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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方衆會無有邊한데 이 도량 가운데 다 나타나지 아니함이 없다. 다함께 더불어 있습니다. 그걸 이제『화엄경』식으로 표현하면 법계연기(法界緣起)다. 법계에 있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존재는 우리가 함께 있고 함께 엮여서 돌아가고 있다. 함께 엮여서 돌아가고 있어요.
그 다음에 ⑥ 寶枝光焰若明燈(보지광염약명등)하야 보배 나뭇가지에서 빛이 발해가지고 밝은 등불과 같애. 환하게 비친 밝은 등불과 같애. 其光(기광)이 演音宣大願(연음선대원)호대 그 빛이, 보배 나뭇가지에서 비치는 그 빛이 소리를 내어서 대원을 선전한다. 대원을 편다 그랬습니다. 大願 오늘 내가 이제 서두에 말씀드린 꿈입니다. 서원이여. 원력, 희망 이게 대원이여. 큰 원력. 그전에 이제 대원했으니까 바람직한 원력이죠. 그것을 선설(宣說)하는거여. 빛을 통해서, 빛을 통해서, 보배 나뭇가지에서 나오는 그 빛을 통해서 큰 원을 편다.
그 저기 저 아파트 베란다에 예를 들어서 뭐 식물을 키워보면은 계속 그 화분방향을 돌려줘야되요. 왜냐? 햇빛뜨는 곳을 향해서 쭈욱 옆으로 그냥 뻗어나가. 햇빛이 모든 살아있는 존재는 빛을 그렇게 좋아합니다. 그래 빛을 보고 그쪽으로 향해 나가는거여. 식물이 그렇잖아요. 다 경험하는 일 아닙니까? 그와 같이 그 빛은 뭐에요? 생명의 빛이고 그 생명의 빛은 또 꿈입니다. 大願입니다. 야~ 이 참 신기한 이론 아닙니까? 이게. 이 속에 있는 구절들 담고 있는 그 깊은 내용을 우리가 다~ 샅샅이 파헤쳐가지고 이야기하기로 하면 우리 인생살이, 세상살이가 그리고 또 어떤 방향으로 우리가 살아야된다고 하는 것 이런 것들이 그냥 이 한 구절에 다 있어요. 사실은, 빛과 생명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꿈이요 희망으로 인해서 우리가 성장하고 우리 영혼이 성장하고 발전한다 하는 것 그런 의미들이 이 속에 다 있잖아요.
如佛往昔於諸有(여불왕석어제유)에 예컨대 부처님이 지난날 諸有에서, 諸有라고 하는 것은 모든 존재, 모든 사람이 살고 있는, 모든 생명이 살고 있는 곳. 그것을 諸有라고 이렇게 표현합니다. 本所修行皆具說(본소수행개구설)이로다 부처님은 어디에서 수행했나? 뭐 설산에서 수행한거 아니여. 산 위에서, 깊은 산 외로운 암자에서 수행한게 아니라. 諸有에서 수행한거여. 諸有에서 본래 닦은 바 행을 다함께 설한다 그랬어요. 그러니까 수행은 세상에서 닦는거여. 살림살이하면서, 사회생활하면서 온갖 이런저런 얽히고 설킨 그런 인연속에서 수행이 제대로 되는거죠. 그게 諸有에서 本所修行이라. 諸有에서 본래 수행한 바 그 말입니다. 부처님이 지난 날 모든 삶 속에서, 모든 중생들의 삶 속에서 본래 수행한 바를 다 같이 설한다. 설함이로다. 그렇습니다.
