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의 소리
김 국 자
‘이럴 수가 있을까! 생각하면 할수록 분통이 터지는 노릇이다. 사람을 믿어도 유분수지 바보처럼 당한 일이 현실이기에 벙어리 냉가슴 앓듯 속을 태웠다. 갑자기 뺑소니사고를 당한 생각만 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앉는다.
구민회관에서 문학 강좌가 있던 날이었다. 구민회관 앞 횡단보도를 건널 때였다. 신호등을 확인하며 건너고 있을 때, 갑자기 신호를 무시하고 달리는 승용차에 부딪혔다. 왼쪽 어깨와 가슴팍이 얼얼했다. 왼쪽 손목에서 피가 흘렀다. 가슴팍을 손으로 문지르며 가해차량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 내 옆에 있었는데, 어느새 달아나고 있었다.
교통신호가 바뀌고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후진하더니 도로변 한쪽에 차를 세웠다. 운전자는 사십대 젊은 여성이었다. “그렇게 도망가는 법이 어디 있어요?” 했더니 문을 열어주면서 어서 차에 타라고 했다. 다른 차량들에게 지장을 주지 않으려고 차에 올랐다. 좌회전 신호에 따라 소피아호텔 건너편으로 회전했다. “어디가 제일 많이 아프세요?”그녀가 물었다. 나는 말없이 손을 가슴에 올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적한 곳에 주차하고 상황을 확인할 줄 알았다.
그녀는 차를 멈추지 않고 계속 달렸다. 운전대 위에 걸려있는 묵주가 눈에 띄었다. 묵주를 보는 순간 안심이 되었다. 같은 카톨릭 신자로 한 가닥 양심을 믿었다. 병원을 찾는 것처럼 두리번거리는 그녀를 신뢰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카톨릭 신자라고 밝히고 성당이름까지 밝혔다. 그때부터 그녀의 태도가 달라졌다. 표정도 부드러워지고 말씨도 상냥해졌다.
잠깐 방심한 사이 그 차는 도봉구를 벗어나고 있었다. 덜컥 겁이나고 무서운 마음에 “제발 차 좀 세워요” 소리쳤다. 도봉경찰서를 지나 노원구청 건너편에 있는 정형외과 앞에 차가 멈추었다. 그녀가 “주차하고 들어 갈 테니 접수부터 하세요.”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미심쩍은 마음에 차번호를 확인하는 순간, 그 차는 질주하는 차량들 틈으로 도주하고 말았다. 한 가닥 양심을 믿었던 나의 마음은 배신감으로 타올랐다. 솔직히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같은 종교인으로부터 받은 배신감은 무어라 표현할 수 없었다. 미안하다 위로는커녕 뺑소니를 치다니 가소로울 뿐이다. 도봉경찰서 담당 경찰관과 현장으로 가본 결과 운전자의 실수임이 판명되었다. 현장조사로 모든 정황이 참작되었고, 차번호를 가르쳐주었건만 찾지 못했다.
병원에 입원하여 하룻밤을 자고 나니 정강이와 어깨가 너무 아팠다. 어깨와 가슴팍은 시퍼렇게 멍이 들고 온 몸이 욱신거렸다. 가족들은 고통스러워하는 내게 ‘머리 안 다친 걸 다행으로 알라’고 달래주었다. 입원치료 받고 외상은 치료되었지만, 가슴에 맺힌 마음의 상처는 그대로 남았다. 사고를 내고 도망간 그녀는 양심의 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남의 가슴 아프게 해놓고, 마음이 편할까? 그것이 알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