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22일 참석했던 시카고 심포니의 말러 2번 교향곡 정기연주회 후기를 간단하게 올립니다.
음악을 많이 듣고 연주회도 자주 참석하는 편이지만 사실 말러의 교향곡에 대한 전문가적인 소양은
무척 부족한 관계로 정보 전달 위주의 글을 올리겠습니다.
하이팅크는 지난 2006년 4월 바렌보임의 사임으로 공석이 된 시카고 심포니의 수석 지휘자(principal conductor)
자리를 승락했습니다. 하이팅크의 인터뷰에 따르면 원래 시카고 심포니는 하이팅크를 바렌보임의 후임으로
음악감독(music director) 자리를 제의했으나 하이팅크가 미국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에게 부여되는
과도한 음악외 업무를 하고 싶지 않아 절충안으로 유럽의 교향악단에 일반적인 직책인 수석 지휘자 자리를
받아들인 것입니다. 하이팅크는 자신의 역할을 'care taker'로 정의하고 있으며 새로운 음악감독인
리카르도 무티가 오기 전까지 생길수 있는 예술적 공백을 메우는 것이 주된 임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난 2년간 하이팅크가 시카고 심포니와 함께 보여준 연주 수준은 거의 최상급으로 현재 시카고
심포니의 기량은 바렌보임 시절 이상으로 뛰어납니다. 특히 말러 교향곡 연주에 있어 (3번, 6번, 1번, 2번)
소위 '말년 스타일' (late style)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이채롭습니다. 저의 개인적인 견해로 하이팅크가
시카고 심포니를 지휘해 보여주는 그의 '말년 스타일'은 번스타인이 지난 80년대 비엔나 필하모닉을 지휘해 보여준
그것에 비교될 수 있다고 봅니다. 저의 짧은 문장력으로 하이팅크의 '말년 스타일'을 정의하기는 쉽지 않지만 몇몇
특징을 다음과 같이 지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곡의 디테일에 대한 강조
- 투명한 오케스트라 사운드
- 느린 템포
- 음의 블럭을 쌓듯 구축미를 강조하는 해석 (다소 브루크너를 연상시키는)
따라서 하이팅크의 말러는 곡의 감성적인 측면과 히스테리컬한 감정 기복을 극단적으로 표현하기 보다는
자칫 주정적인 해석에 가려 묻힐 가능성이 있는 디테일을 효과적으로 들려주고 순음악적인 측면을
강조한 세련된 연주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느린 템포는 디테일을 효과적으로 들려주기 위해
어느 정도 불가피한 면이 있는데 이는 첼리비다케의 뮌헨 필과의 말년 연주에서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이번 말러 2번 교향곡 연주에서도 하이팅크의 이런 성향이 반영되어 연주시간 90분에 육박하는 느린 템포에
다른 연주들에서 듣기 힘든 섬세한 디테일을 (특히 2, 3악장) 뚜렷이 들을 수 있었고 곡의 클라이막스를 마지막
악장에 두는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는 그의 가장 최근 연주인 6번, 1번 연주에서도 공통적으로 적용된
아이디어로 상당히 느린 템포임에도 불구하고 실연으로 들을 때는 절대 처진다는 인상을 받지 않았습니다.
시카고 심포니의 유니크한 사운드를 특징짓는 금관군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강력하기 이를데 없었고,
(특히 불과 몇년전 새로 뽑힌 트럼펫 수석(Chris Martin)의 기량이 굉장합니다. 시카고 심포니에서 거의 50년간
트럼펫 수석을 담당한 전설적인 Herseth의 후임으로 들어온 주자인데 Herseth에 비해 기량이
전혀 손색이 없습니다. 이 연주자의 탁월함은 드보르작 교향곡 8번 4악장의 시작부분에서의 독주를
아시아 필하모닉의 트럼펫 주자(일본인으로 시애틀 교향악단 트럼펫 수석이라고 했습니다.)의
그것과 비교함으로서 단번에 알 수 있었습니다.) 목관군은 현재 클라리넷 수석이 공석이긴 합니다만
월드 클래스의 플룻 및 오보 수석을 보유함으로서 미국 관현악단 중 거의 탑이고 비교적 평범한
현악기군은 하이팅크의 수석 지휘자 취임 이후로 점점 가늘면서도 고급스런 질감을 지닌 소리로 바뀌어
콘서트헤보우의 그것과 유사해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두터우면서도 섬세한 드레스덴의 개성적인
목질 현과는 뚜렷이 구분되죠.)
