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Note ; 바나나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누구나 즐겨 먹는 노란색의 과일, 바나나에 대해서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생각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물론 없을 것입니다. 더구나 바나나에 대한 책이라니 할 말이 뭐 그리 많겠어, 라고 치부해 버리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다시는 예전처럼 바나나를 대할 수 없으리라고 감히 장담합니다. 그것이 얼마나 특별한 과일인지, 인간의 역사와 얼마나 밀접하게 연관된 파란만장한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지 그리고 인류의 생존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2003년 바나나에 퍼진 치명적인 질병에 관한 기사를 읽고서 ‘바나나를 구하자’는 일념으로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3년 동안 온두라스, 에콰도르, 중국, 벨기에 등 전 세계 바나나 농장과 바나나 연구소들을 찾아다니며 자신도 미처 몰랐던 바나나에 얽힌 놀라운 이야기들을 여기 빼곡히 담았습니다.
바나나의 기원과 신화, 역사와 지리, 정치와 경제 그리고 문화와 과학이 맛있게 결합되어 있는 이 책을 읽으며, 편집자는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듯 재빠르게 펼쳐지는 의외의 사건과 사실들에 놀라고 흥분하고 분노하며 향학열을 불태웠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인문서를 만들어왔지만, 원고를 앞에 놓고 편집자로서가 아니라 자발적인 독자가 되어 이처럼 정신없이 원고에 빠져들어본 것은 정말이지 처음이었습니다. 재미와 교훈, 정보와 통찰, 머리와 가슴이 모두 흡족한 이 책을 모든 분들께 자신 있게 권합니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바나나에 관한
믿기지 않는 이야기들
바나나는 번식능력이 없다. 그런데 어떻게 그 많은 바나나를 만들까?
바나나는 세계에서 가장 인기 높고, 가장 많이 재배되는 과일이다. 전체 곡물로 따져도 밀, 쌀, 옥수수 다음인 네번째로 생산량이 많다. 하지만 바나나에는 우리가 미처 모르는 신기한 사실들이 너무도 많다.
우선, 바나나는 우리의 짐작과 달리 나무가 아니다. 커다란 풀이다. 그리고 우리가 먹는 바나나는 전부 한 종류다. 필리핀 같은 바나나 산지에 직접 가서 야생 품종을 사먹지 않는 이상, 우리가 마트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상업용 바나나는 ‘캐번디시’라는 한 가지 품종뿐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알다시피 바나나에는 씨가 없다. 다시 말해, 번식 능력이 없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그 많은 바나나를 만들까? 장미 꺾꽂이처럼 뿌리(알줄기)를 잘라 옮겨심기만 하면 바나나가 열린다. 따라서 전 세계인이 먹는 바나나는 모두 복제 바나나이며, 유전적으로 전부 쌍둥이인 것이다.
사실 우리가 먹는 바나나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흔히 날로 먹는 노란 바나나와 탄수화물이 많아 익혀 먹어야 하는 녹색 바나나인 플랜테인(plantain)이 그것이다. 플랜테인은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리 재료다. 특히 아프리카에서 플랜테인은 수백만 명의 인구를 먹여 살리는 주식이다.
아담과 이브가 먹었던 선악과는 사과가 아니라 바나나였다!
에덴동산 하면 사람들은 으레 사과를 떠올린다. 하지만 성경 원본 어디에도 선악과가 사과였다는 언급은 없다. 이는 구텐베르크판 성경에 대한 오독 탓이다. 구텐베르크가 모범으로 삼은 불가타 성경에서 ‘선악’과를 뜻하는 라틴어 ‘malum’은 사과를 뜻하는 ‘melon'의 파생어와 우연히도 철자가 똑같았다. 그런데 르네상스 시대 화가들이 구텐베르크판 성경을 읽으면서 그 단어가 사과를 가리킨다고 해석하고는 에덴동산에 사과를 그려 넣기 시작했던 것이다.
