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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뭐냐고 묻는다면...
♬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
가족들, 댕댕이들과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고 싶죠. ♪
때때로 아름다운 대한민국 산이며 이곳저곳 거닐며
사진도 찍고 후기도 쓰고 사람들과도 어울리고요.
근데, 생각해보면 비교적 그렇게 살고 있는거 같아요.
바래왔던 꿈처럼...
오늘도 그런 나의 하루에 감사해보며.
가산(架山)의 꿈
두 번의 큰 난리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
십만 백성들의 피와 땀으로
가산에 세 겹으로 한층한층 견고하게
돌로 된 갑옷이 입혀졌습니다.
험한 세상 폭풍을 막아주는
마치 아기를 품은 엄마의 자궁처럼
두터운 돌벽 안 민초들을
산성은 포근하고 안전하게 감싸 안아 주었지요.
이곳은 맘 편히 쉴 수 있는 천국 같은 보금자리
가산의 산성마을
성벽이 된 돌들이 서로 손을 잡고
"우리가 더 튼튼하게 이 품을 지켜내야
마을의 내일이
평온하게 이어질 수 있을 거야."
뜨거운 땡볕 아래에서도
차가운 비바람이 부는 밤에도
넉넉치 않은 주먹밥을 나누며
오늘의 무사에 감사하며
내일의 평화를 기도하던 마음
철따라 피어나는 꽃길 따라 걷는 산성이며
가산바위에 올라 두 팔을 하늘 향해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저마다의 얼굴엔 행복한 미소가 번지고
성벽의 이끼들과
틈새 곳곳의 초록빛 풀과 꽃들이 소곤소곤
수많은 생명을 살리고 지켜내고 있는
엄마의 품같은 이곳
세상 걱정 따윈 없을 따스한 꿈을
흰구름과 바람이 다가와 들려주는 것만 같습니다.
_Jiri-깽이(지리깽이 신은경) 아름다운 나의 이야기_
낙동강과 낙동정맥 사이에 위치한 가산산성
낙동정맥에서 갈라져 나온 팔공지맥길과 일부 만나게 되며
황학지맥과도 연줄이 닿아 있는 이번 가산산성 걸음
가산산성은 24년도 소능종주 32km로 잠시 맛보기한 적이 있던 곳이라
정든 님 보러 다시 찾아온 듯 편안한 산책길입니다.
^^
가산산성은 경북 칠곡군 가산면 가산리 산98-1에 위치한 산성, 성곽으로
정식 명칭은 칠곡 가산산성(漆谷 架山山城)
Gasansanseong Fortress, Chilgok
수량/면적 1,006,171㎡
지정(등록)일 1971.03.26
시대 조선시대
임진왜란(1592)과 병자호란(1636)을 겪은 후
외침에 대비하기 위해서 세워진 성.
성은 내성·중성·외성으로 삼중산성,
각각 다른 시기에 쌓았는데
하양, 신령, 의흥, 의성, 군위의 군영과 군량이 이 성에 속하며.
내성은 인조 18년(1640)에 관찰사 이명웅의 건의로 쌓았고
칠곡도호부가 이 내성 안에 있었습니다.
외성은 숙종 26년(1700)에 왕명에 의해서 추가로 쌓았고
중성은 영조 17년(1741)에 관찰사 정익하가 왕명을 받아
방어를 위한 군사적 목적으로 쌓았으며
중요시설은 처음 만들어졌던 내성 안에,
중성에는 4개 고을의 창고가 있어
비축미를 보관, 유사시에 사용했다고 합니다.
이번에 걸음한 코스로
산길샘 트랙 다운 받아서 Google Earth로 만들어본 지도입니다.
이벤트 산행일자 : 2026년 9월 6일(일)
가산산성에도 국립공원 출입금지 구간이 있어
이번 이벤트 산행은 외성은 빼고 내성의 대문 격인 동문쪽 수문터에서부터
걸음 시작하기로 합니다.
(출입금지 구간 : 치키봉~진남문)
수문터-동문-동포루-가산정상-북포루-북문-팔공지맥길-황학지맥 분기점. 서포루-서문-
가산바위(가암) 도선굴-중문-남포루-전망바위-불망비 비석군(4기)-산성마을터-동문까지
산길샘 기준 6.75km
이번에 함께해 주셨던 산벗님들
모두가 소풍 나온 듯 즐기며 분위기가 역대급으로 좋았습니다.
^^
꼼꼼하게 리딩 제대로 해주셨던 배병만 방장님,
클럽의 큰 어른 만나면 늘 즐거운 편안한 수도권의 노송님
오랜만에 함께해서 반가웠던 소녀 감성 그대로의 포항 매화고문님
자주보니 그저 반갑기만한
클럽 이벤트 산행의 고정 멤버이신
중부의 맥가이버님과 통영의 본드님, 대구의 선제 지부장님
세 분은 설명이 필요없는 인간 진국인 분들이죠.
함께 산행은 처음이었지만 시원시원 유쾌한 대구의 설국님
이번에 처음 인사드린 조용한 에너자이저 숨은 능력자 성주할배님
중부의 지리깽이(신은경) 저까지 총 9명
가산산성 주차장은 2곳으로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가면 진남문이 있는
가산산성주차장(남원리 625-1)
갈림길에서 오른쪽 오르막으로 좀더 올라가면 만나게 되는
가산산성남문공영주차장(남원리 산1-1)
우리가 만난 가산산성남문공영주차장
그렇게 넓지는 않지만 차량 20~30대는 너끈히 주차 가능
문화관광해설사의 집은
매일 10시~17시 운영(추석과 설 명절엔 휴무)
좌측으로 팔공산국립공원 가산산성탐방지원센터와
우측으로 화장실, 안쪽에는 쉬어갈 수 있는 정자도 있었습니다.
탐방객의 안전한 산행을 위한 풀옵션 안전장비 무료 대여 서비스도 해준대요.
대여품목: 등산화, 등산배낭, 등산스틱, 무릎보호대, 방석, 구급함, 안내지도, 아이젠, 핫팩
신청서 작성 후 대여 가능하다고 하니
한번씩 급할 때는 도움을 받는 것도 괜찮을거 같아요.
대여 09:00~15:00. 반납 10:00~16:00
가산산성은 팔공산국립공원서부사무소를 통해 오르며
국립공원공단 입산 시간 지정제가 있습니다.
하절기 4월~10월은 04시~16시
동절기 11월~3월은 05시~15시
위반시 자연공원법 제86조에 의거 최대 50만원 이하의 과태료 부과.
숙지하시고.
차에서 내리니 빗방울이...
분명 오늘 날씨 좋다고 했었는데
논산(연무대)에서 이곳까지 오면서 비가 쏟아지다가 멈췄다가를 반복~
걱정...걱정하며 도착했습니다.
이곳 바닥에도 빗물이 제법 촉촉합니다.
우산도 우비도 배낭 덮개도 안가져왔는데, 무슨일이꼬~
다행히 빗방울은 우리 일행들 도착하며 바로 멈추고^^
ㅎㅎㅎ
이럴 땐 왜 이런 생각이 드는건지.
올해 클럽 시산제를 역시나 잘 지냈나 봅니다.