그 다음에 ⑦ 樹下諸神刹塵數(수하제신찰진수)가 나무 아래있는 여러 신들 그 숫자는 작은 먼지와 같이 많고 많은 숫자가 悉共依於此道場(실공의어차도량)하야 다같이 이 도량을 의지해서, 이 도량을 의지해서 우리는 화엄도량,『화엄경』을 의지해서 各各如來道樹前(각각여래도수전)에 각각 여래의 道樹前에, 道樹 이걸 보리수를 道樹라고 번역해요. 보리(菩提)를 번역하면 또 도(道)가 되니까. 道樹 깨달음의 나무 앞에
念念宣揚解脫門(염념선양해탈문)이로다 생각생각에 해탈문을 선양한다. 아까 오분법신향 이야기했죠? 불교의 최종목적은 해탈이거든요. 해탈. 계향, 정향, 혜향은 삼학이야. 불교공부라고, 불교공부를 이제 세 파트로 나누면 계향, 정향, 혜향, 계정혜(戒定慧)라. 계행을 잘 닦고 말하자면 질서와 윤리도덕을 우리가 잘 닦고 그 다음에 선정을 닦고 그 다음에 지혜를 닦고 그래서 결국은 뭘하자고 하는 것이냐? 말하자면은 해탈을 하자고 하는 것이다. 여기에 바로 念念宣揚解脫門이로다 그랬잖아요. 부처님의 깨달음도 결국은 우리가 해탈을 통해서다. 해탈을 위해서다 하는 그런 말입니다. 그래 해탈은요 처음부터 큰 해탈을 욕심내면 안되요. 작은 해탈부터 해야 돼. 작은 것부터 해야 돼. 해탈은 작은 것부터.
우리가 그 어떤 스님이 뭐야 다이어트하는 그런 영화를 찍었는데 그 오토매틱다이어트라. 그게 이제 이해하면은 살이 빠진다는 그런 내용이라. 거기 이제 주인공이 살이 좀 쪘어. 그래도 살 쪘다고 하면서도 꾸역꾸역 막 먹는거야. 근데 자기는 많이 먹었다고 생각을 안하는거라. 그리고 자기 집에 음식이 많아. 많은데도 많다는 생각을 못 해. 왜 그럴까? 그걸 이해를 못 한거야. 음식이 많은데도 많다고 내가 생각을 못 하고 내가 많이 먹었는데도 많이 먹었다고 왜 생각을 못 하는가? 그것만 이해하면 살은 자동으로 빠진다 이거야.
옛날에 우리 다 가난하게 살았잖아요. 먹을 것이 별로 없었잖아요. 뭐 간식이 어디 있습니까? 정시 때도 제대로 못 먹는데 무슨 간식이 있습니까? 그런데 지금은 간식이 넘쳐나거든요. 뭐 버리는 음식이 지금 한 10년 전에 7조원이라고 했거든 지금은 아마 10조정도 될 거요. 버리는 음식값이 10조원은 되는거야. 그런 정도로 우리가 살고 있어요. 아무튼 뭐 대체적인 그 수치를 가지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하이고 우리는 그렇지 않다.’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마는, 아무튼 옛날에는 가난하게 살았기 때문에 아무리 많이 먹어도 부족하게 느껴지고 많이 먹지도 물론 못 했고 많이 먹지도 못 했기 때문에 아무리 먹어도 부족하게 느껴지고, 또 많이 없었기 때문에 아무리 있어도 부족하게 생각이 되는거라. 그래서 지금은 많이 있는데도 적게 느껴지고 지금은 많이 먹는데도 적게 먹는 것처럼 느껴지는거라. 그러니까 많이 먹을 수 밖에 없는거야. 많이 먹어도 많이 먹었다고 생각이 안 드니까 자꾸 많이 먹는거지.
그래 그걸 이해를 하면 자기 자신의 살아온 길을 그 종합적으로 잘~ 깊이 있게 이해하면은 저절로 제대로 먹지 않게 되는거지. 많이 먹지 않게 되는거라. 지나치게 먹지 않게 되는거라. 그럼 절로 빠져. 그 유럽에는 그 영화가지고 다이어트를 많이 한답니다. 그래가지고 성공한 사람들이 많아요. 무슨 약물가지고 다이어트를 하는 시대도 지금 지났어요. 무슨 뭐 무슨 저저저 또 주사기가지고 빼내는 그런 것도 있고 별별 다이어트 방법이 여러 수만 가지가 있는데 역시 선진국은 달라. 유럽에는 그 영화가지고 우리나라 스님이 만든 그 다이어트, 오토매틱다이어트 그 영화 한 편 10분도 안돼. 그거가지고 살을 빼고 있어. 지금, 그런 세상이 도래했습니다. 처음 듣죠? (하하)
그거 잘 생각해봐요? 스스로 적게 먹는데 나는 왜 자꾸 살이 찌는가? 나는 적게 먹는데 살이 찌는가? 그런 사람들 한 번 잘 면밀히 검토해봐야 돼.‘아 나는 어릴 때, 그 음식이 부족할 때 아마 그 때 의식이 잠재되어가지고 그 때 의식이 잠재되어가지고 아직도 그 의식이 작용을 하는구나.’그거 알면은‘아이 내가 몰라서 이렇게 먹는구나.’그런 생각이 들어요. 나도 그 영화보고는 한 2kg 빠졌어요. 요즘 (하하하) 그 영화 우리말로 제목이‘이해하면 살이 빠진다.’,‘이해하면 살이 빠진다.’자동으로 빠진다. 적어놨다가 꼭 한 번 보세요. 인터넷에 들어가면은 얼마든지 볼 수 있으니까. 요즘은, 시간도 많이 안 걸려요.