하지만 많은 학자들은 사실 선악과는 바나나였다고 믿는다. 똑같은 에덴동산 이야기를 다룬 코란도 그것이 바나나였음을 강하게 암시한다. 분류학의 아버지인 린네는 자신의 주저 《자연의 체계》에 두 종류의 바나나를 실었는데, 일반적인 노란 바나나는 무사 사펜티움(Musa sapentium, 앎의 나무에서 열리는 ‘지혜의 바나나’), 녹색 플랜테인은 무사 파라디시아카(Musa paradisiaca, ‘천국의 바나나’)라고 명명했다. 그 이름으로 미루어 에덴동산에 바나나가 있었다고 린네가 확신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고고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성경에 에덴동산이라고 묘사된 지역은 지금의 페르시아 만 앞바다쯤이었다고 한다. 이 중동의 에덴동산은 바나나가 자라기에 적합했을 것이며, 바나나는 그곳 사람들에게 분명히 친숙한 과일이었다. 오늘날에도 중동은 바나나의 주산지로 요르단, 이집트, 오만, 이스라엘 등지에 바나나 농장이 있다. 이들 지역은 사과를 키우기에는 별로 적당하지 않으며, 오늘날 현대 농업의 힘을 빌려 극히 소량만이 재배될 뿐이다.
순전히 비유로만 생각해도 바나나가 선악과로 더 그럴듯하다. 바나나는 자고로 남성의 성기를 상징하는 성적인 암시이며, 이브 역시 바나나처럼 무성생식으로 태어난다. 즉 바나나가 씨앗이 아니라 성장한 나무 일부에서 만들어지듯이, 이브 역시 아담의 갈비뼈에서 태어난다.
바나나 산업이 낳은 혁신과 20세기 마케팅 기술
일주일만 지나도 흐물흐물해지는 열대과일을 오늘날 이처럼 싼값에 세계 어디서나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모두 바나나 회사들 덕분이다. 바나나를 최초로 상품화한 것은 20세기 초 미국의 기업들이었다. 지금도 업계 선두를 다투는 ‘치키타(Chiquita)’와 ‘돌(Dole)’의 전신인 ‘유나이티드 프루트(이하 UFC)’와 ‘스탠더드 프루트’가 그 주인공이다.
산지와 소비시장이 비교적 가까운 다른 과일과 달리, 바나나는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만 났으며, 운송이 조금만 늦으면 썩기 일쑤였다. 바나나 회사들은 중남미의 울창한 밀림에서 한시라도 빨리 그리고 가능한 한 많이 바나나를 싣고 와야 했으며, 지방 소매시장에 이르는 기나긴 유통과정 동안 바나나의 숙성을 지연시킬 방법을 찾아내야 했다.
그들은 열대우림을 밀어버리고 거대한 플랜테이션 농장을 만들었으며, 철도로 놓고 항구도시들을 건설했다. 그리고 항구에 들어오는 화물선과 농장의 교신이 가능하게끔 전신과 전화, 라디오 통신망을 깔았다. 바나나 화물선은 최초로 냉장 설비를 갖춘 선박이었으며, 바나나 회사들은 처음으로 숙성 지연을 위해 CA저장법(공기 중 이산화탄소와 산소의 비중을 조절해 과실의 신선도를 최상의 상태로 유지하는 보관법)을 이용했다. 그들은 미국 전역에 냉장보관 창고를 지었으며, 농장에서 시장에 이르는 바나나의 궤적을 추적할 수 있는 기술 체계도 도입했다(가격, 원산지, 수확일, 도착지 정보를 식별하기 위해 숫자 코드를 사용했던 것이 지금의 바코드 기술을 낳았다). 또한 오늘날 대중화된 콘플레이크에 바나나를 잘라 넣는 요리법을 만들었으며, 콘플레이크 포장박스에 최초로 쿠폰을 넣기도 했다. 바나나 회사들은 오늘날 널리 이용되는 이 모든 혁신적 발명을 이루어냈으며, 사실상 ‘과일산업’ 자체를 만들어냈다.
