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예술을 뜻하는 아르누보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사이에 유럽 각지에서부터 미국, 남미에 이르기까지 널리 유행했던 양식입니다. 기존의 예술을 거부하고 새롭고 진보적인 미술을 추구한 아르누보. 이 아르누보 양식의 대표 화가로 체코슬로바키아 출신의 알폰스 무하를 꼽을 수 있는데요. 이번 시간엔 아르누보의 거장 알폰스 무하의 작품들을 만나보겠습니다.
<'제 20회 살롱데상 전시회' 포스터> 알폰스 무하, 1896년 (컬러 석판화)
아르누보는 말 그대로 새로운 예술이라는 뜻입니다. ‘뉴 아트’라는 단어의 불어에 해당이 되는데요. 프랑스에서만 발전한 양식이 아니라 독일, 러시아, 영국, 이태리 등 다양한 나라에서 동시에 발전을 했습니다. 독일에서는 유겐트 양식, 프랑스에서는 아르누보라고 얘기도 하고 대표적 작가인 기마르(Hector Guimard)의 이름을 따서 기마르 양식이라고도 합니다. 또 러시아에서는 스틸 모데른, 이태리에서는 리버티 양식 등 다양하게 불리워집니다. 아르누보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뭔가 하면 바로 ‘삶을 아름답게’입니다. 예술작품을 함에 있어 회화를 중심으로 한 순수예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도자기 같은 공예작품을 비롯해 다양한 활동을 벌이게 됩니다. 지금도 파리에 가시면 조개껍데기 같은 모양의 철제 지하철 입구가 있는데 그게 다 아르누보 시대 때 헥토르 기마르가 디자인 한 작품입니다. 현재 도시 파리의 아름다움은 이 아르누보 시대에 완성이 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디자인에 음악, 회화, 문학까지 다 결부가 된 종합적인 예술 운동이라 볼 수 있지요.
헥토르 기마르의 파리 지하철역 입구 디자인 (출처 : 네이버 블로그)
이 아르누보는 처음에 등장했을 땐 좀 경멸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당시 놀리는 말로 아르누보에서는 모든 게 꼽슬꼽슬 거리고 빙글빙글 돌아간다고 해서 국수가락 양식이라고도 했고, 또 포도덩굴 같이 둥글둥글 하다고 조롱섞인 얘기도 들었습니다. 국수가락과 포도덩굴의 공통의 뜻은 바로 자연스러움과 여성스러움을 추구한다는 걸 말합니다. 이전의 르네상스 미학이나 신고전주의 양식은 엄격한 대칭을 굉장히 사랑했습니다. 또한 바로크도 남성적인 양식이었는데요. 이후의 이 아르누보는 기본적으로 산업화 이후에 등장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 산업화의 딱딱함 대신에 자연의 여성적인 부드러운 섬세함을 끌어내려다 보니까, 오히려 더 곡선적이고 우아한 여성적인 형식들을 강조해 등장했던 겁니다. 많은 아이디어를 자연에서 가져오게 되는거죠.
체코의 알폰스 무하 뮤지엄 (출처 : 네이버 블로그)
지금부터 아르누보의 대표적 화가 알폰스 무하를 소개할 텐데요. 우리나라에서는 좀 생소한 화가입니다. 보통 프라하로 여행을 많이 가시잖아요. 그 프라하에 가면 알폰스 무하의 뮤지엄과 무하의 손녀가 하는 디자인 샵이 있습니다. 이글을 읽고 가서 찾아보시면 굉장히 재밌을 겁니다. 우리한테 체코 예술가는 사실 굉장히 낯선데요. 체코의 예술가 알폰스 무하는 아르누보 예술에 있어서 가장 대표적인 작가 중 한명입니다.
실은 그가 태어났을 때만 해도 체코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국의 식민지 상태였습니다. 무하는 그런 곳의 가난한 집 장남으로 태어났는데요. 그는 어린 시절 성가대에서 노래를 주로 불렀습니다. 거기엔 물론 종교심도 있었겠지만, 거기가면 밥을 얻어먹을 수 있다는 사실도 중요했던거 같습니다. 그런데 어린 성가대라는 게 변성기가 오면 더 이상 할 수가 없잖아요. 그러자 무하는 정식으로 그림을 공부한 적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림을 그려서 조금씩 팔기 시작합니다. 미술에 타고난 재능이 있었던 거죠. 그리고 나서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 제국의 수도였던 빈에 있는 공방에서 일을 하게 합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곳에서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메인고객이었던 극장에 불이 나고 무하는 결국 직장을 잃게 됩니다. 갑작스레 생계가 끊기고 어디로 가야할지 방황하고 있는 무하에게 운이 좋게도 후원을 하겠다는 독지가가 등장합니다. 그렇게 알폰스 무하는 이번엔 파리로 유학을 떠나게 됩니다.
<자화상> 알폰스 무하, 1899년
유학생활을 잘하고 있던 중 갑자기 무하는 급한 소식을 전하는 편지 한 장을 받습니다. 지금까지 무하를 후원해주던 독지가가 파산을 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더 이상 그를 도와줄 수 없으니 혼자 살아라라는 내용의 편지였습니다. 그의 젊은 시절은 이처럼 파고가 큰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나쁜 일이 일어났다고 해서 꼭 그게 나쁜 결론으로 이어지지만은 않는게 인생일까요? 지금까지 편안한 유학생활을 영위하던 알폰스 무하는 어쩔 수 없이 생계형 작가로 변신하는데 이때부터 그의 삶은 잘 풀리기 시작합니다.
