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말 첨단 유행은 '저녁 식사 후 가배 한 잔’
한국 커피 전래
날씨가 더워지면서 손에 아이스 커피를 들고 길거리를 걷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카페인 성분을 줄인 '디카페인 커피'를 찾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는 뉴스도 나왔어요. 21세기 대한민국의 일상에 커피가 없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게 됐는데, 커피는 도대체 우리나라에 언제 들어온 걸까요? 한국 커피의 역사는 올해로 꼭 163년이 됩니다.
천주교 신부 부탁으로 홍콩서 온 커피원두
"내년에 조선으로 들어올 선교사 편에 이 물품들을 보내주십시오. 적포도주나 백포도주 50병들이 2상자, 코냑 4다스, 커피 40리브르, 흑설탕 100리브르."
이것은 1860년(철종 11년) 3월 6일 조선 천주교회 교구장이던 프랑스인 시메옹-프랑수아 베르뇌 주교가 홍콩에 있던 파리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의 리부아 신부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예요.
천주교(가톨릭)는 1784년(정조 8년) 이승훈이 중국에서 영세를 받고 조선으로 돌아와 교회를 창설해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전래됐죠. 천주교는 조선에서 불법 종교로 여겨져 탄압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1846년 조선인 김대건 신부가 처형당한 병오박해 이후 조선의 마지막 천주교 탄압 사건인 1866년 병인박해 때까지 20년 동안은 천주교 포교의 상대적 안정기였다고 해요. 19세기 초만 해도 조선에 와 있는 프랑스 신부들은 김치와 밥만으로 끼니를 해결할 정도로 열악한 상황이었지만, 철종(재위 1849~1863) 때는 조금 여유를 되찾아 서양식 식생활을 향유할 수 있었다는 얘깁니다. 그래서 이들은 "조선으로 커피를 보내달라"고 할 수 있었던 거예요.
위 편지에서 '리브르(livre)'는 약 0.5㎏에 해당하는 단위니까 커피 원두(커피나무 열매의 씨앗을 말려 볶은 것) 20㎏을 요청한 것이죠. 이 편지를 계기로 홍콩에서 1861년(철종 12년) 조선에 보내준 커피가 지금까지 기록상 우리나라에 최초로 들어온 커피가 됩니다. 이후 1866년까지 조선으로 온 커피 원두는 프랑스 신부 1인당 약 4㎏이었는데, 혼자 소비하기엔 많은 양이었기 때문에 조선인 신자들과 나눠 마신 것으로 보입니다.
고종 황제도 즐겨 마셨어요
"1884년 1월의 어느 추운 날, 조선 고관의 초청으로 한강 변 별장에 유람을 가 꽁꽁 얼어붙은 겨울 한강의 정취를 즐기던 중 누대에 올라 당시 조선의 최신 유행품이던 '저녁 식사 후 커피(after-dinner coffee)'를 마셨다."
이것은 1883년 조미수호통상사절단의 안내를 맡았던 미국인 천문학자 퍼시벌 로웰이 저서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 남긴 기록이에요. 여기서 주목할 것은 저녁을 먹은 뒤 커피를 마시는 것이 1880년대 조선 양반들 사이에서 '최신 유행'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당시 커피는 가비(加非) 또는 가배(咖啡)로 불렀어요. 커피를 한자로 표기한 이름이에요.
비슷한 시기 의료 선교사 호러스 알렌은 "궁중에 드나들 때 홍차와 커피를 대접받았다"고 일기에 썼어요. 1896년 고종은 일본의 압력을 피해 거처를 러시아 공사관으로 일시 옮겼던 '아관파천' 때 커피를 본격적으로 즐겼고, 이후 커피 애호가가 됐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전에도 커피를 즐겨 마신 양반들이 있었기 때문에 고종을 우리나라 최초의 커피 애호가로 볼 수는 없어요.
손탁호텔 1층에 생긴 '서울 최초 커피숍'
고종에게 커피를 권했던 사람은 러시아 공사관에서 일했던 독일 여성 앙투아네트 손탁(1854~1922)으로 알려졌는데, 손탁은 대한제국 소유 서울 정동 건물의 위탁 경영을 맡아 서구식 호텔로 꾸며 1902년 '손탁호텔'의 문을 열었죠. 이 호텔 1층에 들어선 레스토랑 겸 커피숍이 서울 최초의 커피숍이었다고 합니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 나오는 '글로리 호텔'은 손탁호텔을 모델로 한 거예요.
'강철군화'를 쓴 미국 작가 잭 런던과 훗날 영국 총리가 되는 젊은 윈스턴 처칠은 모두 러일전쟁 당시 종군기자로 활동했는데요. 이들이 이 호텔의 손님이었다고 합니다. '독일 여성이 운영하던 커피숍을 계기로 크림과 설탕을 타 마시는 독일식 커피가 한국에서 유행하게 됐을 것'이란 추측도 있어요.
커피는 1920~30년대 경성(서울)의 다방 문화를 중심으로 널리 퍼졌습니다. 숱한 다방 중 배우 복혜숙이 운영했던 인사동 입구의 '비너스'와 시인이자 소설가인 이상이 종로1가에 연 '제비' 등이 유명했습니다. '제비'에는 화가 구본웅, 소설가 박태원 같은 예술가들이 모여들었는데, 경성의 다방은 때론 음악회나 미술 전시회가 열리고 최신 서구 예술에 대해 열띤 토론이 펼쳐지는 장소였다고 합니다.
[커피의 전파]
커피 열매의 원산지는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의 고원 지대입니다. 이슬람 세력의 확산과 함께 세계로 퍼졌고, 유럽에서는 17~18세기 들어서 상류사회 중심으로 마시기 시작했죠. 유럽의 아침 식탁에 커피가 등장하자 맥주와 포도주가 사라지기 시작했고, 알코올로 몽롱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대신 좀 더 활기찬 아침을 맞을 수 있었다고 해요. 그런데 커피가 유럽 평민에게까지 퍼져 누구나 마실 수 있게 된 것은 1860년대에 들어서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 커피가 전래된 해가 1861년이니 커피 문화에 있어서 한국이 그다지 늦은 것은 아닌 셈이죠. 커피를 마시는 풍습이 한국 내에서 빨리 생겨난 것에 대해선 '식후에 차나 숭늉을 마시던 한국인의 음료 문화가 자연스럽게 커피로 대체된 것'이란 분석도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