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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성지순례에는 불가피하게 두 가지 관점을 지니게 되는 것 같습니다.
성경의 배경이 되었던 지역을 순례한다는 관점에 보태어,
최소 2천년 이상의 기간 동안 그곳에 어떤 일이 일어났었는지의 관점도 함께 봐야 할 것같습니다.
요르단에서 알렌비 출입국관리소를 통과하여 여리고에 당도했습니다.
여리고 하면 첫번째 떠오르는 생각이 여호수아 앞에 무너져 내린 여리고 성입니다.
여리고 고대 유적지를 발굴해 놓은 곳에 당도했습니다. 여기가 이레째 되는 날 무너져 내린 그 성터일 수도 있겠지요! 지금으로서는 3천4백여 년 전의 지점을 확정한다는 것은 무리입니다. 이곳으로 순례팀이 오는 이유는 예수님이 침례를 받으신 이후 성령의 이끌림에 의해 40일간 금식하면서 시험받으신 '시험산(Mountain of Temtation)' 혹은 '유혹의 산'을 조망하기 좋기 때문입니다.
높은 곳에서 찍은 여리고 고대 유적지 모습입니다. 퍼온 자료 사진입니다.
고대 유적지 발밑으로 볼 수 있는 유적인데요, 이것은 천문대로 쓰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제 시선을 돌려 시험산을 보겠습니다.
옛 성터 유적지에서 바라본 시험산입니다. 정상에 성곽이 둘러처져 있습니다. 1874년에 그리스정교회에서 교회를 지으려고 외곽 담장 공사를 먼저 했는데, 군사적 정치적 이유 등으로 정작 교회는 짓지 못하고 중단되었기 때문에 지금은 저렇게 성곽처럼 둘러진 시험산의 정상이 순례객들의 시선을 끕니다.
정상의 모습이 궁금해서 인터넷 자료를 올립니다. 담장 안 공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저 곳에 어떤 조형물을 설치하면 예수님이 사탄으로부터 시험 받은 사건을 잘 드러낼 수 있을까? 묵상해 봅니다. 사탄은 예수님에게 가장 먼저 빵으로 시험하고, 둘째는 세상의 권세로 유혹을 했고, 셋째는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려 보라!'고 유혹했습니다.
시험산 중턱에 보면 뭔가 조형물이 보입니다. 왼편에 희끗한 것이 있고, 오른 편에는 꺼뭇한 것이 있습니다.
왼편의 흰것은 그리스 정교회에서 구축한 수도원입니다. 순례객들에게 개방하고 있는데, 저희는 못 가봤습니다. 이고까지 케이블카가 설치되어 있어서 음식물 등을 실어올린다고 합니다. 오른편 꺼뭇한 구축물은 지금은 폐허가 된 수도원입니다.
사진 왼편에 케이블카가 보였는데, 카메라에 담지는 못했습니다. 고대 유적지 전망대에서 사방을 둘러보면 여리고는 대단히 비옥한 땅입니다. 고대로부터 이곳은 지하수가 풍부했던 지역입니다.
헤롯은 이곳에 겨울궁전을 지었습니다. 여름 궁전은 마케루스에 짓고, 겨울 궁전은 여리고에 지었습니다. 그러나 그도 죽습니다. 주전 4년에 베들레헴에서는 예수님이 탄생하고, 그 해에 헤롯이 죽는데, 그의 임종지가 여리고입니다. 예수님은 이곳에서 시험도 받으시고, 시각장애인을 치유해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시험산 아래 펼쳐진 여리고를 배경으로 섰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세리장 삭개와 만난 곳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여리고에 오신다는 소문을 듣고 세무서장 체면도 불구하고 뽕나무(돌 감람나무)에 올라갑니다. 바로 그 뽕나무 한 그루를 잘 키워놓은 곳으로 갑니다.
저 햇볕이 드는 맨 아래 가지에 세무서장 삭개오가 걸터 앉았을까요? 예수님은 지나는 길에 삭개오를 불러주십니다. 그리고 삭개오 서장의 집에서 하루를 묵습니다. 이때 삭개오는 그동안 부정축재한 재산을 다 토해내겠다고 선언하지요!
길도 비좁고 순례객들이 붐비고 시간도 촉박하여 사진을 잘 찍을 엄두도 낼 수 없었습니다.