독창자들의 기량도 뛰어났는데 최근 하이팅크과 자주 연주회를 가지는 네덜란드 출신의 Christianne Stotijn과
Miah Persson이 독창자로 활약했는데 Stotijn은 루드비히를 연상시키는 개성적인 음색의 소유자였고
Persson같은 경우 성량이 약간 작은 듯 했지만 무척 고운 음색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박종호 선생님이
그의 저서에서 이 소프라노에 대해 절찬을 하시더군요.) 시카고 심포니 합창단은 예의 명성대로 모범적인
연주를 연주를 들려주었습니다.
현재 시카고 심포니 홈페이지에 지난 5월에 있었던 말러 1번 교향곡 연주를 방송하고 있는데 이번에 들려준
2번 교향곡의 연주와 맥을 같이 하는 연주입니다. 극적인 면은 약간 부족하지만 무척 아름다운 연주를 들려줍니다.
관심이 있는 분은 방문해서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http://www.cso.org/main.taf?p=15,1,94
내일은 페라이어와의 협연으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 연주를 들으러 시카고에 갑니다. 80년대 말
페라이어/하이팅크 콤비는 이미 뛰어난 녹음을 남긴 바 있어 무척 기대가 큽니다.
첫댓글 김대진님의 하이팅크 말년 연주 스타일의 특징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직접 들어보신 분이니 더 정확하시겠지만 음반으로 들었을시에는 6번의 경우 주정적이기보다는 악보에 충실한 해석에 위주를 두어 6번치고는 좀 심심담백하지 않나하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금관녹음이 현악에 비해 너무 튀는 경향이 있더군요. 아마 녹음 문제인듯 합니다. 역시 실연을 직접 듣는 것과 음반으로 만들어졌을 경우에 듣는 경우에는 그 차이를 어쩔 수 없나봅니다. 음반에서는 투명한 사운드라고 느껴지기 힘들더군요. 그래도 1번과 2번 연주가 얼릉 음반으로 나오길 기대합니다. 아 부럽다...
녹음 탓도 있을 겁니다... 이번에 3번과 6번 녹음을 들어봤는데 김대진님께서 지적하신 것과 거의 같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6번 녹음 같은 경우 디테일이 잘 잡혀 있기는 하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현악기의 음압이 낮게 녹음이 되어있더군요. 실제로 들었을때에는 현악기군이 좀 더 부각되어 들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현재 시카고 심포니 사운드 자체가 현악기군 소리가 가는 편이고 금관은 소리가 상당히 크기 때문에 다른 악단과는 뚜렷이 다른 밸런스를 들려줍니다. 얼마전 드레스덴의 소리를 들었을때 현악기 소리가 무척 두텁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아마 독일계 악단의 특징이겠지요. 그리고 시카고가 탑클래스 악단임은 분명합니다만, 하이팅크나 불레즈가 지휘봉을 잡을때 확실히 더 뛰어난 연주를 들려주는 것 같습니다.
마침 요며칠간 CSO 홈페이지 가서 밀려놓은 음원 몰아서 들었는데 하이팅크 할부지 연주가 특히나 좋더라구요. 언급하신 말러1번도 너무 좋아서 반복해서 들었어요. 바렌보임,나가노 연주보다 한 차원 위라는 생각이 들었다는..쿄쿄쿄 아 그리고 드레스덴 현을 목질같다고 표현 하셨는데 완전 공감해요! 어떨땐 금속이 고온에 그슬리는 것 같이 그르렁 그르렁~ 거리는 소리를 내는데 정말 감탄이 나오더라구요. 내년에 루이지랑 올때 꼭 가보려고 합니당 헤헷(돈은 어디서???? ㅠㅠ)
아쉽지만 내년 드레스덴의 아시아 투어 스케줄에서 한국은 제외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내년 2월의 시카고 아시아 투어와 비슷하게 일본, 홍콩, 중국만 다녀가는 듯 합니다. 제가 사는 코딱지만한 시골도시도 방문한 악단이 왜 인구 천만이 되는 메트로폴리탄 서울에서 연주를 갖기 힘든지 모르겠네요. 사실 지난번 이곳의 드레스덴 연주회때는 객석이 너무 많이 비어서 음악가들에게 조금 미안한 생각도 들더라구요.