바나나 회사들의 탐욕이 불러일으킨 재앙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세계화의 역사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주는 책”으로 이 책을 추천했다. 바나나 회사들은 확실히 지금의 세계화의 선구자였다. 그들은 생산과 유통에서 진실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한 글로벌 기업이었다[그들은 상업적 농업 역사상 최초로 단일재배를 실시했다. 한 가지 품종만을 재배했기에 엄청난 ‘규모의 경제’가 가능했다]. 하지만 그들이 사과보다 싼 가격 경쟁력을 갖추고 소비시장을 석권할 수 있었던 것은 라틴아메리카에서 농지와 노동력을 거의 공짜로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중남미의 부패한 독재권력과 유착해 농지와 과세, 노동 환경에서 온갖 특혜를 누렸다. 그들은 열대우림을 베어버리고 독성 농약을 무차별 살포함으로써 환경을 파괴하고 노동자들의 건강을 위협했다. (1999년 조사에 의하면, 코스타리카의 바나나 포장시설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백혈병 발병율과 선천성 기형아 출산율이 국가 평균보다 두 배나 높았다. 2002년 발표된 논문에 의하면, 코스타리카의 남자 바나나 노동자 중 20퍼센트가 불임이었다.) 노동자들은 절대빈곤 상태에서 거의 노예와 다름없이 살았지만, 회사 간부들은 골프장, 볼링장, 교회, 레스토랑 그리고 독신 간부들을 위한 창녀촌까지 들어선 농장에서 갖은 호사를 누렸다. 이 소식민지에는 교회에서 세탁소까지 바나나 회사가 운영하지 않는 곳이 없었다. 그들은 노동자들에게 임금도 현금이 아니라 회사가 운영하는 상점에서만 교환할 수 있는 종이 쪼가리로 주었다. 원주민들은 이런 바나나 회사들을 가리켜 ‘엘 풀포(문어)’라고 불렀다.
만일 노동자들이나 라틴아메리카 정부가 말을 듣지 않으면, 미국 정부가 거들고 나섰다. 20세기 내내 미국은 자신의 앞마당을 지키기 위해 중남미에 수시로 군사개입을 했다. 그 가장 큰 원인은 바나나 기업들의 이익이었으며, 그 가장 큰 결과는 바나나 안보의 확보였다.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 후 쿠바에 처음 상륙한 미국 기업이 UFC였다. 1912년 미국은 온두라스를 침공했고, 그 결과 UFC는 온두라스 내 철도 건설권과 바나나 경작권을 손에 넣었다. 1918년 한 해 동안 미군은 파나마, 콜롬비아, 과테말라에서 바나나 노동자 파업을 진압했다. 이러한 사례는 셀 수 없이 많지만 대중들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1961년 쿠바 반대 세력이 카스트로를 몰아내기 위해 저지른 유명한 ‘피그스 만 침공사건’에서 CIA에 선박을 제공한 것도 UFC였다.
미국의 막강한 군사력을 등에 업은 바나나 회사들이 라틴아메리카의 바나나 노동자들을 잔인하게 탄압한 대표적인 사건 둘을 살펴보자.
콜롬비아 바나나 대학살과 과테말라의 비극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 년 동안의 고독》에서 클라이맥스는 노동자들의 파업 시위와 이를 계엄군이 무차별 총격으로 진압하는 대목이다. 소설적 상상력으로 재구성된 이 사건은 1929년에 실제로 일어났던 콜롬비아 바나나 대학살을 토대로 한다.
1928년 10월, 콜롬비아의 바나나 노동자 3만 2000명이 파업을 했다. 그들의 요구사항 중에는 (너무나도 당연한) 화장실 시설도 들어 있었다. 12월 5일 계엄령이 선포되고, 이튿날 시에네가 광장에 바나나 노동자들이 모였다. 항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교회 예배에 참석하고 도지사의 연설을 듣기 위해서였다. 평화로운 집회였기에 노동자들은 온 가족을 동반했다. 하지만 미국(바나나 회사)의 이익을 지키려는 계엄군은 광장 모퉁이 지붕마다 기관총을 배치했다. 5분 안에 해산하라는 명령이 떨어지고 초읽기가 시작됐지만, 너무 많은 사람이 빽빽이 모여 있어 움직일 수가 없었다. 군대는 사격을 개시했고, 바나나 파업 노동자 3000명이 죽음을 당했다. 그들의 시체는 한 구 한 구 바다에 던져졌다.
