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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성모님 눈물의 호소
 
 
 
카페 게시글
★은총 증언과 동영상 스크랩 2011.6.30. 나주순례자들의 은총증언요약
축복의향기 추천 0 조회 125 17.08.27 10:4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온몸을 다 짜내어 향유를 흘려 주시는 성모님

<6월 30일 증언>

김은희 에스텔

 

딱 3주 전인 6월 10일에 제 남동생이 여자 문제도 있고 또 사업도 잘 안되니까 자살하려고 농약을 먹었어요. 근데 그게 일반 농약이 아니고 그라목손이라는 독한 제초제였어요. 그거는 조그맣게 한 모금만 삼키면 생존 가능성이 쬐끔 있고요 제 동생같이 많이 먹으면 99% 죽는다고 그러더라고요.

동생이 제초제를 먹었다는 연락을 아빠한테 받고 경황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나주가 생각나 성모님 집에 전화를 했어요. 그때가 새벽 2시쯤이었다는데 다행히 봉사자 자매님이 받으셨어요. 그래서 율리아님한테 기도 좀 해주시라고 간절히 청했어요. 그랬더니 그 봉사자 자매님이 율리아님께서 기도하신다고 전화를 해줘 그 말을 듣는 순간 안심이 됐어요.

왜냐하면 아빠가 응급실에서 왔다 갔다 하셨는데 의사가 그 상태에서 더 이상은 안 되고 죽는다고 계속 그래서 너무 무섭고 불안했었거든요. 저와 엄마는 밖에서 계속 기도를 하고 있었는데 아빠가 응급실에 한 시간 넘게 있다가 나오시는데 애가 죽는다고 막 애기처럼 울면서 나오시더라고요.

 

이 완전히 돌아가고 경련 일으키고 거의 죽기 직전의 모습이었대요. 그래서 나주 성모님 집에 또 전화를 했어요. 그런데 저는 율리아님께서 기도를 해주신다고 하셨기 때문에 동생이 죽는다는 생각은 안했어요. 근데 저희 아빠는 응급실에 들어가서 아들 상태를 보고 나오시면 죽는다고 하시고, 저는 “아빠, 사니깐 걱정 마셔요.” 하고, 한 시간을 실랑이를 한 거예요.

 

와중에 제가 아빠에게 자신 있게 얘기 할 수 있었던 건 그곳에 창문이 있었는데 기도할 때 율리아님이 아이보리색 옷을 입고 들어오셔서 제 동생 가슴에 손을 얹고 영가를 막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한 시간을 하셨는데 제가 눈으로 보고 귀로 다 들어서 확신이 생겼어요.

 

때 의사도 다 포기한다고 그랬는데 제가 확신에 차서 산다고 워낙 강하게 하니까 저희 아빠가 그 힘으로 응급실에 들어가신 거예요. 그런데 의사가 그날 새벽에 다른 병실로 옮기라고 했어요.

 

앰뷸런스 기사님 얘기로는 그 병실은 살아날 가망이 전혀 없는 환자들을 보내고 치료도 안 해준대요. 하지만 우리 동생이 죽지 않으니까 의사는 의아해하면서도 그런 경우 99% 이상 죽고, 희망은 1%도 안 되니까 준비하라는 거예요, 삼일동안이나 계속.

 

근데 토요일인 11일 날 저희 전주지부의 나주 성모님 기도 회원들이 문병 오시고 계속 기도해 주셔서 너무 감사했어요. 사실 저는 나주를 98년부터 다녔지만 믿음이 강하지 못해 중간에 오다 말다 했거든요.

그런데 성모님 집에서 기적수를 부쳐주신다고 그래서 일요일 날 나주를 와 성모님 앞에서 기도드리고 율리아님께서 기도해주신 물을 얻어가지고 병원으로 바로 갔어요.

 

근데 동생은 이제 자기가 죽는다고 생각하고는 아무 말도 안 하고 식구들 얼굴도 안 쳐다보는 거예요. 그래서 받아들이든지 말든지 기적수를 한 컵 따라 가지고 온 식구가 기도를 한 거예요. 그렇게 기도한 물을 동생한테 먹이고 저는 울면서 집에 왔어요.