거기에 이제 젊은 비구니스님이 딱 나와서 법문 한 마디 해. 이 비구니스님이 만든 영화니까. 나오는데, 그 상 탔어요. 유럽에 가서 무슨 영화제 상도 타고 그랬는데, 젊은 스님이“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지요. 원인없는 결과가 어디 있습니까?”요렇게 (하하하) 하하 그 말이 그 영화의 주제야. 하하 고거만 알면 돼. 근데 그 이해를 못 했어. 그 동안은, 우리가 모두 그 사실을 이해를 못한거야. 나는 절대 많이 먹는 것이 아니다 라고 생각하는데‘왜 많이 먹고도 많이 먹었다고 생각을 못했을까?’요거 이해를 못 한거야. 요는 그게 중요한거요. 고거만 이해했으면은“아 됐다.”그러거든요.
내가 하도 병원에 많이 쫓아다니니까 어떤 병원에는 갔더니, 딸기 있잖아요. 딸기 다섯 개만 먹으면 한 끼 식사 충분하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음식의 양이 딸기 다섯 개면 충분하대요. 알았죠? 그거 밥 어구같이 먹고나서 (하하하) 딸기 한 열 개 쑥 먹잖아요. 하하하하하 딸기만 다섯 개만 먹어도 필요한 영양소는 충분하답니다. 활동하는데 아무 지장없대요.『화엄경』속에 다이어트도 다 나와있어요. (하하)
解脫 이게 해탈이야기하다가 그랬는데 고런 작은 것에서부터 해탈하기 시작해가지고, 그것도 참 중요한 해탈아닙니까? 음식에 대한 집착 이거부터 해탈하면은 이거 참 간단하면서도 어려운겁니다. 사실은, 그런 것에서부터 해탈이 나중에 죽음의 문제까지도 해탈한거라.‘아 뭐 죽는거 그거 뭐 아이 옷 갈아 입는거지. 새옷 갈아입으면 얼마나 기분 좋은데 상쾌한데’이렇게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실지로 자기 죽음이 다가오면은‘아 이거 내 새옷 갈아입는건데 뭐’하고 이렇게 생각할 수가 있어요.
그것 또 사실이고, 사실인데 우리가 그렇게 믿음이 안가지는거야. 그렇게 믿음이 안가지고 어디 병나고 그러면은 그 옷이 찢어지는거거든요. 옷이 찢어지고 해지고 그러면 옷을 기워입기도 하고 뭐 그렇게 하는 것하고 똑같은 일인데, 그렇게 여겨지지 않는거라. 옷은 해지면 기워입기도 하고 단추가 떨어지면 뭐 새로 달기도 하고 뭐 가서 고쳐오기도 하고 정 그러다가 해지면 그냥 버리잖아요. 사정없이, 인정사정없이 갖다 버리고 새옷 입잖아. 그런데 우리 몸도 똑같다는데, 말은 많이 들어왔으나 그게 이제 쉽게 그렇게 여겨지지가 않는거. 그래 이제 그것도 이제 언젠가는 우리가 해탈을 해서 그런 어떤 그 상태에 까지 이르러야되겠죠.