서울시향이 전용홀을 가지게 되면 시향 자체가 전용홀에서 열리는 연주회 기획을 직접할 수 있게 되어 유수의 악단을 초청할 때에도 보다 저렴한 가격에 연주회를 관객들에게 선보일수 있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예를 들면 시카고 심포니는 연간 4-5차례에 걸쳐 탑클래스 악단을 초빙하는데 단순히 연주홀만 대여하는 것이 아니라 시카고 심포니의 정기연주회와 마찬가지로 기업들로부터 협찬을 받습니다. 그래서인지 티켓가격이 오히려 시카고 심포니의 정기연주회보다 약간 더 쌉니다. (30-100불, 시카고 정기연주회의 경우 대체로 20-130불) 가끔씩 연주홀만 대여하는 연주회도 있는데 연주단체의 퀄리티와 무관하게 티켓가격 상당히 비쌉니다.
앗 SKD 오는걸로 알고 있어요. ^^ http://www.sejongpac.or.kr/performance?code=grpe2009050914001 나중에 취소되려나요? 쩝..
앗, 저는 드레스덴 홈페이지에서 확인했는데 한국이 포함되어 있지 않더라구요. 일본에서 6번, 중국에서 3번, 홍콩에서 2번 연주회 갖는 걸로 되어있네요. http://www.semperoper.de/en/staatskapelle/tourneen_und_gastkonzerte_20089/gastkonzerte_in_wien_und_asien_tournee.html
드레스덴도 그렇지만 CSO는 한번쯤 내한할 때가 된 것 같은데 언제 안오려나요? 물론 환율문제도 그렇고 당장은 어렵겠지만요. 만약 오더라도 기왕이면 하이팅크 옹이나 바렌보임과 와주면 좋겠지만 아직은 이 모든게 요원한 일인듯 보입니다. 하이팅크는 과거 콘서트헤보우나 베를린필과 함께했던 말러영상물을 보면 지금과는 느낌이 많이 다르지 않나 싶습니다. 연륜이 쌓여갈 수록 템포는 느려지고 세부에 집착하게 되고 무섭게 질주하기보단 한겹한겹 구축미에 중점을 두는 현상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흐름처럼 보입니다. 암튼 가까이에서 그분을 접할 수 있는 김대진님의 환경이 부럽기 그지없습니다.
아마 바렌보임이 시카고를 지휘하는 모습은 앞으로 거의 보기 힘들지 않을까 싶네요. 15년동안 몸담았던 악단인데 사임이후 객원 지휘하러 한번도 안왔습니다. 현재 시카고 심포니 운영진과 사이가 별로 안좋았다고 하더라구요. 시카고에 와도 오케스트라 홀에서 연주하지 않고 다른 곳에서 연주하더군요. 80세 생일 기념으로 초청하면 시카고를 지휘하러 올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내년 2월 시카고의 아시아 투어가 계획되어 있습니다. 하이팅크 지휘로 말러, 브루크너, 슈트라우스 등을 연주할 예정인데 한국은 빠져 있네요. 나이를 고려할 때 하이팅크의 연주를 한국에서 들을 거의 마지막 기회인데 아쉽습니다.
언제나 예외없이 땀으로 흠뻑 젖어버린 얼굴로 (거기에 얼마 안되는 하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열정적으로 지휘하는 하이팅크 옹의 모습이 눈 앞에 아른거리네요. 과연 머지않아 이 먼 동북아시아 한반도까지 날아와주실런지 막연하게나마 기대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부디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셔야될텐데... BMWs 사이클 한번쯤 더 진행해주셔도 아직은 끄덕없으시겠죠?
저도 내년에는 김대진님처럼 시카고 심포니의 연주회를 참석해서 후기를 남길 수 있는 날이 오길 고대해 봅니다. 이번 부활도 음반으로 나오겠지요? 기대가 되네요~
승민님 이번 지원에 좋은 결과 있길 바래요~ ^^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