 

근데 그때까지 변을 못 봤던 애가 기적수를 마시고는 엄청 변을 많이 봤다고 연락이 온 거예요. 동생은 제초제를 마시고나서, 신장 치수가 굉장히 안 좋았고 호흡이 막 가빴어요.

 

그거는 폐로 와서 폐가 딱딱하게 굳어 갖고 죽는대요. 동생도 그런 증상이 있었는데 성모님 기적수 마시고 숨도 정상이 됐고, 가래도 하나도 없고 정말 하룻밤 새 기적처럼 상태가 좋아졌어요.

 

그래도 의사는 와서 우리 동생 같이 제초제를 많이 마신 경우는 산 사람이 하나도 없다면서 자꾸 죽는다는 거예요. 하지만 저는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느님께서 살려주시리라고 굳게 믿고 계속 기도를 했어요.

그 다음날 제가 갔더니만 얘가 이제는 스스로 기적수를 달라고 하더라고요. 근데 상태가 하루가 다르게 좋아지는 거예요.

 

근데 의사는 “1주가 지나봐야 안다.” 했다가 괜찮으니까 “2주가 지나야 된다.” 계속 그러면서 낫는다는 말도 안 하고 수치가 좋아졌다고만 했거든요.

 

오늘이 딱 3주째인데 오늘 피 검사하고, 폐하고 검사 다 했는데 수치가 다 좋아져 정상이라고 하면서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지 반신반의하는 거예요.

 

그래도 완치됐다는 말을 안 하고 7월 27일 날 다시 한 번 더 오라고 하셨어요. 근데 제 동생이 나오면서 딱 하는 얘기가 “아우, 괜히 왔네. 안 와도 되는데.” 이러더라고요. 자기도 다 치유 받았다고 생각을 했나 봐요.

저는 율리아님이 그렇게 기도해주셔서 치유됐다고 생각하니 너무너무 감사해요. 제가 저번에 저희 남편이랑 PD수첩을 같이 보면서 “참 기가 막히다. 어떻게 저렇게 왜곡을 시키나?” 그러면서 “아유, 율리아님은 애기처럼 저렇게 다 털어놓으시다 이용 당하셨네.”하고 안타까웠는데요 이번에 보니까 정말 그렇게 순수한 영혼이시라 기도를 하느님이 다 들어주신 거 같아요.

 

그리고 PD수첩에서는 나주의 모든 일들을 돈하고 연결해 왜곡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은 여러분들도 다 아시잖아요. 이번에 제 동생이 살아났지만 정말 기도만 해 주시지 대가를 바라는 건 하나도 없으셨거든요.

 

근데 왜곡이 되어 가지고 그런 고통도 되게 크실 텐데, 저희들 고통까지 다 받으셔서 정말 죄송하고 정말 너무너무 감사해요.

 

저희는 기적을 다 보고 체험했기 때문에 누가 옆에 와 가지고 위협을 해도 나주는 진실이라고 얘기를 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율리아 엄마 너무너무 감사하고 베드로 회장님께도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전북 익산시 남중동 1가 거성@ 2동 509호 (010-7700-4558)

 

<7월 2일 첫토요일 은총나눔>

1. 정경섭 요셉

 

안녕하세요. 저는 춘천지부 양구에서 온 정경섭 요셉입니다.
저는 여기 다니면서 은총을 참 많이 받았습니다. 막노동 일을 하는 저는 46세인 2008년도까지는 아파보지 않았었는데 그때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많이 아파 4월 24일 원주 대학교에 갔더니 암으로 3개월 받게 못산다는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때까지 제가 한 8년 정도 냉담을 했는데 그 동기는 사실 여자 문제도 있었고, 제 사업관계도 실패해 가정적으로나 정신적으로도 많이 힘들었고, 육체적으로도 많이 괴로워 성당을 안 나갔습니다. 사실 94년도에는 상당히 열심히 했고 84년도에는 성령세미나에서 성령도 받았었거든요.

