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7일 – 성 안토니오 아빠스 기념일
우리 신자분들은 수도 생활은 어떤 삶으로 이해하고 계실까요? 수녀님들이나 수사님들을 보시면 어떤 생각을 가지실까요? 네, 참으로 많은 분이 이 거룩한 봉헌 생활을 하시는 분들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대하시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에 대해 저도 깊이 감사한 마음입니다. 참고로 2월 2일 주님 봉헌 축일은 “봉헌 생활의 날”이라고 하여 하느님께 완전히 자기 자신을 봉헌 수도자들을 기억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안토니오 아빠스 성인이 바로 봉헌 생활을 하는 수도자들의 큰 스승입니다.
251년 그러니까 지금부터 거의 1,800년 전에 이집트에서 출생한 성인은 20세가 되기 전에 부모님을 잃고 큰 유산을 상속 받습니다. 농토였던 것 같아요. 그런데 복음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당신을 따르려는 부자 청년이 어떻게 하면 좋을 지를 물어볼 때 하셨던 대답에 감명을 받습니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마태 19,21) 바로 이 말씀대로 재산을 처분하고 여동생을 어느 공동체에 맡기고는 사막으로 떠납니다. 사막에서 그분은 하느님의 목소리를 찾아 은수 생활을 합니다. 은수 생활은 말 그대로 숨어서 덕을 닦는 것이지요. 사막이나 광야는 사람이 아무런 삶의 전제 조건 없이 하느님을 일대일로 만나는 최적의 장소로 생각을 했습니다. 거기에는 다른 사람도, 삶의 숱한 우여곡절도 없이 하느님과 속된 말로 맞짱 뜨기 가장 좋은 곳입니다. 우리 그렇죠. 아주 친하지 않으면 둘이 있기 힘들지요? 하지만 우리는 본질적으로 하느님과 일대일 관계로 신앙생활을 합니다. 삶도 하느님과 정산하는 것이지 다른 사람을 두고 하지 않습니다. 삶은 하느님과 나의 공유물입니다. 그 누구하고도 본질적으로 공유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사막으로 떠나 은수를 하던 성인의 평판이 저절로 퍼지고, 몇 명의 추종자들이 생겨 그분에게 영성지도를 받습니다. 그러면서 조그만 공동체로 시작된 것이 수도 생활의 원천입니다. 물론 안토니오 성인 말고도 다른 은수자들도 많았고, 성인 이전에도 그런 공동체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성인이 너무 독보적인 존재였던 것이지요. 그분의 가르침과 수도회의 규칙들이 다른 수도회에 영감을 주었고, 그 후에 점점 여러 곳에서 수도 공동체들이 생겨났습니다.
우리가 보면 현재 수도자들은 사막에 사는 것이 아니라 세속에 살며 여러 가지 일을 합니다. 그것은 “사도직”이라고 표현되는 다양한 활동입니다. 병원, 학교, 자선사업, 상담, 빈민가 헌신, 험지 선교, 교리 교육, 본당 등에서 여러 활동을 하지만, 그것은 활동이고, 수도 생활의 본질은 바로 이 사막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일입니다. 그분들은 모든 사유 재산을 포기하는 가난, 인간적이고 성적인 모든 유대 관계를 포기하는 정결, 수도회의 장상들과 책임자들의 명령과 결정이 하느님의 뜻이라고 받아들이는 순명, 바로 이 세 가지를 공동체 앞에서 지키겠다고 약속을 함으로써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수도자로 인정받고 그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외웁시다. “가난(청빈)-정결-순명” 이 세 가지가 수도 서원의 약속 내용입니다. 그러니 앞으로 수도자들이 잘 살기를 바라고 기도하고 도우실 때, 그들이 하는 일보다, 그들이 한 서원을 잘 지키도록 기도하고 도웁시다. 일보다 자신들이 한 약속이 그들의 정체성과 존재의 이유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안토니오 성인을 생각하면서 저는 한 가지 질문을 우리 신자들께 합니다. 우리는 복잡한 현실에 살아갑니다. 시끄럽습니다. 머리도 아픕니다. 거기에 푹 빠져 있으면 보이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현실이 사막일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을 만나는 진공의 장소이고, 침묵의 장소이고, 관상의 장소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하느님께 걸고 산다면. 현대의 사막은 우리가 사는 장소일 수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이미 많은 분들이 좋은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작은 책 한 권 소개합니다. 까를로 까레또라는 분이 쓰신 얇은 책입니다. “도시의 광야”라는 10분이면 다 읽을 책이 있으니 원하시는 분들, 특히 형제님들의 일독을 권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신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리고 나를 따라라.”(오늘 영성체송, 마태오 19,21 참조)
(비전동성당 주임신부 정연혁 베드로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