과테말라의 비극은 더 드라마틱하다. 20년 넘게 집권한 독재자 에스트라다 때부터 UFC는 전화, 철도, 항구를 건설하며 근대화를 주도했지만, 마야 원주민들은 근대화의 어떠한 혜택도 보지 못한 채 가혹하게 착취당했다. 에스트라다의 뒤를 이은 것은 라틴아메리카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우비코 장군이었다. 우비코는 대다수 인디언들이 지주(곧 UFC)를 위해 1년에 최소 100일 동안 일하도록 의무화했으며, 노동자가 작업 도중 시키는 대로 일하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죽여도 무방하다는 법을 통과시켰다.
하코보 아르벤스의 봉기로 마침내 우비코 독재정권이 무너지고 ‘10년의 봄’이 찾아왔지만 과테말라의 상황은 참담했다. 국민의 평균연령은 40세 이하였으며, 절반이 넘는 경제인구가 바나나 재배와 수확, 운송에 종사하고 있었다. 전체 경작지의 70퍼센트에 이르는 160만 헥타르가 UFC의 소유였다.
UFC 역사상 최대의 적인 아르벤스는 1952년 토지개혁을 단행했다. 바나나 회사가 사용하지 않는 토지를 몰수해 농민들에게 재분배하려 한 것이다. 당시 UFC는 기승을 부리는 바나나 병 때문에 많은 땅을 그대로 묵혀두고 있었다. 얼마 전 이란에 들어선 민주정부가 미국 회사들의 유전을 국유화했듯이, 자신이 일군 농장들을 모두 빼앗길까 두려워한 UFC의 사장 ‘바나나맨’ 샘 제머리(그는 1910년 용병들을 고용해 온두라스 정부를 전복시키고 자기 사람을 대통령에 앉힌 인물이었다)는 ‘PR의 아버지’ 에드워드 버네이스에게 도움을 청했다. 버네이스의 조언은 간단했다. ‘미국의 엘리트층이 아르벤스가 빨갱이라고 확신하도록 만들어라. 그러면 미 정부가 알아서 조치를 취할 것이다.’
제머리의 공작으로 1953년 아이젠하워는 CIA에 아르벤스 축출을 지시했다. CIA는 차기 대통령이 되는 카스티요 대령이 이끄는 ‘해방군’을 훈련시키고, 마이애미 라디오방송국에서 각종 유언비어와 흑색선전을 내보냈다. 아르벤스는 반군과의 전투에서는 승리했지만, 미국의 선전전은 당해낼 수 없었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구별할 수 없게 된 정부군은 완전히 마비되어버렸고, 결국 아르벤스는 서글픈 망명길에 올라야 했다. 그후 UFC가 과테말라에 심은 독재정권은 10만 명이 넘는 마야 원주민을 (아르벤스 같은 좌파 동조자가 될지 모른다는 이유로) 학살했다.
라틴아메리카에서 끊임없이 내전과 쿠데타가 되풀이되고, 독재정권과 친미우익정부가 판을 치는 것을 모두 바나나 회사들 탓으로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라틴아메리카 전체에서 바나나 기업이 개입한 결과 빚어진 불안정성이 제도적 취약성이라는 전통을 만들었고, 이 때문에 진정한 민주주의와 공정한 경제정책을 수립하기가 어려워졌다.”는 지적은 타당하다. “자국 국민이 아니라 외국 기업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라틴아메리카 정부들이라는 전통을 만든 장본인”이 바로 바나나 화사들이었다.
1905년 발표한 단편집 《양배추와 임금님》에서 오 헨리는 바나나 기업과 미국 정부에 순순히 따르는 중남미의 꼭두각시 정부들을 가리켜 ‘바나나 공화국’이라고 불렀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바나나를 먹을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전 세계의 바나나가 유전적으로 전부 똑같다는 말은 전부 병에 걸리기도 쉽다는 말이다. 즉 수십억 개의 바나나 중 하나만 병에 걸려도 전부 병에 걸릴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바나나에 치명적인 병이 현재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퍼지고 있다. 병원균은 물과 흙을 통해 바나나 뿌리에 감염되는 푸사륨(fusarium) 속의 곰팡이로, 1903년 파나마에서 처음 발견되었다고 해서 파나마병이라고 불린다. 현재까지 치료법은 전무하다.