동행하신 목사님 부부를 제가 곁에서 '찰칵'해 드렸습니다.
울타리를 두르고 보호수로 키우고 있습니다. 여리고는 '요르단서안지구'로서 PLO의 통치 지역입니다. 삭개오의 뽕나무는 유대인들에게도 아랍인들에게도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의 성지순례가 많아 관광수입이 되니까, 나무 한 그루를 이렇게 보호하고 있습니다.
여리고 고대 유적지에서 시험산을 관망하고 여리고시내 뽕나무를 보면서 예수님을 생각하고, 이제 우리는 쿰란을 향합니다. 지도 하나를 봅니다.
여리고가 '예리코'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쿰란은 너무나 유명한 곳입니다. 쿰란은 사해 수면보다 약 300미터가 높지만 그래도 지중해수면보다 100미터쯤 아래입니다.
쿰란 유적지 입구 주차장입니다. 저희가 갔을 때는 이런 사진 찍을 수 없었습니다. 주차장에는 수십대의 대형 버스가 가득 찼고, 사람들도 시끌벅적했습니다. 자료사진인데 눈에 익습니다. 건물 오른쪽이 기념품 매장이고 그 옆 공간은 식당입니다. 여기서 식사도 했지요! 가이드 목사님이 입장권을 구입하시고 우리는 어느 출입구 앞에 섰습니다.
쿰란에 대한 홍보 영상 상영관입니다. 여기도 역시 북적북적했습니다. 우리 순서를 기다렸다가 들어가니, 한국어로 에니메이션을 보여줍니다. 그 내용 중에는 침례 요한이 어쩌면 쿰란 공동체에 잠시 들어왔던 인물이 아닌가 한다는 내용이 들어있었습니다.
에니메이션 상영관 왼편에 붙은 사해사본 해설 간판입니다. 1947년에 한 베두인 목동이 잃어버린 염소를 찾아다니다 못 찾아서 허실삼아 늘 지나치던 동굴 안으로 돌멩이를 집어던졌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도 '쨍그랑'하면서 항아리 깨지는 소리가 납니다. 호기심에 들어가봤는데, 양피지 또는 파피루스 두루말이가 항아리에 담겨져 있었습니다. 이것이 구약 성경을 필사한 것이라는, 너무도 소중한 자료임이 판명되기까지 우여곡절을 겪습니다.
그때 깨진 항아리입니다. 에니메이션 상영이 끝나면 스크린이 걷히면서 전시관으로 연결되는데 거기서 찍었습니다. 쿰란에 사람이 산 것은 주전 8세기까지 거슬러간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주전 31년의 지진과 화재로 폐허가 되었다가 주전 4년부터, 그러니까, 예수님이 탄생하시고, 헤롯대제가 죽던 그 해 부터 일단의 유대인 공동체가 이곳으로 와서 살게 됩니다. 이들을 쿰란 공동체라고 부릅니다.
쿰란 공동체는 고도의 절제된 생활을 하면서 성경을 필사했습니다. 베두인 목동에 의해 처음 발견된 이래 점차 고고학자들에 의해서, 쿰란 사람들이 필사한 사본들이 모두 모습을 드러냅니다. 1956년까지 발굴작업이 계속 되었는데, 이 일대의 동굴이란 동굴은 샅샅이 뒤졌습니다. 모두 200개가 넘는 동굴을 탐사했는데, 그 중 11개의 동굴에서 850여 종의 두루말이가 든 항아리가 나왔습니다.
쿰란 공동체는 주후(AD) 68년에 로마에 의해 완전히 짓밟히고 그때부터 이곳은 로마군 주둔지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때 아마 쿰란 사람들은 그동안 필사한 두루마리를 토기 항아리에 담아서 동굴에 숨겼을 것으로 봅니다. 소중한 하나님의 말씀이니까요. 그렇다면 그 사본들이 다시 햇볕을 본것은 1879년만입니다. 놀랍습니다. 그동안 손상되지 않았다는 것도 그렇고요! 또 이 사본의 정확성이 진짜 놀라게 합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구약 성서와 일치하는 내용이었다는 것이 인류의 눈동자를 동그랗게 뜨게 했습니다.