화장실 올라가는 옆으로 장애인 경차 주차장에
컨테이너 1기가? 딱 버티고 섰고,
그 뒤로 빼꼼 숨어 있던 요녀석~
분명 돈 많이 들여서 만들었을텐데... 이녀석 신세가 처량합니다.
그러니 한번 바라봐 줄 수밖에 없더라구요.
현 위치가 진남문이라고 나오는데, 진남문은 요~아래 좀더 내려가야 있구요.
요녀석은 아래쪽에 위치한
진남문 곁으로 이사 보내야 할 듯 싶어요.
먼저 오신 분들과 이곳에서 쉬면서
방장님이 가져온 찐 고구마도 맛보고...
방장님 큰 아드님이 친구들과 작은 텃밭에서
직접 키워낸 녀석들이래요.
그러니 어찌 감동스런 맛이 아닐 수 있었겠어요.
굿~~~
모두 모였으니 잠시 주관 배병만 방장님의
오늘 걷게 될 코스 이야기와 함께할 분들 소개의 시간을 갖고.
매화고문님이 가져온 맛난 단백질 덩어리 달걀 나눠받고
아침 저녁으로 추운기가 있어
일행들 반은 긴팔 등(바람막이) 장착으로 산행 출발합니다.
도로 따라 올라가다가 휴게정자/동문 갈림 이정표에서 동문 방향인 숲으로~
여기서부터 동문까지 3.2km거리.
초록 숲을 수영하듯 팔을 하늘로 뻗어올린 거구의 나무님들
굽어진 모습이 이곳에 살았을 민초들의 삶의 굴곡같아서
요녀석들 참... 대간해 보입니다.
나무님들 나름 살기 위한 몸부림 같아요.
물소리에 기웃~
잠시 들여다보니 계곡쪽으로는 물도 요로코롬~ 잘 흐르고.
숲길로 가지 않고 임도 길따라 오르다보면 볼 수 있는 천주사터구요.
잠시 자료 추가해서 올려봅니다.
천주사는 1700년(숙종 26)~1701년(숙종 27)에
경상감사 이세제의 주도로 가산산성 외성을 쌓고
1701년 외성 구역 안에 천주사가 건립되었습니다.
308석이 넘는 엄청난 군량미를 보관하던 승창을 두어 유사시에 대비도 했다고 하고,
1959년 사라호 태풍 때 큰 피해로 완전히 붕괴 소실 되어
현재는 이런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가산산성의 수호 사찰로 승병을 뽑아 궁술을 익히고
외성 성벽 보수를 담당하게 했던 곳이며
심검당 등 다석 요사와 승창, 장적고, 외성 무기고가 있었다고 전합니다.
조선 후기 산성 내에 위치하며 산성을 수호하던 사찰로는
1. 서울의 북한산성 중흥사(복원). 고려-승군 총지휘부
2. 부산의 금정산성 국청사. 신라-승군 최고 사령부
3. 칠곡의 가산산성 천주사(소실). 조선-승창 중심 군량 보급 사찰
산성 안에 위치하며 나라를 지키는 일을 했던
호국불교의 중심 사찰들.
의자만 나왔다 하면 방장님 쉬었다가야 한다며
뒷분들까지 도착하면 또 금새 일어서서 가자고 하십니다.
장난하듯 엉덩이 붙이기 무섭게 일어서고
별것도 아닌 그런 것들까지 함께하니 즐겁고 재미납니다.
^^
노송님 준비해 오셨던 커피 나눔해 주고 한모금씩 정답게 홀짝홀짝~
뭔가 대단한 나눔보다는 이렇게 함께 나눌 수 있는
작은 시간들이 너무나 소중합니다.
과자 한봉지는 선제님 손에 들려지며^^
배낭안에 다들 뭘 그렇게 싸오신건지...
숲길로 갔다가 임도로 갔다가 맘가는대로 걸어 오르다 보니 어느새 수문터에 도착.
저짝 풀숲으로 무너진 성벽쪽이 수문터
이 물길이 골따라 아래의 진남문쪽 수문까지 이어집니다.
드디어 성터다운 모습과 마주하며 여기서부터 트랙 켜고
가산산성 내성 한바퀴(일부 중성 맛보기^^) 걸음 시작합니다.
참고로, 진남문 사진 하나 추가해 봅니다.
진남문은 외성의 남쪽 성문으로 가산산성의 주출입구
'영남제일관방(嶺南第一關防)' 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고
성벽은 보수한 흔적 느낌이 여실합니다.
아침에 이곳 주차장에서 만나는 줄 알고 왔다가는
여기가 아닌게벼~ 하고
위쪽 주차장으로 갔었네요.
수문터의 물줄기가 이곳을 지나 팔거천에 합류~ 금호강과 만나며 낙동강으로
을숙도를 지나며 남해까지 긴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무너진 이곳 성벽 사이에도 사람 다니던 암문 하나 정도는 있었을 법 한데...
외성과 내성을 이어주는 곳.
홍해가 갈라지듯 쩍~ 이 성벽 돌은 다 어디로 가 있을꼬.
성벽 위로 올라가 반시계 방향으로 출발합니다.
역시 사람이나 돌이나 피부 나이는 속이질 못하는가 봅니다.
검버섯이 핀 돌에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며...
바위랑 저랑 언제 손 붙잡고 피부 관리 받으러 가야할까봐요.
^^
사람도, 돌도, 나무도...
나이들면서 주근깨도 생기고 얼굴에 자연스런 주름도 생기며
깊이있게 나이들어가는 것도
성터의 모습을 보니 나쁘지 않을 듯 싶어요.
이제는 예쁘다는 말보다는
멋지다라는 말, 깊이 있어 보인다는 말,
사랑스럽다는 말이 더 듣기 좋은 거 같습니다.
견고함이란 바로 이 성벽과 같겠지요.
큰돌과 작은돌들이 서로 어우러져 촘촘하게 만들어진 이 단단함.
큰 돌로만 이루어진 성벽이라고 훨씬 단단할까.
작은 돌로만 촘촘히 채워진 성벽이라면 더 튼튼할까.
저도 더 단단해지려 노력해야겠습니다.
모습도 형태도 크기도 각양각색의 돌들로
이렇게 아름다운 산성을 만들 수 있다니...
서울도성길과 다르게 시골 돌담길스러우며
그래서 더^^ 사랑스럽습니다.
이제 본격적인 산성길 오름이 시작되고요.
매화고문님과 성주할배님 발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
사뿐한 걸음에 뒤에 사람이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1640년(인조 18년) 가산산성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진 '내성'의 정문격인 동문
걷기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 벌써 도착했습니다.
깔끔하게 이발한듯 꼭 새신랑 같기도 한 모습.
동문은 진남문과 중문과 달리 비교적 석축 원형이 온전하게 남아 있으며
이 문을 통해 산성마을과 칠곡도호부 관아터로 들어가게 됩니다.
중요한 곳들은 내성 안에 모두 있지요.
성벽 문은 어떤 모습으로 달려있었으려나?
잠시 단체 사진 하나 찍고 가실께요.
저만 성벽 위에 남아있고^^
다들 아래로 모여~
풀을 베는 예초 작업 한번 했을 뿐인데 이런 뷰~라니...
적도 아닌 풀을 섬멸하듯 모조리 쳐냈습니다.