1980년대 들어 아시아의 도시들이 급성장하면서 바나나에 대한 수요 역시 급증했다. 바나나의 고향인 말레이시아는 기후와 토양은 물론, 기존의 플랜테이션 인프라가 잘 갖추어져 있어 바나나 대기업들로서는 이상적인 재배지로 보였다. 하지만 바나나를 심은 지 얼마 안 되어 잎이 갈색으로 변하더니 말라죽어 갔다. 어떤 농약을 써도 감염을 막을 수가 없었다. 농장들은 전부 초토화되었다. (일례로 말레이시아 한 농장의 1991년부터 1994년까지의 경작지 통계는 각각 660, 757, 551, 576헥타르였다. 하지만 파나마병이 발생한 1995년부터 4년 동안의 통계는 102, 0, 0, 0이었다.) 전 세계 바나나 연구자들이 병의 정체를 알아내려고 노력했다. 증상은 파나마병과 똑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말레이사아에 심은 품종은 파나마병에 내성을 지닌 캐번디시였기 때문이다.
1960년대 중반까지 사람들이 먹던 바나나는 지금의 바나나(캐번디시)가 아니었다. 바나나 산업이 시작된 초창기부터 그때까지 사람들이 먹던 것은 ‘그로 미셸’이라는 더 크고 더 맛좋은 품종이었다. 하지만 파나마병이 점차 확산되면서 그로 미셸은 멸종 위기를 맞았다. 바나나 회사들의 대책은 단순했다. 파나마병에 내성을 지닌 품종을 개발하기보다는 붕괴된 농장을 버리고 원시림을 갈아엎은 뒤 새로운 농장을 짓는 것이었다. 그렇게 50년을 옮겨 다닌 끝에 UFC보다 덩치가 작았던 스탠더드 프루트는 회사 문을 닫을 궁지에 몰렸고, 극적으로 캐번디시라는 품종을 찾아내 그로 미셸을 대체할 수 있었다. 기존의 바나나보다 더 작고 무르고 맛도 떨어졌지만 파나마병에 끄떡없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파나마병은 이제 사라졌다고 20년이나 안심하고 있던 바나나 회사들로서는 아시아의 파나마병 재발 소식이 믿기지 않았다. 캐번디시가 파나마병에 질 리 없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결국 이유를 찾아냈다. 캐번디시를 공격한 것은 바로 ‘진화’였다. 병과 그 병에 걸리는 유기체는 서로 공진화한다. 바나나의 원산지인 말레이시아에는 야생 바나나 종류만큼이나 다양한 파나마병이 진화해왔다. 그중 하나가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가 그로 미셸을 전멸시켰던 것이다. 캐번디시는 운 좋게 견뎌냈지만, 이제 자신이 파나마병의 본고장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말레이시아의 본토박이 야생 바나나들은 자신과 함께 자란 병균에 내성을 발달시켜 아무런 해가 없었지만, 그러한 유전적 이점이 전혀 없는 신참 바나나는 속절없이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1980년대 중반 동남아시아에 다시 나타난 파나마병은 지난 20년 동안 동으로는 중국, 서로는 인도, 남으로는 호주에 이르기까지 빠르게 번졌다. 피해 지역들이 바다로 나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해볼 때, 병의 확산 속도는 당혹스러울 정도다. 그로 미셸은 50년을 버티었지만, 앞으로 아프리카나 아메리카에 병이 당도하는 순간 우리는 이제 영원히 바나나를 맛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그것이 5년 후가 될지, 10년 후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바나나를 구하기 위한 과학자들의 눈물겨운 노력
치료제가 전무한 상황에서, 유일한 조처는 오염된 물과 흙이 농장 사이를 오가지 않도록 검역을 강화하는 길뿐이다. 하지만 바나나 회사들이 중간상인을 자처하고 대부분의 소규모 바나나 재배자(공급자)들이 허술하게 농장을 관리하는 현실에서 이는 실현 불가능해 보인다.
