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에 쓰는 일기 299 (결혼기념일)
1년에 한 번씩 호텔에서 숙식한다. 그날은 우리의 결혼기념일이다.
장소는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에 세운 ‘티롤호텔’이다. 인연이 깊은 곳이다. 기본설계와 감리는 오스트리아 회사에서 맡았다. 설계에 참여한 인테리어엔지니어와 오랜 교분이 있다. 완공한 해인 20여 년 전 시월에 우리 부부는 티롤호텔로 초대받았다. 공교롭게도 그날이 결혼기념일 전날이었다. 그 때문에 그 호텔과 인연의 끈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10월 13일, 어제가 바로 결혼 전일이다. 아침부터 서둘러 무주에 도착했다. 선선한 가을바람과 따갑지 않은 햇살이 좋다. 우린 가을과 함께 호텔 주변을 산책한다. 우리나라의 가을은 알프스의 산자락에 자리 잡은 이탈리아나 오스트리아의 풍경과 사뭇 다른 느낌이다. 이처럼 四季가 뚜렷한 나라에서 사는 것은 축복이다. 그중에서 가을은 나로 하여금 깊이 생각하게 한다. 스스로 성찰하게 하고, 지나온 생을 반추하게 한다. 특히, 생의 동반자인 아내에게 잘못한 언행에 대하여 깊이 반성하게 한다. 솔직히 나는 아내를 통하여 많은 앎을 얻는다. 예를 들면 이타적인 삶이 행복의 순환이란 것이다. 만약, 아내의 삶이 이기적이었다면, 지금 누리는 이 작은 행복의 동맥은 경화(硬化)상태였을 것이다. 모난 나의 성품을 사랑으로 다듬어준 아내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잊지 않았다.
고사성어에 이런 말이 있다. 사림습조(詞林習鳥) 학해유어(學海遊魚) 해석해 보면 “배움이 있는 숲에 새들이 와서 익히고, 배움이 있는 바다에서 고기도 와서 논다.”돌이켜보면 나의 학문이나 지식 절반 이상은 부부생활에 역기능으로 작용했다. 잘난 척하는 것은 진짜 못난 것을 숨기기 위한 가면이다. 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말싸움으로 상처를 주었던가. 헛된 과시로 아내를 기만한 경우가 허다하다. 결과적으로 내면을 살찌우는 배움(앎)을 기피했던 까닭이다. 비로소 나는 깨닫는다. 아내의 정직하며, 온유하며, 정숙하고, 이타적인 마음이야말로 정녕 아름다운 배움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케이크 위에 촛불이 차츰 늘어난다. 얼마나 더 많은 촛불을 밝힐 것인지 우린 알 수 없다. 내일의 일은 하나님만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살아 있는 지금, 서로에게 충실하기로 했다. 그것이 곧 행복의 순환이기 때문이다.
굳이 동참하겠다는 아들내외와 삶과 앎, 이타의 미학을 이야기했다. 아내는 아들 부부에게 오드리 헵번의 아들에게 주는 편지를 읽었고, 나는 아내에게 편지 한 통을 주었다.
Audrey Hepburn 아들에게
아름다운 입술을 갖고 싶으면, 친절한 말을 하라. 사랑스런 눈을 갖고 싶으면,
사람들에게서 좋은 점을 보아라. 날씬한 몸매를 갖고 싶으면, 너의 음식을 배고픈 사람과 나눠라.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갖고 싶으면 하루에 한번 어린이가 손가락으로 너의 머리를 쓰다듬게 하라. 아름다운 자세를 갖고 싶으면, 너 혼자 걷고 있지 않음을 명심하며 걸어라.
사람들은 상처로부터 치유되어야 하고 낡은 것으로부터 새로워져야 하며, 병으로부터 회복되어야 하고, 무지함으로부터 교화되어야 하며, 고통으로부터 구원받고 또 구원받아야 한다. 결코 누구도 버려서는 안 된다. 기억하라. 만약 도움을 주는 손이 필요하다면, 너의 팔 끝에 있는 손을 이용하면 된다. 더 나이가 들면 손이 두 개라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한 손은 너 자신을 돕는 손이고 다른 한 손은 다른 사람을 돕는 손이다.