산성 위로 누각과 같은 건축물이 따로 있거나 하진 않지만
뭐가 어떤 모습으로 있었을지 상상해보며.
가산산성의 옛날 버전 AI의 힘을 빌어 잠시 소환해 봅니다.
집도 성도 사람도 머리도 수염도 다듬고 깍으며
관리 잘하면 이렇게나 멋집니다.
성벽의 돌들을 보니
조각 그림퍼즐 맞추기 그림 하나하나처럼
어쩐지 승부욕도 생깁니다.
저 벽돌 다 빼 놓고 하나하나 맞추기하면 얼마나 걸리려나?
동문 아래 인근에는 삼형제 나무가
수문장처럼 의좋게 듬직하게 서 있고요.
이렇게 높은 산 위에 성벽이라니...
어찌 하고 많은 곳 중에서 가산에 산성이 세워졌을까
생각해 봅니다.
산성이란...
공격하기 위해 만드는 것이 아니라
보호하고 지키기 위해 만드는 것.
그렇다면 적이 부산 동래에서 한양으로 가기 위해 지나는 길목의 사람들이
피난하기 좋은 곳.
적군이 쉬이 넘어설 수 없는 곳이
최적의 장소일터...
물도 많이 나오고 평평하기까지 한 이곳 가산이 제격이었겠다~ 싶습니다.
산성 만들기에 최적의 장소라...땅땅땅!
동문(東門) 바깥문에 공산면(公山面)이란 글귀와
한글로 라호태와 송성열이라는 글씨
방장님께서 말씀해 주셔서^^
공산면(公山面)이라는 한자는
대구광역시 동구 공산동(팔공산 일대)의 옛 행정구역 이름으로 확인되며,
한글 이름인듯한 라호태, 송성열은
조선시대 공사를 한 사람들이 새긴 것으로는 아닌 듯 보이며
오랜 세월이 흐른 뒤 누군가 성벽에 낙서처럼
자신의 이름 흔적을 남긴 것이 아닐지 추측해 봅니다.
한글이며 조선시대 당시에는
지금처럼 한글을 이렇게 쓰진 않았으니...
서울 한양도성에서 익히 들었던 단어인
성의 돌에 새긴 글자를 뜻하는 각자성석(刻字城石)
조선판 공사 실명제를 했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만약 성벽 공사 부실이 발견되면
돌에 새겨진 기록을 바탕으로 공산동 사람들 소집
끝까지 책임을 묻게 했던 제도 중 하나라 보면 될 듯.
동문은 둥근 아치형 구조
산성 문 하나 만드는데도 이렇게 아름다움도 신경을 쓰다니^^
문 상단의 넓은 돌은 어찌 저렇게 올려놨을까 싶기도 하고요.
성벽 돌들은 어쩜 제 쓰임에 맞게 적재적소에 딱딱 맞춰 들어가 있는지...
성벽돌로 쓰이지 않았다면
요녀석들은 어떤 쓰임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싶어요.
성벽 돌들을 찬찬히 보고 있자니
저 돌들을 밀고 당기며 게임하면 재밌겠다~^^~
큐브처럼~
어떤 돌을 꾸~욱 하고 누르면
숨겨진 비밀의 문이 스윽하고 열릴 것도 같고요.
비밀의 문아 열려라 얍!
크기가 다른 이 돌들이 이렇게 성이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되었다는 게 그저 신기할 뿐입니다.
다음에 가산산성 다시 가게 된다면
돌 하나하나 눈에 불을 켜고 뭔가 또 있지나 않을지 더 찾아봐야겠습니다.
사람도 어디 하나 아파서
건강 잃으면 전부를 잃는다는 말처럼
이 견고해보니는 성벽의 아주 작은 돌 하나만 빠져나와도
산성 벽은 댐 무너지듯 ... 와장창 그리 되겠지요.
동문은 1640년(인조 18년) 가장 먼저 완성한 내성의 정문이었으며
경상감사 이명웅의 주도로 한겨울 약 7개월 동안(가을에서 초봄까지)
10만명이 넘는 하양, 신령, 의흥, 의성, 군위 등
여러 군현의 백성들이 구역을 나누어 성을 쌓았습니다.
지대가 높으니 이곳은 유독 더 추웠을텐데
손발이 얼마나 시리고 터지고 다쳐 아팠을지...
어쩌다 집에서 마당 삽질, 호미질, 풀 뽑는 일 같은 하찮은 일 하면서도
손에 상처가 생기고 꽤나 힘든데...
성벽 안쪽은 이렇게 흙으로 비스듬히 채워져
성벽이 무너지지 않게 지지를 해주고 있습니다.
성벽이 벽돌 하나라고 생각한다면 오산~
안내판이 있는 곳은 삼거리로 올라왔던 동문 방향과
유선대, 용바위 방향
그리고 한티재 방향
잠시 한티재 방향으로 왕복 다녀옵니다.
성벽 위에는 그저 하얗고 파란 색의 도화지 같은 깨끗한 하늘 뿐입니다.
그 옛날의 조선 하늘도 이런 모습이었을까?
그저 하늘 구름이 바람과 삼박자를 이루며^^
다들 얼굴에 미소가...
이런 산성 마을에 살던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했을까.
높은 언덕에 올라 장군이 되어 지휘하듯 스틱을 휘둘러도 보고~
나를 따르라~ 일렬종대로~
황순원 소설 '소나기'의 동심 가득한 풋풋한 사랑이야기 하나쯤
술술 나올 거 같은 노송님의 얼굴
"이 꽃은 양산같이 생겼네. 이 꽃 이름이 뭐니?"
"마타리 꽃이야."
노송님 얼굴은 노랗게, 매화고문님 얼굴은 보라빛으로
꽃처럼 곱게 물들어 갑니다.
사랑 고백엔 꽃만한게 또 없네요.
내 사랑을 받아주오~
그 행운의 주인공은 누구셨을까나^^
저요 저요~
산비장이는 엉겅퀴아 닮았는데
보면 잎과 줄기에 가시가 없이 부드럽게 쭉~ 뻗었습니다.
이 두 녀석을 살려내느라 무척이나 애쓰셨던 방장님
꽃 기둥까지 세워놓으셨더라구요.
그 순수한 사랑 담긴 마음이 어여쁘십니다.
7~9월에 산에서 요 두 녀석을 만나다면
그냥 지나치지 말고 예쁘다 곱다~
눈 인사 마음 인사 꼭 하고 가시길요.
조망 좋은 곳에서는 머물다 가는게 인지상정이라...
다들 배낭마다 열리며 쏟아져 나오는 먹거리들
먹거리 하나 하나 바라보며 입꼬리가 먼저 올라갑니다.
동포루 이곳을 지키던 사람들도
끼니때가 되면 이렇게들 모여
이런 저런 이야기 나누며, 시간은 하루하루 흘렀을테고요.
방장님이 저를 콕~ 찍어서 냉큼 오라셔서 가보니...
산 이름을 말씀해주십니다.
조망 좋고~ 앞에 내려다 보이 도덕산 응해산과 이어지는 왕산 방향
대구의 왕산은 왕건의 설화가 깃든 산으로
927년 팔공산 일대에서 벌어졌던 공산전투,
왕건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을 때
그의 옷을 대신 입고 대신 나서 전사하였던 신숭겸 장군
지리깽이 신은경 우리 평산신씨의 시조와 관련된 산이 저 앞에 있더라구요.
