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25편
고난 가운데 하나님의 지키심을 굳게 믿고
하나님만 의지하며 복을 누리자
(찬송 384장)
2022-9-13, 화
맥락과 의미
시편 120-134편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절기에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가면서 이 시편들을 불렀습니다. 123편부터는 성전에서 예배를 드릴 때의 마음을 담은 시들입니다. 125편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을 안전하게 지키시는 것을 찬송합니다. 1-2절은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르고 있듯이 하나님께서 백성을 두르시고 지키신다고 노래합니다. 3-5절은 하나님께서 선한 자들을 지키시고 악인들을 심판하실 것을 간구합니다.
1. 여호와는 자신을 의지하는 자를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심(1-2절)
시인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가 마치 시온 산과 같다고 합니다. 시온 산은 흔들리지 않고 영원히 그 자리에 있습니다. 시온 산 자체가 무슨 특별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곳이기 때문에 굳건합니다. 시온 산이 흔들리지 않고 영원하다는 말은 하나님이 흔들리지 않고 영원하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르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산악 지대에 위치한 도시입니다. 주위에 산들이 많아서 적이 쉽게 쳐들어올 수 없었습니다. 마치 여러 큰 산들이 예루살렘을 둘러서서 지키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지키시는 것이 마치 이와 같습니다. 마치 큰 산들이 버티고 선 것 같이 하나님이 백성들을 안전하게 지키고 계십니다.
예루살렘에 살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안전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보내셔서 유다 백성들의 패역함을 심판하셨습니다. 바벨론 군대들이 예루살렘 성을 함락시켰습니다. 솔로몬이 지은 성전을 파괴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키지 않으시면 아무리 높은 산지에 있는 예루살렘 성이라도 순식간에 허물어져 버립니다.
사람의 세력은 예루살렘 성을 공격하기도 하고 성전을 파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시온 산 자체는 어찌 할 수 없습니다.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산이 그 자리에 서 있듯이 하나님도 영원히 계십니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 또한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 안에서 영원히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그분의 백성들을 지키고 계십니다(2절). 바벨론 포로와 같은 힘든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안전하게 지키신다고 고백하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의 생각으로 하는 말이 아닙니다. 믿음의 고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산처럼 우뚝 서 계십니다. 우리를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고 계십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여호와를 굳게 의지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 보호받는 복을 풍성히 누리시길 바랍니다.
2.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심판하시며 이스라엘에게 평화를 주심(3-5절)
때로 악인의 규가 의인들의 땅에서 영향력을 끼치는 일이 있습니다. 규는 왕의 통치권을 상징하는 지팡이를 말합니다. 귀한 보석으로 화려하게 만들어서 왕의 위엄과 권위를 나타냈습니다. 악한 통치자가 규를 휘두르면서 예루살렘에 세력을 미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의로운 하나님의 백성들을 부당하게 공격했습니다. ‘여호와를 의지한다’는 말이 한가로운 상황에서 하는 속 편한 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 줍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악인이 계속해서 의인들의 땅을 지배하도록 두지 않으십니다. 아무리 악인의 권세가 강해 보인다고 하더라도 결코 여호와를 의지하는 사람들을 완전히 다스리지 못합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몰아내실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결코 절망하지 않습니다. 악인의 세력에 굴복하거나 하나님을 의지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지키시는 까닭은 백성들이 죄악에 손을 대지 않도록 하시려는 것입니다. 악인들의 지배를 받는 상황에서는 죄악에 휩쓸리기가 쉽습니다. 현실에 마음이 뺏겨서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잊어버립니다.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악인들의 지시에 따라가 버립니다. 하지만 세상 주관자들은 결코 우리를 지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선을 행하길 힘쓰는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지키십니다. 우리에게 부당한 일을 강요하는 권세자들을 몰아내실 것입니다. 고난 가운데서도 한결같이 선을 행하는 데 힘을 사용하시길 바랍니다.
4절에서 시인은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선한 자들과 마음이 정직한 자들에게 선을 베풀어 달라고 합니다. 오늘 시에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다양한 표현으로 묘사합니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1절), 여호와의 백성(2절), 의인(3절), 선한 자들과 마음이 정직한 자들(4절)이라고 합니다. 선한 자들과 마음이 정직한 자들은 바로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항상 지켜 주신다는 것을 생각하며 선을 행하기 위해 힘씁니다. 마음으로 올곧게 하나님을 섬깁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에게 선을 행하십니다. 흔들리지 않고 영원히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들을 산과 같이 두르셔서 지켜 주십니다. 악한 사람들의 권세가 이들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막아 주십니다. 죄악을 행하지 않고 선을 행하며 살도록 도와주십니다.
이런 사람은 스스로 선을 행할 수 있다고 자신을 높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하게 대하여 주시길 계속해서 간구합니다. 겸손하게 하나님을 의지해서 선을 행해 나갑니다. 이러한 태도가 복됩니다. 이런 기도를 드린다는 것 자체가 이미 하나님이 베푸시는 선을 누리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지만 자기의 굽은 길로 치우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인생길의 방향을 잡지 못하고 상황에 따라서 이리 저리 갈팡질팡하며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이들이 굽은 길로 행하는 것과 4절에 선한 자들의 마음이 올곧은 것이 대비됩니다. 굽은 길로 치우치는 것은 그들의 마음이 구부러져 있는 것을 드러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사람은 마음 둘 곳이 없습니다. 주변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해서 휩쓸려 버립니다. 평안할 때는 하나님을 따르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악인의 규가 세상을 지배하는 것 같을 때는 악인들의 질서에 맞춰서 따라갑니다. 결국 이들은 죄악을 짓는 사람들과 같은 길을 걷게 됩니다. 고난의 상황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느냐, 아니면 세상 지혜를 의지하느냐 하는 갈림길에 서는 상황이 종종 있습니다. 세상 지혜를 따라서 잠깐 어려운 상황을 모면하고 보자 하는 것은 작은 일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끝은 죄악 가운데 들어가는 것이고 영원히 멸망을 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아갑니다. 악인들이 핍박할 때에도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만 순종하여 선을 행하는 일에 힘씁니다. 이들의 인생은 높이 계신 하나님께로 곧게 올라가는 여정입니다. 좌우로 흔들리는 일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이 참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을 영원히 지키시고 평화(샬롬)를 주십니다.