⑧ 世尊往昔修諸行(세존왕석수제행)에 세존이 지난날 여러 가지 수행을 함에 供養一切諸如來(공양일체제여래)와 일체 모든 여래와 그리고 本所修行及名聞(본소수행급명문)이 본래 수행한 일과 그리고 名聞하는 것은 소문난 거, 이름 드날리는 거 그것이 摩尼寶中(마니보중)에 皆悉現(개실현)이다 일체 여래에게 공양한 것과 본래 수행해서 소문이 난 것이 마니보석 가운데서 다 다 나타나더라. 皆悉現이라. 다 하나도 남김없이 다 나타난다. 마니보석 속에 부처님이 옛날 수행한 거 또 일체 여래에게 공양한 거.
그래요. 사람을 부처님으로 생각하고 공양하는 것. 그 가운데는 뭐가 제일이다? 법공양이 제일이다. 법공양이 제일이다 하는 것 그리고 수행하고 뭐 부처님이라고 이름 드날리고 이것이 마니보석 가운데 다 나타난다.
⑨ 道場一切出妙音(도량일체출묘음)하니 도량에서 일체 모든 아름다운 소리를 내게되니. 법문소리죠. 결국은, 아름다운 소리가 무슨 뭐 피아노 소리나 바이올린 소리가 아니라 법문소리가 가장 아름다운 소리요. 그게 진짜 묘음입니다. 뜻없는 소리 그거 뭐 약간 뭐 그 듣기야 좀 그렇고 하지마는 그건 지나가버리면 끝이야. 소리 그치면은 끝이야. 그런데 법문의 소리는 깨달을 수도 있어요. 마음이 확~ 열릴 수도 있어. 법문소리 하나듣고 해탈할 수도 있어.
육조대사같은 이들은『금강경』소리,『금강경』소리에 한 마디 딱 듣고는 그야말로 나무팔러 왔던 그 나무 한 짐에 다이야몬드를 한 짐 지고 갔잖아요. 다이야몬드를 한 짐 지고 간 소식이라. 그게, 그게 묘음이라. 하~ 기가막히잖아요. 그런 사례가 우리는 역사적으로 확실하게 있잖습니까? 육조혜능대사가 어머니 모시고 나무장사를 했는데, 나무 한 짐을 갖다 팔고 나무 내려다 준 그 집에서 마치 그 객실에서 어떤 스님이 아마 하룻밤 자고 아마『금강경』을 읽었던 모양이라.『금강경』읽는 소리를 나오다가 들은거야. 그 소리 듣고는 마음이 환하게 밝아졌잖아요. 그게 妙音이라. 아름다운 소리. 진짜 妙音이여. 그래서 천하의 육조혜능대사가 됐잖습니까! 道場一切出妙音하니
其音廣大遍十方(기음광대변시방)이라 그 소리가 광대해서 시방에 두루하더라. 그렇잖아요. 그 그 스님 이름도 모르지마는, 그 스님이 한 번 읽은『금강경』소리가 오늘 이 시간에도 들리는거요. 오늘 이 시간 우리에게도 이렇게 들리잖아요. 그『금강경』한 마디를 통해서 육조혜능대사가 깨달았고 그로 인해서 육조혜능대사가 출가해가지고 법을 이어서 육조(六祖)가 되었고 그래서 육조스님의 가르침이 오늘날 우리나라에까지 크게 전해져가지고 방방곡곡에서“육조혜능, 육조혜능”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게 뭡니까? 其音廣大遍十方이라 그 소리 광대해서 시방에 두루해.
若有衆生堪受法(약유중생감수법)이면 만약에 어떤 중생이 그 법을, 이러한 도리, 이러한 이치를 능히 받아들인다면 堪受 능히 받아들인다면 莫不調伏令淸淨(막불조복영청정)이라 다 조복해서 청정하지 아니함이 없다. 본래로 우리는 청정성을 가지고 있어. 청정무구성(淸淨無垢性)을 청정무구한 그런 그 본성을 다 가지고 있어. 그걸 회복하는거여. 그래 우리가 그것을 향해서 보질 아니하고 중생들의 그 어떤 그 업에 의한 어떤 그 욕심, 자기의 소소한 이해관계로 눈을 돌리니까 청정하지가 못한 것이죠. 그래서 전부 그런 이치를 받아들이게 되면은 若有衆生堪受法이면 능히 법을 받아들인다면 조복해서 청정하지 아니함이 없다.