 

그런데 모든 것들이 힘드니까 성당에 안 나가다 술이 취하며 성당에 가서 바깥에 모신 성모님한테 암을 달라고 기도했어요. 천주교 신자니까 자살은 못하고 차라리 빨리 죽게 암 달라고 했던 거죠. 근데 정말 2008년도에 암으로 3개월 시한부 인생이 되어 아산병원에서 수술을 했습니다.

 

그런데 저의 형제 중에 백혈병으로 죽는다는 판명을 받은 분이 나주에 와서 나았다고 그래서 2008년 7월 2일 여기 처음 와 마리아의 구원 방주에 승선을 했습니다. 그때 다니면서 받았던 감명은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그 전에 성당에 다니면서 열심히 레지오도 하고 교육을 받으러 다니고 했지만 사실 술 먹고 친목을 다니는 게 대부분이었습니다.

 

춘천에서 여기 오려면 6-7시간 걸리는데 그 시간을 계속 기도 하고 찬미를 하며 오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순례 차에 타가지고 나주 성모님 기도하고 찬미할 때 천사들도 함께 찬미하는 그런 모습이 보이고 노래 소리가 들리면서 그렇게 좋은 거예요. 그러니 나주 성전에 도착했을 때는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집에 돌아오면 다음에 언제 또 가나? 하고 매우 기다려지더라고요.

 

저는 그때 건강에 자만하고 과신하다 암이 찾아오니까 세상이 무너지고 막 두려웠습니다. 근데 나주 성모님의 부르심으로 인해 다시 활기를 찾게 되었습니다. 제가 여태까지 살면서 주님과 성모님의 부름을 다시 받고 그렇게 기뻤던 적이 없습니다. 암으로 너무 아픈 상태였지만 그로인해 예수님과 성모님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게 너무 기뻤습니다.

 

이 세상이 새롭게 보이더라고요. 길가다가 뭘 하나 봐도 무관심하게 보이지 않고 하나하나가 새롭게 느껴지고 소중하게 생각되고 아름답게 느껴지고 그렇더라고요. 병원에서는 3개월 밖에 못 산다고 했는데 3년이 지난 지금 암이 어디로 간지도 모르게 없어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당시 저의 방탕함과 나약함을 이용해 사업관계에서 나쁜 짓을 많이 해 제가 삶을 포기하고 싶도록 일조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나주를 다니면서 내 탓의 영성을 배워 용서하지 못할 것 같았던 그 사람들을 다 용서하고 오히려 내가 먼저 그들을 찾아가서 화해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게 됐습니다.

 

또 오늘 제가 4처에서 예수님 십자가를 졌는데 그 순간 다른 때와는 달리 사람이 업히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어, 이상하다.’ 하면서 발을 떼는데 십자가에서 심장이 박동하듯 쿵쾅쿵쾅 뛰어서 너무 놀랐습니다. 수녀님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살아계심을 전하는 징표라고 그러시네요. 나중에 보니까 십자가를 맸던 왼쪽 어깨에 성혈을 많이 내려주셔서 성모님 티셔츠를 여기 가지고 나왔습니다.

 

하느님의 현존과 성모님이 우리 곁에 항상 계시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모든 것에 감사드리고 여기 나와서 성모님께 이런 얘기를 할 수 있게 되어서 너무 감사합니다. 이상입니다.

강원도 양구군 동면 73-7 (070-8886-4884,010-3338-4884)

 

2. 김용덕 사도요한

 

인천지부 사도요한입니다.
저는 은총을 너무 많이 받았는데 여기 올라온 것이 죄가 될 것 같아요. 제가 처음에는 우리 누나보고 미쳤다면서 나주 성모님을 굉장히 반대했거든요.

