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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아미산 굴뚝의 매화문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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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자경전 굴뚝벽의 대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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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자경전 십장생 굴뚝 측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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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에서 자연 형태로 묘사된 산이나 바위나 정자를 유(有)라고 할 때, 나머지 비어 있는 공간은 무(無)이며 여백이 된다. 그 여백은 깊은 못에 고인 물처럼 깊고 담담하고 고요하며 달달하다. 담담하고 고요하다 못해 근원으로 돌아가는 자태를 상징히며 산이나 바위나 정자의 배후에 있으면서 그 근원을 암시한다. 조선 후기 전기의 ‘계산포무도’를 보면 간단한 붓질로 그림을 그렸는데, 여백이나 선묘에 있어 이상적인 조형 질서에 도달하기 위한 계산된 의도 같은 것을 찾아 볼 수 없다. 이정의 ‘산수도’, 김수철의 ‘송계한담도’ 등도 이같은 맛이 새록새록 우러나오고 있다.
그림의 여백이 공간적 개념이라면 음악의 여백은 시간적 이미지를 갖고 있다. 판소리에는 목소리가 스러져 단절되어 소리가 없다가 다시 살아나는 창법이 있는데, 그 소리없는 묵음, 곧 휴지(休止)의 순간을 담아낸 시간적 여백이다. 이 멈춤의 시간은 앞의 소리가 끝난 즉시 뒤이어 다음 소리가 계속됨을 환기하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소리 가운데서 그런 역할을 하는 것이 쇤목, 짠목, 자지러진목 등으로, 이는 소리 없는 데서 소리 이상의 것을 표현하거나 듣는 한국적 여백미의 표출이다.
한국의 꽃담과 화려한 그 문양과 상징 체제 역시 여백을 충분히 살리는 한편 판소리의 묵음같은 존재다.
경복궁 자경전 십장생 굴뚝 속 십장생이 사시사철 세상 사람들을 반긴다. 하지만 그 속의 꽃과 화초들은 이 땅에 피어난 게 아니다. 한국인의 마음에 활짝 함초롬히 핀 꽃, 바로 굴뚝에 조각해 놓은 영원의 꽃이다. 그래서 방실방실 시들 줄을 모른다. 꽃으로 장식한 굴뚝은 꽃담이 되고, 각종 길상 문양은 치렁치렁 벽면에 매달려 5미6감을 세세토록 자극한다. 문양 하나하나가 그대로 꽃밭이고 꽃가마가 아니던가. 사방 연속무늬로 끝없이 이어진 꽃들은 화려하지만 천박하지 않다. 단청의 화려함은 세월에 씻겨 사라져갔지만 남아 있는 굴뚝은 한편 담백하고 한편 청아하며 한편 깔끔해 순박한 한국의 멋과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경복궁 자경전 십장생 굴뚝은 조선시대 궁궐의 굴뚝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예술품이다. 해, 바위, 거북 등 십장생은 장수, 포도는 자손의 번성, 박쥐는 부귀, 나비, 불가사리 등은 악귀를 막는 상서로운 짐승들이 등장한다. 꽃담에 앉아 달을 맞는 새 한 마리! 얼키설키 우리네 황토를 구워 만든 담벼락에 흙을 구워 꽃을 피우고 휘영청 보름달을 띄웠다. 경복궁 자경전 꽃담에 새벽돌을 구워 그린 매화. 가지 끝 둥근 달엔 한 마리의 새가 둥지를 틀고 앉아 웃는다. 시나브로 가지에 매화가 송이송이 피었다. 매화뿐 아니라 난초 국화 대나무 나비 연꽃 온갖 화초와 새들을 줄줄이 그려 놓았다. 비로소 구중궁궐이란 말이 다 실감난다.
꽃무늬를 놓아야만 반드시 꽃담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식물도 좋고, 글자도 좋고, 동물도 좋다. 무심히 지나치는 작은 문양 하나에도 조상들의 염원이 쉼쉰다. 전돌 자체에 무늬를 새겨 길상과 벽사의 뜻을 나타낸 예가 있는가 하면 여러 전돌 모양과 색을 조합해 담장이나 벽면을 꾸민 것도 있다. 길상무늬에는 십장생이 있고, 국화에 나비가 앉은 것, 쌍학이 천도를 맞잡아 문 것, 바위 위에 석류나무가 솟아 가지마다에 탐스런 석류가 영근 것, 고목 등걸에 매화 가지가 뻗어 거기 꽃이 피고 망울졌는데, 이때 한 마리의 새가 날아든 것도 있다. 또 모란이 피어난 곳에 범나비 한 쌍이 머물고, 가지와 잎이 검고 꽆은 붉은 진달래가 봄 아닌, 사시를 두고 피어나 있기도 하다. 용이나 봉황, 박쥐 등 상서로운 동물은 물론 대나무, 매화, 포도와 같은 식물 무늬도 볼 수 있다. 동식물 외에도 뇌문(雷紋)이나 만자문(卍字紋), 길상문자문의 보기 등도 아주 많다.