⑩ 如來往昔普修治(여래왕석보수치) 一切無量莊嚴事(일체무량장엄사)할새 여래께서 지난날 일체 한량없는 莊嚴事들을, 장엄하는 일들을 널리 닦으실새. 그렇죠. 여기 가서 중생돕고 저기 가서 가르치고 어리석은 사람 있으면 가르치고 힘든 사람 있으면 도와주고 외로운 사람 있으면 위로해주고 두려워떠는 사람에게는 의지가 되어주고, 이게 한량없는 一切無量莊嚴事야. 일체 한량없는 장엄된 일이라.
세상에 장엄이 되야죠 뭐. 그걸 이제 알기 쉽게‘꽃으로 장엄한다.’이런 표현을 합니다. 그건 이제 꽃으로 장엄하듯이 세상에 꽃이 되어서 세상을 아름답게 장엄한다. 아무리 사기와 협작이 난무하는 세상이라 하더라도 그래도 또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또 부지기수로 또 많으니까 그래서 세상은 그런대로 균형을 잡으면서, 조화를 이루면서 이렇게 굴러갑니다. 그러니까 긍정적으로 봐야되는거죠. 긍정적으로
十方一切菩提樹(시방일체보리수)에 시방 일체 모든 보리수에 一一莊嚴無量種(일일장엄무량종)이로다 낱낱 장엄이 한량없는 種이더라. 보리수나무를 꼭 심어서 보리수나무가 아니라. 깨달음, 눈을 뜬 사람 뭔가 이러한 이치, 생명의 이치에 대해서, 불성의 이치에 대해서, 진여의 이치에 대해서 말하자면 깨달음이 있는 그런 그 경우를 보리수다 이렇게 봐야죠. 그래야 十方一切菩提樹가 되는거지. 꼭 그 보리수나무만 찾으면 그게 어디 곳곳에 보리수가 다 있나요? 그게 그렇게 안되잖아요. 一切莊嚴無量種이로다 일체 장엄이 한량없는 종이더라.
(7) 金焰菩薩의 讚歎
爾時에 金焰圓滿光菩薩摩訶薩이 承佛威力하사
普觀一切道場衆海하고 卽說頌言하사대
佛昔修習菩提行하사 於諸境界解明了일새
處與非處淨無疑하시니 此是如來初智力이로다
如昔等觀諸法性하사 一切業海皆明徹일새
如是今於光網中에 普遍十方能具演이로다
往劫修治大方便하사 隨衆生根而化誘하야
普使衆會心淸淨일새 故佛能成根智力이로다
如諸衆生解不同하야 欲樂諸行各差別이어늘
隨其所應爲說法하시니 佛以智力能如是로다
普盡十方諸刹海의 所有一切衆生界를
佛智平等如虛空하사 悉能顯現毛孔中이로다
一切處行佛盡知하사대 一念三世畢無餘하사
十方刹劫衆生時를 悉能開示令現了로다
禪定解脫力無邊이요 三昧方便亦復然이어늘
佛爲示現令歡喜하사 普使滌除煩惱闇이로다
佛智無碍包三世라 刹那悉現毛孔中하시니
佛法國土及衆生의 所現皆由隨念力이로다
佛眼廣大如虛空하사 普見法界盡無餘하시니
無碍地中無等用이여 彼眼無量佛能演이로다
一切衆生具諸結하며 所有隨眠與習氣를
如來出現遍世間하사 悉以方便令除滅이로다
그 다음에 金焰菩薩(금염보살)의 讚歎(찬탄)이라. 爾時(이시)에 金焰圓滿光菩薩摩訶薩(금염원만광보살마하살)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서 일체 도량의 대중들을 普觀(보관) 널리 관찰하고 곧 게송을 설해 말씀하사대
① 佛昔修習菩提行(불석수습보리행)하사 부처님께서 옛날에 보리행을 닦으사. 깨달음의 행을 닦았다. 또 우리가 지금『화엄경』공부하고 있는게 전부 菩提行을 닦는 것입니다. 진짜 이게 보리행 닦는거에요. 깨달음의 행을 닦는거라.