왕산 아래 신숭겸 장군이 순절한 자리에 세워졌다는 신숭겸 장군 유적지가 있고요.
왕건 왕이 머물렀던 산이라 하여 왕산이라 불렸던 왕산되시겠습니다.
언제 기회되면 도덕산 응해산과 연계하여 왕산 걸어보고 싶어지네요.
왕산에 가서 술 한 잔 부어 드려야 할 듯 합니다.
동포루 끝에 잠시 다녀옵니다.
가운데가 움푹 파여서 훼손이 되었나 했더니만
산성 길쭉하게 옆으로 나온 부분 양쪽 성벽 사이
공간이 부족해서 사람 하나 간신이 오갈 수 있게 좁은 모양이 된 거 같아요.
저는 성벽 위로~
칼날처럼 좁은 곳은 아니지만
이런 곳에서 딴짓하다가 삐끗하게 되면~
황천길로 갈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할 듯.
안내판 지도속 '치성'이라는 글씨들이 많이 보이던데
이렇게 한쪽으로 툭 튀어나온 곳들 이름이 치성이더라구요.
다른 곳들보다 좀더 높게
성 위에 낮게 쌓은 담을 '치성'이라 한대요.
여기서 담았던 사진 뷰는 아래 모습으로~ 담깁니다.
이곳에 서서 바라보면 가산의 정상과 유선대 방향 조망이 일품이라~
발도장 꼭 찍고 가면 좋겠네요.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아가며
방장님이 다칠까 조심조심 살려 두셨다던 두 녀석과 굿바이 인사.
너무 가늘어서 휘어질까 조심스러워
기둥까지 세워두며 마음 주었던 산비장이와 마타리
예쁘고, 고맙고... 그저 흐뭇합니다.
잘 살아 매년 이렇게 피고 지고
이 자리에서 꽃 피우길 바래봅니다.
가산 정상 방향으로 성벽 위로, 성벽 아래로 2조로 나눠 진행하며.
풀이란, 나무란 좁은 땅덩이만 있어도 뿌리를 내리고 커가니...
성벽 관리하는 것도 쉽지만은 않았을 듯.
예초해 놓은 거 보니 어휴~ 이 넓은 곳들...
성벽 밖 아래에서 걸어가니 성터 주변 탐색을 나온 관리나 병사들이 된 듯
여기저기 둘러보게 됩니다.
성벽 모습을 보면 바깥쪽은 벽처럼 수직으로
성벽 안쪽은 흙으로 완만하게 만들어져서
밖에서 벽을 민다고 무너질거 같지 않은 모습입니다.
밀면 오히려 돌이 더 박혀서 견고하게 되겠네요.
성터의 가장 위쪽 돌은 살짝 튀어나온 게
지붕을 씌운 듯
아래 돌들을 보호하듯 그런 모습이구요.
오랜 세월 오며가며 작은 돌들을 하나하나
바위 틈새로 채워넣고 그랬을 거 같아요.
산에서 돌탑이 있으면
산꾼들도 그 위에 돌을 하나씩 얹듯 말이예요.
성벽 위의 어여쁜 처자 모습에
누군가는 홀딱 반해 사랑을 나누기도 했을 듯.
어느 시대고 사람 사는 세상엔 사랑이 함께하겠고요.
담벼락 어디쯤에 몰래 주고받던
연애편지가 끼어있지나 않을지 잠시 틈새를 요리조리~
비슷한듯 다른 순백의 꽃들
가산산성 주위로는 들꽃들이 몰래 숨어서
지나가는 발소리에 귀를 쫑긋거리고 있었고요.
요녀석들 어쩐지 작고 화려하지 않은게 민초들을 닮은 듯.
이 거대한 돌은 왜 이곳에 서 있는 것일까요?
얼마나 오래 이곳에 자리 잡고 있었던건지...
바위 안에 부처님 한 분 앉아 계실 법도 하고
바위가 힘줄이 불끈불끈 튀어 나온 게
그 에너지가 대단해 보였습니다.
그 옛날 성터 벽돌로 깨서 사용했을 법도 한데...
???
그냥 이렇게 이런 모습으로 놔둔 이유가 분명 있었겠지요.
내가 성터 관리자였다면
이 돌을 어찌했을까.
무슨 용도로 긴히 사용했을까?
혹시 고인돌? ㅎㅎㅎ 별생각을 다~
낮은 포복~ 엉금엉금~
관절 아픈 사람 어구어구~ 소리가 절로 나는 암문 통과
근데 무릎 아픈 사람은 나뿐인가 하노라.
ㅜㅜ
성벽 위로 올라와 편하게 다져진 길 따라 오르고~
산성길은 아이들도 뛰놀기 좋게 너무 편하고 좋습니다.
저 위쪽 튀어나와 굽어진 곳도 '치성'
가산산성의 나무들은 대부분이 100년 미만으로 오래되지 않은 굵기가 얇은 나무들
가산산성 공사할 때며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 수가 얼마나 많았을지
난방이며 나무가 쓰일 곳들도 많았을테고요.
주위를 살피며 경계해야 했을테니
조망을 가리는 나무를 그냥 두지도 않았었을 듯 싶습니다.
가산산성길 따라 걷다보면 조망 좋은 곳들이 참 많기도 했습니다.
오르막을 오르다 올려다보면 거칠 것 없는 하늘나라로 걸어 가듯.
칠곡군 가산리 마을쪽이 내려다 보이고요.
뒤로 연결되는 능선은 팔공산자락 주능선이고요.
소능 종주 때 저쪽까지 걸었던 거였네요.
저 위에 올라가도 조망 좋을 거 같아요.
지금이야 산성 안쪽과 바깥쪽이 나무로 빼곡하지만...
옛날엔 어떤 모습이었을지...
올라가다가 뒤돌아본 조망~산성이 자로 잰듯 반듯하지 않고
물이 흐르듯 굽이 굽이 돌고 돕니다.
산성에서 숨바꼭질 해도 재미있을 듯 해요.
가산 정상 가장 높은 곳에서 바라본 북포루의 모습이 보이고
잠시 아래쪽 가산 정상석 있는 곳 다녀갑니다.
가산 정상 가장 높은 곳은 저짝 뒤에 보이는 곳인데
정상석은 이곳에~
성곽 안에서 사방이 가장 잘 보이고 전망이 좋아
단연 장대(將臺) 장소로 낙점~
군사들을 지휘하던 누각이나 건축물이 있던 곳 되시겠습니다.
가산 정상석이 있는 이곳은 가산봉으로
동쪽으로는 한티재를 통해 팔공산으로 연결되며,
서쪽으로는 오계산과 이어져 있습니다.
산이 아름다워서 가산인가 했더니
팔공산 서쪽 가장자리에 있는 가산에서 이름이 유래했다고
안내판에 적혀 있네요.
단체 사진 찍기가 무섭게 다음 이동 장소로~
노송님 찰나에 독사진인듯 독사진 아닌 사진 하나 담아드리고요.
자~ 다음 코스는 산성길 따라서 용바위전망대로~
방장님 뒤에서 사진 담고 쫓아오시면서...
갈라카나~ 안갈라카나~
꼭 외계언어 같아요.