창덕궁 낙선재는 단청이 없고 단아한 멋이 있는 반면 다양한 외관과 후원의 화계가 훌륭하며 다복과 다산을 상징하는 문양이 많아 은근한 맛이 일품이다. 하지만 한평생 눈물 짓고 살았던 궁궐 연인네들의 한이 서려 있으며, 그들만의 은밀한 이야기가 숨어 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기품이 있고, 향기는 없지만 눈이 아린 '무늬가 끝없이 이어지는 ‘무시무종(無始無終)’의 꽃담에 구곡간장이 다 녹을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영생의 염원을 도모하는 ‘무시무종’ 무늬로 인해 잡귀가 썩 물러갈 날 날도 멀지 않다.
낙선대에서 석복헌으로 통하는 뒤뜰 샛담의 포도 무늬는 다산을 상징한다. 포도 무늬가 있는 담 뒷면을 매화 무늬로 바꿔 꾸미는 기발한 착상은 더욱 백미다. 뭐니뭐니해도 점선 무늬의 핵심은 일월성신(日月星晨) 무늬다. 기와로 무늬를 형성하면서 둥글게 다듬은 화강석으로 해, 달, 별을 표현해 자연을 숭상하는 마음을 드러냈으니 하늘에 그렇듯이 우주에 별이 총총할까. 낙산사의 원장과 창덕궁 주합루 서쪽 담, 창덕궁의 인정전 뒷담, 해인사 원당암 앞 담장, 수원 화성 동장대 합각의 둥근 무늬, 도동서원 담의 둥근 무늬 등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화성의 동장대는 왕을 보호하기 위해 경호군사들이 담 뒤에서 숨어서 몰래 지켜본 영롱무늬의 담이 둘러쳐져 있으며, 전남 송광사 침계루 통풍구의 네 장의 꽃 이파리는 붉은 나무 기둥과 푸른 창문과 노란 벽면이 주변의 초록 빛깔과 어우러지면서 수려한 풍광이 그만이지만 ‘정도를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는 말과 ‘편안한 마음으로 제 분수를 지키며 만족할 줄을 아는’ 세상살이를 일러준다.
‘쓸모’ 위에 정갈하게 버무려진 ‘꾸밈’은 한국 전통문양의 독창성이다. 그동안 한국 전통문양은 이처럼 뚜렷한 매력에도 불구하고 고루함이라는 편견 속에 지난 시대의 유물로 치부됐다. 전통과 현대의 간극 속에 움츠러들었던 꽃담의 전통문양이 새로운 활력을 얻는다면 현대 디자인의 새로운 가치로 보편화되는 ‘찬란한 유산’이 될 수 있다. 한국 전통문양의 편안한 아름다움과 조화로운 화려함이 가장 한국적인 가치에서 가장 세계적인 가치로 자리매김하게 되려면 꽃담의 문양이 갖는 가치를 깊이 생각하면서 다양한 쓰임새로 이어져야 한다. 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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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대흥사의 꽃무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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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자경전 십장생 굴뚝 벽 윗부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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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선재 수강문 출입문 매화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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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담의 상징 무늬
매화:순결, 절개
복숭아:신성 서왕모가 가꾸었다는 천도는 예로부터 장수 축원 잔치에 빼놓지 않는 과일
모란:귀함
석류:아들 생산
국화:장수
연꽃:꽃과 열매가 동시에 생기므로 다산
대나무:장수를 기원하기도 하고, 악귀를 쫓음
도깨비:나쁜 귀신을 몰아냄
사슴:하늘로 뻗은 뿔이 신의 뜻을 감지하는 신성한 것으로 여겨져 불행과 질병 막아냄
용:화재를 막는 등 집을 지키는 수호신
불가사리:불을 잡아먹기 때문에 목조건물 등 전통 건축에 불을 막음
박쥐:박쥐의 한자 표기에서 복(福)과 발음이 같아 복됨 상징
십장생:민간신앙이나 도교에서 불로장생을 상징하는 10가지 사물
기하문:대부분 반복되는 무시무종 형태는 장수를 의미