그래『화엄경』구절 하나에서 우리가 하나하나 깨달아가는거죠. 얼마나 좋습니까! 참~ 이런 좋은 교재, 부처님이 설하신『화엄경』이와 같은 훌륭한 경전을 이 말세에 우리가 이렇게 만나볼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입니까! 그래서 이것을 통해서 한 구절, 한 구절 우리가 눈여겨 보고 뭔가 거기에 내 마음하고 딱 상응해서 부합하는 그런 것을 만나면은 눈이 번쩍 뜨이잖아요. 마음 탁~ 내려놓게 되잖아요. 그~ 붙들고 그냥 그냥 천 리나 되는 낭떠러지에 나뭇가지 하나 잡고 붙들고 있듯이, 우리는 그 무엇엔가 그렇게 붙들고 그게 무슨 뭐 나의 생명인양 그렇게 아등바등 붙들고 있다가 그 탁 놓아버리는 그런 소식을 여기서 이제 보게되는 거죠. 어떤 구절에서 그런 것을 하나 하나씩 건지게 됩니다.
於諸境界解明了(어제경계해명료)일새 모든 경계에서 이해해서 명료할새. 그래놨잖아요. 일체 경계 이게 뭡니까? 우리가 생활하면서 맞딱드리는 경계들, 맞딱드리는 어떤 현상들 그게 이제 경계입니다. 모든 경계에서 환~하게 본다. 아 이렇게 돼야 되는거죠.
處與非處淨無疑(처여비처정무의)하시니 요 저 금염보살은 주로 이제 부처님의 열 가지 힘을 주로 이야기를 합니다. 부처님을 표현할 때『화엄경』에서도 열 가지 힘을 가지신 분을 제일 자주 말씀하세요.
그런데 여기 이제 첫째가 이제 處 非處라. 處非處智力(처비처지력) 그랬어요. 處와 非處를 제대로 분별할 줄 아는 지혜의 힘, 본래 이제 십력(十力) 이야기할 때 그렇게 합니다. 處와 非處를 청정해서 의심이 없다. 요건 이제 處와 非處가 제일 중요한 말인데, 도리와 도리가 아닌 것. 내가 갈 곳인가, 갈 곳이 아닌가를 제대로 아는 것. 淨無疑 깨끗하게 알아가지고 의심이 없다 이 말이여. 앉을 자리인가, 설 자리인가를 제대로 알아가지고 의심이 없는 것. 인과(因果), 인과의 이치에 맞는 것인가, 맞지 않는 것인가? 무조건 가서 내가 지어놓지도 아니한 복을 달라고 달라고 한다고 그게 제대로 내 복이 될 것인가? 이것을 이치로 제대로 꿰뚫어서 아는 것이 處與非處淨無疑라.
자꾸 달라고 하면 귀찮아서 가불해줘요. 주기는 (하하하) 진짜여. 가불해주긴 주는데 그 이자가 만만치 안해. 가불이자가 만만치 않아요. 이거, 자꾸 달라고 하면은 뭐 어떻게 어떻게 해가지고도 변통을 해가지고 돌려 막아주는데 그것이 되는 경우도 있고 안되는 경우도 있고 그런데, 그게 나중에 아주 그 참 큰~ 부담이 있습니다. 그거 아셔야되요. 그거 알아야 돼.
복 복 우리가 복을 좋아하고 복이 또 필요하고 근데 요는 지어야되요. 아 복을 많이 지었구나. 잘 사는 사람들 보거든‘아 복 많이 지은 사람이구나.’그렇게 해야 돼.‘아 그 사람 복 많이 지은 사람이야. 복 많이 지은 사람.’근데 복도 여러 가지가 있어가지고 그래 물질복은 많은데 지혜가, 지혜복은 없어. 청복(淸福)은 없어가지고 세계에서 100대 갑부에 들어도 형제끼리 그렇게 치고 받고 싸우는거야. 그 물질복 아무리 많아도 아무 의미가 없어.