 

그런데 제가 나주 김치공장을 다니다 뇌졸중으로 쓰러져 일 년간 치료를 받았는데 왼쪽을 못 썼어요. 그러니까 누나가 일요일만 되면 성모님 동산에 데려가 십자가를 지라고 하고, 기적수 샤워장에서 목욕을 하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무조건 따라서 했는데 다리가 천천히 풀리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완전히 풀렸습니다. 하지만 영세를 안 받았는데 하루는 배가 무지하게 아프고 허리가 아파서 중앙병원에 갔더니 양쪽 콩팥에 한 30개의 돌이 있다고 그러더라고요. 동생이 인천에 있어서 인천으로 가서 영세를 받고 그때부터는 첫 토는 절대 안 빠지고 여기에 왔거든요.

그리고 기적수를 계속 먹었더니 신기하게도 소변에 돌들이 섞여 나오는데 엄지손가락만한 것도 빠져나왔어요.

 

한 3개월 있다가 누나가 사진을 한번 찍어보라고 해서 나주 중앙병원에 가서 사진을 찍었는데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있냐?”면서 돌이 다 빠져버렸대요. 나는 의사가 그런 말하는 거 처음 들었어요.  

 

의사는 자기도 의심스러운지 진료기록을 막 보더니 자기가 준 약은 돌이 빠지라고 준 것이 아니라면서 너무 놀라는 거예요. 제가 기적수를 계속 먹었더니 돌이 빠져나와 변기에 뚝뚝뚝 떨어지는 소리도 났어요. 그러고 나서 지금은 허리 아픈 것도 없고 굉장히 좋습니다. 이상입니다.

나주시 대방 아파트 107동 408호 (010-8033-4226)

 

3. 심현심 모니카

 

전주 평화동 성당 심현심 모니카입니다.
나주에 다닌다고 성당에 못 나오게 하지만 저는 나주 오는 게 너무 기뻐요. 그래서 6월 25일 성체성혈 대축일 전야 미사를 나주에서 바치는데 몸을 움직일 수가 없는 거예요. 그때 장미 향기가 팍 풍겼고, 미사를 마치니까 향기가 아주 코를 찌르는 거예요.

 

그런데 뒤에서 “율리아 자매님이 서 계셨던 자리에 향유를 내려주셨어!” 하는 말이 들려 뒤로 가 봤더니 성물방 레지나 자매가 진열장 밑을 가리키면서 향유가 내렸다는 거예요. 근데 향기가 얼마나 상큼하고 또 늘 풍기던 향기와도 다르면서 굉장히 진해요.

 

그래서 진열장 밑을 보니까 먼지가 좀 있기에 ‘먼지 좀 닦아내야겠다.’는 생각으로 손을 넣었어요. 근데 향유를 얼마나 많이 쏟아주셨는지 내 손이 푹 들어가면서 물컹해요. 깜짝 놀라 손을 빼서 보니까 완전히 향유로 범벅이 된 거예요. 저는 향유를 머리에다 바르면서 생활의 기도를 막 했어요.

 

그러고는 집에 돌아 와서 이틀간 머리도 안 감고 세수를 안 했어요. 그런데도 하나도 꿉꿉하지가 않았어요. 너무 좋아서 저는 6월 30일 행사 때, 옛날에 순례하셨던 사람들 찾아가서 향유 기적 얘기하고 전화로 얘기하고 해서 20명을 데려 왔습니다.

 

또 놀라운 일은, 우리는 전부 지부 “평화의 모후 기도회” 팀인데 월요일 날 기도를 합니다. 근데 지난 월요일 날 기도회에서 노래로 성호경을 하는데 율리아님께서 성전에 들어오시면 풍기는 장미향기가 진동을 해서 “나주에서 맡는 향기하고 똑같애!”하면서 네 명이 다들 놀랬어요.

근데 6월 30일 날은 우리 딸이 비닐성전에 끝까지 앉아있었어요. 그리고는 집에 와서 “엄마!”, “왜?”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 시작을 해야지? 율리아 엄마가 새로 시작합시다, 했잖우?” 그래서 딸애가 말씀을 듣는 것을 알았어요. 딸은 그런 병이니까 지금까지 건성으로 다녔는데 30날은 성가를 늘어지게 부르고 묵주기도를 하고, 아버지를 불러 싸고 그랬어요.