방장님의 억양 섞인 경상도 사투리 종종 재밌어요.
방장님 회사에서 가산산성 풀베기 작업 하셔서
덕분에 이렇게 특별 이벤트로 와서 걸을 수 있었습니다.
날도 더운데 에구구... 고생 많으셨습니다.
성벽 아래로 돌아 내려가면 만나게 되는 용바위전망대
저 앞에 계단을 올랐갔다가 내려가면....
이렇게 멋진 조망터가 짜잔~ 경치 좋은 곳 호텔 테라스 같은 느낌
저절로 얼굴 가득 미소가~머금어지는
좋아요. 좋아.
팔공산 주능선 조망이~ 음~
이곳을 통째로 옮겨다가 집으로 가져다 놓고 싶습니다.
문 하나만 열면 이런 모습이면 얼마나 좋을런지...
되돌아 나가기 전 아쉬운 마음에 "여기 보세요~"
하늘을 닮아서 시원한 쿨~ 바람 참 좋다~
성벽을 올라 북포루로~
저 정도 뷰~면, 폭신한 구름 타고 신선 뿐만 아니라
선녀들도 내려와 놀다가지 않겠어요.
신선이 내려와 노닐던 곳이라는 북포루.
다들 모였다가 이동, 확 열린 조망에 그대로 섰어요.
역시 몸이 먼저 반응하나 봅니다.
이곳 너무 좋아서 가기 싫어요.
누구 하나 발길이 쉬이 떨어지질 않으니 그저 이곳의 기운을 온 몸으로 느껴들 봅니다.
조금 전 다녀왔던 용바위전망대쪽 뷰~!
뒤로 이어지는 팔공산 주능선.
이제는 북문 방향으로 산성길 이어지며...
걸어 내려왔던 전나무 숲길 뒤돌아 보며.
꽤나 굵직한 고목 곁을 지나 물길도 한번 훌쩍~! 건너주고요.
이 물은 어디서부터 흘러오는 걸까?
내성 안의 저수지에서부터 북쪽 골짝으로 흘러내리는 물
산 위에 이런 저수지가 있다는 것이 그저 신기할 뿐이고.
북쪽으로 진행할수록 산성 흔적이 많이 훼손되어 있는 모습
북쪽은 동쪽에 비해 햇빛이 많이 들지 않고
그러다 보니 습기도 많은게 특징
겨울철 땅이 얼고 녹기를 반복하며 다른 방향의 성벽보다
잘 무너지게 되는 취약한 구조라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습하고 수분이 많아서인지 수국꽃무리들이 잘 자라고 있었고요.
쌍알을 닮은 귀요미 버섯이며...
걷다가는 뭐가 뚝~ 하고 떨어져서 보니 요녀석. 갈참나무 도토리?
도토리묵도 이곳에서 주요 식량으로 요긴했을 것도 같습니다.
툭 튀어나온 조망터를 지나며...
이렇게 굽어지며 튀어나와 있는 치성을 지나고요.
아~ 저는 이 뷰가 어찌나 아름답던지...
하늘아래 첫마을, 산성마을이 이런 곳이구나 싶었습니다.
구름이 손에 잡힐 듯~
발 아래로 펼쳐지는 능선이며 마을의 모습.
신분은 낮더라도 이곳에 서면 누구나가
부러울 것이 없었을 듯 싶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가산산성 걸음 중에서 이곳이 가장 좋았었습니다.
산성 밖으로 걷다~ 바닥에 돌이 아닌 녀석이 볼록 보이길래
잡아 뺐더니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이예요.
이런 파편 하나에도 분명 그 옛날 누군가들의
스토리가 쏟아져 나올 듯 합니다.
아래로 갔다가, 위로 갔다가 바쁘다 바빠~
산성 아래로 걸으면 산성 돌담길 걷는 느낌이 더 확~ 와 닿고...
위로 걸으면 바람도 좋고.
어떤 나무들은 벌써 가을 느낌이 물씬~
산성길 모습 둘레길처럼 걷기도 좋고 보기도 좋습니다.
골과 골 사이마다 마르지 않은 물길이 이어지고요.
가산산성은 크지는 않지만 많은 사람들 먹고 살 정도로 물은 충분했었던 듯 싶습니다.
아래로도 산성길은 있고, 안쪽 정취 느끼며 숲길로~ 잠시 들어 걷고 있습니다.
물길이 나가는 곳마다 이렇게 물봉숭아가 곱게도 꽃입을 벌리며 물달라 아우성~
숲 속의 쓰러진 나무에는 어느새 이끼가 그 다음의 생을 준비하며
소원길이라 하니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듯 장난스레 몸짓도 해 봅니다.
이런 꾸밈없는 모습들이 좋아요.
함께하며 재고 따지지 않고 그러는 이런 걸음들...
앞서 걷던 분들이 왜들 모여 있나 싶어 저도 함께 들여다 봅니다.
안내판 참고용으로 하나 첨부사진 올려보며.
북문을 지나고... 문이라기 보다는 물길 건너는 작은 다리 같은 느낌?
논둑 길을 걷듯 이어지는 산성길~
이질이나 설사약 용도로 쓰여 이름이 이질풀이라는데
옛날에는 집집마다 상비약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이녀석들 산성마을 사람들에겐 나름 요긴하게 쓰였을 듯
이질풀이 잘 나는 위치 알고 있다가
집에 누군가 아프면 냉큼 달려와서 따가야 했겠지요^^
이곳 북쪽으로는 산성 느낌은 거의 없고.
커다란 벌통집이 보여 호기심 많은 노송님, 다가가 사진 담아 봅니다.
벌이 쏟아져 나오면 어쩌시려구?
걷고 있는 오른쪽 옆으로 비탈 산성 흔적들이 보이며.
이곳 북쪽의 나무들은 어째 이렇게들 키가 큰 건지...
뭘 얼마나 잘 먹고 이렇게나 쭉쭉 컸을까요.
북문쪽에서 왔구요. 이제는 서문 방향으로 ~ 꺽어져~
오르막을 오르기 전 돌 아래로 풀에 숨바꼭질하듯 감춰진
비밀의 암문인듯 흔적이 있습니다.
산성 흔적은 옅어지고...
훤칠한 나무님들 기운 받으며 오르막을 올라 갑니다.
이곳이 팔공지맥길이래요.
무릇꽃이 피었으니, 이 녀석이 모습을 숨길때 쯤 꽃무릇도 만날 수 있겠지.
서포루에 왔으니 그냥 지나가면 안되겠죠.
황학지맥 분기점이기도 한 이곳에서 잠시 모여 앉아 쉬었다 갑니다.
노송님은 뭐가 그리 급하신지 앞에 가시고
성주 할배는 보고픈 님 미자씨 찾아 먼저 또 슬슬 걸어가시네요.
미자씨가 얼마나 좋으시길래~
성은 오, 이름은 미자라~
청학이 한 마리 날개를 치켜올린 듯 서 있는 조망 좋은 곳^^
유학산과 금오산 방향이 조망되어지고.
서문 위를 지나갑니다.
성주할배님께서 이녀석 만나겠다고 먼저 가서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성은 오요, 이름은 미자씨 되시겠습니다.
본드님께서 귀한 오미자님을 손에 받아 들고.
아고고 이뻐라.