그러니까 우리는 청복이란 말을 쓰잖아요. 그거는 탁복(濁福)이야. 탁복. 탁한 복이라 그러고 청복이란 것은 맑은 복, 깨끗한 복. 그건 이제 뭐 비록 그 옷을 뭐 10년, 20년 그 한 가지 옷만 입고 법회에 나오더라도 그래도『화엄경』공부하니까 얼마나 깨끗한 복을 많이 가졌어요? 청복이라. 그게 중요한거죠.
그래 處와 非處라고 하는 것이 이치를 잘 아는 것입니다. 나에게 이런 복이 좀 필요한대 그 복이 내 손에 오기까지 할려면은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요걸 잘 아는거 處와 非處 도리와 도리가 아닌거, 이치와 이치가 아닌 것을 잘 아는 것. 淨無疑 깨끗하게 해서 의심이 없다. 이게 십력 가운데 열 가지 힘 가운데 첫째 힘이에요. 그 부처님이 열 가지 힘을 자랑자랑 해쌌거든 그 중에도 제일 첫째가는 그 힘이 바로 處非處智力이라. 處와 非處에 대해서 제대로 파악하는 지혜의 힘 요렇게 됐어요.
그래 우리가 뭘 할 때도‘이게 處냐? 非處냐? 處냐? 非處냐?’혼자 중얼거려요. 그럼“네 혼자 무슨 소리하노?”하거든“아 그런게 있다.”고 하면서‘야 이게 處일까? 非處일까? 이게 도리에 맞는 것일까? 안 맞는 것일까?’맞는 것, 안 맞는 것 그 말이라. 그래도 도리에 맞는지 안 맞는지 그걸 이제 제대로 파악이 안될 때가 있어요. 파악이 안될 때, 그 때는 또 가만히 살펴보면 이해를 못 해. 이해를 못 해가지고 안 맞는거야. 모르는거야. 이해를 못 해가지고, 그러니까 욕심이 게재되면은, 먹고 싶은 욕심이 게재되면은‘요거 먹어야 되느냐? 안 먹어야 되느냐?’그게 분별이 안돼.‘좀 더 먹어도 될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드는거야.’그게 욕심이 게재되서 處와 非處를 잘 모르는거지. 그 제대로 알면 그냥 아무 미련없이 딱 놔버리는거야.
그 하도 가난하게 우리가 살아버릇해가지고 예를 들어서 밥을 좀 먹다가 한 숟가락쯤 남기면은 아~주 욕 들어먹어. 그 한 숟가락을 다 먹어야지 그거 남긴다고 이런 시대가 있었어요. 지금도 그럴거요 아마. 그거 이제 과감하게 해탈해야 돼. 사정없이 갖다 버려야 돼. 아니면 잘 간수했다가 다음 때 먹고, 그 해탈해야 된다구요. 그거 안하면은 결국은 다른 문제가 또 생겨. 그런 이치도 내가 과감하게 그렇게 해탈하지 못하는 것은 뭔가 내 욕심이 거기에 게재되가지고 개입이 되가지고 분별이 정확하게 판단이 안 서는거라. 정확하게 판단이 안 서요. 중요한 것입니다.