6월 30일, 우리 전주 지부 김 에스텔 자매가 자기 동생이 죽으려고 제초제를 마셔서 의사가 절대 살 수 없다고 했는데 율리아님 기도와 기적성수로 치유됐다고 증언했는데 제가 금요일 날 가보니까 퇴원해서 방글방글 웃고 나갔어요. 그래서 성모님 영광 위해 일하라니까 “예.” 그랬어요.

전주 손 아나다시아 자매는 지금 남편의 병간호를 하느라고 여기 못 오셨었어요. 위가 뭣에 꽉 쩔어 있고, 아까 증언한 형제님처럼 담석에 돌이 박혀 있고, 방광이 어쩌고 그래서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기적수를 떨어뜨리지 않고 갖다가 줬는데 이제 수술 안 해도 된대요.

또 3년 전에는 덕진 성당에 견진 대모를 서려고 갔는데 거기에 구마에 걸려 혓바닥을 이렇게 길게 빼고 눈이 완전히 뒤집어진 젊은 자매가 있었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그 자매가 있는 방으로 나를 밀어 넣어서 나주 기적성수 두병으로 그 마귀를 쫓아냈어요. 그래서 지금은 교리교사도 하고 열심히 한다는데 부모가 나주를 반대해서 아직은 나주 와서 증언을 못하고 있어요.

 

그리고 30세 먹은 총각이 고혈압으로 쓰러졌는데 피가 조금이라도 돌아야 수술한다는 거예요. 제가 가서 기적수를 머리부터 온 몸을 다 발라주고 먹였더니 그 엄마가 물 먹이지 말라고 했다면서 깜작 놀래요. 그래서 “아니여, 이 물은 기적성수여. 기적이 일어나!” 그러고 또 먹였어요. 그 이튿날 수술 들어가서 지금 잘 걸어 다녀요.

 

그리고 나주 다니다 돌아섰던 자매님들이 더 그래요. “나주는 돈 많다며.” 그래서 “자매님, 나주 다닐 때 돈 많이 냈어? 얼마씩 냈어? 자매님이 안 냈으면 다른 사람들도 안 내. 없는 말하면 안 돼.” 고등학교 선생님도 그래서 “선생님, 선생님은 한 백만 원이라도 봉헌했어요?” 그러니깐

 

“아니.” “선생님이 백만 원도 봉헌 안 했는데 뭔 돈이 있겠어요. 돈을 갖고 얘기를 해야 신자들이 넘어가니까 광주교구에서 그러는 거죠.”그러면 아무 말 못해요.

제가 신부님한테 “저는 눈으로 다 보고 어머니가 눈물과 피눈물로 신부님을 위해서도 호소하고 계신데 어떻게 안 가요?” 그러니까 “그러면 성당에 나오지 마.”

 

그래서 “신부님, 어떻게 그런 말씀을 그리 쉽게 하십니까? 인준나면 어쩔라고.” 그랬더니 “어? 인준나면 내가 무릎을 꿇지.” “그러면 율리아 자매님 앞에서도 무릎 꿇으셔야 돼요,

 

사기꾼이라고 했으니까.” 저는 두려울 게 전혀 없습니다. 목숨을 바친들 이 은혜에 어찌 보답하겠습니까. 아멘!

전북 전주시 완산구 평화동1가 458-1 (010-3704-5804)

 

4. 김용현 율리오

 

찬미예수님, 찬미성모님.
두 번째 증언했던 사도요한은 저희 큰 형입니다. 오늘은 성모님이 원하시는 삶을 좀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왔습니다.

97년도에 제가 중국에서 어학연수를 하고 사업이라고 시작을 했는데 저 나름대로 참 열심히 했지만 어느 정도 벌면 손실이 오고 또 손실이 오고 잘 안되더라고요. 저는 영세를 받았지만 믿음도 신앙도 별로 없었어요. 그런데 7년 전에 갑자기 몸이 아팠어요. 술도 많이 먹다보니 치질도 굉장히 심하고.