서문에서 가암바위 방향으로 이동하며...
이 산성돌들은 틀에 맞춰 규격화된 듯 찍어낸 흔적입니다.
같이들 찾아보니 주위로 이런 돌이 꽤나 보입니다.
이렇게 함께 찾아보며 이야기 나누며 걷는 산책길.
꼭 여중 시절의 고적연구반 활동하던 거 같아요.
이번 기회에 "J3클럽 고적연구단"을 한번 꾸려볼까나요^^
산성길 따라 기차놀이하듯 한 줄로 서서 올라가는 모습들이 보기 좋고
걷는 걸음도 흐뭇, 행복해라~
이 나무님은 잘린 가지들로 모습이 안쓰럽지만, 잎을 열심히 키워내고 있었어요.
가산산성 지킴이로 부족함이 없어 보였습니다. 기특하네~
오미자가 많았던 가산바위 오름길
전에도 이 길을 걸을 때 참 행복했었는데...
그때도 이 구간 걸음이 참 좋았었던 기억이.
뻥~ 뚫린 하늘이며...
멋진 나무를 지나고 그 옆으로 학명리 이정표가 있어
선제 지부장님께서 설명해 주셨습니다.
가팔환초를 이곳 아래 학명리 마을
계정사쪽에서 오르는가 보더라구요.
드디어 가산바위(가암)이 보입니다.
하얀색의 가는장구채, 파란 닭의장풀의 모습도 사랑스럽고요.
높은 바위만 보면 올라서기를 좋아하는 노송님
전생이 있었다면 노송님은 말단 병사는 아니었을 듯.
꼭 제일 높은 곳에 서고야 마는 ^^
가암바위 위로 올라가기 전, 들러야 할 곳이 있어
바위 오른쪽 아래로 돌아 내려갑니다.
이쪽으로는 처음 가보는 미지의 길
노송님하고 사진 찍어주며 놀다가는 후미에서 쫓아 내려가고요.
여기가 바로 도선굴 입구.
입구쪽이 좀 좁아서 한 사람씩 들어가야 하구요.
바닥에는 깨진 유리조각이며, 바사콩난 돌들이 어지럽게 깔려있었습니다.
이 가산바위가 번개를 맞아서 쩍~ 하고 갈라졌나?
도력 높으신 옛날 도사님 한 분이 장풍을 쏴서 굴을 하나 만들었나?
들어서면 성인 10여명쯤은 너끈하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위쪽으로는 구멍이 하나 보이고요.
가암바위 위에서는 이 아래로 어떻게 보일런지...
굴 속에 들어와서 있으니 어쩐지 정말 뭔가 탐험하는 듯 신납니다.
박쥐 한마리쯤 어딘가에 붙어 있으려나?
어딘가에 보물이 숨겨져 있을 법도 하고요.
도선굴을 나와 바위를 돌아가면...
바위 위쪽으로 한 사람정도 들어가 앉을 정도의 구멍이 또 보이고.
저건 무슨 굴일까?
저것좀 보세요~
깽이가 깨방정~을 떠니 사람들이 뭔일인가 싶어 몰려들고요.
어라? 뭔일인고?
맥가이버님이 저 굴을 올라가 보겠다고~ 매달려보는데...
그 이후는 상상에 맡기기로 하고요.
바위가 앞으로 비스듬해서 고난도 오름~
사람 키를 넘어선 위치의 조그만 굴 하나~
그 앞에서 단체 사진 찍고 갑니다.
분위기 좋고 여유 있고
가산바위(가암)에 온다면 아래쪽도 둘러보시길 권합니다.
빙~ 돌아 가산바위로 올라왔구요.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이...
아래에서 들어가봤던 그 도선굴 동굴이
바로 이 구멍 아래에 있던 거였습니다.
이렇게 뚫려있어 좀 위험해 보이기도 한데...
가산 바위 상면에 큰 구멍에 따른 전설따라 삼천리~
신라 고승이었던 도선(827~898)이 산천을 편력하면서
지기를 잡기 위해 이 구멍에다
쇠로 만든 소와 말 형상을 묻어 지기를 눌렀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
전에도 가암바위에 올랐을 때 내려다 보긴 했었는데...
실제로 내려가서 올려다 보니
생각보다 엄청 깊어요.
가산바위(가암) 위 안쪽으로 들어가면 만나볼 수 있는 글자
소반처럼 넓고 평평하게 생긴 커다란 바위라는 뜻의 반암(盤巖)
가암(架岩)과 좀 연하게 보이지만 옆에 세로로 갑진년에 쓴 글이라는 갑진서(甲辰書)
가산 바위 위가 이렇게 넓고 좋으니 앞마당이라 생각하며
잠시 쉬어가자고들 합니다.
성주 할배는 발이 어찌나 빠른지 진행 방향 아래에 계셔서
"성주 할배요~ 여기서 쉬었다 가신대요. 퍼뜩 올라오세요"
이야~ 근데 말입니다.
성주 할배 서 계신 풍경이.... 또 기가 막힙니다.
이 길도 이번 벌초 작업의 빛나는 결과물
사랑스런 산성길이 펼쳐져 바라보기만 해도 흐뭇 어쩔~
한쪽에 자리 펴고 앉아서 왁자하게 주전부리하고 갑니다.
이 돗자리는 무엇인고 하니...
이번 클럽 정기 모임에서 하나씩 나눠줬던
아주아주 쓰임 좋은 가볍고 접으면 한없이 접혀 부피도 작은 깔판
비올 때 판초의 대용으로도 사용 가능할 듯 싶어요.
그래서 클럽 정기 모임엔 참석하는 게 개이득~
가산바위 위에서 한바탕 소동을 또 잊지 못하겠지요.
설국님의 입담으로 깽이 칭찬 일색이라...
좀 순화된 어조로 점잖게 옮기자면...
남자들은 다들 뭐하는지 깽이 처자를 아직도 안데리고 가고
나라가 그러니 이모냥이지 뭐 기타 등등...
저와 처음 함께 산행해보며
어찌나 저를 이쁘게 봐주셨던지
설국님께 애정의 하트 뿅뿅~ 날아갑니다.
설국님 사랑합니당~ ㅎㅎㅎ
덕분에 웃으며 간식 즐겁게 먹고 갑니다.
세상 남정네들 눈이 삔겨~ 분명한겨~
이상 가산 바위 위에서 깽이님 칭찬을 마치고 정리 후 산성길 이어갑니다.
오목한 곳에 자리잡은 가사바위에서 남서쪽으로 보이는 학명리 마을과
아래 두무지 저수지도 보이고.
적이 남에서 북으로(한양 땅) 이동하며 다부동으로 향할 때
딱 걸렸어~ 매의 눈으로 적의 움직임을 감시할 수 있는 곳이겠습니다.
가산 바위 내려가기 전 다시 한번
진행해 갈 남포루 방향 조망 바라보며...
달개비라는 이름이 어쩐지 더 정감이 가는 닭의장풀꽃
이녀석이 이렇게 예뻤던가... 꽃잎에서 반짝반짝 빛이 나는 듯,
노오란 아가들이 손 내밀며 꼬물거리는 듯
시골 닭장 근처에서 잘 자라서 붙은 이름이라는데...이곳 근처에 닭을 키웠으려나?