此是如來初智力(차시여래초지력)이로다 그랬네요. 이것이야말로 여래의 첫 지혜의 힘이다. 맨 처음가는 지혜의 힘이다. 여래의 初智力이라 했네요. 아주 중요한 표현입니다. 이것이 여래의 初智力이다. 그러니까 내가 길게 설명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아주 중요한거요. 사람이 살아가는데 이렇게 중요한거요. 이게
그 다음에 ② 如昔等觀諸法性(여석등관제법성)하사 옛날에 모든 법성을 等觀한거와 같이. 평등하게 모든 법의 성품을, 존재의 본성을, 생명의 법칙을 제대로 본다. 一切業海皆明徹(일체업해개명철)일새 일체의 업의 바다를 다 명철했을새. 요거는 이제 업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지혜입니다. 업에 대해서, 그러니까 업보(業報), 업보에 대한 지혜의 힘 그러죠. 업보에 대한 지혜의 힘. 이것도 무시 못하는거요. 우리 마음자리에도 그 어떤 그 마음을 작용하는데 있어서는 업이 거기에 게재되요. 마음이 작용하는데는 업이 게재된다고
예를 들어서 우리가 어디가서 여러분들 도반집에나 아니면은 무슨 뭐 친척집에나 어디 갔을 때『화엄경』이 딱 꽂혀있다 그러면 눈이 번쩍 뜨일거 아녀. 그게 뭐지? 업인거야.『화엄경』을 공부한 업인거야. 업이 작용한다구요. 그러한 것을 부처님은 환~하게 꿰뚫고 있는거야. 그게 이제 一切業海皆明徹이라 그러지. 일체 업의 바다를 다 환하게 꿰뚫고 있다. 환하게 꿰뚫고 있다. 구두 만드는 사람들은 어디 길거리 나가면은 사람 그 밑으로 구두만 보는거야. 양복 만드는 사람은 양복만 보는거라. 그 사람 얼굴도 안 봐. 양복만 보지. 그 어쩔 수 없는거야. 업이
如是今於光網中(여시금어광망중)에 이와 같은 것을 지금 광명그물 가운데에, 그물이라는 말이 자주 나오는데 광명이 착~ 이렇게 비치는데 그물이 짜져있듯이 그렇게 광명이 빈틈없이 짜져있다 그런 뜻입니다. 광명 가운데 普遍十方能具演(보변시방능구연)이로다 널리 시방에 두루두루 능히 함께 갖춰서 연설한다. 업에 대해서, 일에 업에 대해서
이거 현상은요 업을 또 무시할 수가 없거든요. 그러니까 業力難思議(업력난사의)라 업을 잘 지어야 돼. 업을, 그래서 이제『화엄경』공부를 열심히 한 업을 우리가 잘 짓는거요. 지금, 새해에는 더욱 더『화엄경』공부하는 업을 더 열심히 짓도록, 하루에 예를 들어서 한 시간 짓던 것을 두 시간 짓고 두 시간 짓던 사람들은 세 시간 짓고,『화엄경』하고 업을 쌓아야 돼. 아무튼
자 오늘 공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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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處非處智力... 處와 非處를 제대로 분별할 줄 아는 지혜의 힘. 고맙습니다. _()()()_
_()()()_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_()()()_
處非處智力. 고맙습니다_()()()_
감사합니다._()()()_
고맙습니다 나무대방광불화엄경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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處와 非處를 제대로 분별할 줄 아는 지혜의 힘,
處와 非處를 청정해서 의심이 없다.
요건 이제 處와 非處가 제일 중요한 말인데,
도리와 도리가 아닌 것. 내가 갈 곳인가, 갈 곳이 아닌가를 제대로 아는 것.
淨無疑 깨끗하게 알아가지고 의심이 없다 이 말이여.
앉을 자리인가, 설 자리인가를 제대로 알아가지고 의심이 없는 것.
인과(因果), 인과의 이치에 맞는 것인가, 맞지 않는 것인가?
무조건 가서 내가 지어놓지도 아니한 복을 달라고 달라고 한다고 그게 제대로 내 복이 될 것인가?
이것을 이치로 제대로 꿰뚫어서 아는 것이 處與非處淨無疑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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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_()()()_
處와 非處의 구분?
'’혼자 중얼거려요. 그럼“네 혼자 무슨 소리하노?”하거든“아 그런게 있다.”고 하면서‘야 이게 處일까? 非處일까? 이게 도리에 맞는 것일까? 안 맞는 것일까?’맞는 것, 안 맞는 것 그 말이라. 그래도 도리에 맞는지 안 맞는지 그걸 이제 제대로 파악이 안될 때가 있어요. 파악이 안될 때, 그 때는 또 가만히 살펴보면 이해를 못 해. 이해를 못 해가지고 안 맞는거야. 모르는거야. 이해를 못 해가지고, 그러니까 욕심이 게재되면은‘요거 먹어야 되느냐? 안 먹어야 되느냐?’그게 분별이 안돼.‘좀 더 먹어도 될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드는거야.’그게 욕심이 게재되서 處와 非處를 잘 모르는거지 미련없이 버린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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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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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_()()()_
무량광 무량수 나무아미 타불. 무량광 무량수 나무아미 타불.....정각 거사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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