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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게시판 스크랩 2016년 4월 1일 오후 02:55
강양순 추천 0 조회 41 16.04.01 14:5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봄을 노래 하다
강양순


우리 동네는 옛날부터 자연적으로 조성된 마을이 아니라 계획적으로 이루어진 마을이다. 그래선지 집으로 들어오는 큰길 건너 입구에 공원이 있고, 도청 가는 길에도 큰 공원이 있다. 이 동네는 원래 과수원 촌으로 사람이 살기에 부적절하여 인가로는 인기가 없었다고 한다.
내가 20여 년 전에 이곳에 터를 잡고 이사했을 때는 빈터가 많았다. 우리 집 주변 공원엔 봄이면 벚꽃이 유독 많이 피어난다. 어릴 때의 기억으론 봄 하면 벚꽃보다 진달래나 개나리꽃이 더 반갑고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도회지에선 진달래나 개나리는 구경하기 힘들다. 그렇다고 보이지 않는 그 꽃들만 그리워할 수 없는 마음인지 근래엔 어느 꽃이든 공원에 피어 있는 꽃들이 더 마음을 끈다.
벚꽃은 서양에선 봄, 순결을 상징하고 그리스도의 전설에 나오는 버찌는 마리아의 성목이 된다고 한다. 외출했다가 큰길을 건너 우리 동네에 들어서면 활짝 핀 벚꽃은 시장에 가서 때때옷 사가지고 오는 엄마를 반기는 아이마냥 발그레 웃곤 한다. 그 모습이 어찌나 환상적인지 부러 동네를 배회하는 습관이 붙었다.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는 날이면 벚꽃 잎은 꽃비가 되어 흩날리고 하고 한꺼번에 우르르 쏟아져 내리기도 한다. 길가에 떨어진 벚꽃은 무참하게 사람들의 발로 짓밟혀 버린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제발 바람이 멈추기를, 사람들이 밟지 않기를 소녀처럼 기원해보기도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런 날은 우산을 쓰고 하염없이 공원을 맴돈다. 떨어진 벚꽃 잎을 뭉그러뜨리는 사람들을 잡아 혼쭐이라도 내려는 심산으로.
내가 어렸을 적 우리 집 뒤뜰에도 벚나무 있었다. 하얀 천막을 친 것처럼 환하게 피었던 벚꽃이 지고난 뒤에 버찌를 따다가 한입 베어 물면 입언지리는 검은색으로 변하였다. 동무들과 버찌를 나누어 먹고 서로 검은 입을 보며 키득대고 웃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내겐 그런 추억 때문에 벚꽃이 각별하다.
봄비가 사브작 사브작 대지를 적시면 우리 집 꽃밭에서도 봄의 숨결이 향연을 펼친다. 초록색 나뭇잎들이 피고 나면 매화, 개나리, 목련꽃이 앞 다투어 피어난다. 정원의 돌 틈 사이에선 철쭉꽃이 만발한다. 정원 옆에 큰 고무 통에다가 흙을 넣고 밭을 만들어 상추며 쑥갓 치커리 등을 심었다. 그것들은 반찬 없을 때 우리 집 식탁에 봄을 가져다준다.
우리 집에서는 아들, 며느리, 손자 3대가 함께 산다. 내 생일은 음력은 3월이지만 양력은 4월이다. 그래서 생일상엔 언제나 싱그럽고 향기로운 나물들이 즐비하다. 대지를 막 뚫고 나온 그 푸른 잎새들이 나의 탄생을 축복하는 것만 같다.이른 새벽부터 며늘애는 내 생일상을 차린다고 부산하다. 각종 봄나물과 소고기 미역국에 된장찌개가 한 상 가득 차려진 밥상 앞에 가족들이 모인다. 진심으로 생일을 축하하는 덕담을 나누고 과일과 차로 후식을 즐긴다. 집집마다 홀로 사는 노인들이 많은 요즘, 자칫 외롭고 쓸쓸하게 생일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을 테지만 향그러운 봄에 태어난 나는 봄 향기로 가득한 생일을 보내곤 한다.
나이 들어서도 자식들과 더불어 살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축복받은 삶이며 언제나 청춘으로 살 수 있다. 며늘애는 시어머니 생신이라고 내게 용돈을 두둑이 주며 아버님과 맛있는 음식 사드시라고 거듭 당부한다.
남편과 나는 며느리의 배려에 응답이라도 하려는 듯 눈부시게 빛나는 햇살을 받으며 봄 향기가 물씬 나는 가로수 길을 달려 운암 교에 갔다. 운암 교 입구 좌측의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돈가스를 시켜 먹고, 커피 한 잔을 사이에 두고 창 넓은 창가에 앉았다. 창가로 보이는 운암 호수엔 어떤 풍류객이 띄운 돛단배인지 한가롭게
출렁였다. 그들도 어쩌면 아들 며느리의 효심에 호응하는 것이리라.
레스토랑을 나와 가로수 길을 걷자니 아직 다 떨어지지 않은 벚나무에서 벚꽃 잎들이 무리지어 하염없이 바람에 휘날렸다. 나와 남편은 기왕 봄 구경 나선 김에 기분 좋은 봄 햇빛 속에서 꽃이 다 떨어지지 않은 곳을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집에 돌아오니 어느새 며늘애는 생일 케이크를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방에 들어가 상 앞에 앉자 손주들은 양초에 불을 켜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낮에 본 아름다운 운암호의 전경이 우리 집 방안에 들어온 듯했다.
어머니는 생신이 4월이라서 우리 집 정원에 만발한 꽃처럼 아름다우신가 보다고 한다. 혀끝에서 나오는 말이 아닌 진심으로 나를 축복해주는 찬사의 말임을 가슴으로 느낀다. 나의 생일이 있는 계절 봄을 나는 사랑한다.
2016년 01월 0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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