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워버린 저 풀들도 머잖아 벌떡벌떡 일어설 것이다. 봄이 왔으니까.
강 이쪽과 저쪽을 이어주는 징검다리다. Hand in Hand가 연상된다.
버들강아지가 지고 있다.
뉘 집 텃밭에 피어난 홍매화가 참 붉고 곱다.
꽃과 새,
절묘하게 어우러진 하늘과 바람과 구름이 그린 봄날의 수채화다.
서천(西川)둑길을 걷는다. 버들강아지가 피어난 듯 하더니만 벌써 지고 있다.
겨울철새 청둥오리는 봄이 왔는데도 심드렁한가보다. 청둥오린 분명 겨울철새였는데 언제부턴가 텃새로 바뀌었다. 일 년 사시사철 서천을 무대로 해서 살아가는 새이기 때문이다. 하긴 시절이 하 수상하니 청둥오리는 그 묘하게 뒤죽박죽되어 돌아가는 세상사 꼬락서니를 일찌감치 터득했나 보다.
청둥오리는 서천의 귀염둥이다. 산책 나온 사람들 모두가 저 녀석들을 만나면 반갑다고 소릴 "깩깩~!" 질러댄다. 까마잡잡하게 생겨먹은 자맥질 도사, 수달이 인기가 훨씬 좋지만 장난꾸러기 그 녀석들 만나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그 녀석들은 재수 엄청 좋은 날이래야 만나볼 수 있다.
갈대숲 속에서 속살거리는 소리 들린다.
"아직은 이르겠지."
"꽃소식이 왔다니 머잖았지."
"봄비 더 내리고 나면 나갈 수 있겠다."
"그럼!"
작년 이맘쯤엔 저 길 일하면서 걸었다. 그러나 올해는 그 알량한 노인 일자리마저 뚝 떨어졌다. 집사람은 작년12월, 이틀 일하고 떨어졌다. 집사람이 말했다. "워리 새끼처럼 워리워리 불러놓고 떨거주아. 요놈들 어디 두고보자." 두고보잔 사람치고 무서운 사람 없다. 그러나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좋은 세상 만든다고 했으니 기다려볼일이다. ㅎㅎ
풀이 누웠다. 작년 가을 된서리 맞고 풀이 누웠다. 누운 풀은 봄비가 흡족히 내려야 일어날 것이다. 1970년대 한국을 대표했던 시인 김수영은 4.19를 미완의 혁명이라고 했다. 그렇다.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별로 없어니까 결과적으로 말해 4.19는 분명 미완의 혁명이었다. 김수영은 교통사고로 타계했다. 여기 불운의 시인 김수영의 시 '풀'을 모셔본다. 김수영은 풀이 발목까지, 풀뿌리까지 눕는다고 했다. 시인 김수영이, 시인의 시 '풀'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그의 여동생 김수명 덕분이었다고 한다. 그녀는 결혼도 마다하고 오빠를, 오빠의 문학을 세상밖으로 내보내는 일에 전력을 다했다고 한다. 현대문학은 그녀가 설립했다고 전해진다.
풀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다가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