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당 장일순과 박맹수
『생명의 눈으로 보는 동학』의 저자 박맹수 교수는 1980년 5월 사단사령부 연락장교로 근무하면서 매일 새벽 전날 일어난 사건을 사단장에게 보고하는 일을 했답니다. 이듬해 제대를 하고나서 자신이 국민을 학살하는 군대의 하수인 노릇을 한 것을 깨닫고 나서 도저히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못하였고, 익산에서 원불교중앙총부에서 교역 생활을 하면서 야학교를 만들어 야학을 통한 민주화 운동에 발을 디밀게 되었다고 합니다.
야학운동을 하면서 80년 5월 광주 학살의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근현대사 및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83년에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 들어가 한국근현대사를 공부하게 됩니다. 그리고 오늘의 한국 문제의 근원이1894년 동학농민혁명의 좌절에서 비롯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본격적인 동학공부의 길에 나서게 되었다고 합니다.
1986년 해월 최시형 선생에 관한 석사학위논문을 마치고 박사과정에 있던 중, 원주에 해월 선생과 동학을 무지하게 좋아하는 도사님 한 분이 계시다는 말을 듣고 찾아가게 됩니다. 이 분이 바로 무위당 장일순 선생입니다. 첫 대면에서 장 선생님은 “얘 맹수야! 넌 다른 놈들이 다 전봉준에 미쳐서 거기에 푹 빠져 있는데, 무슨 생각으로 해월 선생을 연구하게 되었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인연이 되어 한두 달에 한 번씩 찾아 뵙게 되었다고 합니다.
박맹수 선생은 그 당시 군대 안에서 광주 학살이라는 비극적 사건을 겪었기 때문에 ‘불덩어리’ 그 자체 였다고 합니다. 작은 폭력을 사용해서라도 더 큰 폭력으로 민중을 압살하는 정치체계를 엎어버리고 싶은 열망으로 여러 시위나 정치적 사건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그때마다 귀에 딱지가 앉도록 무위당의 말씀이 “전두환을 사랑해야 한다”는 말씀이었다고 합니다.
박 선생은 1988년 정신문화연구원 노조 발기인이 되어서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어용교수 물러가라는 데모를 주도하기도 했는데, 이 사건으로 여러 가지 불이익을 당했고, 박사 학위도 10년만에야 가까스로 통과되었다고 합니다. 『해월 최시형 연구-주요 활동과 사상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입니다. 이는 순전히 무위당 선생의 격려로 가능했는데, 어느 날은 난을 한 점 쳐주시면서 “낭만주의자라야 진정한 혁명가가 될 수 있다. 1%의 가능성만 있어도 포기하지 말고 ‘로망(희망)’을 가져야 한다.”고 격려해주셨고, “내유천지(內有天地)하면 외무소구(外無所求)니라.”를 화제(畵題)로 주시기도 했다. “안으로 천지, 즉 우주를 가지고 있으면 밖으로 아무것도 구할 게 없느니라(네 안으로 바른 중심만 서 있으면 바깥 일이 제대로 되는 것 하나 없어도 걱정할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무위당 선생은 한국전쟁 무렵 오창세라는 친구에게서 동학을 알게 되었고, 그 무렵 동학 천도교쪽에서 ‘민족 자주’를 기치로 혁신정당이었던 근로인민당에 많이 가입했는데, 보도연맹사건으로 억울하게 학살을 당했다고 합니다. 바 교수는 30년 동학을 연구하면서 한 가지 확실하게 깨달은 것이 동학을 ‘하는’ 분들의 가장 큰 특징은 “제 발과 제 힘, 제 생각을 가지고 제대로 된 삶과 제대로된 사회를 만들려고 했다.”고 합니다. 이런 점에서 동학은 특정 종교가 아니며, 사람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가 제 결대로 제대로 사는 것을 지향한 ‘생명사상’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동학은 창도 초기부터 한결같이 ‘민족자주’를 고민하였고, 바로 이것 때문에 외세 및 그 외세와 결탁한 세력으로부터 끊임없는 협공을 당하게 됩니다.
강원도 원주는 해월 선생과 인연이 깊은 땅이라 합니다. 1898년 6월 체포되신 호저면 송골이라는 곳과 1890년대 몇 개월간 은신해 계셨던 수레너머라는 유적지가 있습니다. 호저 송골에는 해월 선생 추모비를 세웠고, 수레너머에는 한 살림수련원을 세울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고 합니다.
어느 날 무위당 선생은 『한살림선언』이라는 작은 책자를 한 권 주시면서 “이것 공부해라. 네 생각이랑 많이 맞을 것이다.”그러시면서 ‘한살림모임’을 소개해 주셨주셨는데, 여기서 꿈에도 그리던 김지하 시인을 비롯하여 박재일 한살림회장, 김민기 선배, 최혜성 선생, 서정록 선생, 윤형근 선생 등을 만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박 교수는 『한살림선언』을 처음 접하고 느꼈던 충격이 자신의 인생에서 코페르니쿠스적 인식의 전환을 가져다 준 사건이라고 회고 합니다. 한 마디로 ‘동학이 바로 이거야!’할 정도로 동학이 새롭게 부활하여 나타난 것이 바로 『한살림선언』이라 합니다. 다시 말해서 동학사상의 20세기적 현현이라고 할까요?
