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K씨는 해마다 마당에서 수확한 가을을 보내온다. 이번에도 상자 속에 모과 세 개가 들어있었다. 아기 머리통만 한 모과는 손끝에서 무쭐했다.
아마도 그녀의 정원에서 간택된 제일 잘생긴 놈이지 싶다. 피부는 어린 연유에 노란 빛깔을 띠고 있으나 몸통은 산맥처럼 꿈틀대는 골결이 범상치 않다. 그중 두 개는 모과차를 만들고 두상과 빛깔이 제일 나은 것을 골라 안방 문갑 위에 두었다. 방문을 여닫을 때마다 은은한 향기가 따라 나오고 빛깔도 점차 황금빛으로 익어갔다.
어느 날은 방문을 여니 그가 그 방의 주인인 것처럼 정좌하고 있었다. 미더운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의 시간은 어디까지였을까?
가을이 땅으로 내려앉고 하늘에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을 무렵인가. 그때부터 그의 모습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몸에 갈색 반점이 번지고 늙은 대추마냥 쪼그라들더니 시커먼 하나의 돌덩어리에 불과했다. “들어내야지.” 하면서도 왠지 손길이 쉽게 가지 않았다.
한가람미술관의 화랑을 돌 때였다. 울퉁불퉁한 시커먼 돌덩어리, 그건 내 첫인상이었고 청동으로 부조된 자코메티의 마지막 작품 ‘앉아있는 남자의 흉상’이었다. 배코 친 두상에 비쩍 마른 얼굴, 눈빛은 형형한데 그친 입술[止]은 비뚤어졌고… 뭔지 모를 고통이 솟구쳤다. 그때 등신불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