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제2의 도시이자 항구인 앤트워프 항은 도버해협(Strait of Dover)을 지나 북해(North Sea)에 들어서면, 유럽대륙을 뚫고 프랑스 국경까지 굽이치며 흐르는 첫 번째 강인 에스꼬강 어귀에 있으며, 인근 각국의 산물을 집산하여 유럽 내륙 깊숙한 곳까지 분배하는 요충이 되어 있으며, 강을 따라 조금만 들어가면, 양쪽 옆구리를 뚫어 몇 개의 갑문을 만듦으로 거대한 호수를 조성하고 그 안에 항만 시설을 축조했다. 갑문(閘門)을 닫으면 호수와 강은 별개의 지역이 된다.
1981년 12월 23일 밤. 벨기에의 앤트워프항에서 양하를 마치고 출항을 해야 하는데 항만 전체를 뒤덮은 짙은 안개 때문에 전 선박의 출입항이 완전히 묶였다.
앤트워프! 초등학교 시절에 읽었던 소설 ‘플랜더스의 개’로 지금도 각인된 이름이다. 할아버지와 충직한 개와 함께 사는 네로 소년의 얘기에 당시 눈물을 흘린 기억이 있는 곳이다. 춥고 으스스한 겨울철의 거친, 북위 51가 넘는 북해 바다까지 나가지 않게 된 것이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었다.
'플랜더스의 개'의 기념동상(빌려온 사진)
외항, 그러니까 북해 입구에서부터 도선사가 승선하여 접안하기까지 3~4번의 각각 임무가 다른 도선사가 바뀌면서 접안(接岸)까지 이른다. 그 때문에 북해 연안의 큰 항구들은 대부분이 그렇듯이 이 항도 출입항 시 각각 7~9시간을 강을 오르내려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아슬아슬하게 자주 갈아타는 도선사(Pilot)와 좁은 갑실(lock)의 출입 등이 간을 조마조마하게 하기도 한다. 도선사가 승선할 때부터 마지막 도선사가 내릴 때까지는 선장은 선교(船橋 : Bridge)에서 지켜야 한다. 지휘는 도선사가 하지만 모든 책임은 선장(Capt.)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날따라 성탄절 전야. 외항을 빠지면 바로 이어지는 도버해협을 완전히 벗어날 때까지 꼼짝없이 날밤을 선교(Bridge)에서 보내야 할 판이다. 희미한 시계(視界) 속에서나마 오늘 밤 땅 위의 영화(榮華)와 거룩한 은총들이 눈에 뵈는 듯 하다. 짙은 안개가 구세주처럼 고맙기 그지없다. 이 날 밤은 마음 푹 놓고 잠 잘 수 있으렷다.
파란색은 강, 빨간색은 인공적으로 만든 갑문. 진한 녹색부분이 항구
한데 새벽부터 난리를 쳤다. 4시에 문득 잠이 깨였다가 다시 누우려는 데 거실의 불이 켜진다. 나가 보니 웬 흑인 한 녀석이 책상 쪽에서 문쪽으로 간다. 누구냐고 묻자 문을 열고 튄다. 펜티 바람으로 뛰쳐나가 고함을 질렀다. 맨 아래층에서 당직자들이 잡았다. 아프리카 탄자니아(Tanzania) 사람이랬다. 그럴듯한 버버리 코트차림에 자기도 선원인데 배를 잘 못 알았다며, “I am sorry!”를 연발 했다. 다소 술기운이 있는데다 아무래도 거동이 수상하다. 뱃놈이 배를 못 알아본다는 것은 거짓임이 분명했다. VHF(초단파무선전화)로 항만청(Port control)을 경유 항만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순찰차가 불을 번쩍이며 배 옆까지 도착했다. 처음에는 경위를 묻기만 하다가 도둑을 잡아두고 있다고 하자, “Thank you, Capt.” 하며 그 녀석을 넘겨받자 당장 수갑을 채우고는 나도 같이 가잖다. 항만경찰서로 갔다. 조서를 꾸미고 확인 Sign까지함으로 정식으로 넘겼다.