“바로 이것(『한살림선언』)이 해월 선생께서 38년 동안 조선팔도를 전전하시면서 우리에게 전해주고 알려주고 깨우쳐 주시려 했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바로 이게 무위당 선생께서 평생토록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려 했던 바로 그(생명) 사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바로 이거다’라는 생각에 제가 그대로 『한살림선언』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이 들고, 그때서야 비로소 ‘아 내가 결코 미친 놈이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1992년 원불교 교단에서 ‘영산원불교대학’이라는 대학을 신설하게 되고 박 교수는 창립 멤버로 포함되어 강원도 원주를 떠나 전남 영광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무위당 선생은 그 소식을 들으시고 “일체중생 하심공경 시수행인 청정심야( 一切衆生 下心恭敬 是修行人 淸淨心也)”라는 『육조단경』의 말씀을 화제로 써주셨다고 합니다. ‘모든 중생을 하심해서 늘 공경해야 그게 종교의 가르침을 진정으로 실천하는 사람’이라는 말씀이다.
박 교수는 원불교 교역자이면서도 ‘혁명’을 하고 싶었고, ‘혁명’을 하면서도 종교적 심성(영성)을 잃지 않는 것이 꿈이자 고민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해월 선생을 연구하면서 무위당 선생과 만남을 통하여 그런 모습을 찾았다고 합니다. 두 분 모두 영성과 혁명을 탁월하게 통합한 어른으로 보였다고 합니다. 심지어 생전의 무위당 선생을 뵈올 때마다 언제나 100년 전의 해월 선생께서 부활하셔서 이 자리에 계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했다고 합니다. 두 분에게는 공통점이 있으니, 풀뿌리 민초에 대한 따뜻한 애정과 무한한 관심입니다.
무위당 선생이 원주 봉산동에서 시내로 오시는 길은 15분 거리인데, 길거리의 좌판 행상하시는 아주머니 할머니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느라 늘 두 시간이 걸려서야 시내로 나오시곤 했다 합니다.
해월 선생이야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한 번은 제자 서장옥이 부당하게 귀양가고 감옥살이하는 동학 도인들을 위하여 관에 항의하다가 붙잡혀 갇히게 되자, 이 일로 해월 선생도 신변의 위기를 느끼고 피신하던 중, 종일 비를 맞고 주막에서 쉬게 되었는데 밤늦도록 잠을 자지 못했다고 합니다. 제자들이 의아해서 여쭙자, 해월 선생은 “장옥이가 지금 동지들을 위해 일을 하다가 잡혀 감옥에서 죽을 지경에 이르렀는데, 내가 어찌 이만한 일로 따뜻한 이불을 덮고 편한 잠을 잘 수 있겠느냐?”하면서 밤을 꼬박 지새웠다고 합니다.
또 해월 선생이 “내가 젊었을 때 남의 집 머슴살이를 많이 했는데, 그때 사람들이 ‘머슴 놈, 머슴 놈’하면서 멸시하곤 했을 때 참 가슴이 많이 아팠느니라. 사람이 곧 하늘님이니 너희들은 사람모시기를 하늘님 모시듯이 해야 한다”고 평생토록 강조하셨다고 합니다.
동학농민군의 혁명 또한 이런 말씀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1894년 음3월 20일경 전봉준 장군을 필두로 보국안민(輔國安民)과 광제창생(廣濟倉生)을 내걸고 전라도 무장에서 봉기한 동학농민군 지도부가 조선팔도에 포고한 「무장포고문」을 보면,
“우리는 비록 시골의 이름 없는 백성들이지만 이 땅에서 나는 것을 먹고, 이 땅에서 나는 것을 입고 사는 까닭에 나라의 위태로움을 차마 볼 수가 없어 팔도가 마음을 합하고 억조창생들과 서로 상의하여 오늘의 이 의로운 깃발을 들어 잘못되어 가는 나라를 바로잡고 도탄에서 헤매는 백성들을 편안하게 만들 것을 죽기로서 맹세하노니, 오늘의 이 광경은 비록 크게 놀랄만한 일이겠으나 절대로 두려워하거나 동요하지 말고 각자 자기 생업에 편히 종사하여 다 함께 태평성대를 축원하고, 다함께 임금님의 덕화를 입을 수 있다면 천만다행이겠노라.”
민초가 바로 하늘이고 해월과 전봉준과 무위당의 민초사랑이 하늘사랑과 같을지니, 동학은 바로 인내천 사상이고 생명사상입니다.
(이상은 박맹수의 『생명의 눈으로 보는 동학』 제1부 1장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과 동학, 그리고 생명평화’를 정리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