3.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하나님의 이스라엘”의 평강
예루살렘을 둘러 지키시는 여호와의 보호하심은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하여 온전히 성취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에 빠진 주님의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사랑하시는 아드님을 “예수”라는 이름으로 보내셨습니다. 바람과 바다도 잔잔케 하신 주님께서는 이 세상의 모습을 보고 요동하는 우리의 마음에도 참된 평안을 주십니다. 바람과 바다를 향하여 “잠잠하라, 고요하라”고 명령하신 것처럼, 우리의 복잡한 마음도 잠잠하게 하시고 더불어 환경도 바꾸어 주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원수를 다 멸망시키셨고, 평강을 선언하셨습니다. 따라서 사도는 이 평강의 복음을 전하면서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고 말합니다(갈 6:16). 이러한 평화의 선언은 전쟁이 끝났다는 선언이고 세상과 사망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우리를 이 세상에서 건지시고 주님과 함께 이미 하늘에 앉히셨습니다(엡 2:6). 따라서 아무도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를 함부로 해칠 수 없습니다. 바울 사도가 고백한 것처럼,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롬 8:38-39).
믿고 복종할 일
이 세상에서 일시적으로 악인의 권세가 대단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신 기업을 결코 주관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여러 직분을 맡겨 주셨습니다. 교회, 가정, 직장에서 하나님 나라의 사명을 감당해 갑니다. 이곳이 바로 우리들의 기업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땅입니다. 하나님이 이곳을 영원히 지키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둘러 지키고 보호하신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큰 확신이 됩니다.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죄악에 손을 대지 않도록 합시다. 기준이 없는 사람처럼 구부러진 길로 치우치지 맙시다. 어떠한 고난 가운데서도 주님만을 의지합시다.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여 일을 해 나갑시다. 주님께서 악한 자들의 권세를 몰아내 주실 것입니다. 우리들에게 평화를 주실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의지하며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복된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1. 오늘 말씀을 통해 계시해 주신 하나님을 감사 찬양합시다. 2. 하나님께서는 내게 무엇에 순종하라 하십니까? (회개, 감사, 사랑, 섬김 등) 주님께서 지금도 나를 산성처럼 두르시고 지키신다는 사실에 평안과 안정을 누리십니까? 이러한 확신 가운데 거할 때, 내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2절, 여호와께서 ‘두르심’(사비브)
여호와께서 주님의 백성을 둘러서 보호하신다는 사실을 잘 보여 주는 일이 엘리사 시대에 있었습니다. 아람 군대가 엘리사를 잡으러 와서 사마리아 성을 포위했습니다. 사환은 두려워하였습니다. 엘리사는 사환에게 “우리와 함께한 자가 저희와 함께한 자보다 많다” 하고 대답하였고,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사환의 눈을 열어서 불 말과 불 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두른’(사비브) 것을 보게 하셨습니다(왕하 6:17).
스가랴서 2장을 보면 예루살렘에 성벽이 없어도 여호와께서 친히 둘러서 지키실 것을 이야기합니다. “너는 달려가서 그 소년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예루살렘에 사람이 거하리니 그 가운데 사람과 육축이 많으므로 그것이 성곽 없는 촌락과 같으리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그 ‘사면에서’(사비브) 불 성곽이 되며 그 가운데서 영광이 되리라.”(슥 2:4-5)
<참고> 3절, 악인의 ‘규’(셰베트)와 의인의 ‘땅’(고랄)
“악인의 규”에서 “규”(셰베트)는 왕의 홀(笏)과 같은 통치권을 가리키는 말이고, 의인의 “땅”(고랄)은 이스라엘의 자녀들이 물려받은 기업의 땅을 가리킵니다. 아합과 이세벨이 나봇의 기업을 빼앗고 나봇과 그의 아들을 죽인 일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것처럼(왕상 21장), 이스라엘 역사에서 악인이 자신의 권세로 의인의 기업에 손을 뻗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약속으로 주신 가나안 땅을 이방 나라가 점령하는 경우도 악인의 권세가 의인의 기업에 세력을 미치는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 앗수르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사건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참조. 사 9:4; 14:4-5, 29; 30:31). 이방의 통치권이 의인의 기업에 미쳐서 사람들에게 자기들의 신을 섬기도록 강요하였습니다.
<참고> 5절, 평강(샬롬)
주님께서 복으로 주시는 “평강”은 단지 마음의 상태만을 일컫지 않습니다. “샬롬”이라는 말은 번영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에서 악인이 세력을 떨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이 땅을 차지하게 하실 것입니다. 의인이 하나님의 복 주심으로 더 번영하고 번성하는 것이 평안입니다. 세상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서 친히 주님의 백성을 보호하시고 그들을 번성케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