따라서 우리의 바나나를 구할 방법은 오직 품종개량밖에는 없어 보인다. 어떠한 파나마병에도 끄떡없는 새로운 바나나를 만드는 것이다. 육종학자들에게는 이종간의 교배를 통해 더 튼튼하고 더 우수한 장미, 사과, 감귤을 성공적으로 개발한 오랜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바나나의 경우는 달랐다. 1930년대에 그로 미셸을 품종개량하려 했던 과학자는 연구의 고충을 이렇게 요약했다. "번식력이 전혀 없는 식물을 가지고, 품종개량이 가능할 정도로 충분한 자손을 길러내, 원하는 특성을 모두 담은 후 다시 번식력 없는 식물로 만드는 작업은 식물의 품종개량에서 거의 유일무이한 경우다."
씨앗이 없는 바나나를 과연 어떻게 개량할까? 성공적으로 질병을 이겨낸 씨앗이 있는 야생 바나나와 씨앗이 없는 일반 바나나를 육종자가 원하는 특성(단단한 껍질, 훌륭한 맛, 강한 번식력, 병에 대한 저항력, 조절 가능한 숙성도 등)을 가진 품종이 나올 때까지 계속 이종교배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만든 바나나에서 씨를 발견할 확률은 1만 분의 1이다. 그중 실제로 생육 가능한 씨눈(배아)을 만드는 것은 1퍼센트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실험실의 바나나가 온실까지 갈 수 있는 확률은 100만 분의 1이다.
1959년부터 UFC의 온두라스 바나나 연구소에서 이러한 바나나 품종개량법을 다듬고 완성한 이가 바나나 연구계의 대부 필 로우(Phil Rowe)다. 그는 40년 동안 20여 종에 달하는 생육 가능한 바나나 변종을 만들었으며, 그중 일부가 현재 쿠바, 브라질,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 경작 중이다. 치키타가 파나마병이 물러갔다고 보고 연구소를 폐쇄한 1983년 이후에도 로우는 연구를 계속했다. 오히려 이제는 회사를 위한 상업용 바나나가 아니라 바나나에 의지하는 사람들, 바나나를 주식으로 삼는 사람들을 도울 바나나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사반세기 동안(그사이 온두라스의 대통령은 9명, 과테말라에서는 10명이 바뀌었다) 2만 번의 실험 끝에 마침내 필 로우는 ‘골드핑거’라는 꿈의 바나나를 만들었지만, 그것조차도 캐번디시를 대체할 만큼 완벽하지는 못했다. 너무나 거대하고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 앞에서 절망해서 였을까. 아이러니하게도, 로우는 2001년 바나나 나무에 목을 매 자살했다.
현재 전 세계 바나나 연구의 중심인 벨기에 루뱅 가톨릭 대학교 바나나 연구소의 소장 로니 스웬넨도 처음 아프리카에서 연구를 시작할 때는 필 로우가 개발한 전통적 품종개량법을 따랐다. 하지만 이 방법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바나나 병에 속수무책으로 쓰러지는 아프리카의 마을 농장들을 지켜보면서, 그는 해답은 생명공학에 있다고 확신하고 벨기에로 돌아와 유전자 변형 바나나 연구에 전념한다.
흙에서 천연 그대로 발견된 박테리아를 매개로 해 다른 종의 DNA를 이식하는 유전자 변형 방법은 무엇보다 시간적인 면에서 효율적이다. 기존의 이종교배법으로는 원하는 특성이 발현될 때까지 짧게는 몇 주, 길게는 몇 년을 기다려야 했다. 설사 발현된다 하더라도 새로운 바나나에 접목시키려는 특성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몇 대에 걸쳐 연구를 해야만 했다. 그러나 실험실에서 유전자 형질전환이 손쉽게 가능한 지금은 며칠, 아니 몇 시간이면 필요한 정보를 알아낼 수 있다.
그래서 스웬넨은 성공했을까? 다 알다시피 GMO(유전자변형작물)는 많은 사람들이 꺼리고 겁을 내는 대상이다. 비타민 A가 당근만큼이나 많이 든 바나나를 만든다고 하면 반기면서도, 그것을 만들기 위해서 물고기에서 추출한 표지 유전자를 사용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공포에 질린다. 언론과 시민단체는 가장 흉물스러운 식품 조합을 나열하며, 유전자변형식품을 ‘프랑켄푸드’라고 부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스웬넨의 유전자 변형 바나나들은 실험농장에서 실제로 검증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아직도 시험관에서 잠자고 있는 실정이다.