 

남들이 간단하게 생각하는 치질이지만 내 나름대로는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됐어요. 왜냐면 그것 때문에 수술을 하고, 그로인해 누나가 얘기했던 제 1회 나주 젊은이 피정에 참석해서 “내가 지금까지 왜 사는가? 왜 돈을 벌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얻었어요.

 

‘내가 살아가는 게 내가 하는 게 아니구나. 나를 통해서 주님 성모님이 하고자 하시는 것이 있었구나.’ 라는 깨달음이 와서 그때부터 저희 집안을 조금씩 돌보게 됐고, ‘하루하루를 주님께서 이끌어 주시는구나. 그러면 나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만 살면 다 된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피정에서 저는 성혈을 받았는데 그때는 그저 그냥 ‘주셨나 보다.’ 이렇게 생각하고 넘겼었는데 그 뒤로 사업들이 막히고 이랬을 때 나주에 오면 다 풀리더라고요.

 

그때부터 제 인간적인 것들을 하나하나 내려놓으면서 주님, 성모님을 위해 살려고 노력했는데 어느 시기에 성모님께서 집을 주셨어요. 제가 열심히 벌려고 해도 안 벌렸는데 오히려 놓으니까 해 주시더라고요.

 

그걸 계기로 율리아님 말씀처럼 ‘항상 깨어 있어야겠다.’ 라고 생각습니다. 저는 “돌아온 탕자”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오늘 나온 것은 주님 성모님이 불러주신 만큼 다시는 뒤 돌아보지 않고 주님 성모님이 바라는 삶을 살기 위해 다짐을 하려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 감사합니다.

인천 연수구 연수동 633번지 대동아파트 106동 208호 (032-888-0035)

 

5. 조상배 마르첼로

 

찬미예수님, 찬미성모님.

오늘 은총을 너무 많이 받고 너무 울어서 목이 쉬었습니다. 대구교구의 경산본당 조성배 마르첼로입니다.

 

15년 간 냉담하던 저는 작년 12월 24일, 인터넷에서 나주 성모님을 찾아 봤습니다. 그런데 반대파들의 얘기도 같이 나오니까 헷갈리는 거예요. 그래서 ‘이거는 하루 만에 해결 된 일이 아니다. 집중적으로 한 3-4일은 다 뒤져봐야 되겠다.’ 마음먹고 싹 뒤져 여러 가지를 다 보고 최종판단을 했습니다.

 

“나주는 진실인데 어떻게 하여 훌륭하신 광주대교구의 윤공희 대주교님, 최창무 대주교님, 김희중 대주교님 눈에는 도대체 왜 안 보이는가? 하찮은 내 눈에도 보이는데!’ 하고는 1월 중순경쯤 냉담 중인 큰아들하고 나주에 와 장 신부님께 고해성사를 보고 그 후로 오늘까지 계속 오게 됐습니다.

 

그런데 오늘 제가 왜 이렇게 울었냐 하면 죄인인 제가 성혈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길 할 때도 울고 너무 많이 울었어요. 저는 성모님 티셔츠를 바지 속에 넣고 입었는데 혁대 밑으로 속에 들어가 부분에도 성혈이 내려 오셨습니다.

 

제가 작년에 인터넷을 찾아보지 못 했다면 아직도 냉담 중에 있을 것입니다. 진실은 분명하게 승리합니다! 아멘! 알렐루야! 감사합니다.

경북 경산시 사정동 삼산@ 101-102 (053-242-6742 / 011-530-7491)

 

6. 김재억 바오로

 

찬미예수님! 저는 대구지부의 김재억 바오로입니다.
저희 어머니를 통해서 나주의 주님과 성모님께서 베풀어주신 그 은총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지난 6월 28일, 84세의 저희 어머니께서 새벽4시경에 선종하셨습니다. 구교 집안에 태어나신 어머님은 11남매를 낳아 9남매를 키우셨고 정말 열심하고 기도와 희생의 삶을 사셨습니다.

