종을 말합니다. 글자의 모양으로만 보면 오른손에 제어당하는 여인을 나타낸 것이지요. 반면에 남자종은 복(僕)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종을 포괄적으로 지칭할 때 노복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복은 특히 남자가 자신을 낮추어 말할 때 습관적으로 쓰던 말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실제를 떠나 "종 같이 미천한 놈"이라는 뜻이지요. 그러나 이런 경우는 그나마 비교적 다행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자가 생겨날 때부터, 아니 인류가 생겨날 때부터 거의 동반 발생한 행위가 아마 전쟁이었을 것입니다. 종과는 달리 PW, 곧 전쟁 포로에게는 더 가혹한 형벌이 행하여졌습니다. 곧 송곳을 가지고 눈을 찌르는 것이지요. 이런 글자가 바로 "아이 동(童)"자입니다. 아이 동(童) 갑골문-금문-소전-해서 갑골문의 자형을 보면 흙무더기 위에 서 있는 사람의 눈에 위의 방향에서 송곳인 신(辛)으로 눈을 찌르는 모양입니다. 아래쪽 모양이 나중에는 마을 리(里)자 형태로 바뀌었는데 그만 송곳 모양은 설 립(立)자의 형태로 간략화하고 아래쪽은 음을 나타내는 동(東)자가 모양이 바뀌어 전혀 다른 형태의 글자 모양으로 바뀐 것입니다. 아이 동(童)자가 원래 전쟁 포로를 나타내는 글자였다니 끔찍한 생각이 듭니다. 송곳 모양이 설 립(立)자의 형태로 간략화한 경우는 "아이 동(童)"자에서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첩 첩(妾)"자에서도 드러납니다. 첩(妾)자는 여자의 경우에도 죄를 지으면 예외 없이 이마에 형벌이 가해졌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중국을 대표하는 영화배우들인 꺼요우(葛優)와 지앙원(姜文)이 주연한 <진송(秦頌)>이란 영화가 있습니다. 간략한 줄거리는 진시황 영정과 함께 어릴 때 조나라에 인질로 잡혀 있던 악사 고점리에게 장성해서 각기 진시황 대 전쟁 포로로 만난 두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지앙원이 진시황 영정 역을 맡았고 꺼요우가 고점리 역을 맡았는데, 이는 『사기·자객열전』 형가 편에서 모티브를 따왔습니다. 그곳에서는 진시황과 연나라 태자 단의 스토리가 주요 플롯이 되는데 영화에서는 연나라 태자 단 대신에 고점리를 진시황과 얽어놓았습니다. 6국의 통일을 이룬 진시황이 소꿉친구였지만 지금은 전쟁포로 신분인 고점리에게 진나라의 덕을 기리는 노래인 진송(秦頌)을 의뢰하는 것이지요. 송은 우리나라의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처럼 나라의 덕을 칭송하는 가사가 있는 노래입니다. 아래 꺼요우의 이마는 묵형을 받았던 흔적을 많이 치료를 한 모습입니다. 당시에는 이런 형벌이 워낙 횡행해서 역사 기록에 의하면 새살이 돋아나는 연고와 가짜 코, 그리고 의족이 많이 팔렸다고 하네요. 이 영화에는 역할만 바꾼 것이 아닌 완전 가공의 인물이 하나 나옵니다. 진시황의 딸 역양공주(櫟陽公主)가 바로 그 인물인데 어릴 때 낙마를 하여 반신불수가 되었지만 고점리와 사랑에 빠지면서 기적적으로 걷게 되는 다소 황당한 플롯을 끌고가는 인물입니다. 이 역양공주가 고점리를 얼마나 사랑했으면 자신도 고점리처럼 이마에 죄수라는 표시로 수(囚)자를 새겨 넣습니다. 여자 전쟁포로가 이마에 문신을 당하는 것을 나타내는 글자가 바로 "첩 첩(妾)"자입니다. 첩 첩(妾) 갑골문-금문-금문대전-소전-해서 지금은 본부인 외의 내연의 여인을 모두 첩이라고 하는데 원래는 전쟁의 전리품으로 나누어준 여인을 나타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위에서 남자가 자기를 낮추어서 말할 때 "복(僕)"이라고 하였듯이 여인은 자신을 낮추어 부를 때 "첩(妾)"이라고 하였습니다. "신첩"이니 "소첩"이니 하는 것이 다 그런 예입니다. 그리고 한자에서 립(立)자의 형태로 간략화한 신(辛)자는 음소로도 쓰이는데 "새 신(新)"자나 "친할 친(親)"자에 보이는 "立"자가 바로 음소로 쓰인 신(辛)자입니다. 양(羊)자가 글자의 일부로 들어가면 꼬리를 떼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전쟁포로는 왜 송곳으로 한쪽 눈을 찔러서 애꾸로 만들었을까요? 아마 행동에 제약을 가하거나(애꾸는 원근 구별에 애를 먹음) 어디서든 그들의 신분이 드러나 도망을 못 치게 하려는 의도였을 것입니다. 추노의 예를 보면 이마에 노(奴)자를 새겨 놓은 사람은 어디로 도망을 가겠습니까? 전쟁 포로의 눈을 찌르는 형태의 글자는 남자 포로인 동(童)과 여자 포로인 첩(妾) 외에 민(民)자도 있습니다. 백성 민(民) 갑골문-금문-금문대전-소전-해서 아마 민(民)자는 남녀의 구별이 없는 전쟁 포로 모두를 나타낸 것 같으며 송곳으로 찌르는 방향이 아래쪽인 점이 다릅니다. 전쟁포로를 가지고 백성의 숫자를 늘렸음을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입니다. 