당신과 함께한 나날이 행복합니다. (2017년 10월 14일 토)
아침에 일어나 텃밭의 풍경을 봅니다. 2주 전에 파종한 총각무가 이제 떡잎을 밀치고 연초록 잎이 신선합니다. 스스로 잎을 버리는 이 가을에 새롭게 탄생하는 모습이 참으로 경이롭습니다.
오늘은 우리의 결혼기념일입니다. 세월이 유수라더니 강산이 수십 차례 변하고 바뀌고 있습니다. 그날도 오늘처럼 화창한 가을날이었지요. 심란했던 영육이 당신을 만나 부드럽고 편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늦게나마 신앙을 갖고 마음도 활짝 깨어나게 하였습니다. 무엇보다 물욕에 서둘러 탐하지 않고, 가진 것에 만족하고 감사하게 사는 우리의 일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이 모든 변화의 첫 단추는 당신이 하나님께 드린 간절한 기도의 응답입니다. 늘 당신이 곁에 있어 행복합니다.
동안 힘들고 괴로운 짐도 함께 이고 지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험한 세상 헤쳐 나갈 수 있었던 것 또한 하나님의 은혜와 당신의 희생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의 여생은 황혼의 들녘에 들어섰습니다. 하나님께서 빚어낸 저 황혼빛처럼 찬란하고 아름답게 여생을 보내고 싶습니다.
비록 주름진 세월은 강파른 나날이었지만, 당신의 사랑이 있어 행복했습니다.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이해의 폭을 넓히고, 나보다 당신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삶을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언행은 미천하나 여전히 당신을 사랑합니다. 결혼기념일, 이른 아침에 이런 기도문을 작성해 보았습니다.
하나님, 우리의 여생에 아름다운 꿈들을 잃지 않게 하시고 날마다 새 아침으로 새날을 맞이하게 하소서! 삶이 넉넉한 길이 아니더라도 꿈이 살아있고, 따스한 사랑으로 늘 다독이는 소박한 마음과 손길이 되게 하소서! 힘들고 좁은 길이라도 푸른 하늘에 희망의 열매가 아름답게 열리게 하여 주소서! 오늘의 건강을 주셨듯이 내일도 건강으로 축복해 주셔서 살아 있는 동안 우리 부부 그리스도 안에서 참삶을 살 수 있도록 은혜 베풀어 주옵소서!
첫댓글 아름답고 멋지게 사는 것은 누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닐 겁니다.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런 면에서 이 선생님의 결혼기념식은 참으로 부럽습니다. "아내의 정직하며 온유하며 이타적인 마음이야말로 정녕 아름다운 배움의 결과"라고 고백하시는 이 선생님, 그렇게 극진히 이해해 주시는 남편을 둔 사모님은 참 행복하시겠습니다. 축하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잘한 것보다 못한 것이 더 많습니다. 많지 않은 여생, 서로 어깨가되고 품이 되어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읽다가 몇 번이고 경탄의 한숨이 나왔습니다. 얼마나 찬란하고 아름답게 살아가시는 두 분이신지요. 저도 무주에 가봐야겠습니다. 풍경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질 것 같아요. 축하드리고, 더욱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젊었을 때 서로 잘 해야만 나이들어 후회가 없습니다. 우리 김지안 총무국장님은 선배들의 후회담을 듣고 거울이 되시기 바랍니다. 사랑스런 눈빛으로 남편을 쓰다듬어 주십시오. 그리하면 더욱 빛나가 보일 것입니다. 오늘도 많이 웃으십시오.
아름답게 저물어가는 모습이십니다. 축하합니다.🎎
네, 무엇보다 아내와 저를 가장 우선으로 살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아내에게 잘못한 것만 떠오릅니다. 건강하시죠? 감사합니다.
티롤에 가면 이태호 선생님과 이효순 선생님의 특별한 어느 한날이 생각날 것 같습니다. 아름다운 부부십니다. 많은 것을 배웁니다. 두 분 내내 건강하시고, 행복한 모습으로 본이 되어주시길 빕니다~~~^^*
엎드리면 코 닿는 곳에이 세상에서 젤 아름다운 잉꼬 부부의 보금자리가 있군요.
자신있게 사랑의 글을 헌정할 수 있는 해헌님은 이 세상을 자신있게 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두분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