가산바위에 대한 안내판 한번 들여다 보고 가구요.
아래 동굴에 관한 이야기가 여기에 나와 있네요.
바위 상면 큰 구멍이 나 있는데
신라 고승 도선이 산천을 널리 돌아다니다가 지기를 잡기 위해
이 구멍에다 쇠로 만든 소와 말 형상을 묻어 지기를 눌렀다고~
뭔가 비밀 첩보 요새같은 모습같기도 하고...
아무래도 이 바위 안으로 통하는 비밀의 문 같은게 분명 있을 법 합니다.
성이 함락되면 아무도 찾지 못하게 숨어 들어갈 그런 곳 하나쯤은 있지 않았겠나 싶어요.
그때의 사람들은 모두 하늘나라로 갔으니 물어볼 곳도 없고...
아파트로 따지면 몇 가구쯤 될 크기일까?
동쪽 성벽은 무너져 있는 곳들도 보이고 복원되어 있는 곳들도 있는 듯.
얼핏보면 맥문동과도 비슷해 보이는 무릇꽃
무릇이라는 이름은 '물(水)'과 관련된 의미로 물 위, 물이 많다라는 의미가 있다고 하고
우리 선조들이 먹을 게 없고 힘겹던 시절
구황작물로 배고픔을 달래주던 민초들의 먹거리였다고 합니다.
이녀석 고마운 녀석이었네요.
맞은편에서 국립공원공단분들이 성의 이모저모를 살피며 걸어오며
담아주신 사진입니다.
멋지고 예쁜 분들만 특별히 찍어주신다고.
저도 공단 직원분들 사진 담아 답장해 드렸지요^^
가산산성 공단 분들은 꼼꼼하게 이곳저곳 살피며
열심히시더라구요.
국립공원 공단분들, 사랑합니다.
중성 갈림길에 도착하며...
중성 벽돌 모습은 어쩐지 많이 다른 느낌
현대에 복원한 듯한 깨끗하고 다소 반듯한 모양입니다.
사람도 좀더 보기좋게 비슷비슷 성형수술하면
어쩐지 인간미가 없어보이듯
네모 반듯하면 보기에도 좋을 거 같지만
어쩐지 너무 인위적인 느낌이라 오히려 멋스러움이 없고.
여기서 아래로 내려가면 영창 연못으로 통하는 길이고.
모양도 크기도 다른
반듯한거야 쌓는거 쉬울거 같아요.
아까 중문 갈림길로 다시 되돌아 나가...
가을이 오는가 봅니다.
쑥부쟁이가 고개를 내미는 것을 보니...
가산바위에서 남포루로 가는 길은 벌초를 깔끔하게 해 놔서 잔디밭인 듯
나무가 많아 걷기 좋은 아름다운 산성길
때론 엉뚱, 때론 악동같기도 한 노송님
혼자 왜 저쪽으로 삥~~ 돌아서 가나 했더니
의자가 홀로 있는 모습을 보며 한번 앉았다 가줘야지 싶었던가 봅니다.
찰나를 담아보며~
사람 하나 찾지 않는 쓸쓸한 의자의 마음을 헤아리는
이런 노송님 마음도 따뜻함이구요.
꽃 보느라 정신 팔렸다가는...
뭐야 뭐야~ 암문 하나를 또 지나며~
중문쪽에서 남포루를 향해 가다가
여리재 갈림길을 지나며~
멋진 나무숲길, 나무가 주위로 많아서인지 공기의 흐름까지 다른 듯 느껴지고.
갑자기 앞서 걷던 사람들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
다들 무슨 걸음이 그렇게 빠른가 했더니만...
바로 아래로 암문을 통과~ 기다리고들 계시더라구요.
앞에 건물 흔적처럼 보이는 돌무더기들이 보입니다.
안내판에 보니 이곳이 바로 남포루터
이런 평평하고 그늘진 아늑한 곳에
쉬어갈 수 있는 누각 하나 있으면 딱 좋겠다~
그런 생각이 드는 곳
남포루터를 지나 더 걷다보면 만나게되는
바위전망대.
바위가 있어 이곳은 돌을 쌓지 않아도
자연 성벽 역할을 해줬을 듯 싶습니다.
자~ 바위 위에 올라 인증 하나 담고 갑니다.
다들 어떻게들 저렇게 알맞은 곳에 자리를 잡았는지...
다시 일부구간 남포루터로 되돌아 나가서~
꼬리풀인가?
가산산성에는 계절별로 들꽃 보는 재미도 쏠쏠~
아~ 벌써 처음 올라왔던 수문터쪽에 도착했어요.
이 바로 앞에 무너져 있는 곳이 수문터.
가운데 길에는 외성과 내성을 잇는 문 하나 있었겠구요.
잠시 숲길로 들어가, 산성마을 방향으로 향합니다.
물 맑은 것좀 보세요.
저절로 물에 손이 갑니다.
곱다 고와~ 꽃잎이 작고 어쩜 이렇게 앙증맞은지...
쥐손이풀 만나며 가고요.
잠시 오른쪽으로 들어서며 물길을 건너 만나게 되는...
내성의 산성마을 터 서쪽에 위치한 불망비((不忘碑)) 형태의 비석군 4기
1. 산성을 지키던 무관 별장 서신갑 진심국사(別將徐信甲盡心國事碑)
2. 별장 서공 유혜불망비(別將徐公...遺惠不忘碑)
3. 영기관 김공 성림 영세불망비(營紀官金公聖林永世不忘碑)
4. 관찰사(觀察使) 이상(李相...)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관찰사 이경재 영세불망비
산성을 지키고 관리했던 분들의 흔적을 살펴 봅니다.
* 불망비(不忘碑)란, 어떤 인물의 은혜나 공적을 잊지 않겠다는 뜻으로 세운 비석을 말합니다.
굵지 않은 통나무 3개가 나란히~ 좀 흔들리긴 하지만 튼튼합니다.
시원한 계곡물에 씻고도 가고요.
이런 산성 마을이라면 저도 살고 싶어질 거 같아요.
어쩐지 돌 들춰보면 가재도 나올거 같고요.
가산산성에 왔다면 내성에 있는 관아터와 산성마을터도 한번씩 들렀다 가시길요.
1950년 전쟁시 포탄이 투하되고, 홍수로 또 민가가 없어졌으며
1970년대 박정희 정권 때 강제 철거까지
지금은 터만 남아 있는 모습. 풀과 야생화가 사람을 대신하고 살고 있는 곳.
주위 둘러보며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들...
기와, 돌절구도 찾아보며
여유롭게 둘러보며 가면 좋을 듯 싶습니다.
동문 앞으로 오니 안내판이 있어
우리가 지나온 길 정리해보며
지도상으로 살펴 보는 시간을 갖습니다.
동문-북문-서문-중문 살짝 맛보기-남포루-동문으로~
벌써 동문 앞에 다시 왔구요.
거꾸로 오니 처음 온 곳인양~ 또 새롭게 보입니다.
돌과 흙으로 어쩜 저렇게 성문을 만들어놨는지...
이끼에서 빛이 나는 거 같은 착각이...
초록의 이끼 옷을 입은 나무님의 알 수 없는 신비로움에 걸음이 느려지며.