옛날에는 거의 모든 산업이 노동집약형이었기 때문에 바로 백성의 수가 국력에 비례하였다는 것을 알 수가 있게 해주는 거지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이런 법 집행을 상징하는 송곳을 집안의 잘 보이는 곳에 늘 비치를 해두었습니다. 그 나라에서 법의 행사에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사람이지요. 옛날에는 재상(宰相)이 바로 그런 지위에 있는 사람이었는데 재(宰)자가 형구인 송곳을 집안에 비치해두고 있는 모양입니다. 재상 재(宰) 갑골문-금문-소전-해서 옛날에는 자신의 지위를 나타내기 위한 의장용품이 많았습니다. 가까운 조선시대만 해도 지나치게 긴 칼은 장군의 막사에서 장군의 지휘권을 나타낸 것이고, 또 단도보다 조금 긴 자그마한 환도는 실제 적을 무찌르기보다는 사실 지휘봉이었던 셈입니다. 그도다 더 고대에는 왕(王)자 같은 예를 들 수 있는데 이는 법의 집행에서 극형에 해당하는 사형을 집행할 때 쓰는 도끼를 형상화한 글자입니다. 왕보다 아래에서 가장 가벼운 형벌을 집행하는 도구인 송곳 신(辛)을 비치한 집을 나타낸 글자가 바로 재(宰)자입니다. 다음 사진은 남성들이라면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건장한 근육질의 남자가 삽질을 하는 모습입니다. 요즘은 "삽질"을 한다 하면 헛심을 쓰는 것을 비꼬는 말로 쓰이기도 합니다만 이런 경우는 다르죠. 동상의 하단부에 거센 물결이 표현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 전설상의 하(夏)나라 시조인 우(禹)임금이 치수를 하는 것을 조형화한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위에 나온 삽 모양은 실제 발굴품을 보면 아래와 같이 생겼습니다. 나무로 만든 자루에 삽을 끼워서 사용하는 것인데 자루인 나무는 썩어서 없어지고 날만 남은 것입니다. 박물관에 가면 비교적 다양한 형태의 발굴된 삽을 볼 수 있습니다. 위 동상과 가장 가까운 형태의 삽은 아래 사진 중앙에 있는 것일 것입니다. 왼쪽에 있는 것은 괭이 같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오른쪽의 두 삽이 아래쪽으로 갈수록 조금 좁아져서 맨 밑부분이 뾰족한 형태를 띠면 쟁기에 꽂는 보습의 모습을 띨 것입니다. "힘 력(力)"자는 바로 삽의 모양에서 따온 것이라고 합니다. "합니다"라고 하는 것은 이설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겠죠. 사람에 따라 이 "힘 력(力)"자는 위에서 잠깐 언급한 바가 있는 쟁기에다가 날, 곧 보습을 끼운 모양에서 비롯되었다고 설명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소전의 모습을 보면 그래도 삽의 모양과 더 흡사한 것 같습니다. 삽이든 쟁기든 당시의 기준으로 보면 중장비인 이 도구를 다루려면 힘이 만이 들겠죠. 그래서 이 조형을 가지고 "힙 력(力)"자를 표현한 것입니다. 힘 력(力) 갑골문-금문-금문대전-소전-해서 아래의 그림은 쉬베이홍(徐悲鴻: 1895~1953)이 평생의 지기인 궈모뤄(郭沫若)에게 그려주었다는 <온천하가 무사태평하니 농사가 즐겁다(九州無事樂耕耘)>이라는 그림의 일부입니다. 이 그림이 경매에 나왔을 때 팔린 금액은 무려 42,006,000달러로 한화로 환산하면 440억 7000만원에 달하는데 경매를 통하여 판매된 그림으로는 세계에서 88번째로 비싼 그림이라고 합니다. 이 그림에서는 농부가 쟁기를 다루며 밭을 갈고 있습니다. 쟁기의 모습은 나라마다 조금씩은 다르지만 기본 원리는 똑갑습니다. 소나 나귀 같은 집승에 멍에를 지워 쟁기의 앞부분을 연결하고 뒷부분의 손잡이로 조종을 하는 것입니다. 손잡이의 아래쪽으로 힘을 받게 되어 있는 끝쪽에 쟁기 날인 보습을 끼우게 되는데, 전체적으로 완성된 모습을 보면 아래의 사진과 같습니다. 요즘은 농업박물관 같은 곳에나 가야 볼 수 있는 농기구입니다만 우리 어릴 때만 해도 들판에서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 쟁기의 모습을 본 뜬 한자가 모 방(方)자입니다. 해서만 보면 조금 상상하기가 힘들겠지만 갑골문부터 소전까지는 손잡이며 소의 멍에와 연결하기 위한 앞부분, 보습을 꽂도록 아래쪽으로 향한 부분 등이 확연합니다. 모 방(方) 갑골문-금문-금문대전-소전-해서 학자들에 따라 이 글자는 칼과 칼자루를 표현한 모습이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여러가지 해석이 나오는 한자는 상형문자에 가장 가까운 갑골문의 형태에서 그 답을 찾는 것이 가장 좋을 것입니다. 방(方)자의 훈인 "모"는 반듯하다는 뜻인데, 이는 원래의 뜻에서 벗어나 후세로 오면서 한자의 뜻이 확장되는 과정에서 생겨난 뜻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보습은 한자로 리(犁)라고 합니다. 한자 단어에 이우(犁雨)라는 것이 있는데 쟁기의 날인 보습 하나 정도 깊이를 적실 정도로 비가 흠뻑 내렸음을 말합니다. 전국적으로 고르게 이우가 내린 지도 꽤 오래된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