전시관을 돌아서 나오면 바로 이 유적지로 연결됩니다. 이곳이 바로 약 2천 년 전에 쿰란 공동체가 살던 유적입니다. 저 멀리 동굴 몇 개가 눈에 띕니다. 이 유적지를 조사해 본 결과 쿰란 공동체가 정결예식을 하던 목욕탕 비슷한 곳도 있습니다.
여기에 물을 채우고 정결예식을 했습니다. 그때에 사람들은 죄를 씻어내는 의식으로써 물에 잠겼다가 나오는 '밥티즘'예식을 행했던 것이지요! 그 공동체에 몸 담고 있던 침례 요한이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알고 요단강으로 나갑니다.
위 사진은 여리고 유혹의 산 중턱 그리스정교회 수도원 벽화그림입니다. 예수님이 침례 요한에게 침례 받는 장면을 희한하게 그렸습니다. 그 당시의 정결예식을 보여 줍니다.
쿰란 유적지 안내 간판입니다.
이 유적지 아래로 계곡이 하나 있습니다. 계곡 건너편 직선거리로는 100미터 이내에 쿰란 동굴이 있습니다.
이 사진을 찍은 위치는 쿰란 공동체 주거 유적지입니다. 건너 편에 동굴들이 보입니다.
저 보이는 동굴들 200개 이상을 뒤졌습니다. 쿰란 사본의 발견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고고학의 업적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너무나 익숙한 사진입니다. 이곳에 오기 전에 이 장면을 숱하게 봐왔습니다. 사해사본(쿰란사본)에 대해 공부할 때 어김없이 나오는 사진입니다. 제가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오! 주여~ 감사합니다.
성지순례 일행 중 내내 저와 같은 객실에 묵으셨던 룸 메이트 목사님! 제가 찰칵 했는데, 신통치 못하지만 인증해야지요! 두루마리가 나온 11개의 동굴에는 명칭을 붙였습니다. 지금 보이는 저 동굴이 제4동굴입니다.
1로 표시된 곳이 제 4동굴(위에서 통하는 굴이 보입니다) 2는 제 5동굴입니다. 저희가 시간이 있으면 왼 편으로 더 이동해서 볼 수 있었는데, 시간상 그 지점까지 가지 못하고 4동굴만 보고 왔습니다. 그래서 자료로 인용합니다. (사진 출처 : http://blog.daum.net/_blog/BlogTypeMain.do?blogid=0D9WV )
위 사진도 펌인데요, 우리가 갔을 때도 쿰란 공동체 주거 유적 발굴 작업이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식사하고 기념품 구입하고, 저는 조금 일찍 버스 주차장으로 나왔습니다. 주차장 한켠에 핀 이름모를 꽃입니다.
곱고 예쁩니다.
대추 야자 나무입니다. 이제 우리는 버스에 올라 예루살렘으로 향합니다. 가는 길에 한 곳을 더 들르게 됩니다.
눈 앞에 막막한 광야가 펼쳐졌습니다. 와우~
이곳은 예루살렘과 여리고를 잇는 길목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까지는 28키로입니다. 그 사이를 잇는 여러 경로가 있습니다. 누가복음 10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강도 만난 사람에게 이웃은 누구인가를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은 "그 비유 속의 배경은 어딜까?" 이것도 생각합니다. 아마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는 길이 딱 맞을 것이라 여기고 이곳을 순례합니다.
이곳은 유대광야입니다. 이 광야를 지나 여리고에 이르는데, 이 길 주변에는 동굴이 많아 강도들이 숨어있다가 행인의 금품을 터는 사고가 잦은 곳이랍니다. 사진에 보는 것처럼 비가 오지 않으면 물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름하여 '와디 켈트(Wadi Keilt, 혹은 Qult, Qilt)'입니다. 켈트는 와디가 합쳐지는 곳을 뜻합니다.
이곳이 성지순례 코스 중 하나임을 아는 베두인들이 기념품을 팔고 있습니다.
저 귀여운 꼬마가 순례객들에게 "원달라, 원달라, 원달라"하면서 팔찌를 팝니다. 그의 아버지는 쇼올을 팝니다.