감상작품, 알폰스 무하의 <지스몽다>
<지스몽다> 알폰스 무하, 1894년 (컬러 석판화)
이 그림은 지금 봐도 굉장히 아름답고 섬세하게 그려져 있는데요. 그림 속 그녀는 아주 화려한 동양식 가운을 걸치고 난초머리 장식을 하고 한손엔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있는 귀부인입니다. 이 작품은 먼저 그 비율이 특이한데요. 보통 일반적인 그림은 A4용지의 비율이 대부분입니다. 근데 이 작품은 A4용지 두 장을 위아래로 붙인 것과 같은 긴 형태입니다. 그럼에도 굉장히 세련된 느낌을 주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사실 일반적인 회화가 아니고 상업용 포스터입니다. 바로 극장 포스터죠. 르네상스 극장의 사라 베르나르라는 프랑스 국민 여배우를 그린 것이고 그녀 주연의 ‘지스몽다’라는 연극의 포스터입니다.
후원금이 끊긴 이후, 추운 겨울을 어떻게 보내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알폰스 무하에게 갑자기 기회가 찾아온 겁니다. 공연날은 1월 7일이고 그 2주전에 포스터가 완성됐어야 하는데, 그 포스터를 작업하던 공방에서 크리스마스 휴가를 가야 한다며 작업불가 통보를 합니다. 그러자 급해진 극장 측에서는 포스터를 그릴 수 있는 누구라도 찾습니다. 그 때 이 작업을 맡은게 바로 알폰스 무하입니다. 그가 그린 포스터는 이전에 아무도 본적이 없을만큼 아름다웠을 뿐만 아니라, 여배우 사라 베르나르의 마음에 꼭 듭니다. 크리스마스와 연초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파리 시민들은 깜짝 놀랍니다. 그들은 궁금해 합니다. 이 아름다운 파리에 이토록 아름다운 포스터를 펄럭이게 한 사람은 누구인가? 그들은 그 포스터를 그린 사람이 체코 출신의 젊은 예술가였다는 걸 알고, 그에게 열광합니다. 이런 환호에 가장 기뻐했던 사람 중 하나는 사라 베르나르였고, 그녀는 이 젊은 작가에세 7년 전속계약을 제안합니다. 당시 사라 베르나르는 지금의 한국으로 치면 안성기나 김혜자 선생님 정도 되는 국민배우였고, 당연히 그녀가 주연하는 연극은 늘 히트를 쳤기 때문에 무하에게는 손쉽게 명성을 누릴 수 있는 안정적인 7년이 찾아오게 됩니다.
<사계-봄,여름,가을,겨울> 알폰스 무하 (컬러 석판화)
당시의 시기를 흔히 데카당스의 시대 혹은 벨 에포크의 시대라고 하는데요. 파리가 멋쟁이들로 뒤덮였던 시기입니다. 예를 들면 보들레르, 랭보, 오스카 와일드처럼 내적으로도 멋있으면서 또한 외적으로도 말쑥하게 양복을 차려입은 멋쟁이들이 즐비했습니다. 흔히 '댄디하다'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활보를 하던 시대였던거죠. 당시 사람들은 진선미 중에서 아름다움의 가치를 가장 중시했을 정도로 외적인 부분을 많이 신경 썼습니다. 또한 당시는 아름다움이 박물관에 갖혀 있기는 원하지 않았습니다. 아름다움이 우리 삶으로 걸어 나와 의상, 가구, 찻잔, 화병 등 그 모든 것의 디테일이 아름답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다보니 포스터 또한 옛날처럼 정보를 알리는 기능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 굉장히 아름답기를 요구했던 거죠. 그리고 이런 사람들의 열망에 딱 맞는 예술가가 등장했으니 그가 바로 알폰스 무하였습니다.
토모코 사토 큐레이터는 이번 '아르누보와 유토피아전'에 대해 "무하의 연대기를 살펴볼 수 있는 기획전시"라며 "알폰스
무하에 대해 일반적으로 디자인적인 면이 강한, 장식적인 작가로만 생각하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그 외에 애국자로서의
면모, 희망적인 유토피아를 그리는 철학적인 모습까지 아우른다"고 소개했다.
아울러 사토는 무하 작품의 매력에 대해 구체적으로 소개했다. 토모코 사토는 "아름다운 여인, 꽃, 나무, 덩굴 모티프 등
무하 작품의 특징들이 있는데 이게 바로 아르누보의 특징이기도 하다"면서 "무하가 아르누보의 영향을 받은 게 아니라
무하 작품이 아르누보를 대신한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날 자리에 함께한 알폰스 무하의 손자인 존 무하는 "무하 재단은 거의 3000점에 이르는 방대한 작품을 보유하고 있다"면
서 "무하의 작품들이 상업적 포스터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 파스텔, 유화에 이르는 여러 장르가 있다는 걸 알리고 싶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