 

저는 어머니 때문에 2004년 5월초에 나주를 오게 되었습니다. 그때 어머니 건강이 좀 안 좋으셨기 때문에 돌보아 드리는 책임으로 함께 오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영혼이 병들고 죄 중에 있었는데 성모님 향기가 진하게 나서 회개의 은총을 청하니까 눈물 콧물이 저도 모르게 쏟아지면서 회개가 이루어졌습니다. 그 모든 것이 어머니를 통한 부르심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머니께서는 지난 5월 22일 나주에 오셨는데 며느리, 딸들이 다 같이 부축해서 성모님 동산에서 십자가의 길을 하시고 샤워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셔서 하신 말씀이 “날아갈 것 같다. 뻥 뚫리는 것 같다.” 그렇게 은총을 받으시고는 지난 6월 28일 선종을 하셨습니다.

 

나주를 다녀오시고 한 달 남짓한 기간 동안 두 번의 임종 위기가 있었는데 두 번 다 기적적으로 생기를 찾으셨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율리아 자매님의 대속고통을 통해 어머님이 회생하신 것 같습니다. 그러다 선종하실 때는 밤11시~새벽3시까지 숙면을 취하시고 3~4시까지 1시간 동안 표정이 밝아지시면서 그렇게 선종을 하셨습니다.

 

율리아님께서 11시경에 도착을 하셔서 저희 어머님 시신을 싼 천을 벗기고 기도를 하실 때 천의 가슴께에 황금향유를 내려주셨습니다. 그리고 빈소에서 연도 오신 분들이 성수예절을 많이 해서 “주여 망자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라는 글귀와 망자의 성함과 세례명을 적어 놓은 종이가 글씨가 번지고 많이 젖었어요.

 

그래서 “아버님, 저거 좀 바꿔야 되겠습니다.” 말씀을 드리고 다른 종이에 큼직하게 글씨를 써 가지고 와서 가운데 밑에 붙이고, 위에 있던 그 종이를 아무 생각 없이 떼어내 접는데 익숙한 향유향기가 코를 찔렀습니다. 제 손을 보니 향유였고 신의 종이 절반이 향유로 흠뻑 젖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주님과 성모님께서 돌아가신 어머님과 율리아님의 기도를 통해서 저희 가족들과 친인척들이 나주에 발현하신 주님과 성모님의 현존을 뼈저리게 느끼고 받아들여 잘 살도록 하시려고 그러한 메시지를 주시는 것이라고 생각이 되었는데 정말 그것을 보고 형제들이 많이 변화되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저희 매형은 본당 평협 회장을 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율리아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그런데 나주는 왜 돈을 가지고 그러냐?” 하기에 “매형, 길게 얘기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나주에서 일어난 일은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니까 광주교구가 제대로 조사해서 인정하라.’ 이거고, 광주교구에서는 조사도 안 하고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 아니니까 나주는 없어져라.’ 라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나주가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라고 광주교구가 받아들이면 나주에 있는 모든 재산은 광주교구로 갑니다. 그런데 나주가 무슨 돈을 가지고 광주교구하고 다툼을 벌이는 것처럼 얘기합니까?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보시면 금방 알 일을 왜 유언비어만 듣고 판단하십니까?”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매형도 율리아님이 오셔서 기도할 때 시신에 향유가 내린 것을 직접 목격 하시고 신의에 내린 향유도 보셨습니다.

 

또 저희 큰집 동생은 아주 깐깐한 성격인데 우리들이 나주에 대해 얘기하는 것조차 아주 못마땅해 했습니다. 그런데 자기 눈으로 직접 보고 향기도 맡게 되고 하면서 생각을 바꿨고, 문상 온 많은 친인척분들께서도 직접 보시게 됐습니다.

 

그러니까 누님께서 자녀들과 조카들도 다 불러서 향기 맡게 하고 주님과 성모님의 현존에 대해서 얘기를 하게 했습니다.

 

그걸로 인해서 초상집이 축제 분위기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주님과 성모님께서 저희 어머님의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하고 계신다는 징표로 받아들였고, 저희 가족들의 믿음이 회복되면서 축제 분위기가 된 것입니다. 특히나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마리아의 구원방주회 식구들이 바친 연도였습니다.