베두인들을 직접 만나면서 많은 묵상을 했습니다. 더욱이 이스라엘 당국에서 이들의 정착을 위하여 아파트까지 무상으로 공급했음에도 이들중 90%는 다시 광야로 되돌아갔다는 말은 충격이었습니다. 저 어린 녀석의 장래를 생각한다면 떠돌이 생활에 종지를 찍고, 이제는 정착해야 되지 않을까요?
베두인 청년이 숄을 가지고 저에게 아랍인의 터번을 해 줬습니다. 검은 띠는 빼고 쇼올만 하나 샀습니다.
이 청년은 제가 폰으로 아이들 동영상을 찍어서 현장에서 보여줬더니 폰 값이 얼마냐고 묻는데, 머리 속에서 얼른 환전이 되지 않아 얼버무리고 말았습니다. 저 청년은 언젠가 우리가 말하는 '문화 생활'로 돌아올까요? 그러면 저 청년의 삶의 의미가 달라질까요? 그것이 발전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역사학자들은 떠돌이에서 정착을 대단한 진보로 봅니다. 인류가 떠돌이 생활에서 정착하기 까지 대단히 오랜 세월이 걸렸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러나 베두인을 본다면, 우리가 아는 역사만으로도 최소한 2천년 이상을 저렇게 살고 있습니다. 21세기에는 그들 시야에 최고의 문명인들이 있음에도 그 생활 방식을 고수합니다. 무엇을 말해주고 싶어서 하나님은 지금까지도 저들 삶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계실까요?
왼편에 서 있는 제가 저들 베두인 부자 보다 진보한 걸까요? 발전된 모습일까요? 더 행복할까요?
저들이 우리보다 미개한가요? 못난 건가요? 바보인가요?
하나님은 어쩌면, "유목생활이냐, 농경생활이냐의 차이는 선택의 차일뿐이지 역사의 진보단계가 아니다!"
이걸 알려주고 싶은 건 아닐까요?
유목생활과 농경생활의 틈새에 수십만년의 시간 간격을 우격다짐으로 넣고, 역사학, 고고학, 과학은 진화론을 주장합니다. 구석기 신석기 철기 운운하면서 지구의 역사를 엄청나게 늘려놓고 성경의 창조론을 우습다고 깔봅니다. 그러나 창세기를 보십시오! 아담은 농사를 지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합니다. 땅은 가시와 엉겅퀴를 내고 너는 땀을 흘려야 먹고 살 수 있다. 이 말씀은 농사 지으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아담의 아들 가인은 농사를 짓고 아벨은 목축을 했습니다. 떠돌이와 정착은 역사의 진전이 아니라 단지 선택일 뿐입니다.
원달라 원달라 하면서 매달리던 이 꼬맹이는 지금 고민하는 중일까요?
우리는 이 꼬맹이를 동정할 만한 위치에 있습니까?
그것은 교만일 겁니다!
이 녀석 이후로도 베두인들은 염소털 천막에 살면서 자동차로 이동하고, 와디 킬트 같이 풀 한 포기 없을 것 같은 광야에서 21세기 문명인보다 훨씬 더 행복하게 살지도 모릅니다.
생각은 자유지만 제멋대로 생각하면 그것도 폭력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저들보다 낫다는 생각! 폭력일 수 있습니다.
성지 순례에서 만난 이 소년이 행복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알기를 기도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살롬살롬~~
첫댓글 황의찬목사님 12편의 사진과 글로 편집을 마치시고 2015년의 성지연수의 추억을 마감하심 감사합니다. 2016년도에도 섬기시는 온고을교회의 부흥과 목사님의 영적인 글들을 통하여 은혜나누며 큰유익을 얻길 기도합니다.
할렐루야~ 목사님께서 댓글 다신 것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목사님! 오늘은 해가 바뀌어 2016년 1월 2일 토요일인데요, 저는 아직도 성지순례 중입니다. 오늘도 텔 브엘세바와 텔 아라드 포스팅을 마쳤습니다. 아직도 마사다가 남았고요, 정작 중요한 예루살렘이 남아 있습니다. 여기까지 온 것 마저 정리해야 제 머리 속도 정리가 되어 다른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요, 이렇게 포스팅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성서 지리기 공부가 되고 있습니다. 이 일도 목회려니 생각하고 힘을 내서 하고 있습니다. 감사해요 목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