강의 다리를 지나기 위해 설계된 낮고 긴 선박은 선원들이 생활하면서 유럽 곳곳의 강 연안에 물자를 운반한다.(빌려온 사진)
경찰에서도 이미 알고 있는 전과자이었다. 영창에서 나온 지 3-4일 밖에 안 된 넘이라고 했다. 잠시 화장실에 다녀온다며 가서는 증거물을 변기에 버린 모양, 경찰이 가서 맨 손으로 변기를 뒤져 건져와 따지기까지 한다.
우리 말로 ‘개 패듯’ 했다. 무심결에 ‘그만 하시오’ 하고 말릴 뻔했다. 역시 옛날부터 흑인들이 백인사회에서 노예로 밖에 취급받지 못했던 것이 결코 우연에서 온 것이 아님을 알겠다. 지난날 나이제리아 등지에서 본 그들의 행동거지며, 생각하는 것은 마치 충실한 개만도 못한 것이 많았었다.
처음 경험하는 일이지만 아찔했다. 만일 칼이나 흉기라도 들고 들어와서 협박이라도 했더라면 어쩔뻔 했던가. 너무 믿었고 그러기에 방심한 것이다. 문조차 잠그지 않았으니 -. 그러나 세상 어디고 흠은 있게 마련이다.
후에 브라질 어느 항에서는 멀쩡한 신사가 대리점이라며 선장실까지 와서는 서류를 내는 척 가방을 열고는 권총 꺼내 들고 금고까지 열게 하고 탈탈 털어갔다는 다른 선장의 얘기에 더욱 찔끔하기도 했었다.
도시를 품고 흐르는 에스꼬 강(빌린 사진)
다른 침실을 두고 맨 위층의 선장실(Capt. Cabin)까지 올라온 것을 보면 필시 유경험자임이 분명하다. 생각할수록 불쾌하고, 설렁한 항만경찰서에서 서너 시간을 보낸 것이 으시시하게 한다.
다음 날 아침, 10시반 출항했다. 겨우 마지막 갑문(閘門:Lock)을 빠져나오려는데 다시 짙은 안개와 폭설로 출입항이 통제. 인근의 눈 덮힌 벌판 속에 건설 중인 762번 부두에 응급 접안 조치하고 항만관리국(Port Control)의 지시를 기다려야 한다고 도선사가 얘기한다. 황량한 들판에 겨우 안벽(岸壁) 이외는 아무것도 없다. 버려진 느낌이었다. 밖에는 갖난 애기 주먹만한 굵고 탐스러운 눈발이 조용히 퍼붓는다. “이번에는 진짜 ‘White X-mas’다.”고 했더니, 이곳에서도 드문 일이라며 기분이 좋다고 하던 얼굴이 길쭉한 도선사(Pilot)의 인상이 떠 오른다. 먹을 것, 마실 물 넉넉하겠다 안전한 곳에 접안했으니 마음을 푹 놓고 며칠을 기다리면 기분이 좋은 일이다. 이 계절에 겨울철 바다의 난폭함으로 유명한 비스케이만(Bay of Biscay)을 건너 뛸 일이 아무래도 난감한데……. 일단 모로코의 카사블랑카(Casablanca)항으로 가라는 지시를 받고 있었다. (이 얘기는 졸저 <흔적(80옹 회고록>에 쓴 적이 있음.)
첫댓글 크리스마스 시즌에 멋진 나드리 두고 선박을 지키고 있었다니.
젊은 나이에 세계 곳곳을 누비며 많은 경험을 했으니 평범한 직장인보다 여한없이 생을 누렸다고 생각할 때가 있을 것 같네요. 아닐수도???ㅎ
집 지킴이에겐 상상불허. 난해이옵니다.
생얼 쳐다보며 야그 듣고파.
늑점이님의 얼굴에 그리움이 묻어나는지?
좋은 글을 잘 읽었습니다. 글이 얼마나 재미있고 실감이 나는지 ...
감사합니다. 건강과 행운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