바위 때문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나무는
뿌리를 밖으로 옆으로 뻗으며 뱀이 꿈틀대듯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며 그 징한~ 생명력의 경이로움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 일행들에게 공단 직원분들께서 나오셔서 음료수 나눠주셨습니다.
방장님 덕분에 이렇게 귀한 얼음 음료수도 받아 들게 되네요.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훈훈하신 공단 직원분과 인사 나누시는 방장님
산행 끝나고 인근 고도리식당(칠곡 동명면 남원로 446. 010-5192-6904)에서
다같이 식사하고 각자 집으로.
이벤트산행하고 이렇게 푸짐한 먹거리
백숙에 볶음에 전까지 거의 풀코스로 즐겼습니다.
함께해 주셨던
배병만 방장님, 노송님, 매화고문님, 맥가이버님,
설국님, 선제 지부장님, 본드님, 성주할배님
덕분에 감사한 시간, 함께라 즐거웠어요.
좋은 분들과 소풍같았던 가산산성 한바퀴
외성은 비법정구간이 있어서 패스.
크게 내성 한바퀴 돌고 난 후 산성마을터, 비석터, 관아터,
관아터 위로 저수지와 인근의 영창(창고), 중성 구간
동문 바로 앞의 마애비, 성황당 돌무더기며 옛길 풍경도 잠시 맛보고
낙금대(락금대(樂琴臺))가 어디있나도 찾아보며
내려올 때는 외성 구간 천주사터도 한번 들여다본다면
가산산성의 걸음이 더욱 알찰듯 합니다.
조망 좋은 곳들이 많아서 언젠가 꼭 비박하고 싶어지기도 했구요.
가산에서의 하루, 편안한 꿈꾸듯 행복했습니다.
하늘, 구름, 바람, 조망 좋은 역사적 명소 가산산성
들꽃 야생화가 많고 멋진 전나무숲길이며
사계절 어느때고 좋을 듯
꼭 한번씩 다녀오시라 추천드려 봅니다.
아래 첨부한 사진2장은 칠곡군청 홈페이지에서 받은 팸플릿 앞뒷면입니다. 참고하세요.
<지도속 중성문 아래 하늘색 물가 표시는 저수지이고,
영창 점표시는 잘못 찍혀 있습니다.
저수지 동쪽으로 영창은 꽤 넓은 부분을 말합니다.>
보통 삼중산성이라고 하면 외성 안에 중성이, 중성 안에 내성이 겹겹이 있을거 같은데
내성이 하늘색 북쪽 부분,
외성이 노란색 남쪽 부분,
중성은 내성 안에 위치합니다.
우리가 걸었던 구간은 내성 위주로 한바퀴. 중성은 살짝 맛보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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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가산산성에서 20일간 풀 작업
그리고 주말에는 산성주위를 다니며 비법정구간에 가서 옛길 옆의 마애비와 수로아래에 거금고 타고 놀았다는 낙금대,먹고살기 위해 만들었던 4개의 돌 절구를 찾아보며 한때 번영했던 산성의 모습을 그려볼수 있었답니다.
이벤트 산행에 맞춰서 풀작업 끝 낸다고 성주할배와 몇몇 어르신들께서 고생 많이 하셨는데 그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다음에 또 오시면 더 많은것들 보여 드릴테니 기대하시구요
장문의 글 잘보고 갑니다
선운산 후기 올라올줄 알았는데 가산산성 후기네요 ㅎ
가산산성 저도 여러번 갔었지만 이렇게 디테일하게는 보질 못한 것 같습니다.
특히 도선굴이 멋있네요.
가산산성에서 금오산도 잘 보이는데 ㅎㅎ
잘보고갑니다.
업무 중 시간이 나서 다시 정독하다보니 청학 한마리 있는 곳에서 금오산이 잘보이네요.
그곳의 풍경이 정말 좋죠~ ㅎㅎ
우와우ㅜ
이틀이나
읽었어요
소중한 자료임니다
더 없는 가을 하늘 속이 뻥~~
방장님의 노고로 가산이 널리 퍼지겠네요~
가족과 함께 행복하고 풍성한 한가위되십시요^^
추석 명절 잘 보내세요^^
추억이 많은 곳인데
너무 이쁘게 담아 놓았네요
야생화도 많은 곳이라~~
저는 갈때마다
야생화만 신경써서 보는데
깽이님 글 대하니
담에 갈때 후기를 읽으며 걸어봐야 될듯요
꽃들에게 희망을 주셨군요
보통은 다 밀어 버리던데.....
달개비 흔하게 보는 우리야생화
그이는 자세히 보면 더 이뿌지요
달개비의 푸른 색은 쉬이 낼수없는 짙고 고운색
고운님들을 많이도 담으셨네요
몇번은 읽어야 겠네요
이쁜깽이님 추석명절 잘 보내요~♡
휴일 오전, 창가에 앉아서
정성스레 쓰신 후기를 찬찬히 읽었어요.
참~ 좋네요.
먼저 시 '가산' 에 마음담아 ❤️ 뿅뿅드립니다.
자연을 아는 사람이 길 작업을 하면 의도가 길에 새겨지는듯요
어쩜 산성이 굽이굽이 소박하고 정겨운지요
그림과 글발에 마음 뺏겼다가
굽히지 못한 무릎에 격한 공감했고
남의 소풍 따라간듯하여 잠시 즐거웠습니다^^
오늘 또 한편의 아름다운 단편영화 감상 잘했습니다!
문득 4년전의 가팔환초 하러 이곳을 찾았을 때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르네요...
계명대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칠곡경대병원역에서 내려 택시를 잡아탄 후 소야고개로 가서 산행을 시작했었죠~
가산에서 갓바위까지 능선 앞뒤로 다 빼어난 조망을 보며 걷다뛰다를 반복했었고,환성산 치기전에 마을식당(우정식당) 전부가 그날 갑자기 일찍 문을 닫는 바람에 결국 체력고갈로 중탈할 수 밖에 없었던 아쉬웠던 기억이...
가산바위 가운데 큰 낭떠러지 구멍이 있었던게 인상적이었고!
길지는 않지만 견고하게 만들어진 가산산성도 볼만 했고요
고지대에 저수지가 있었던 것도 신기방기 했으며
팔공산까지 산행내내 능선길 앞뒤로 조망이 꾀나 괜찮았었던...!
해질녘에 갓바위에 도착해서 소원 빌며 삼배도 했더랬죠~
오늘 추석연휴 둘쨋날에 어디를 가볼까 고심 좀 하다가 일기예보상에 비가 안내리고 도로상에 차량증체가 없을듯해서 팔공산으로 고고씽~~~
갓바위 아래 주차장에서 출발해서 팔공산 비로봉 찍고 원점회귀 산행을 하고 왔었네요
지부분들과는 일정이 맞지를 않아서 오늘도 가까이 사는 동생과 좋은시간 즐기고 왔답니다!
산행기 너무 재미있게 감상 잘했나이다^^ 깽이님
에구~ 2회에 걸쳐 읽었습니다.ㅎㅎ
Ai로 산성을 재구성한 사진은 그럴싸합니다.ㅎㅎ
역사자료가 많아 머리에 바로 입력되지는 않지만 나중에 자료를 찾아 볼 일이 있다면 좋은 공부자료가 될 것 같습니다.ㅎㅎ
긴 글 작성하시느냐 욕보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