바나나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가 세상을 구할 수도 있다
바나나가 병에 걸린들, 멸종한들 그게 우리와 무슨 상관일까? 왜 우리에게 바나나가 그토록 중요한 것일까? 그것은 바로 우리에게는 단지 하나의 과일에 지나지 않는 바나나가 전 세계의 식량안보에서 중요한 먹거리이며 아프리카의 수백만 명에게는 생사가 달린 식량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아프리카의 많은 사람들이 기아로 고통 받고 있다. 하지만 우간다에는 굶주리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적은데, 이는 모두 바나나 덕분이다. 미국의 연간 1인당 바나나 소비량이 100개가 넘지만(1999년 통계), 아프리카 플랜테인의 원산지인 우간다의 연간 1인당 소비량은 그 20배나 된다. 그곳에서는 바나나가 밀이나 쌀보다 더 중요한 주식인 것이다(스와힐리어에서 ‘음식’을 가리키는 단어와 ‘바나나’를 가리키는 단어는 한 단어이다. 글자 그대로 집집마다 텃밭에 심은 바나나 몇 그루가 할아버지에서부터 손자까지 온 가족을 먹여 살린다).
“바나나를 이야기할 때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나나 때문에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점이 아니라, 바나나로 또한 전쟁을 종식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바나나를 원하는 ‘우리’가 있고, 바나나를 필요로 하는 ‘그들’이 있다. 바나나에 대한 우리의 애정이 아무리 클지라도, 후자의 세계가 훨씬 더 중요하며 우리가 내리는 선택이 두 세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명심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우리는 이제까지 오직 한 가지 바나나, 우리가 먹는 바나나만을 생각해왔다. 그것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착취당하고, 얼마나 많은 환경이 파괴되는지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우리는 또한 바나나가 얼마나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우리가 바나나 재배국가와 의존국가가 겪고 있는 고통을 계속 외면한다면, 그들과 짐을 나누어 짊어지기를 거부한다면, 맨 처음 범선에 그로 미셸을 실어오면서 시작된 경시와 착취의 한 세기를 계속 이어나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소비자로서 우리가 환경 파괴를 줄일 수 있는 유기농 바나나를 선택한다면, 노동자들에게 정당한 보상을 되돌려줄 수 있는 공정무역 바나나를 고집한다면, 안전하고 모든 병에 끄떡없으며 농약 없이도 키울 수 있는 바나나를 만들기 위한 과학자들의 노력에 힘을 실어준다면 세상을 보다 좋게 바꾸는 올바른 변화가 시작될 것이다.
해외 서평
“세계화의 역사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주는 책.” - 폴 크루그먼(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이 노란 과일에 비하자면 석유의 역사는 댈 것도 못 된다.” - 살롱닷컴
"가장 흔한 과일의 흥미롭고 놀라운 역사" - 에드워드 흄즈(퓰리처상 수상작가)
“명쾌하고, 흡입력 있고, 경탄스럽다. 한편으로는 역사책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대중과학서인 이 책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7000년에 이르는 바나나의 역사를 한데 엮어낸 솜씨가 기가 막히다.” -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흥미진진하고 충격적인 야심작. 댄 쾨펠 덕분에, 이제 전처럼 바나나 진열대를 그냥 지나칠 수 없을 것 같다. 때로는 정치경제 논문이 되었다가, 때로는 과학적 설명이었다가, 때로는 문화사인 이 책의 다중적 성격에 독자들은 처음에는 적응이 힘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쾨펠은 이 모든 요소를 매끄럽게 엮어냈다.” - 더 보스턴 글로브
“쾨펠의 이 지혜롭고 유익한 책은 갈등과 착취로 얼룩진 지난날을 이제는 소비자가 바꿔놓아야 할 때라고 말한다.” - 퍼블리셔스 위클리
“과학적 모험, 미스터리, 전기의 결합… 위험에 처한 바나나와 그것을 구하기 위해 애쓰는 과학 영웅들에 관한 이야기.” - 더 네이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