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의 고유 풍습에서도 나이를 세는 방식이 두 가지가 있었다는 사실을 거의 모르고 있다. 하나는 한 살, 두 살의 살이라는 단위를 쓰는 방식이고 또 하나는 첫돌, 두 돌의 돌을 쓰는 나이의 계산 방식이다.
돌은 첫 돌, 두 돌에서 보듯이 지금 우리가 세는 만 나이와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음을 본다. 돌은 24절기 일년을 돌아 다시 왔다는 뜻에서 돌다를 어원으로 하고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1년의 기간을 가리키는 개념을 갖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돌이라는 단위가 주로 어린 아이들의 나이에서 쓰고는 있지만 꼭 사람의 나이에서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고 회사의 나이를 셀 때도 쓰이고 지난 간 일의 햇수를 헤아릴 때도 쓰이고 있다.
다시 말해 이 돌이라는 단어는 나이를 세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서, 생겨나서 또 발생해서 햇수로 얼마가 지났느냐는 기간의 의미만을 갖는 단순한 셈본인 것이다.
그렇지만 한 살, 두 살의 살은 생일이 지나야 한 살을 더 먹는 1년의 기간이 아니라 설날 떡국을 먹어야 한 살을 더 먹는 해(년)의 차례다.
서양의 나이 계산은 생후 하루부터 한 달, 두 달, 일년 등의 생존의 기간을 세어 나가는 방법이지만 우리의 방식은 1월에 태어나던, 12월에 태어나던 첫 번째 해(년)라는 의미에서 태어나서 바로 한 살을 얻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나이 계산은 태어나서 얼마를 살았느냐의 기간을 따지는 것이 아니고
태어나서 몇 번째 해에 살고 있느냐는 계산법인 것이다.
이렇게 보면 나이가 결국 햇수를 헤아리는 거니 몇 년 몇 달을 살았다는 것보다는 몇 년째를 살고 있다는 것이 더 합리적일 수도 있겠다. 정월 초하루에 태어나든 섣달 그믐에 태어나든 모두 첫 번째 해가 되어 한 살이 되고 비록 섣달 그믐에 태어나 하루 만에 두 살이 되었다 하더라도 두 번째 해를 사는 것이 되니 이제 우리 조상들이 어떻게 나이를 세어 왔는지 확연히 이해를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왜 0년은 없느냐 라는 의문이 있을 수 있겠다. 예를 들어 보자. 지금 전 세계가 예수의 탄생을 기준으로 한 서력을 쓰고 있다. 그 서력에 서기 0년이 있는가. 없다. 또 옛날 왕이 새로 즉위하면 연호를 제정하는데 그 연호의 계산에도 0년은 없다. 예수 탄생 첫 번째 해의 서기 1년이며, 광개토대왕의 첫 번째 해인 영락 1년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한 살도 일년을 살아서 한 살이 아니라 태어나서 첫 번째 해라는 뜻이 되는 것이다.
우리 인생은 태어나서 얼마를 살았느냐의 기간의 의미만은 아닐 것이다. 지나간 햇수를 어떻게 지냈는가가 더 큰 의미일 것이다. 우리는 삶의 기간을 채워 나가는 서양의 나이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고 한 해 한 해를 정성껏 채워 나가는 우리의 나이를 살아 나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