 

본당에서 오시면 연도를 해치우는 느낌이라면, 나주의 장미가족들이 바치는 연도는 너무나 정성을 다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장미가족이 너무나 많이 와 주셨고 정성을 다해 기도하는 그 모습들을 보면서 일반 신자들과 저희 가족, 친인척들이 많은 변화를 가지게 됐습니다. 대구 지부의 합동 연도 때는 저희 가족들 포함해서 약 70여명이 너무나 우렁차고 정성스럽게 했습니다.

 

또 연도를 마치고 나서는 저희 어머니께서 5월 22일 나주에 오셔서 마리아의 구원방주에 승선하셨음을 말씀드리고, 함께 “마리아의 구원방주” 성가를 부를 때 정말 뭐라고 표현할 길 없이 너무나 벅차고 감격스러웠습니다.

 

그리고 본당 신자들도 많은 변화를 가져오신 듯 했습니다. 저희 셋째 형님은 아버님이 다니시는 본당에 나가시는데 거의 1년 이상을 성체를 영하지 못하면서 미사에 참석했었습니다. 그리고 둘째 형님 베드로 회장님도 그 본당 출신인데 형제간에 나주에 와서 봉사하고 있는 걸 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들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참 힘들고 조심스러웠습니다만 나주의 장미가족들이 오셔서 보인 행동과 기도하는 그 모습 자체가 좋은 열매를 맺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주 식구들의 모습을 보고 많은 신자들이 나주 성모님을 새롭고 올바르게 판단하는 계기가 될 거라고 봅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전임 본당 주임신부님께서 징계 아닌 징계로 묶어놓으신 것들을 지금 새로 부임하신 신부님께서는 다 풀어 주셨습니다. 또 나주에 순례 가는 것에 대해서도 신자들이 고발하고 그러지 않는 상황에서는 거의 다 묵인을 하시면서 성사 생활 다 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임신부님의 집도로 장례미사를 거룩하게 잘 치렀는데 이제 특정한 몇몇 신부님들을 빼고는 대다수의 신부님들이 그러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대구시 중구 삼덕 2가 305-201호 (010-7714-3372)

 

<2011년 6월 30일, 7월 2일 개별 증언>

1. 이 연성 마리아

6월 30일 아침부터 두통이 극심했으나 만남 때 율리아 자매님에게 머리에 뽀뽀를 받고 집에 오니 두통이 사라졌답니다.

전주 완주군 삼례읍 구상리 354, 063-291-3622

2. 양순옥 베로니카

오랫동안 가슴통증(나중에야 협심증임을 앎)이 심해서 한 번씩 가슴을 부여잡고 방을 데굴데굴 굴러야 할 정도였는데 만남 때마다 율리아 자매님께서 가슴에 십자가를 그어주시며 계속 기도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 기도를 안 해주셨고 그때부터 극심했던 가슴통증이 없어졌음을 이날 깨달았답니다.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 소사본3동 풍림apt, 103동 505호.
010-2729-2455

3.  임명옥 체칠리아 자매

성남의 임명옥 체칠리아 자매는 나주 성모님 은총으로 유방암을 치유 받았다고 합니다.
8월 15일에 증언을 하신다고 합니다.

031-753-6657,010-5704-6657

4. 윤혜인 미카엘라

초등 6년 윤혜인 미카엘라 학생은 교실에서 목발을 집고 다니다 5미리 두께의 선생님 사물함 유리를 이마로 받아 박살이 나면서 머리 위로 날카로운 유리파편이 우수수 쏟아져 내렸답니다.

 

그런데도 미카엘라의 몸에는 조그만 상처도 생기지 않아 그 모습을 본 선생님과 아이들 모두 놀라며 기적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날 아침 미카엘라의 엄마 전 마리나 자매님은 등교하는 딸의 머리에 기적성수를 3방울 떨어뜨리며 기도해 줬는데 성모님께서 그 사고를 막아주시기 위해 미리 준비하신 것이라고 받아들였습니다.

전남 영광군 흥농읍 상하리 한수원 사택 10동 203호.
(010-3097-5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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